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홍대용의 심성문중- 경험론 독서

홍대용(1731∼1783년)과 경험중심의 인식론적 리기관의 재생 (신정근, 1998)에서.

성리학의 이기관에 대한 홍대용의 결정론적 독해와 비판
홍대용은 성리학의 '리'개념에 대해 1) 무형의 선험적 리의 존재가능성, 2) 생성력이 없는 리의 세계 근원성, 3) 리의 주재성 등등에 회의를 표시한다.

대체로 '리[의실재]'를 주장할 때 반드시 "물리적 형체가 없는, 즉 초월적 리가 존재한다 (無形而之理)"고 말한다. 이미 '형체가 없다'고 설명하고서 '[리가] 존재한다'고 하니 [리란] 어떤 존재인가? 이미 '리가 존재한다'고 주장하지만 어떻게 '형체가 없다'면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왜냐하면 '소리가 난다'면 '[소리를 내는 것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색깔을 띤다'면 '[색깔을 지닌 것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냄새를 풍긴다거나 맛을 낸다'면 '[냄새를 풍기거나 맛을 내는 것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네 가지 [성질]이 전혀 없다면 [이 성질을 가지는] 물리적 형체도 없고 물리적 공간을 차지하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가] 존재한다'면 [리란] 어떤 존재인가?
-心性問

홍대용은 '있다'와 '없다'라는 술어의 특성에 주목하여 '무형이유리'라는 언명자체가 성립될 수 없음을 논의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있다'와 '없다' 술어는 소리, 색깔, 냄새, 맛등의 형체, 위치를 갖는 대상(대상자)과 결합되어 쓰여야 한다. 즉, 무엇이든 그것이 감각으로 파악될 수 있는 경험의 대상일 경우에만 홍대용은 그 존재를 '있다/없다' 술어와 결합시킬 수 있다고 본다. 그러면 주희의 '무형이유리無形而之理/"유형이지리有形而之理"라는 언명은 언어적으로 유의미한 진술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논리적으로도 모순을 범하고 있는 셈이다. 

왜냐하면 형체를 지닌 감각적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리'는 원천적으로 '있다'라는 술어와 결합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없지만...있다'라는 형식에서 '있다'와 '없다'가 감각적 대상을 지시하는 같은 차원에서 사용되고 있는 한 위의 언명은 범주적 오류를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홍대용은 언어가 감각가능한 대상과 엄격한 대응관계를 가진다는 언어관에서 출발하여 경험을 넘어선 대상을 철학의 영역에서 추방하고 감각가능한 대상만이 존재한다는 '경험중심의 철학'을 전개하는 듯 하다.

또 주장한다: "[리란] 소리를 낼 수도 냄새를 풍길 수도 없으면서 만듦과 됨의 돌쩌귀이자 끈이요, 사물과 현상의 밑바탕이자 뿌리이다." 그렇다면 [리는] 만들거나 하는 일이 없는 셈인데 [사람은 리가] 어떻게 돌쩌귀와 끈, 밑바탕과 뿌리[의 역할을] 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가?

리는 리이지 기가 아니다. 기는 기이지 리가 아니다. 리는 형질을 가지지 못하지만 기는 형질을 띨 수 있으므로 리와 기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뚜렷하다. 리가 있으면 반드시 기가 있지만, 리를 말하면 리일 뿐이고 기를 말하면 기일 뿐이다.
-心性問

=====
과연 홍대용이다. 마치 칸트와 후설, 후기 비트겐슈타인이 아닌가.


덧글

  • 에라이 2015/04/14 07:58 #

    안녕하세요, 처음 리플 남겨봅니다

    지난해 학교에서 의산문답에 대해서 허접하기 짝이없는 발표를 하면서 심성론의 저 글귀를 인용했던 게 기억나서 반가운 마음입니다. 인물성동론 설명하려고보니 이기론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결국 저 글귀까지 끌어다 썼는데, 성리학에 대해 아무 이해도 없는 상태에서 저 말을 이해하려고 거슬러올라가다보니 주희, 주돈이까지 올라가서 멘붕했던 기억이 나네요. 어찌어찌 발표는 했다만 본인 스스로도 100% 이해했다는 자신은 없었고 발표를 듣던 후배들의 혼 빠진 표정을 잊을 수가 없네요. 그래도 무지한 제가 봐도 보통 낙론계나 북학파 학자들과는 좀 다르다는 정도는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대걔의 그 당시 학자들이 좀 뭐랄까 해석론에 묶여 있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홍대용은 그런 것도 없고...

    당시에는 홍대용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경험론과 현상학과도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또 감탄을 하게 되네요. 잘 보고 갑니다
  • 역사관심 2015/04/14 11:36 #

    학교에서 인물성동론 인물성이론등을 배우신다니 수준높습니다 ㅎㅎ.
    말씀대로 홍대용의 경우, 적어도 이런 주장들은 낙론계에서도 돋보이는 것 같습니다. 억지스럽긴 하지만 낙론계의 경우, 서구의 현대철학 (즉 포스트모더니즘)의 맥락이 슬쩍 겹쳐보일때도 있어 흥미롭더군요.^^
  • 에라이 2015/04/14 12:11 #

    사실 저런 걸 배울 과목은 아니었는데(국문학개론) 저희 선생님이 갑자기 의산문답으로 레포트를 내라고 하셔서 찾다 보니까 인물성동론이나 이기론 같은 얘기를 안 할 수도 없고 그래서...애초에 수업 시간에 나온 얘기도 아니고 저 얘기는 저 혼자 했습니다OTL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쓸데없이 알지도 못하는 걸 건드린 것 같아서 부끄럽네요. 그냥 의무려산의 의미는 뭐다? 이런 내용이나 적당히 두어장 쓰고 말았어야 했는데...
  • 역사관심 2015/04/14 13:05 #

    열심히 하셨으니 또 깊이 알게 되셨으리라 믿어요 :)
  • 최강로봇 도라에몽 2015/04/14 19:57 #

    정말 식견이 대단하십니다. 왠간하면 이런 덧글은 잘 안남기는데 홍대용의 저 글귀에서 칸트와 비트겐슈타인을 끌어낼수도 있단 생각은...
  • 역사관심 2015/04/14 23:25 #

    혼자 주절거린 졸견입니다 (워낙 방대한 칸트의 경우 그야말로 돌쩌귀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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