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사 9층목탑 난간과 처마묘사 (김극시 시를 바탕으로) 한국의 사라진 거대건축

현재 황룡사 목탑 재건안을 보면 몸이 나와서 바깥을 살필 수 있는 난간이 돌출되어 있습니다. 그럼 이에 대한 사료가 있을까요? 

보통 황룡사를 직접 오른 기록을 살필때 가장 자주 인용되는 사료가 김극기 (12세기 고려대 문인)의 다음의 싯구입니다.

層層梯繞欲飛空
萬水千山一望通
俯視東都何限戶
蜂穴果蟻穴轉溟
층계로 된 사다리 빙빙 둘러 허공에 나는 듯
일만강과 일천산이 한눈에 트이네
굽어보니 동도에 수없이 많은 집들
벌집과 개미집처럼 아득히 보이네

그런데,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 시는 '전문'이 아닙니다. 다음이 전문입니다.

황룡사 목탑

층층 사다리는 빙빙 둘러 하늘로 날아가려 하고 層梯繚繞欲飛空
만수 천산은 한눈에 바라보이네 萬水千山一望通

(내)몸은 노오가 신선을 따라 오르내린 밖에 나왔고 身出盧敖登降外
(내)눈은 수해가 오가던 가운데를 삼키네 眼呑竪亥去來中

성사의 그림자는 처마 앞에 가득히 떨어지고 星槎影落前雨
달 속의 계수 향기는 난간 밑 바람에 나부끼네 月桂香飄檻下風

동도를 굽어보니 수많은 집들이 俯視東都何限戶
벌집 개미구멍처럼 아득히 보이네 蜂窠蟻穴轉溟濛
=====

즉, 대중적으로 알려진 부분은 총 8줄중 앞뒤의 4줄을 잘라 붙인 형태입니다. 가운데 네줄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죠.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현재 재건안처럼 '난간'에 대한 명확한 묘사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처마'에 대한 묘사부분과 이어지는 문맥으로 같이 붙어 있어, 저자가 바깥으로 나와 먼저 처마끝을 보고 다음으로 아래 난간을 본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이상해 성균관대 건축학과교수는 '몸은 노오가 신선을 따라 오르내린 밖에 나와있다'라는 부분은 작자가 탑신에서 돌출된 보랑에 나와 선 것으로 볼 수 있고, '달 속의 계수향기는 난간 밑 바람에 나부낀다'라는 말은 난간이 탑신에서 돌출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김극기가 자신의 몸이 탑 밖으로 나왔다는 설명을 하면서 비유 삼은 노오(盧敖)는 진(秦) 나라 때 사람으로 벼슬이 박사였는데, 뒤에 신선을 만나러 북해(北海)로 갔다가 스스로 신선이 되었다는 인물입니다. 즉, 도가에서 흔히 말하는 '비행술'을 비유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만큼 높은 곳에 올라와 있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그 다음줄에 나오는 "은 수해가 오가던 가운데를 삼키네"라는 구절의 수해(竪亥)는 하(夏) 나라 사람으로 우(禹) 임금의 신하였습니다. 그는 우임금의 명령으로 동극(東極)에서 서극(西極)까지 5억(億) 10선(選) 9800보(步)를 걸었다니 장거리 여행의 상징입니다. 따라서 김극기의 눈이 그가 오가던 가운데를 본다는 것은 그만큼 '멀리' 즉 Vista 를 황룡사 목탑 중간에서 볼 수 있다는 뜻이 되겠지요.

그럼 저렇듯 층층이 난간이 배치되어 있었을까요? 확신할 수는 없지만 좋은 근거사료가 역시 시의 형태로 전합니다.

등황룡탑(登皇龍塔).
一層看了一層看 한층보기를 마치고 또 한층 보면서
步步登高望漸寬 걸음걸음 올라 점점 광활하게 바라본다
地面坦然平似削 지면은 깍은 듯 평평한데
殘民破戶平堪觀 쇠잔한 백성의 무너진 집을 차마 볼 수 없네.

이 시는 고려 후기의 승려 혜심(慧諶, 1178~1234년)이 지은 것으로 첫번째 줄을 보면 층층이 관람이 가능한 구조로 되어 있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냥 한층 보고가 아니라了 (마칠 요), 즉 보기를 마치고 올라간다는 뜻에는 바깥으로 나가서 보고 다시 올라가는 구조라는 뜻이 들어있다고 느껴집니다. 따라서 이를 법륭사오중탑이나 법기사삼중탑, 그리고 불궁사석가탑(응현목탑)에 보랑과 난간이 설치된 방식과의 비교분석을 통해 위에 보이는 우리가 흔히보는 그래픽속의 난간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간략한 묘사지만 '성사의 그림자는 처마 앞에 가득히 떨어지고'라는 표현으로 목탑에 처마가 있었음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다만 '星槎影落前雨' 에서 雨를 비로 해석할지, 많다로 해석할지에 따라 '성사의 그림자는 처마 앞 비에 떨어지고'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가득히라는 버젼은 필자의 해석). 여기서 성사(星槎)는 사신(使臣)을 지칭하는 데, 한(漢) 나라 장건(張騫)이 뗏목을 타고 바다를 끝없이 항해한 끝에 천상의 은하에 이르러 견우(牽牛)와 직녀(織女)를 보았다는 전설에서 나온 것으로 '성사' 즉 하늘을 항해하는 사신의 그림자가 처마에 떨어진다는 것으로 역시 '높이'를 강조하는 구절로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높이에 대한 구절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렇듯 싯구에 나오는 단어 하나, 표현 하나가 잃어버린 건축의 한 부분을 채워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김극기의 황룡사 시의 일부가 아닌 전문이 많이 회자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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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K I T V S 2015/03/11 10:34 #

