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뱃속에서 살아 나온 어부 설화 야담 지괴류

울진에서 잡힌 혹등고래 (2004년)

우리 설화와 민담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신기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오늘의 이야기 역시 그렇습니다. 마치 구약성서의 요나이야기같은 이야기입니다.

손진태(孫晉泰) [조선민담집 朝鮮民譚集, 1930년]에 이런 신기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래뱃속에서의 도박판
어떤 사람이 바다에서 고기를 잡다가 고래에게 삼켜져 고래 뱃속으로 들어갔다. 들어가 보니 그 곳에서는 이미 먼저 들어온 사람들이 도박판을 벌이고 있었다. 또, 곁에서는 옹기장수가 옹기지게를 버텨 놓고 도박 구경을 하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도박을 하던 사람이 잘못 옹기짐을 쳐 박살이 나자, 옹기 파편에 찔린 고래가 날뛰다가 죽고 말았다. 이에 고래 뱃속에 있던 사람들은 옹기 파편으로 고래의 배를 째고 탈출하였다.

손진태(孫晉泰) 선생은 진단학회의 창설멤버로 1900년에 태어난 인물입니다. 그가 30세때 조선각지의 민담을 수집한 책이 바로 조선민담집 朝鮮民譚集 (1930)입니다. 이 시기는 손선생이 동양문고의 사서로 근무하며 한창 민속학에 관심을 기울이던 시기입니다. 이 책에 바로 이 기담이 적혀있는데, 고래뱃속에 어부로 추정되는 인물이 잡혀들어간 후, 그 뱃속에서 옹기장수등이 앉아있었고 도박판이 벌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같지만 신기하게도, 아주 비슷한 유형의 이야기가 서양에도 있습니다. 1955년에서 58년까지 스티스 스미스 (Stith Smith)라는 사람이 수집한 미국에 떠도는 여러 설화, 전설, 기담등을 채록한 [Motif- index of folk-literature : a classification of narrative elements in folktales, ballads, myths, fables, medieval romances, exempla, fabliaux, jest-books, and local legends] 라는 책에 "동물 뱃속에서 카드놀이를 하는 자들"이란 항목이 있습니다. 아래사진이 바로 해당 본문입니다.

여기보면 Animal with men in its belly playing cards 라는 구절이 보이죠. 보트를 타고 항해한다는 구절도 다음에 등장합니다. 물론 이 이야기들은 '야담'입니다, 그리고 상상의 이야기처럼 들리죠.

그런데, 조선시대에 실제로 고래뱃속에 들어갔다가 살아돌아온 자가 있었습니다.

청성잡기
성언(醒言)
고래 뱃속에서 살아 나온 어부

울진(蔚珍) 둔산진(屯山津)의 어떤 백성이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전복을 작살로 찔러 잡다가 고래를 만나 배와 함께 고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고래 뱃속에 들어가 보니 작살을 놀릴 만큼 넓었으므로 온 힘을 다해 마구 찔러 대자 고래가 고통을 참지 못하고 그를 토해 내었다. 나와 보니 온몸이 흰 소처럼 허옇게 흐물흐물해지고 수염이나 머리털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백성은 결국 나이 구십이 넘도록 살다가 죽었는데, 천명이 다하지 않았기에 고래 뱃속에 들어가서도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대체로 고시(古詩)에서 고래를 묘사한 내용은 모두 잘못되었다. 고래는 단지 메기 중의 큰 종류로 비늘과 이빨이 없다. 그러니 두보(杜甫) 시의 이른바 “고래 석상의 비늘과 등딱지〔石鯨鱗甲〕”란 표현과 이백(李白) 시의 이른바 “큰 고래의 흰 이빨〔長鯨白齒〕”이란 표현은 모두 잘못된 것으로, ‘등딱지’란 말이 더욱 잘못되었다. 고래가 비록 비늘은 없지만 그래도 어류이고, 등딱지가 있는 것은 거북이나 자라의 종류이니 어찌 혼동해서 지칭할 수 있는가. 다만 등지느러미가 있다거나 배를 삼킨다는 말은 참으로 옳다. 《삼재도회(三才圖會)》 역시 고래를 그리면서 비늘이 있는 것으로 묘사했으니, 중국사람 중에는 고래를 보지 못한 자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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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록은 18세기 성대중(成大中, 1732∼1809)의 [청성잡기]에 나옵니다. 울진의 둔산진이란 곳에서 전복을 잡으러 나간 어부가 고래뱃속으로 작은 배와 함께 쓸려들어갑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위의 '도박판'같은 황당무개한 이야기가 아니라, 뱃속에서 작살로 속을 헤집어서 고래가 그를 토해내게 됩니다. 위액때문인지 그 후 온몸의 털이 다 빠지고, 흰색으로 변색된채로 (그래도) 90이 넘도록 장수했다는 신비로운 이야기.

