16-7세기 남산 요괴분포지도 (그리고 17세기 묵사동 작은 노파요괴) 설화 야담 지괴류

예전에 말씀드린대로 여러 기담에 전하는 한양 남산밑의 조선중기 (대체로 16-17세기에 집중된)에 등장하는 요괴/귀신들의 '지도'를 공개합니다.

그에 앞서 17세기 [천예록]에 등장하는 묵사동 소나무숲의 노파요괴부터 소개하죠.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 남소문동에 살던 종들과 나무꾼 십여 명이 함께 새벽에 길을 나서서 묵사동 흉가에 들어갔다. 웬 노파 한 사람이 뒤뜰 소나무 사이에 앉아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은 그것이 요귀라고 생각하였다. 종 한 사람이 낫을 들고 다가가 내려찍으니 그 노파는 집안으로 달아났는데, 키는 겨우 한 자 정도였는데도 힘은 남보다 월등히 셌다.
-天倪錄 

묵사동은 부동과 함께 남산아래 귀신이 많이 등장하던 곳입니다. 현재의 '장충동'이 묵사동이죠. 또한 글서두에 등장하는 '남소문동' 역시 '남소문'이 있던 곳, 즉 현 장충동의 일부였습니다. 그냥 작은 노파가 힘이 셌다라고 되어 있으면 사람을 착각했을 수 있겠구나 싶을텐데, 이 노파가 '요괴'라는 것은 그 길이에서 알 수 있습니다. 키가 겨우 한자 정도였다라는 구절로, 1자는 1척, 즉 고작 30센티가량에 불과합니다. 난쟁이가 아니라 조금 큰 요정류에 가깝겠죠.

남산에 등장하는 요귀들의 이야기는 차곡차곡 정리해서 이 글 (17세기 또다른 남산귀신- 전국을 비행한 사내에 링크들을 걸어둔 바 있습니다. 아래는 필자가 작성한 16-7세기 한양 남산근처 요귀지도입니다. 한번 보시지요.

16-17세기 남산 요괴지도

여기 등장하는 모든 요괴들 (그리고 공개하지 않은 이야기 중 하나도 미리)은 공통적으로 남산근방에 몰려 있습니다. 저중 많은 이야기를 포함한 '천예록'의 저자 임방이 이 근방에 산 것이 아니냐 (그래서 그 근방의 이야기를 적어둔 것이 아니냐)라는 추측을 할 수 있으나, 임방은 영광, 여주, 금천등을 떠돌며 산 인물로 남산과 그리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남산북쪽과 남쪽

한가지 재밌는 추측(억측)을 하자면, 지도를 보시면 흉가가 남산 남쪽 (즉, 하얏트호텔쪽이나 한남동)으로는 하나도 없죠. 지금도 한남동, 이태원쪽은 천혜의 명당으로 불린다고 합니다. 2010년 이런 기사도 있었죠 (믿거나 말거나).
"남산 용맥기운 농축된 한남동ㆍ이태원=한남동은 천혜의 명당, 서울에서도 극히 좋은 자리로 꼽힌다. 한강 물이 감싸고 도는 데다 남산에서 서빙고동으로 연결되는 산줄기가 한남동을 품어 안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특이하게도 같은 남산근처인데, 남산북쪽에 대한 이야기는 기사에 없더군요.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이런 기사 (2001년)입니다.

기사중 발췌:
70년대까지 명성을 날리던 옛 상업은행은 80년대 들어 이철희·장영자 사건부터 90년대 한양 문제까지 큰 사건에 휘말리며 기우뚱거렸다. 이러자 94년 7월 상업은행 사람들은 은밀히 지관을 불러 본점 터의 길흉을 따져봤다. 

결론은 본점 ‘터가 나쁘다’였다. 풍수지리학적으로 보면 서울 소공동 옛 상업은행 본점 터는 온갖 살과 나쁜 기운이 몰리는 흉가의 가상이라는 것. 구체적으론 본점 터가 소공로와 남대문로 그리고 남산 3호 터널길이 마주치는 꼭지점에 3호 터널을 정면으로 마주 보고 삼각형 모양으로 들어선 까닭에 남산 쪽에서 불어오는 나쁜 기를 온몸으로 떠안는 모습이라는 얘기였다. 