    cg로 처리된 건 가까이 보니까... 아이센가드의 오르상크가 연상되네요..
  • 역사관심 2015/03/11 11:01 #

    뭔지 잘 모르지만 뭔가 환타지계열 성곽같은 느낌이 오는군요.
  • 낙으네 2015/03/12 13:16 # 삭제

    사루만의 광기어린 연설이 들려오는듯 하군요.
  • 역사관심 2015/03/12 13:56 #

    아 그 탑이었군요 ㅎㅎ
  • ㅇㅇ 2015/03/11 10:48 # 삭제

    황룡사 목탑 복원? 재건? 할때 내부 계단은 위 시 구절에 나오는 것처럼

    내부를 한바퀴 원 형태로 도는 방식으로 설치할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내부 계단의 형태라던지 층마다 난간 묘사한것도 그렇고..

    그런거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각층의 높이도 꽤 상당했을것 같네요
  • 역사관심 2015/03/11 11:02 #

    내부구조에 대한 것은 여러 논문에서 다루고 있는데, 추후 연복사의 경우도 참조가능하리라 보고 있습니다. 아직 소개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결국 응현사 목탑의 형태가 가장 일반적인 사다리 같더군요.
  • 레이오트 2015/03/11 19:48 #

    진짜 이대로 복원되기만 한다면 경주는 엄청난 랜드마크를 가지게되는 것입니다!!
  • 역사관심 2015/03/12 00:23 #

    재건안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수종부터 삼국시대 당시의 수종 (소나무가 아닌 참나무계열로 사용하면 합니다. 그리고 하중을 많이 받는 쪽은 강한 느티나무를 쓴다든가 하는 식의 여러 가지 고대건축 연구가 일진보할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고 투명하고 건설적인 학계분위기로 성과를 내면 해요. http://luckcrow.egloos.com/2483862

    실제로 일본의 대극전재건에 참가한 많은 자국건축가들과 학자들은 이를 통해 고대-중세건축의 재건이라는 실제적 연구성과가 다수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건 다음 프로젝트에 큰 도움이 되겠죠 (주먹구구식으로 지자체에서 아무렇게나 하나씩 프로젝트를 개별적으로 이전연구와 별 상관없이 진행하는 꼴이 아닙니다).

    또한, 월정교처럼 그냥 탑다운식 설계가 아닌, 재건과정을 항시 투명하게 국민에게 공개하며 차근차근 재건에서 나오는 진정성을 확보하는 (community authority theory) 흐름을 견지하길 기대합니다. 이런 좋은 예가 헤이죠궁 (평성궁)의 대극전 복원이었는데 매년 재건과정을 설명하고 공개하면서 일본국민 연간 100만명이상이 꼬박꼬박 다녀간 예가 되었습니다. 이러면서 고대건축의 재건이지만, 국민들이 아끼는 새로운 건축이 되는것이지요.
  • 식함 2015/03/12 23:52 # 삭제

    새로운 나무 수종의 사용은
    그동안 있던 일정한 고정관념을 깨고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하겠네요.

    매년 재건과정을 설명하고 공개하면서
    연간 100만명 이상이 다녀간다니..

    재건 건축임에도 자국인들에게
    사랑받는 유적지가 될 수 밖에 없겠군요.

    실제로 정말 좋은 취지가 될 것 같네요.
    정말로 참된 복원 방법이 아닐런지.. ㅠㅠ
  • 역사관심 2015/03/13 01:55 #

    네 정말입니다. 최근 인도의 전통마을 복원사례도 커뮤니티 구성원들에게 어떤 변화와 재건이 필요한지 물어보면서 진행되는 등, 유네스코 가이드라인에 일방적으로 따르는 추세에서 벗어나고 있지요- 이런 철학적 흐름이 많은 학자들에 의해 유네스코 헌장자체를 수정하는 흐름으로 이어질지는 더 두고봐야겠지만, 많은 변화와 요구가 있습니다. 국내학계에서 이런 부분을 주시하면서 가야할텐데 문화재청등에서 관심을 가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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