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선외양 작은 실마리, 하나 더 (19세기) 역사

간단하지만 의미가 있어보이는 구절 하나를 나눕니다. 거북선은 보통 시대별로 대소의 구분과 종류가 여러가지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거의 정설로 보입니다 (사료로 보아도 명백하지요).

사실 그런 맥락에서 거북선에 관한 가장 뜨거운 논쟁처럼 되버린 2층설, 2.5층설, 3층설에 대해서도 조금 의아하긴 합니다. 여러 타입이 있었다면 층수에 대해서도 다양한 모양이 있을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지요.

각설하고, 오늘 나누는 기록은 19세기초반, 그러니까 한국사로 보면 아주 최근의 거북선 기록입니다. 

각사등록(各司謄錄)
충청병영계록(忠淸兵營啓錄)
○순조(純祖) 19년(1819) 7월 17일

승정원 개탁
구함(具銜) 신 조운구(趙雲衢)

비직(卑職)이 7월 초8일에 하직한 뒤 그대로 출발하여 12일 신시(申時)쯤 공청도(公淸道) 비인현(庇仁縣) 마량진 앞바다 표선이 정박하고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수군우후(水軍虞候) 최화남(崔華男), 비인 현감(庇仁縣監) 윤영규(尹永圭), 마량진 첨사(馬梁鎭僉使) 이동형(李東馨)과 함께 문정하니 과연 일본국 살마주(薩摩州)에 사는 일고여일우위문의병(日高與一尤衛門義柄)ㆍ천상언십랑친결(川上彦十郞親訣)ㆍ안전희등태의방(安田喜藤太義方) 등 3인이 중(中) 3인과 하(下) 19인을 거느리고 문화(文化) 14년 정축년 살마주에 속하는 영량부도(永良部島)에 순찰(順察)하고 문정(文政) 2년 기묘년(1819) 후직(後職)과 교대하고 살마주로 돌아가기 위해 6월 14일 영량부도를 나와 선상(船上)에서 순풍을 기다렸다가 같은 달 21일 낮에 배를 출발하였는데 갑자기 동풍(東風)을 만나 서방으로 표류하고, 23일에 또 폭풍을 만나 오미시(午未時)에 돛대가 부러지고 노 역시 손상되어 부러지고, 24일에 바람이 조금 멎을 듯하고 파도가 잠시 그쳐 25일에 돛대와 노를 임시로 만들고 오미방(午未方)으로 항해하다가 초3일 새벽 귀국에 표도(漂到)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선형(船形)을 상세히 살펴보니 앞은 뾰족하고 뒤는 넓어 모양이 마치 귀선(龜船) 같고, 본판(本板)의 길이는 9파(把), 본판의 너비는 1파 3장(掌), 좌우 삼판(杉板)은 각 11도리(道里)이고, 선상(船上) 양쪽 가장자리를 장식한 것은 격자창 같은 것이었고, 안칸은 청판(廳板 마룻바닥에 깔아 놓은 널빤지)을 촘촘히 깔았으며, 앞칸은 초둔(草芚)으로 덮고, 뒤칸은 판목(板木)으로 덮었습니다. 범석(帆席)은 갑백목(甲白木)으로 만들었는데 가는 노끈〔細繩〕을 사용하여 촘촘히 꿰맸으며 철정(鐵釘) 4개를 배의 양쪽 옆으로 내려 배를 고정시켜 두었습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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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사등록(各司謄錄)은 조선대에 관아의 문서등을 모아서 책 시리즈로 만든 것으로 보시면 됩니다. 조선말기의 기록이 많은데, 소개한 내용은 1819년 7월의 기록으로 왜선 하나가 살마주, 즉 현재의 '규슈'지역,에서 도착하다가 그만 표류를 당합니다. 
이 모습을 조운구(趙雲衢, 1754~?)라는 사람이 조사하면서 보고를 하는데, 이 왜선의 모습을 보면서 '앞이 뾰족하고 뒤가 넓으니 마치 거북선같다'라는 비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분의 묘사는 나름 신빙성이 있어보이는데, 각종기록을 살펴보면 일처리를 하는 것이 매우 정밀하다고 평가받았던 모양입니다. 예를 들어 1799년의 암행어사보고(!)에 이분에 대한 기록을 잠시 보면:

1799년(정조 23년) 호남 암행어사 유경 서계
유경이 호남 암행어사를 제수받아 1799년(정조 23년)에 호남의 흥덕, 고부, 무안, 영광, 부안, 전주, 김제, 익산 등지를 다녀와 이 서계를 바치고, 각 추생지역의 전현직 수령들에 대하여 상세한 보고를 올렸다. 중략.

