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부리 영감설화, 일본설화와 다른 국내 관련설화 두 가지 추가. 설화 야담 지괴류

예전 초록불님 포스팅중 흥미로우면서도 연구대상인 이야기가 하나 있어서, 항상 생각하던 녀석이 있습니다.

혹부리영감의 비밀 (글 링크)

바로 유명한 '혹부리 영감'과 그 근원은 일제시대에 일본의 설화를 조선인들에게 동화시키기 위해 만들었다는 최근의 담론이 아닐수도 있다는 이야기였죠 (마치 도깨비와 오니의 뿔 이야기처럼). 당 포스팅에서는 조선쪽에도 혹부리영감 설화가 별개로 내려오고 있었고, '장승'이 나오는 버젼이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이 글의 핵심부분만 발췌해 보자면:

다시 말해서 이 민담의 수집자는 이 이야기가 일본에 잘 알려진 혹부리영감과 같은 종류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분명히 조선에서 채집한 이야기라는 점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야기가 다르다.

여기서 혹을 떼고 붙이는 주체는 오니도 도깨비도 아닌 "장승"이다. 사실 "장승"에 얽힌 민담도 적지 않다. 장승이 밤새 "웅웅"거리며 뛰는 것을 보고 측은한 생각이 든 "혹이 있는 남자"는 장승 대신 "웅웅"거리며 뛰었고 그 보답으로 혹이 없어졌다는 이야기. 그리고 이것을 듣고 다른 "혹이 있는 욕심 많은 남자"도 장승을 찾아가 뛰었는데, 하필 "웅웅" 다음에 "딱딱" 소리를 내며 뛰는 바람에 장승이 기분이 나빠져서 혹을 두 개로 만들어버렸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한일 양국 간에 혹부리 영감 이야기가 그 얼개만 유지한 채,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는 사건은 서로 다르게 전해졌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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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논지였죠. 필자가 이 장승버젼을 직접 읽어본 적은 없지만 충분히 근거가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최근 필자가 만난 두가지 '혹'과 '도깨비'에 대한 설화가 더 있어 소개합니다. 이 두 이야기는 한중대학교 전통문화학부 석좌교수인 김선풍선생의[ 과천지역 설화와 민속놀이의 개발과 방법(2009)]이라는 논고에서 밝힌 설화들입니다.

첫번째 이야기는 조선시대 강원도 영월군에 전하는 도깨비와 혹부리영감 이야기입니다. 여기서는 장승도 아닌 진짜 우리의 도깨비가 '혹'을 가지고 장난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강원도 영월군의 도깨비놀이

1457년(세조 2년) 10월 26일 호장 엄흥도가 단종 시신을 남 몰래 암장한 후 60년 만에 숙종의 명으로 단종 묘소를 찾기는 하였으나, 숙종 25년 왕릉으로 추봉될 때까지 242년간 한 국왕의 묘가 그토록 저벼려져 있었음은 모두의 한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이 고을에는 이런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사사로운 사가의 묘도 아닌 일국의 왕의 묘소를 돌보지 않으니 이 곳을 도깨비가 수호하여 왔다. 

이 이야기는 단종을 지극히 흠모하던 한 노인의 꿈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그 노인은 그다지 높지 않은 능선으로 땔 나무를 하러 지게를 지고 올라 갔었다. 막 나무를 찍으려고 하는데 난데없이 많은 도깨비가 몰려와서,
“이 놈, 여기가 어디인 줄 알고 들어오느냐, 여기는 아주 귀하신 어른이 잠드신 곳이다. 가까이 들어 와서도 안 되고 나무 하나 건드려도 안 된다. 썩 물러가라.”고 호통을 치더니 주위를 샅샅이 돌아보더라는 것이다. 

이 노인은 겁을 먹고 비켜 나와 숨어서 도깨비의 동정을 살펴 보았다. 그 도깨비들은 한동안 돌아보다가,
 “야, 심심하니 우리 ‘혹 떼기 놀이’나 하자.”
하면서 편을 갈라 혹 붙은 도깨비를 내세워 놓고 도깨비방망이로 혹떼기 장난을 했다.

