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의 거대성벽들 한국의 사라진 거대건축

한국의 성, 그리고 그 성벽 하면 어떤 그림이 떠오를까요?

아마도 대부분 가장 시대적으로 그리고 공간적으로 접근성이 쉬운 조선시대의 한양도성, 그리고 지방의 경우 각 읍성을 떠올릴 것 같습니다.
한양도성
경주읍성

김해읍성

그리고 이 시기의 성벽은 대부분 높이 5-6미터 안팍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공성전의 치열한 모습 (즉 중국이나 일본사극을 볼때 느껴지는)을 생각하면 이 정도 높이로 과연 적을 방어할 수 있었을까 생각되는 것이 솔직한 느낌일 것입니다.

이는 전쟁이 터지면 읍성을 버리고 산성으로 들어가서 농성을 하는 전투방식을 채택했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다른 이유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필자도 궁금). 사실 이렇게 낮은 읍성들의 경우 임진왜란등 여러 전쟁에서 쉽게 함락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이는 중국의 평지성들 (보통 8-10미터이상)처럼 거대한 성벽을 가진 성들이 쉽게 함락되지 않던 것과 큰 대조를 이루죠. 조선전기에 이미 평지성의 방어력보다 산성을 중심으로 방어체계를 짰음에도 왜 후기까지 지속적으로 읍성이 존재하고 건설되었는가 하는 점은 아직 여러 추측을 낳게 합니다.

이렇게 방어력이 현저하게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읍성이 왜 경상도의 해안과 내륙의 큰 고을을 중심으로 곳곳에서 축조되기 시작했는지에 대해 아직까지 정확한 이유를 파악하지는 못하고 있다. 다만 첫째,왜구가 대규모로 침입한 적도 있지만 중규모나 소규모의 약탈 수준이었던 경우가 많았고 둘째, 1390년대 이후 왜구에 대한 고려와 조선의 대처 능력이 향상되면서 실제 전투에서 왜구의 전투력이 압도적이지 않은 경우가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셋째, 단지 실제 방어에서의 효과보다는 중앙에서 파견된 지방관이 백성들을 보호하려 노력한다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중요하게 여겼던 점 등이 읍성의 축조에 일조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기봉, 한국의 역사와 성곽]

하지만 오래전에 다루었다시피 삼국시대에는 우리나라도 평지성 역시 만만한 높이가 아니었습니다 (다만 중국, 일본, 유럽등과 같이 가시적으로 남아있는 구간이 거의 없죠). 예를 들어, 고구려의 평지성 국내성의 경우 발해고의 기록을 보면 약 9.09미터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의 사라진궁궐- 국내성과 환도성)


바로 이런성 말입니다 (중국 장안성, 10미터)
하지만, 우리에게 이런 식의 거대한 성벽을 가진 삼국시대 평지성들은 단 한 채도 남아있지 않아 (혹은 재건되지 않아) 인식적으로 높은 성곽의 느낌을 일반 대중들이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시기 위와 같은 사료나 남아있는 '토성'들의 높이를 보면 그 높이가 굉장했음을 알 수 있죠. 예를 들어 백제 풍납토성의 경우 높이가 13미터에 달하는 구간도 상당합니다 (구간별 8-15미터 추정). 또한 이기봉선생의 [한국의 역사와 성곽]자료를 보면 신라 월성의 경우도 그 성곽의 높이가 10-18미터에 달한다고 되어 있죠.

풍납토성 단면모형
하지만 이런 거대성곽들은 고려시대가 되면서 작아지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개성의 성곽인 나성의 경우 방어목적보다는 풍수지리설에 근거한 권위표현에 태조왕건이 더 치중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기봉, 동저). 하지만 나성의 경우도 낮은 곳은 5미터지만, 높은 곳은 9.5미터에 달했다고 합니다. 또한 지금은 흔적만 남은 북한의 '천리장성' 역시 그 높이가 8미터 5센티였다는 기록이 명확하게 전합니다.

세계 대다수의 수도에서는 하늘과 맞닿을 정도로 높고 웅장한 궁궐을 지어 자연 최고의 존재인 하늘의 권위가 왕의 권위와 연결된다는 2단계의 표현 방법을 구사하였다. 반면에 (고려의) 개성에서는 하늘=산=궁궐의 일체화된 상징 경관의 구성을 통해 자연 최고의 존재인 하늘의 권위가 산을 매개로 하여 왕의 권위와 연결된다는 3단계의 표현 방법을 적용하였다. 이 방법에서 궁궐은 시각적으로 하늘과 맞닿은 산과 일체화된 존재가 되기 위해 산 밑에 자리하게 되며, 크기도 상대적으로 작아진다.  이기봉, 2008, 『조선의 도시, 권위와 상징의 공간』, 새문사, 61-1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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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느낌, 삼국의 산성들