군산 첨사(?山僉使) 조운구(趙雲衢)는 세금을 바칠 때 아주 정밀하게 하여 백성들의 칭송이 이미 자자하였으나, 진쇄(振刷 : 지금까지 나쁜 점을 전부 고쳐서 새롭게 하는 것)함은 조금 부족하였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이분의 선체묘사가 신빙성있게 다가옵니다. 19세기면 이미 이순신의 시대로부터는 200-250년대의 후대이니 거북선의 외양도 많은 변화를 겪은 후일 것입니다. 한가지 재미로 말씀드리자면, 이 왜선이 표류했다는 곳은 현재의 충청도 서천군에 있는 툭 서해로 튀어나온 마량진입니다. 그리고 조운구는 전북 군산에서 첨사를 맡고 있었죠 (동그라미 바로 아래). 그럼 이 귀선(거북선)은 전라좌수영 모델의 19세기버젼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여기가 마량진입니다.

과연 이 19세기형 거북선의 모습은 어땠을지 궁금합니다만, 하나의 작은 Tip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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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예전에 거북선은 두편에 걸쳐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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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봉래거북 2015/03/11 23:51 # 삭제

    앞이 뾰족하다는 것이나, 선상 좌우를 장식한 게 격자창 같은 것으로 장식했다는 것으로 봐선 벤자이센(변재선)같은데, 변재선은 딱히 현존하는 거북선 관련 삽화에서는 거북선과 닮은 구석이 없는 선박인데 저렇게 묘사한 게 의아하네요.
  • 역사관심 2015/03/12 00:13 #

    저도 그래서 더 깊은 이야기를 못했습니다. 분명 밝혀진 거북선들과는 다른 묘사인지라 19세기형은 변형된 것이 또 있었나 싶기도 하구요. 그런데 조선이나 고려도 변재선이 있었을까요?
  • 역사관심 2015/03/12 00:13 #

  • 봉래거북 2015/03/14 19:50 # 삭제

    링크에 있는대로 변재선이라는 게 의외로 일본에선 종류가 상당히 다양합니다만, 배수량이나 장식, 부품 등의 차이일 뿐 기본 형태 자체는 거기서 거기입니다. 한국에서 저런 형태의 배가 간헐적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건 일제시기 일본/서양의 조선기술이 들어오고 조선총독부의 명령으로 일본식 배를 만들면서 강진 옹기배처럼 일본선과 비슷한 선체의 배들을 한국에서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그렇다고 하부선체가 넓적한 게 그나마 좀 비슷한 견명선이라 보기에는 누각에 대한 언급도 없고 고급스러운 재로가 아닌 초둔(풀)로 덮었다는 것도 그렇고...그냥 거북머리가 튀어나온 것과 변재선 뱃머리가 뾰족 나온 것을 비슷하다고 봤을지도요. 선체 형태가 다른 거북선이 있다고 보기에는 직접적으로 증명할 근거가 좀 부족하지 않나 싶네요.
  • 역사관심 2015/03/20 16:19 #

    아 그렇군요. 말씀처럼 이 하나의 사료만으로는 확실히 뭐라 할수있는 근거가 부족합니다. 다만 훗날 다른 사료가 발견될때 가치가 있을 가능성은 배제하지 못하겠죠..
  • 봉래거북 2015/07/19 01:34 # 삭제

    http://blog.naver.com/j00800/220424339697
    ㄴ이번에 새로 발견된 대부도 2호선에 대해 작게나마 글을 써 보았습니다. 많은 지적 부탁드립니다.
  • 역사관심 2015/07/19 07:27 #

    지금은 출장중인지라 짧은 댓글밖에 못달고 있어서 죄송합니다. 2주쯤후 다시 제대로 읽어보겠습니다. 흥미로운 글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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