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어 본 아이누인와 야마토인 대결전설- 수령과 처 설화 야담 지괴류

우리에게 일반적으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아이누 설화/전설은 그나마 포이야운페가 등장하는 코탄 우툰나이나, 황금해달을 둘러싸고 도래인과 경쟁하는 쿠투네 시르카나 정도가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이런 아이누 유카르 (아이누어로 서사시)를 만났습니다. 이 설화를 보면 (시기를 모르겠지만), 얼마나 일본인(대화족)을 아이누인들이 증오대상으로 삼아왔는지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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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누 수령과 그 처

옛날 아이누의 땅, 시시르무카 언덕에 양지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집이 있었다. 그 집은 황금 울타리로 둘러싸였고 황금 구름이 멀리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 집에 아이누족의 족장과 그 부인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아름다운 사내아기를 낳았다. 그들은 그 아기를 사랑하여 껴안고, 입맞추고, 밤낮으로 그 아기에게 속삭였다. 진실로 그들은 아이와 함께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아이가 이제 혼자서 걸을 수 있게 되자 그는 시시르무카 언덕을 내려가서 바닷가에서 놀았다. 장난감 활과 화살을 들고 아이는 시위를 팽팽하게 잡아 당겼다. 그는 하늘 높이로 눈을 들었다가 시선을 낮추어 화살을 날렸다. 갈매기들이 태양 아래 반짝이는 날개로 빙글빙글 돌면서 높은 톤으로 노래를 불렀다.

황금빛 이슬들, 내려라 내려라 온 사방에! 
은빛 이슬들, 내려라 내려라 온 사방에! 

하루는 그가 바닷가에서 놀다가 어린 사슴처럼 집으로 뛰어 왔다. 그는 황혼 속에서 집 밖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어머니가 바깥을 살짝 내다보니 예기치 못했던 광경을 보게 되었다. 그 사람들은 그녀가 전에 한번도 보지 못했던 종족이었다. 그들은 샤모(아이누족이 일본 본토인들을 가리키는 말)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비단옷을 입었고 까마귀의 부리같이 생긴 상투를 틀었다. 그들은 모두 칼을 차고 있었고 대문으로 나아와 말했다.

- 거기 당신, 아이누의 여인이여!
우리는 당신이 샤모라고 부르는 자들이다. 우리는 우리 본토로부터 여기 아이누의 땅에 왔다. 우리가 듣기로 여기에 남편과 한 아이와 사는 아름다운 여인이 있다고 하였다. 그 여인은 아이누족 아낙네 중에 그 아름다움을 따라올 자가 없다고 한다. 

- 우리의 주군께서 그 말을 듣고 그 여인을 보고 그의 아내로 삼고자 한다. 만약에 그녀가 복종한다면 그 남편과 자식은 결코 음식이나 다른 물질에 있어서 부족함이 없이 살게 될 것이다. 만약 거역한다면 우리의 주군께서 그녀를 납치해 오라고 명하셨다. 한번 우리 주군의 땅에 들어오면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 거기 당신, 아이누의 여인이여! 우리가 짐작컨대 그 여인은 바로 당신일 것이다. 당신이 응하면 이때까지 듣지 못했던 부(富)와 그대가 갈망하던 모든 금으로 보답받게 될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아이누족의 아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화롯가에 있던 막대기를 집었다. 그녀는 문가에 서서 막대기로 샤모들을 가리키며 날카로운 말로 분을 토하였다. 
- 당신네들 저주받은 샤모들이여! 누가 당신들을 따르겠는가? 설혹 내가 남편과 자식이 없다하더라도 난 결코 샤모와 결혼하진 않을 것이다. 나는 아이누의 여자다. 
- 썩 가거라! 우리 남편이 밖에 있지만 곧 돌아올 것이다. 그가 당신네들 헛소리를 알게 된다면 결코 몸 성히 돌아가지 못할 줄 알아라. 지금 당장 도망치는 게 좋을 거다. 어서! 
그러나 이 말에 그들은 모두 조롱하며 웃어대었고 어떤 사내들은 그녀의 팔을 움켜쥐었으며 어떤 이들은 그녀 뒤에 있던 아이를 잡았다. 
- 엄마! 
소년은 일본인들이 그녀를 밖으로 끌고 가자 울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분노에 가득차 울며 그들을 발로 찼다. 일본인들도 화가 나기 시작해서 그녀를 세게 때렸다. 그들 중에 하나가 아이를 높이 들어 올려서 괴성을 내지르며 화롯가에 아이를 집어 던졌다. 불쌍한 아이는 곧 죽고 말았다. 어머니는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이 죽어가는 걸 힘없이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 내 아들아! 내 아들아! 