하지만 조금만 곰곰히 생각해봐도 한국의 대중들은 사실 꽤나 이상하게 느껴질듯 합니다. 즉, 우리가 아는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시대, 그리고 통일신라시대(발해를 포함하면 남북국시대)초기까지는 한반도는 그야말로 전란의 시대. 따지고보면 여느나라의 전국시대에 못지 않는 치열한 전쟁과 국지전이 수없이 반복되던 전장터였습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텍스트로 접하는 대중들은 사실 수도인 서울을 상징하는 숭례문 옆의 성곽을 포함한 한양성곽로를 산책하면서, 혹은 지방에 놀러가서 읍성을 바라보면서 이러한 삼국시대의 전쟁들에 대한 '감성'(이랄까 느낌)은 전혀 받지 못하는 괴리감에 휩싸이게 되죠. 즉, 이 나라는 당나라, 수나라와 그런 전쟁을 치룬게 맞는걸까 라는 솔직한 생각이 들게 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이는 전국시대를 떠올리며 남아있는 성곽들을 유적지로 탐방하는 중국이나 일본의 대중들의 그것과는 분명한 격차가 있겠죠).

즉, 원나라 간섭기에 접어들면서 전쟁자체에 대한 방어에 그리 신경쓰지 않게 되던 고려후기, 그리고 조선시대는 그렇다 하더라도, 현재의 가시적 유적들은 한국의 전쟁시대인 삼국시대의 치열한 전쟁을 치른 느낌을 받기 힘듭니다. 그런데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곳들이 있습니다. 바로 '삼국시대의 산성'들입니다.

산성은 말 그대로 산에 있는 성곽들이기 때문에 조선시대 한양성곽길처럼 어떤 산책로처럼 접근성을 부여하지 않는 이상 (혹은 언론과 사진등 계속해서 반복적인 가시정보를 뿌려주지 않는 이상), 보통 일생을 살면서 한번도 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사람도 많을 것 입니다. 수백년간 '무'를 경시해 왔고, 사실 현재의 한국사회에서도 그런 맥락이 많이 남아있는 현실에서 이러한 성곽들은 대중적으로 그다지 깊게 인식되지 않고, 여러 매체에서도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뤄온 감이 많습니다 (읍성에 대한 정보, 혹은 지역별 사당등에 대한 언론사의 언급빈도와 비교해보면 꽤 명백해 보이지요).

그런데, 이 성곽들을 보면 정말로 이 나라가 오래전 '정말로' 전쟁의 나라였구나 라는 것이 어떤 유적지보다도 (필자는) 느껴집니다. 각설하고 아래의 사진들을 한번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사진은 예전부터 갈무리해둔 것으로, 일부 명칭을 파악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냥 나열했습니다).

고구려 온달산성

삼국시대 충주산성

신라 고모산성

후백제 견훤산성
고구려 성산산성

신라 삼년산성

고구려 정양산성

고구려 백암산성

고구려 봉황산성 (잔존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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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지역별로 읍성등의 복원 혹은 재건이 활발합니다. 그에 비해 이런 삼국시대의 산성과 성벽들은 보존상태에 비해 (혹은 전문가집단의 연구에 비해), 한국사회에서 그 활용도라든가 관심도가 현격히 떨어지는 느낌이라 아쉽습니다.

예를 들어 임진왜란 당시의 저런 읍성에서의 전투라든가 울산성, 진주성 전투의 경우 드라마에서도 자주 묘사되고, 적어도 저런 '회화'로라도 자주 그려지는데 반해, 이런 삼국시대의 거대성벽을 묘사한 당대 공성전은 신기할 정도로 별로 없죠 (아니, 삼국간의 전쟁이 제대로 매체에서 다뤄진 적도 없습니다).

2000년대 중반 SBS 다큐에서 다룬것으로 기억하는 당나라 vs. 고구려 백암산성 공성전

앞으로 전쟁을 소재로 하는 여러 매체 (만화, 영화, 드라마등)에서도 꼭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고 활용할 유산이라 생각되며, 앞으로 적어도 사진이라도 우선 많이 알려지기를 기대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분명) 많이 나올 삼국시대 전쟁물에서 활발히 이런 대형 산성 혹은 평지성의 당대 완전한 모습이 재현되길 바랍니다.


덧글

  • Nocchi 2015/05/28 11:27 #

    삼국시대 전쟁에 대한 묘사에도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한국 드라마에서 기억에 남는 대표적인 삼국시대 전쟁은 <<주몽>>의 한나라 수송대 습격씬 인 듯. 2만 대군이라는 한나라 군의 군량을 책임진 14명의 군량 수송대(수레2대)를 습격하는 9인의 용사(고구려왕 주몽 포함).
    혹자는 식권수송대 라는 이야기도 하던데 말이죠..ㅎㅎ
    예산이 없으니 대규모 성곽 전투 따위는 꿈에도 꾸기 어려울 듯 싶습니다
  • 역사관심 2015/05/29 22:47 #

    네, 결국 돈문제죠. 이번 징비록의 전투신들은 10년은 퇴보한 느낌인데 이 역시 결국 자본문제같습니다.

