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하나의 조선시대 개폐식 다리, 제주성 판교板橋 기록 한국의 사라진 건축

얼마전 북새선은도(北塞宣恩圖) 길주과시(吉州科試) 라는 17세기중반 실사화에 등장하는 신기한 부분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즉, 조선 중기의 화가 한시각(韓時覺, 1620년 ~ ?)이 1664년 함경도 함흥에서 열린 과거 급제자들의 시상식을 그린 기록화인데 여기에 특이한 구조물이 등장하고 있는 것을 알아본 글이었습니다.

당시 블로그이웃이신 팬저님의 제보로 이런 다리를 '조교(釣橋)'라고 부른다는 사실과 함께 또한 吊橋 (적교)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도 알게 되었죠. 적교란 것은 "두 쪽 언덕에 줄이나 쇠사슬을 건너지르고, 거기에 의지(依支)하여 매달아 놓은 다리 줄에는 와이어 로우프 또는 강철선(鋼鐵線) 묶음을 쓰는 다리", 즉 현대의 현수교의 개념이라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또한 중국의 시안성에는 이런 식의 교각이 복원되어 있습니다.
시안 영녕문永寧門

그런데 저 북새선은도의 모습이 제주성에도 구현되어 있었음을 발견했습니다. 다음의 시에 그 자세한 모습이 등장합니다.

구사당집(及菴詩集) 
제주성의 모습을 기록하여 돌아와서 아버님께 올리다〔記濟州城形 歸呈大人〕

외딴섬 보루 서쪽의 아득히 바라보이는 땅 / 別島堡西莽蒼地
한라산 북쪽 팔뚝이 바다로 드리워진 곳에 / 漢挐北臂垂海流
평평한 언덕 둘러싸고 중간에 국면이 열리니 / 平岡環合中開局
이곳에 바로 천 년 된 웅장한 고을이 있다네 / 乃有千年古䧺州

석성이 견고하고 치밀하여 방어해낼 만한데 / 石城鞏緻可阻守
그 높이 여러 길 되고 둘레는 오 리쯤이라네 / 數丈其高五里周
성벽 아래의 가시나무숲은 너무도 무성하고 / 城下枳林何茂密
성벽 위의 날렵한 용마루는 늘어선 문루이네 / 城上飛甍列譙樓

판교를 참호에 걸쳐서 인마가 다니게 하니 / 板橋駕塹通人馬
양쪽의 나무인형에 쇠사슬 갈고리 감겨있네 / 兩邊木偶鐵索鉤
성에 올라 쇠사슬 당기면 판교가 설치되니 / 登城引索橋拆開
급변이 있을 때에 외침을 막기 위함이라네 / 蓋云緩急備外憂

굽은 성첩 겹겹이 둘렀고 쇠 빗장 웅장하니 / 曲堞回複鐵關壯
육지의 고을이라도 이와 짝할 곳 드무리라 / 陸地州郡鮮此儔
바다 너머 완벽한 성곽과 서로 안팎이 되니 / 完城隔海相表裏
국가가 정히 남쪽 변방을 걱정하지 않겠네 / 國家政不憂南陬

북쪽 언덕의 석문이 무지개처럼 누웠으니 / 北岸石門虹霓卧
바닷물이 달려와서 성의 도량에 들어오네 / 海水走入一城溝
성 남쪽의 땅 형세는 산에 기대어 높으니 / 城南地勢依山高
또렷한 성의 형세는 앉아서도 알 수 있네 / 歷歷城形坐可收

중략.
=====

김낙행(金樂行, 1708~1766년)이 지은 [구사당집]에 묘사된 제주성의 모습입니다. 물론 해자의 여부는 이 시로는 알수 없지만, 제주목사 이원진이 지은 탐라지(耽羅志)(1653년)에 따르면 제주성에는 북쪽(남해 방향)을 제외한 동, 서, 남 세 곳의 성문과 두 개의 수문이 있었고, 산지천과 가락천 두 강을 식수원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성문의 이름은 연양문(동문), 진서루(서문), 정원루(남문)라고 했고, 수구는 쌍안교, 원교라고 했는데,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에 헐립니다.

현재의 제주성 잔존구역 (기록처럼 높이가 수 장이면 1장이 약 3미터니 이보다는 훨씬 높았을 겁니다. 쇠로 된 빗장까지... 하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2장으로 나와 있어 거의 이 높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응가님제보).)

주제부분을 다시 볼까요.