그녀는 조그만 배에 태워졌다. 배는 신속히 해변을 떠나서 떨어진 낙엽처럼 미끌려 갔다. 거기에서 멀리 산처럼 크다고 하는 일본 배가 보였다. 그녀가 배에 오른 후 결코 아아누의 땅에 되돌아 오지 못했다. 얼마나 많은 아이누 젊은이들이 이 배로 끌려갔던가! 
- 고통과 슬픔이여! 나는 아무 죄가 없다. 그런데 왜 내가 이런 슬픔을 겪어야 하나! 차라리 내 사랑하는 자식처럼 나도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눈물을 흘리며 돌아보니 멀리 시시르무카 언덕이 보였고 작은 별처럼 빛나는 그 언덕 위의 집도 보였다. 
-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 나의 사랑하는 낭군님! 
지는 해에 붉게 물든 하늘에 그녀의 울음이 파도에 묻혀 사라지고 외로운 두겹 구름, 세겹 구름이 뒤로 감아 돌아가고 있었다. 

- 사냥을 나갔던 아이누의 족장은 그날따라 별로 운이 없었다. 굴마다 다 뒤져봐도 곰 한마리 없었고 여우며 다람쥐, 산토끼, 심지어 나무뒤쥐 마저 없었다. 
- 오늘 우리 식구 뭔가 새롭고 맛난 것을 먹고 싶었는데. 내 아내와 아들이 오늘 사냥나가면서 매우 들떠서 기대를 많이 하였지. 많이 잡아서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어. 그들을 실망시켜선 안되겠다. 빈손으로 돌아갈 순 없어. 
그는 좀더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산 봉우리 두개, 세개를 건넜으나 아무 소득이 없었다. 거기서 그는 뭔가 꺼림찍한 기분이 들었다. 그의 아내와 자식이 머리에 갑자기 떠올랐다. 거의 그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 무슨 일이 벌어졌구나! 

먼저 뒤돌아 보고, 물고기처럼 몸을 돌려 뒤돌아 섰다. 그리고 집을 향해 달렸다. 두 개의 산봉우리를 넘고 세 개의 산봉우리를 마치 쏜살처럼 건너서 시시르무카의 언덕에 다다라서 집의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고 있는 걸 보았다. 보통때라면 그의 아내는 저녁을 준비하느라 바쁠 때이다. 그는 집 안으로 달려가 예기치 못했던 광경을 보았다. 방은 난장판이 되어있었고 그의 아들은 화롯가에 죽어있었다. 그는 집박으로 나가서 많은 발자국들이 바닷가로 이어진 것을 보았다. 
- 내 아내가 끌려갔다! 
맹렬한 분노로 그의 눈썹이 그슬린 냄비바닥처럼 시커멓게 되었다. 손가락 마디에서는 우드득 하는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의 얼굴은 분노로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의 눈에는 별들처럼 섬광이 빛났다. 
- 비열한 놈들! 복수다! 용서할 수 없다! 

그는 광폭한 분노에 휩싸여 집안으로 뛰어들어가 가보로 전해내려오는 아이누족의 칼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다시 바닷가로 달려 들었다. 다리 하나를 앞에 두고 나머지를 뒤로 둔 채 그는 바닷가에 우뚝 서서 보검을 빼들었다. 한 눈을 뜨고 한 눈은 감고 신들에게 기도하였다. 그러자 그는 바다 멀리에 떠 있는 배의 형상이 검에 비친 것을 보았다. 
- 저건 일본 배다. 샤모들이 내 아내를 뺏아갔다! 
그는 검을 높이 치켜 들었다가 다시 낮추어서 성난 신(神)처럼 외쳤다. 
- 신들이여! 내게 힘을 주소서! 검아! 날개가 돋아 나의 아내에게로 나를 이끌어다오! 