노인이 구경하고 있노라니까, 갑자기 소변이 마려워 무심코 소변 볼 준비를 하느데 떠들고 놀던 도깨비가 또 호통을 치며, “이 무엄한 놈, 어디라고 함부로 xx를 꺼내느냐.” 하며 도깨비 방망이로 후려갈겼다.

깜짝 놀라 깨니 꿈이었다. 이 꿈 이야기를 들은 당시 노인들은 그럴싸한 이야기라고 시인했고, 그 후 그 묘소는 도깨비들이 수호하고 있는 것으로 믿게 되었다. 여기에 연유하여 도깨비 탈을 만들어 쓰고 노는 마당놀이가 성행할 때도 있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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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혹떼기 놀이' (마치 우리가 지금 듣는 혹부리 영감설화나 일본쪽 설화처럼)를 하고 있는 도깨비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조선시대 영월군 설화입니다. 그런데, 현재 혹부리영감설화와 거의 일치하는 기록이 한가지 전합니다.

바로 경기도 과천지역에 나오는 혹부리 소금장수와 도깨비 이야기입니다. 김교수에 따르면 이 자료는 1995년 과천문화원에서 발간한[과천민요, 민담]에 등장하는데, 그 지역의 노인이신 박수남 할머니의 구전기록을 싣고 있습니다 (이런 작업은 사실 문화관련 부처에서 프로젝트로 전국으로 진행시켜야 할 부분이죠. 돌아가시기들 전에).

혹부리 소금장수와 도깨비 (과천지역 설화)
제보자 : 부림동 8단지, 1991. 8. 11. 박수남(여, 80세)

옛날에, 옛날에 한 사램이 저 소금장세를 가는데, 소금해 짊어지고 가다가 저물어 가지고 빈 집에 들어가 잘라고 들어가니. 아무, 뭐, 다락에 올라가 보니 멧돌도 있고, 뭐 별게 다 있더래요. 그래서, ‘아, 여게가 어데가 이렀나?’ 하고, 그래 가만 엎드리가 있다가, 똑깨비집이더랍니다.

똑깨비들이 한밤중에 되니, 뭐, 오너라구 이러쿠 치쿠 하이미, ‘가자, 가자’ 하니  아 들어오다마 아,
 “인내 난다, 인내 난다. 요서 인내 난다. 사람내가 난다.” 고 그리미, 다락으로 올라오더래요. 올라와서, 아이구 할 수 없어 고만 들켰다. 

도깨비한테,
“아이구, 이놈아 여기 머하로 왔노?”
“나는 여거 노래하로 왔다.”
“무신 노래를 하느냐?”
“내가 여기서 노래를 할 테니까는 나를 해꼬지 하지 않으면 내가 노래를 해 주마.”
“그람, 노래하라.”

그래서 노래를 하니, 그 사람 몸에 여기 혹이 붙었대요. 붙었는데, 그래,
“당신 노래가 어디서 나오나?”
“이 혹에서 나온다.”

고 그래, 거짓뿌리 해 놓으니 그래 똑개비들이,
“혹을 팔고 가라.”
“노래 우리 노래 듣구러.”
“그럼 살려면 살라구.”

그래 혹은 떼서 팔았는데, 이놈의 혹을 떼 놓으니 그놈의 똑개비들이 거기서 무운 소리가 나와요. 사람의 입에서 소리가 나오지. 그래 가지고 이 사람은 그 혹떼고 곤치고 잘 오고, 똑개비 있는데 돈 잘 얻어 가지고 오고, 잘 살았단다. 옛날에 그런 얘기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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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구조는 현재 한일 양국의 혹부리영감설화에서 앞 반토막 (즉 나쁜 영감등장이전)을 뚝 잘라놓은 형식입니다. 딱 반까지만 서사가 진행되는 반면, 한가지 디테일이 다른 점으로 주인공이 '노인'이 아닌 '소금장수'라는 것입니다. 물론 한 노인분만의 이야기로 이 이야기가 과천지역의 일제이전의 고유설화인지 아닌지는 아직 판단유보가 맞겠습니다. 다만, 그 지역의 여러 사료나 생존하고 계신 노인분들께 이 서사의 유래를 자세히 살피는 작업이 꼭 필요해 보입니다.