더욱 신빙성이 있는 것은 울진은 지금도 고래가 많이 잡히고 출몰하는 지역이란 점이죠.

이런 실제 사례들이 구전되어, 고래뱃속의 도박판 같은 채색된 이야기가 탄생한게 아닐까요? 서양에서도 동양에서도. 저런 이야기를 보면, 작년의 영화 '해적'에서 고래가 옥새를 삼켰다는 설정은 황당무개한 것만은 아닐지도...

울진에서 작년(2014)에 잡힌 대형밍크고래


덧글

  • 진냥 2015/02/04 08:15 #

    이번에 읽은 [조선동물기]에서 이에 관한 일화를 두 개나 발견했지요! 역사관심 님께서 포스트로 쓰실 줄 알았다면 더욱 눈여겨보는 것을.....
    비록 교류가 있었다고는 하나 현대에 비하면 생면부지나 다름 없었을 두 나라에서 비슷한 느낌의 '고래뱃속에서 도박판' 일화가 전해지다니 신비롭기 이를 데 없군요.
  • 역사관심 2015/02/04 15:57 #

    엇, 나중에 알려주시면 읽으러 가겠습니다.
  • 진냥 2015/02/04 16:22 #

    [조선동물기]는 블로그에 포스팅했는데 고래 이야기는 감상문에 언급하지 않았답니다. 조선 시대 동물에 대한 인식을 보여줘서 알찬 책이었습니다!

    http://romancer.egloos.com/5571158
  • 역사관심 2015/02/04 16:46 #

    호오 잘 읽었습니다. 저와 비슷한 생각도 흥미롭네요 :)
    http://luckcrow.egloos.com/2495427
  • 라비안로즈 2015/02/04 08:52 #

    요나이야기가 허구라 생각했는데 진짜일수도 있겠네요..ㅎㅎ
  • 역사관심 2015/02/04 15:57 #

    세상엔 별일이 다있으니 가능했을지도요 ^^
  • anchor 2015/02/05 09:18 #

    안녕하세요, 이글루스입니다.

    회원님께서 소중하게 작성해주신 이 게시글이 2월 5일 줌(zum.com) 메인의 [이글루스] 영역에 게재 되었습니다.

    줌 메인 게재를 축하드리며, 2월 5일 줌에 게재된 회원님의 게시글을 확인해 보세요.

    그럼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역사관심 2015/02/05 11:34 #

    감사해요.
  • 남중생 2018/01/20 11:09 #

    매드맥스의 워보이가 된거로군요... 성대중의 고래인식이 꽤 정확하다는데서 놀랐습니다. 어쩌면 일본의 지진신화에 등장하는 거대한 메기는 그 자체로 고래를 일컫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 역사관심 2018/01/21 06:58 #

    저 뒷부분은 제대로 읽지 않고 넘어갔었는데, 말씀처럼 메기와의 연관성도 한번 살펴볼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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