그러자 그는 바다 멀리로 날아갔다. 괴물같이 생긴 일본 배는 전속력으로 나아갔다. 배가 나아가자 물결이 부서지고 다시 튀어올랐다. 사로잡힌 아이누족의 아내는 선실에 보내졌다. 그녀는 발로 차고 맹렬히 저항하였으나 소용이 없었다. 거기서 그녀는 금빛 하오리와 은빛 하카마를 입은 일본 배의 선장을 보았다. 그는 다소 후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부드럽게 그녀에게 말했다. 

- 네 아들이 죽임을 당했다고 들었다. 그 점에 대해서 미안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 불쌍한 아이에 대해 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그러나 널 기쁘게 해줄 수는 있다. 많은 아이누족들이 사로잡혀서 일본으로 끌려갔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노예로서 고생스런 삶을 살게 된다. 그러나 너는 아름다운 옷들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남은 일생동안 호강하며 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네 남편과 죽은 네 자식은 잊어버리는 게 나을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아이누의 여자는 전보다 더 큰 분노를 느끼고 둘러 싼 부하들을 뚫고 선실밖으로 달려나갔다. 바깥의 갑판에는 여전히 많은 일본인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바다로 뛰어들려고 했으나 부하들이 다시 그녀를 붙잡았다. 선장은 천둥같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 그 여자가 도망치게 해선 안된다! 입에 수건을 물려서 혀를 깨물지 못하도록 하라. 돛대에 그 여자를 묶어라! 

그녀는 상처입은 곰이나 미친 늑대처럼 저항하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녀는 단지 여자일뿐이었다. 그녀는 중앙의 돛대에 묶였다. 그녀의 옷은 찢어져서 가슴이 다 드러났다. 그녀의 아들에게만 보였고 절대 타인의 시선에 노출되지 않았던 그녀의 풍만한 가슴이 밉살스러운 일본인 불량배들 눈에 훤히 드러나게 되었다. 
- 이 무슨 수치인가! 

그녀의 피는 분노로 들끓었고 심장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듣지 않고 보지 않기를 원했다. 뜨거운 눈물이 눈을 가득 채웠다. 눈을 질끈 감자 눈물이 갑판위로 떨어졌다. 
갑자기 그녀는 멀리서 바람이 부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의 귀에만 들리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그녀에게로 다가오더니 구름을 가르는 날개의 소리인 것으로 드러났다. 
- 나의 아내! 

그녀는 남편의 소리를 듣고 눈을 떠서 회오리바람이 돛대 주위를 휘감아 돌더니 바다로 빠져 나가는 것을 보았다. 일순간 그녀는 검이 번뜩이는 것을 보았다. 
아이누의 족장은 검의 신령한 힘으로 회오리바람이 되어 아이누와 일본 사이에 놓인 바다를 항해하여 두겹, 세겹 구름을 가로질러 그 배로 날아왔던 것이다. 그는 아내를 휘감아서 날더니 바다로 잠수했다. 그는 괴물같은 배 밑바닥을 검으로 내리쳤다. 그는 신들에게 기도하며 그 바닥이 쪼개질 때까지 계속 내리쳤다. 그리고 물 위로 떠올라서 숨을 내쉬었다. 그는 회오리바람이 되어 배 위로 날아 올라갔다. 배가 물에 가라 앉는 것과 많은 선원들이 갑판으로 몰려나와 아우성 치는 것을 보았다. 

- 이게 무슨 변고인고? 바다는 평온하고 우리는 위험한 곳은 피해서 항해하였다. 대체 어떻게 우리 배에 구멍이 났단 말인가? 
아이누족의 족장은 돛대 밑으로 내려가서 그의 사랑스러운 아내 옆에 섰다. 그는 밧줄을 끊고 그녀를 끌어당겨 말하길. 
- 나의 아내여! 