사실 강원도쪽에 '소금장수' 설화가 유독 많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 워낙 소금이 귀한 산골이 많은 지역인데, 전근대 시절 귀한 소금을 팔러다닌 소금장수가 이쪽 지역을 가다보면 그 깊은 산골에서 별의 별 기이한 경험을 다 했겠죠.

예를 들어 위의 단종무덤과 혹떼기 도깨비 설화가 나오는 '영월'지역 문화원홈페이지를 가보면 이 지역에 아예 '소금실'이라는 소금파는 전문 마을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소금실 
당두둑 앞에 있다. 소금이 귀하던 시절 소금 장수가 이곳에 주막을 정해놓고 소금을 팔았던 마을이라 하여 '소금실'이라고 한다. '실'이란 '마을'을 뜻하는 고어이다. 

이런 '혹'과 '도깨비' 관련 설화가 만약 한두개 정도 전국에서 더 나온다면, 일본'만'의 설화가 전파되어 우리가 아는 혹부리영감이야기가 되었다는 정설아닌 정설(?)은 이제는 공식적으로 수정/폐기되어야 할 듯 합니다.



핑백

  • 까마구둥지 : 한국 도깨비는 뿔과 방망이가 없었을까? 2014-12-27 03:20:27 #

    ... 서 왔다는 '혹부리영감' 설화자체도 한일 양국에 예전부터 공통적으로 내려오던 것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예전 초록불님의 글- 혹부리영감의 비밀, 그리고 후속 발견한 조선의 도깨비와 혹떼기설화). 설화와 야담에 전하는 뿔 달린 도깨비의 기록 다음의 기담은 [청구야담]에 전하는 이야기로, 염동이라는 사람이 조선시대에 야차를 ... more

  • 까마구둥지 : 동이귀괴물집 2018-05-13 00:29:47 #

    ... 화는 실은 원래 조선에서도 내려오던 양국공통의 설화일 가능성이 큽니다.혹부리 영감설화, 일본설화와 다른 국내 관련설화 두 가지 추가.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분들만 의견을 남길수 있어 제 ... more

덧글

  • ㅇㅇ 2014/12/13 11:43 # 삭제

    근데 이런 내용의 문제점은요

    이런 글이 일제강점기 미화라던가 일본 비판이 국수주의 민족주의다..류의

    주장으로 귀결되는데 중요한 소스로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거죠

    포스팅도 그렇고 포스팅 제목도 약간 인터넷 뉴스 어그로 비슷해서

    기분이 좀 그렇네요

    이게 저의 단순한 오해라면 또 모르겠는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에 가까우니 문제죠

  • 역사관심 2014/12/13 12:32 #

    이 이야기가 어떻게 그쪽으로 연결이 되는지 알순 없지만, 보고 싶은 안경을 쓰고 보는 사람까지 어쩔수는 없겠습니다. 일일히 양극단에 신경쓰면서 포스팅하고 싶진 않군요. 사실 이 혹부리 영감이라는 토픽으로 한정지어 이야기하자면 '한일양국에 공통설화'일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일제시대에 강압적으로 퍼뜨린 것이 아니라면, 그런 시대를 겪으면서 영향을 주고받았을 가능성도 모색해 봐야 할 것이구요).

    개인적으로는 걱정하신 부분(일본이 강압적으로 퍼뜨린 것이 아니다따위보다) 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거꾸로 혹부리설화가 우리 고유의 설화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오히려 뿌듯했습니다만...

    이 문제는 어디까지나 문화계의 학술정보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일제시대 유포설에 반하는 이라는 단어를 (사실관계를 설명했을 뿐인데) 어그로로 받아들일 정도라면 , 내용을 이미 객관적으로 볼 수 없겠죠 (우리사회의 극단성은 여러모로 도움이 안된다는 점에서 안타깝습니다). 제목은 약간 수정해보겠습니다.
  • 까진 핵펭귄 여뫙 2014/12/13 13:18 #

    그리고 북괴버전 혹부리 영감님 설화에선 착한 혹부리영감은 없고 못된 혹부리 영감님만 등장하죠. 착한 사람한테만 보이는 혹이지만 그런 착한 사람들을 아오지에 보내 박멸하려던 내용으로 봐선 미다스왕 당나귀귀 설화나 벌거벗은 임금님 설화 내용이 혼재된 듯 싶습니다.
  • 역사관심 2014/12/13 13:52 #