판교를 참호에 걸쳐서 인마가 다니게 하니 / 板橋駕塹通人馬
양쪽의 나무인형에 쇠사슬 갈고리 감겨있네 / 兩邊木偶鐵索鉤
성에 올라 쇠사슬 당기면 판교가 설치되니 / 登城引索橋拆開
급변이 있을 때에 외침을 막기 위함이라네 / 蓋云緩急備外憂

여기 보면 판교板橋를 塹(참)에 걸쳐서 사람과 말이 다니게 했다고 하는데, 번역은 '참호'로 되어 있지만 라는 글자의 1번뜻은 구덩이, 2번은 해자입니다.

따라서, 성에 올라서 양쪽의 나무인형木偶에 감겨 있는 쇠사슬을 당기면 이게 감기면서 교각이 성으로 올라가서 적이 침입하지 못하게 하는 구조가 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중세 유럽의 성곽의 문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북새선은도에 나오는 함경도 관아의 조교(釣橋)와 중국 시안성의 경우 '마치 홍살문'과 같은 구조물에 감는 구조인데, 이 제주성의 경우 '나무인형 두개'를 만들어서 감는 구조로 특이하면서 그 생김새가 궁금합니다. 제주성의 복원 계획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러한 모습이 충실히 구현되어서 가시적으로 많은 즐거움을 주길 기대합니다.


덧글

  • 레이오트 2015/03/17 12:14 #

    그런데 사람들은 판교하면 죄다 유럽의 그것을 떠올리지요.
  • 역사관심 2015/03/17 12:51 #

    뭐가 눈에 일단 보이는 게 있어야...,-_-
  • 레이오트 2015/03/17 13:53 #

    그 이전에 머리에 뭐가 들어가야 이미지 인식이라도 돌리든가 하지요.
  • 역사관심 2015/03/17 14:13 #

    그렇죠. :)
  • 응가 2015/03/17 17:25 # 삭제

    제주에는 건천이 많고 물있는 개천이 적은데 제주성주변의 개천은 산지천이 유일하고 다리가 세개있어 그쪽으로 다니기도 하고 북수구와 남수구로 다녔다고 들어봤습니다. 또한 산지천을 따라 성곽이 있었으나 어디까지 홍수피해를 줄이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알고있고 성이 겹겹이 둘러싸여있다고 한것은 아마도 수많은 돌담을 말하는것같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에 제주성의 성곽높이가 2자라고 하였는데 이는 지금남아있는 성곽의 높이와 거의 일치합니다 수장이라 한건 좀 과장한것같네요.
    제주성도 다른 육지의 성과 다름없이 대부분이 헐려 현재 오현단 북쪽의 몇십미터 정도밖에 남아있지않습니다. 제주성안의 많은 유적들도 관덕정을 남기고 모두 훼손되었다가 최근에 제주목관아를 복원하였지요. 현재 제주시내에서 제주성을 복원하고자하는 취지로 제주성과 관련된 다양한 사진을 모으고있다고 들었습니다.
  • 역사관심 2015/03/17 22:37 #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이 있을 수 있다는 걸 간과했네요. 2장이면 6미터니 거의 비슷할 수 있겠습니다. 혹시 저 판교에 대한 발굴결과가 나온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동, 서, 남문중 적어도 하나에 설치되어 있었을 텐데, 이왕 복원할 것이면 이런 다양한 모습도 담아내면 좋겠군요.
  • 응가 2015/03/18 18:38 # 삭제

    현재 남아있는 제주성에 대한 기록이 많지않고 조선시대에 그려진 제주성 고지도에도 북수구와 남수구정도만 표시가 되어있습니다. 발굴은 따로 하지않는것으로 알고있습니다. 각 문들도 현재 흔적도 없이 사라져 지명으로만 남아있는 상태인데 제주목관아지를 복원한것처럼 수년뒤에는 혹 복원할지도 모르겟습니다.
  • ㅇㅇ 2015/03/18 11:18 # 삭제

    사진의 중국 시안성을 보면 사실 저건 명대의 시안성인데 당나라 장안성으로 착각하는 분들이 좀 있는것 같더군요. 지금 시안성을 보면 당나라 장안성보다 넓이는 작지만 성곽 자체는 훨씬 크죠 당나라 장안성은 높이고 현재 시안성보나 낮고 결정적으로 토성이라는.. 참고로 원나라 수도 대도(현재 북경) 외성도 토성이죠
  • 역사관심 2015/03/19 07:13 #

    사실 관심이 없으면 당연히 그렇게 되겠죠. 저런 성곽복원한 것 보면, 우리도 고대국가-중세국가들도 한양성곽처럼 성곽일부와 해자라도 제대로 높이구현해서 복원한 모습을 보고 싶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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