그리고 눌란 아내가 그를 쳐다보며 울며 말했다. 
- 나의 낭군님! 
그녀는 온 힘을 다해 남편을 끌어안았다. 이제 일본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고 모두 선장 주위로 모여들었다. 
- 우리는 당신 명을 듣고 저 여자를 데려 왔소. 우리가 신성한 힘을 가진 아이누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제 코앞에 그를 마주 대하고 있소. 우리는 모두 수치스런 죽음을 당할 운명이오! 우리를 위해 뭔가 조치를 취해주시오, 선장! 
그러자 아름다운 금빛 하오리와 은빛 하카마를 입은 선장이 아이누 사람 앞에 몸을 던져 얼굴이 물속의 해초처럼 창백하게 되어 말했다. 
- 아이누의 젊은 신이시여! 아이누의 젊은 족장이시여! 제가 잘못했습니다. 내가 당신의 아내를 훔치고자 책략을 꾸몄습니다. 내 죄없는 부하들, 모든 뱃사람들이 바다에 삼켜질 처지입니다. 부디 우리를 용서하십시오. 우리 모두를 살려주신다면 내 가진 돈을 세지도 않고 당신께 드리리다. 당신이 무엇을 원하든 다 드리리다. 

그러나 아이누의 족장은 단호히 거절했다. 
- 안된다! 안된다! 너희들은 내 사랑하는 아들을 죽였다. 나의 아내에게 덤벼들어 거의 죽일 뻔 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남녀 할 것없이 얼마나 많은 아이누족들이 내 아내처럼 맞았던가? 너희를 용서할 수 없다. 너희를 살려둘 수 없다. 
물이 급속히 차오르고 파도가 갑판을 덮쳤다. 아이누의 족장은 배가 곧 가라앉을 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그의 아내를 한쪽 팔에 단단히 안고 다른 팔로 검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검 끝에서 번개같은 황금빛 광선이 번쩍하더니 그들은 하늘로 휘익 날아갔다. 그들은 회오리바람이 되어 오랫동안 울리던 천둥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시시르무카 언덕 밑으로 날아와서 그들은 서로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들어갔다. 피로에 지쳐 죽을 지경인데도 그들은 팔로 죽은 아들을 안았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고 아이의 얼굴 위로 떨어졌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이의 얼굴이 반짝이며 장미빛이 되었고 속눈썹이 깜박이기 시작했다. 그의 달콤한 입술이 움직였다. 그때 그의 눈이 번쩍 뜨였다. 
- 아빠! 엄마! 

부모들은 이제 환희에 넘쳐 그들의 무릎에 교대로 앉혔다. 그들은 기쁨으로 환호성을 질렀고 뛰며 춤추었다. 
시시르무카 언덕은 온 주위에 밝게 빛났다. 반짝이는 집은 전보다 더 아름다웠고 멀리 하늘엔 홍금빛 구름이 띠를 이었다. 아이는 언덕 밑으로 달려 내려가 바닷가에 섰다. 장난감 활과 화살을 들어서 시위를 팽팽히 잡아당겼다. 그는 눈을 하늘 
높이 들었다가 낮추어서 화살을 쏘았다. 

갈매기들이 높은 톤으로 노래하였다. 
황금빛 이슬들, 내려라 내려라 온 사방에! 은빛 이슬들, 내려라 내려라 온 사방에! 

出典: 세가와 타크오에 의한 홋카이도전설「아이누의 수령과 처」의 재이야기 『일본의 민화 ④ 민중의 영웅』(가도까와문고) There isn't an author of this fable. It's a re-told edition in Japanese by Segawa Takuo.
Japanese folktale Series, No.4; A hero of people, Kadokawa Bunko Publishing Company.
(The Original is a Hokkaido legent "Chief of the Ainu and his w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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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어느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일까요? 샤모(和人)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는  ‘이웃사람’을 의미하는 아이누말의 ‘시사무’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합니다. '시시르무카 언덕'이라는 곳이 어디일까요? 