    아 또 그런 버젼이 있었군요. 혹 출처링크를 아시면 한번 걸어주시면 좋겠습니다 ^^
  • 까진 핵펭귄 여뫙 2014/12/13 14:20 #

    혹부리영감 설화 나와서 북한 김일성 드립(북괴의 못된 혹부리영감님: 김일성,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이는 혹: 김일성 별명이 혹부리영감이 된 그 목 뒤의 혹, 착한 사람들을 아오지에 보내 박멸: 그 혹의 존재를 인지한 사람들을 전부 아오지로 보냈음.)으로 친 건뎅...


    http://doublespy.egloos.com/2952330
    그래서 예전에 그걸(뭐 김일성 생몰년도 계산하면... 북쪽마을 혹부리영감 이야기는 현대 도시전설의 일종으로 취급해야 할 듯.) 아예 풀버전으로 복원해봤슴다. 혹 떼러 온 혹부리영감님을 심판해 지옥으로 떨어지게 한 깨알같은 카터도깨비 ㄳ(그림판 발합성이라 정말 죄송합니다!)
  • 역사관심 2014/12/13 14:43 #

    아 이런버젼이군요. ㅠㅜ 링크 고맙습니다.
  • 남중생 2014/12/13 15:38 #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고 있는 "동양을 수집하다" 전에 가보시면 전시관 입구에 조선총독부 중앙 홀에 있었다는 벽화를 볼 수 있습니다. 한일 양국에 공통으로 전래되는 "선녀와 나무꾼" 설화를 주제로 한 벽화인데, 하나는 조선 버전, 다른 하나는 일본 버전의 설화를 그린 두 개의 벽화가 조선총독부의 벽을 장식하고 있었다는군요.
    이걸 볼 때, 아마 조선총독부는 조선과 일본에 공통 분모로 존재하는 문화적 요소를 이용해서 동화(同化) 정책을 펼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교과서에 실린 혹부리 영감도 비슷하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 역사관심 2014/12/13 16:20 #

    음 충분히 가능해 보입니다. 관련연구가 진행되었으리라 짐작되는데 한번 알아봐야겠어요. 정보 감사드려요.

    제 기억에 금도끼 은도끼도 그럴겁니다.
  • 이선생 2014/12/13 16:17 #

    흠...좋네요 이 과감한 가설에 대한 철저한 구증이 더해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면 훌륭한 논문거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역사관심 2014/12/13 16:19 #

    네 이미 광의의 관련연구가 있을것 같아 한번 알아봐야겠습니다.
  • 초록불 2014/12/15 11:12 #

    잘 보았습니다. 계속 진실을 탐구해가시는 모습에 박수를 보냅니다.
  • 역사관심 2014/12/15 11:28 #

    감사합니다- 초록불님 덕분에 좋은 소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 행인 2015/01/08 04:09 # 삭제

    먼저 유익한 포스팅 감사드립니다 그냥 지나갈수도 있는 얘기이지만 포스팅하신 내용이 너무 인상적이고 애정이 가서 무례를 무릅쓰고 말씀드립니다 강원도 영월 혹부리설화에서 1457년 선조2년이라고 되어있는데 선조가 아니라 세조2년 아닌가요?
    단순히 옮겨적는 과정에서 발생한 실수인것 같습니다만 작은 오류로 출처의 신빙성과 콘텐츠의 존재감이 얄팍해지는 느낌을 지울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개인적으로 관심있는 얘기들이라 굉장히 반갑고 흥분됩니다
    대체적으로 조선시대 요괴,귀신 관련된 설화는 반정이나 전쟁으로 민심이 흉흉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발생했던것도 여러방향으로 해석해볼수 있어 재밌네요
    지금 뾰족하게 떠오르는건 집단 히스테리밖에 없지만요 ㅠㅠ
  • 역사관심 2015/01/08 05:25 #

    앗 큰 실수를 ...
    지적 감사드립니다. 집단 히스테리에 대한 해석으로 보는 관점도 분명 일리있는것 같아요. 자주 들러주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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