여기에 지난 82년 3호 터널이 뚫리면서 남산에 구멍이 생겨 더 흉한 운명이 됐다는 분석이었다. 공교롭게도 상업은행은 3호 터널 개통 이후 82년 이-장 사건, 92년 명동 지점장 자살 사건, 한양 사태 등 굵직한 금융 사고에 시달렸다. 
중략.
=====

기사에는 역사적인 이야기는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흥미롭지요- 즉, 필자가 발견한 이런 이야기를 근거로 현대의 흉한 이야기를 적은 게 아니라, 그저 현대의 길흉을 이야기하고 있는 기사라는 것입니다. 여기 등장하는 '소공동'은 바로 17세기 '쌍두귀'의 동네이고, 흥미롭게도 새부지로 (명당이라고) 지정한 '회현동'의 경우, 검은관 기담이 있기는 하지만, 동시에 정승을 12명이나 배출한 '정씨터(정광필집터)' (정승나무가 있죠)이기도 합니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아무튼 예전부터 이상하게 남산근처 기담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서 한번 정리해보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리하고 보니 이런 배치가 나와서 꽤 흥미로웠습니다. 예전글에서도 썼듯 농담이 아니라, 이런 기담을 모아서 남산 중턱에 '기담 박물관 (체험관 포함)'을 하나 지어도 꽤 재미있는 문화컨텐츠 장소가 될 것 같군요.

앞으로 더 발견되면 추가로 기재해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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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과 역사중 애매하지만 아무래도 역사에 관심많은 분들이 좋아하실 듯 해서 일단 역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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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존다리안 2014/11/25 09:07 #

    보아하니 현재 서울 중심가에 가까운데 이런 데가 흉가들이 많았다니 참 희한합니다.
  • 역사관심 2014/11/25 09:14 #

    그러게나 말입니다. 사실 저당시만 해도 서울 남쪽 외곽으로 살짝 걸쳐지는 지역이었죠. 중심부에서 살짝 벗어나가는...그래서 남산이 버티고 있어 더 으시시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포스팅에 쓴 남산남쪽 (즉 한강쪽)은 사실 변두리였을 것이구요 (그러니 이야기가 없었을지도).
  • ㅇㅇ 2014/11/25 11:28 # 삭제

    일본 10대 여중고생 공포영화 흉내낸 얼치기 영화 그만 만들고

    상업은행 본점과 관련된 각종 흉흉한 초현상을 조선시대 괴담과 연결시킨

    공포영화나 그럴싸하게 만들었으면 하네요

    봉준호가 제작하면 어울릴듯

    드라마로 만들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요즘 세계적 영화나 드라마의 추세가

    초현실을 최대한 리얼리티있게 묘사하는건데

    이런 소재는 아주 잘 어울리는 것 같군요

  • 역사관심 2014/11/25 11:35 #

    조선시대 기담을 보여주다가 상업은행으로 연결하는 연출... 괜찮아 보이네요 ^^
  • 티라노 2014/11/25 15:30 #

    지금 저기 가보면 정말 아무 호러느낌도 없더군요...
    재개발 하는 동안 귀신들도 다 쓸려나간듯...
  • 역사관심 2014/11/25 16:05 #

    지금이야 건평비싼 곳들이죠 :)
  • 아니스 2014/11/25 20:22 #

    .돈귀신한테 눌렸죠 뭐...
  • 이선생 2014/11/25 20:25 #

    저렇게 지도로 정리를 해놓으니 감회가 새롭군요.
    서울에 귀신이 저렇게 많았다니..
  • 역사관심 2014/11/26 04:52 #

    꽤 재미있었습니다.
  • 零丁洋 2014/11/25 22:26 #

    요즘은 귀신이 살던 곳에 함부로 큰 건물 짓고 사니 귀신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사람이 귀신을 닮아버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역사관심 2014/11/26 04:52 #

    하긴 그럴지도 T.T
  • Cheese_fry 2014/11/26 01:11 #

    신기하고 흥미로워요. 크게보면 남산으로 인해 그늘지는 지역들이네요. 한남동이 한강도 굽어보고 남향이라 모르는 제가 봐도 참 좋은 동네이긴 합니다. ^^
  • 역사관심 2014/11/26 04:52 #

    지금도 그런데 당시에는 정말 어두웠을 것 같습니다. 을씨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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