개인적으로 아이누의 역사에 대해서는 깊이 알지 못하지만, 아이누 박물관 홈페이지에 가보면 다음과 같은 간략한 역사개요가 제공됩니다. 샤모 (대화족)과 직접적인 충돌은 대략 15세기중반부터입니다. 따라서 위의 이야기도 길게 잡으면 이 시기의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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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누족은 북해도 외에 사할린, 쿠릴열도 등지에도 넓게 분포되어 있으며 일본동북지방도 9세기까지 그들이 지배하던 땅이었습니다. 아이누족의 일본정착시기에 관해서는 정설이 없으나 후기구석기시대인 조몬시대(繩文時代)로 보는 게 가장 대표적인 설입니다. 현재 전통적인 아이누문화라고 보여지는 생활양식이 성립되는 시기는 약 13-14세기경이라고 추정됩니다. 이 시기의 아이누 사회의 특징 중의 하나로서, 활발한 교역이 이루어진 것으로 최근 점점 밝혀지고 있습니다. 13세기 후반의 중국의 자료에는, 아무르강 하류역에 세력을 확장해온 원과 교역 상의 문제가 원인으로 교전한 기록이 있습니다. 17세기 초의 크리스트교선교단의 기록에도, 북쿠릴산의 고가의 해달가죽을 가진 북해도 동쪽의 아이누나 중국제의 비단직물을 운반하는 테시오의 아이누의 입항에 의해 마츠마에지역이 번영하는 모습을 기록하였습니다. 또한 츠가루해엽을 건너, 자유롭게 일본본토인(와진) 사회와의 교역도 이루어졌습니다.

한편, 1457년에는, 오시마반도에서 아이누의 지도자 코샤마인이 와진(일본본토인)과 전쟁을 하였습니다. 와진의 금속제련사가 아이누를 죽인 일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으나, 본토로 부터 북해도에 이주해 온 와진과 아이누 간의 대립이 격화되어져 왔던 것이 그 배경에 있었습니다.

그 후에도, 전쟁은 반복되어 일어났습니다만, 아이누와의 전쟁 중에 북해도 남쪽의 와진세력을 장악한 카기자키씨가, 16세기의 중엽에 전쟁을 종식시켰습니다. 카기자키씨는 교역으로 얻은 이익의 일부를 세금으로서 아이누의 지도자들에게 분배하였습니다. 또한 아이누와 와진이 교역을 하는 장소를 자신의 성 아래에 있는 마츠마에에 한정하였습니다.

카기자키씨는16세기말에 성을 마츠마에로 바꿔, 토쿠카와막부로 부터 아이누와의 교역을 독점하는 권리를 인정받았습니다. 마츠마에한(松前藩)은 오시마반도 남부에 와진치(본토인의 거주지역)을 설정하고 아이누의 거주지역인 「에조치」와의 왕래를 엄격히 제한하였습니다.

마츠마에한은 가신들에 대한 보수로서, 에조치 내에 설치된 각지의 상업장(아키나이바)에서 아이누와의 교역권리를 부여하였다(상장지행제). 아이누는 마츠마에한 이외와의 교역이 금지되고 교역의 장소도 아키나이바에 한정되었다. 이로인해 자유로운 교역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물론, 교역품의 가치도 일방적으로 내리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아이누사회에서는 크고 작은 지도자가 있었습니다만, 1669년, 그중에서 샤크샤인의 지휘아래 광범위한 지역의 아이누가 마츠마에와의 전쟁에 일어섰습니다. 그러나 샤크샤인은 와진에 의해 암살되고, 전쟁은 아이누측의 패배로 끝났습니다.

그 후 와진 상인이 각지에서 교역이나 어업생산을 맡게되어(장소청부제), 많은 아이누가 어장에 고용되어 과도한 노동에 이용되었습니다. 1789년에는 북해도동쪽의 쿠나시리・메나시지방의 아이누가 어장의 경영자들과의 싸움을 일으켰습니다(쿠나시리 메시나의 전쟁 등으로 불립니다)만, 이것도 이러한 노동에 대한 저항전쟁입니다. 그러나 이 전쟁도 37인의 아이누가 처형되어 진압되는 등, 와진에 의한 정치적 경제적 지배는 더욱 강해졌습니다.

 이러한 어려운 시대적 상황 중에 있었습니다만, 아이누 사회는 독자의 신앙과 생활양식을 유지하였습니다. 현재 볼 수 있는 전통적인 민예도구 중에서 오래된 것은 18-19세기전반의 시대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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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이누'라는 민족이 있다는 걸 세계적으로 알린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령공주' (1997)입니다. 아이누는 자신들을 흰 개의 자손이라고 여기는데, 흰 개가 인간에게 시집와 세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작품에서 등장하는 흰 늑대인 '산'과 에미시의 족장이 되는 '아시타카'(남자주인공)이 바로 여기 해당됩니다.
북해도 (홋카이도) 동부에서는 최근까지도 새끼 늑대를 개처럼 길렀다거나, 개와 늑대를 교접, 그 새끼를 길러서 사냥에 데리고 나가는 일이 흔했다고 합니다 (경북의 불개 (불살견)같은 경우군요).
우리 토종견들 중 제일 무서워 보이는...고작 60마리 남은 '불개' (이놈은 늑대와 달리 나무도 탑니다)

사실 저런 설화나 '모모노케 히메 (원령공주)' 같은 만화를 보면 이 아이누가 살던 일본 동북부지방의 이야기가 무슨 적어도 삼국유사에나 나올법한 고대의 이야기같지만, 따지고 보면 겨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시대죠.
영화에서 우리가 일본본토인과 섞어서 그냥 봤던 이들은 사실 모두 아이누족입니다.

이외에도 아이누 족 전설에 나오는 코로복클(コロボックル)이라는 요정등을 "목장이야기 코로보쿠르 스테이션" 혹은 소설 "아무도 모르는 작은 나라"등의 소재로도 가져다 쓰는데, 이런 적극적인 활용은 우리도 배울 만 합니다 (예를 들면 불개가 나오는 만화라든가... 삼국유사의 풍부한 컨텐츠의 활용이라든가...그 시기 한반도에 존재하던 수많은 소국들의 이야기라든가...).

사족으로 2008년에야 겨우 일본에서 '타 소수민족'으로 공식인정을 받은 아이누인은 차별이 자녀들에게 미칠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신분노출을 꺼리는 경향이 많아 정확한 통계집계가 어려운 실정이며 실제로는 20만 명 전후로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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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거리 (사족)으로 이런 이야기도 요즘 일본학계에서 나옵니다.

새로 쓴 일본사 (아사오 나오히로) 서평 중
<새로 쓴 일본사> 지은이들은 벼농사 문화를 전한 이들을 ‘도래계 야요이인’이라고 부르면서 “본토에서는 도래계인과 조몬계인의 혼혈이 진행되었고, 그 결과 현대의 본토인을 형성했다”고 정리한다. 하지만 다이아몬드에 따르면 야요이인 두개골이 현대 일본인과 가장 닮았으며 도래계 야요이인과 조몬인의 혼혈은 현대 아이누인과 유사하다. 형질인류학적으로 현재 본토인은 1억2000만명 이상이고 아이누인은 2만4000명이 남아 있는 정도다. 다이아몬드가 한국인과 일본인이 ‘쌍둥이 형제’와 같다고 한 이유다. 이런 시각은 한일간 과거사의 상처와 영토 분쟁을 좀 다르게 바라보도록 해주지 않을까.


*아이누는 원일본인?
철학자・우메하라 타케시씨와 인류학자・하니하라 남자 아이씨가 대담을 나눈 책, 「아이누는 원일본인인가」와 같이, 죠몽인이 원일본인으로서 존재해, 거기에 한반도에서 일본 중앙에 도래해 온 사람들이 중심으로 야요이인이 되어, 거기에 압박받은 죠몽인이 당시 변경에서 만난 홋카이도와 오키나와에 피해 아이누인과 류큐인의 조상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학설도 나와 있습니다.예를 들면, 개의 유전자 분석에 의하면, 홋카이도개(아이누개)는 북방계나 조선계가 아니고, 대만계의 개에게 가까운 것을 알 수 있고 있습니다.남방계의 개가 홋카이도개의 조상이라고 하면, 그것을 사육하고 있던 사람들이 남쪽에서 북쪽에 이동한 것을 나타내 보이고 있습니다.즉, 현일본인의 기저 부분=원일본인에 대하고, 아이누인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미국・인디언등 , 네이티브・아메리칸의 조상이 빙하기에 아시아로부터 시베리아를 경유하고, 미국에 건넌 황색인종인 것은 정설이 되어 있습니다만, 최근 그 이전에 미국에 건넌 최고의 인골이 발견되어 그 골격이 아이누에 유사하고 있었던 것이 텔레비전으로 특집되고 있었습니다.남미에서는 죠몽 토기를 닮은 토기도 발견되고 있습니다.이것들을 생각하면, 인류 역사적으로도 아이누를 생각해 가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최신 「아카비라시사」로는 
5월에 기증 받은 「아카비라시사」의 상권, 「선사시대」안에 「 제2 절일 본인의 계통」이 있어, 「에미시・에조・아이누의 계보」를 채택할 수 있고 있습니다.그곳에서는 최신의 학설에 근거해, 「일본 서기」등에 등장하는 「에미시가 활약한 도호쿠의 땅은, 후년, 아이누로 불린 집단이 거주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아이누어 지명을 남기고 있다.아이누가 특유의 「아이누 문화」를 가지게 되는 것은, 13~15 세기무렵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그렇다면 에미시는 본토계 집단과 아이누가 분리하기 직전, 또는 그 도중 단계에 있던 것이 되어」, 「에미시도 아이누도 도래계 집단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 죠몽계 집단의 유전자를 농후하게 남기면서 소진화한 그룹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 사실 이 '기타미시北見市' (홋카이도 이바리시 지청의 핵심도시)의 연혁을 보면, 홋카이도 지역이 얼마나 최근까지 '일본'이 아니었는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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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다이세츠산계를 근원으로 하는 도코로 강이 흘러 오호츠크 바다에 흘러 들어가, 그 유역은 풍부한 산의 산물, 해산물을 타고 나 태고의 옛부터 사람들이 살아, 근세에는 하구에 어장의 반야가 놓여졌습니다.

안정 5년(1858), 이 유역을 탐험한 마쓰우라 다케시로는 「무오등고려일지」에 당시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홋카이도와 기타미의 대부는, 에도막부 말기의 탐험가, 마쓰우라 다케시로입니다. 그는 분세 원년(1818)에, 이세노쿠니(미에현)에서 태어나 젊을 때부터 혼슈, 큐슈, 시코쿠의 가명을 역방해, 에도말기의 연호 14년(1843)에 나가사키에서 만난 츠가와 분사쿠로부터 북방의 중요성을 말해져 에조지(홋카이도)・가라후토에 큰 관심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에도막부 말기의 정도는, 북반부를 니시에조지, 남반부를 히가시에조지와 구분되고 있었습니다. 최초로 무시로가 에조지에 온 것은 홍화 2년(1845)으로, 당시는 일반 여행자의 단속이 어려웠기 때문에, 에사시로 일부러 호적부에 혼인신고를 해 히가시에조지의 답사에 들어가, 태평양 연안 따라 하코다테~레붕게~무로란~사루~쿠시로~앗케시~네무로~시레토코까지 다리를 펴고 있습니다.

메이지 2년(1869) 7월에 북방 개척을 위해서 개척사가 설치되어 동년 8월, 에조를 홋카이도로 고쳐 이것을 11개국 86군으로 나누었습니다. 당시의 지역은 소우야를 포함한 「기타미 나라」8군 가운데, 도코로 군으로 여겨졌습니다. 덧붙여 「기타미」의 이름의 유래는, 메이지 정부에 국명이 자문된 마쓰우라 다케시로가 「이 땅일대를 종래부터 홋카이기슭이라고 주창했기 때문에, 북쪽의 문자를 이용해 사할린섬이 쾌청의 날에는 보이므로, 기타미로서는 어떨까」라고 진언 한 것에 의하는 것입니다.

메이지 5년(1872), 개척사는 호적편제를 위해서 종래 있던 아이누 취락(코탄) 명을 마을로 하기로 했습니다.

도코로 군하에는, 곳(장소)(도코로) 마을・치이우시(소우) 마을・트우후트(당비) 마을・무에카트네(생안상) 마을・후트치얀나헤(태다묘) 마을・노트케우시(노쓰케우시) 마을・테시마나비(글씨를 잘 쓰는 사람학) 마을의 7마을이 있어, 메이지 8년(1875) 괄호내의 본자에 개정되었습니다. 메이지 15년(1882) 개척사가 폐지되어 삿포로・하코다테・네무로의 3현이 놓여져 기타미 나라는 네무로현의 권역에 들어갔습니다.메이지 16년, 도코로 마을에 도코로 밖6케 마을 면장 동사무소가 놓여진 것이, 당시 행정의 시작입니다.

*이러한 홋카이도 지역의 개척사를 가장 생생하게 묘사했던 작품이 (개인적으로 읽어본 작품중) 무라카미 하루키의 걸작 '양을 쫓는 모험' (1982)입니다.



덧글

  • 존다리안 2014/12/19 10:57 #

    아이누가 원일본인이니 뭐니 하는 것도 오늘날에는 그다지 의미가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영국만 해도 기원전에는 이베리아인이라 불리는 민족이 살았다가 이후 켈트인, 색슨인, 바이킹
    에 이르기까지 여러 민족들이 정착한지라 누가 진짜 그 땅의 주인이니 뭐니 하기 애매할 지경
    입니다.

    우리나라라고 해도 그렇게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하는게 과연 고조선 이전 구석기,신석기시대
    사람들이 현대의 한국인과 이어지는지는 알 수 없어 보이더군요.
  • 수달 2014/12/19 14:20 #

    구석기 신석기 까지 가면 따지기도 힘들고 따지는 의미도 없겠지만...
    일본의 야요이, 조몬, 아이누는 아무리 길게 잡아도 삼국시대 이후, 짧게 잡으면 도요토미시대 우리나라로 따지면 조선시대 이후 입니다.
  • 역사관심 2014/12/20 00:17 #

    제 의견으로는 '기원'을 따지는 일은 의미가 없다기보다는 현실적인 현재사회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고 (그리고 그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그런 면에서 특히 동아시아에 유독 강한 문화계의 기원론에 (특히나 그것이 학술영역이 아닌 쪽에서 추진하는 것이라면) 대해서도 비판적입니다. 다만, 학술적으로는 필요한 작업이며 간혹 그 결과물이 사회에 도움이 될때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가끔 보이는 일본 학계내의 작업은 생소하지만 흥미로운 작업이 많습니다 (역으로 국가간의 동질감을 주는 케이스등은 좋은 쪽으로 보고 있습니다).
  • 이선생 2014/12/19 11:07 #

    아이누족이 원령공주로 널리 알려지긴했지만 저 같은 경우는 어렸을 때 큰 인기를 끌었던 <사무라이 스피리츠>의 나코루루덕분에 알게되었죠.
    전통복장까지 입고 나오기도 했고요.
  • 역사관심 2014/12/19 23:39 #

    아, 그 작품은 제목을 몰랐는데 찾아보니 원전이 (게임)사무라이 쇼다운이었군요. 이 여인네가 아이누였군요! 몰랐습니다.
    http://blog.dreamwiz.com/usr/k/e/kewmetal/15/kewmetal_20100118213119_12324015_8.jpg
  • 2014/12/19 11:41 #

    아이누족은 아메리카 원주민과 비슷한 처지로 몰락하고 말았죠 안타까운 일입니다.
  • 역사관심 2014/12/19 23:40 #

    유구인 (오키나와),하와이안들과도 같은 운명...; T.T
  • 迪倫 2014/12/21 14:08 #

    아, 좋은 글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본인이 공주를 빼았아간다는 설화는 미나모토노 요시쓰네의 설화와도 관련이 있는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자세한 글을 읽으니 좀더 흥미있는 점들이 보이네요...
  • 역사관심 2014/12/22 08:48 #

    어찌보면 이 아이누 고유의 설화에 요시쓰네를 왜곡해서 무리하게 집어넣으려던 대화족들의 시도에 대항해서, 역으로 이용한 것이 요시쓰네판 설화중 일부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
  • 迪倫 2014/12/22 11:32 #

    설화는 다분히 17세기 이후의 상황이 구성되어있고, 요시쓰네의 설화는 15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니 제 생각에는 아이누 설화가 원본이라기 보다는 요시쓰네 설화가 프로토타입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여집니다.
  • 역사관심 2014/12/22 11:43 #

    아, 그렇군요. 연대를 몰랐는데 순차를 고려하면 정말 그렇겠습니다. 오히려 요시쓰네를 일반화해서 본토인으로 만든 경우가 될 수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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