    그 전설의 주몽시절에는 그것조차 사상 최초 고구려드라마라는 후광아래 긴장감있게 봤던 기억이 -_-;;
  • 천하귀남 2015/05/28 11:57 #

    조선의 읍성은 여말과 선초의 왜구, 여진족등 소규모 침략의 방어 목적으로 만든것이 많아 이들이 장기간의 공성전을 하기 힘든 부분이 반영된것 아닌가 합니다. 여기에 비록 높이가 낮다고 하지만 조선시대 성은 화기로 보강된만큼 왜구나 여진족 정도의 방비에는 충분하지 않았나 합니다. 행주산성이나 진주성등 공성용 대규모 화기가 없는 왜군상대로는 그럭저럭 효과를 봤다고 할만 하니까요.
  • 역사관심 2015/05/29 22:48 #

    네 그런 관점이 본문내의 이기용 선생 설명에 나오더군요. 화기가 보충이 되었다곤 하지만 임란-호란대에도 수없이 털리는 안습한 역사가;;
  • 엑스트라 2015/05/28 12:49 #

    삼국시대라면 꽤 오래되었을테고, 혹시 거주지가 바뀌면서 산성에 대한 용도가 줄어든 것 때문에 산성이 묻혀지고 파손되는 거 아닌지.....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산성도 있다고 해도.....
  • 역사관심 2015/05/29 22:49 #

    역시 도성외곽이나 평지성과 달리 접근성이 딸리죠. 아이러니하게 이 요인으로 산성들이 저렇게 (일부는 복원이지만) 상대적으로 잘 보존된 것 같습니다.
  • 최강로봇 도라에몽 2015/05/28 12:51 #

    우리나라 성들이.낮아보이지만 남한산성만 보더라도 넘사벽이죠
  • 역사관심 2015/05/29 22:50 #

    정말 남한산성은 제대로 한번 그 역할을 역사에서 하는 걸 보고 싶었는데 (마치 영화보는 투;), 그 위용에 비해 마지노선처럼 아쉽다는...
  • 응가 2015/05/30 21:45 # 삭제

    남한산성이 제 역할을 아주 못한것은 아니죠...... 인조는 마지막까지 항쟁하였으나 외부보다는 내부의 문제로 삼전도의 굴욕을 겪게 되죠. 수라상에 죽이 올라왓을 정도니 뭐;;; (혹시 잘못알고있는것이 있으면 일러주세요.)
  • 낙으네 2015/05/28 13:07 # 삭제

    그러고보니 사극 내에서 높은 성벽을 잘 못 본것 같네요. 대조영 초반의 안시성 전투가 cg를 동원해 KBS사극 역사상 가장 치열한 전투씬을 보여줬음에도 문경세트장(문경으로 알고 있는데 다른데면 지적바람)의 낮은 성곽으로 인해 당나라 군사들이 토성쌓고 하는 게 참 뻘짓처럼 느껴지더군요. -_-;;
  • 역사관심 2015/05/29 22:51 #

    맞습니다. 대조영은 보지 못했는데, 말씀만으로 그 안습함이 느껴져서 몸이 오그라듭니다.
  • 조선반도의 현대인 2015/05/28 14:05 #

    화약무기가 발달을 하면 할수록 성벽이 낮아집니다. 높은 성벽이 포공격으로 붕괴시 낮은 성벽보다 방어에 더욱 치명적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붕괴후 임시로 복구하기도 힘들죠
    아무리튼튼한 성벽도
    포공격을 계속받으면 성벽이 무너질 수밖에 없죠
    결국엔 가면갈수록 성벽이 낮아지고 두꺼워지가가
    지금 참호처럼 땅을파고 들어가는 형태가 나오게 되는거죠
    적의 화기에 노출되는걸 최소화 시키기 위해서요
  • 역사관심 2015/05/29 22:52 #

    네, 그렇긴 한데 천하귀남님의 댓글에도 달았듯, 그럼에도 읍성들은 너무 낮은 것 같아요. 왠만한 긴 창이면 위의 병사가 찔릴 정도니..;7-8미터정도는 평균적으로 되어야 화기도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았을까 싶긴 합니다. 임란때 그렇게 우르르 무너지지는 않았을 텐데..
  • ㅇㅇㅇ 2015/05/28 15:44 # 삭제

    재건하지 말고 지금 남아있는 부분이나 제대로 보존헀으면 싶네요, 우리나라의 복원 능력도 믿지 못하겠을 뿐더러 저런 유적들은 복원해서 깨끗하게 치장하는 것보다 약간은 부서지고 거친 부분이 존재하는게 옛 유적지로써 맛이 있는거니까...
  • 역사관심 2015/05/29 22:54 #

    네, 특히 정양산성같은 곳은 정말 보존이라도 제대로 해서, 관광지화하면 좋겠어요. 고모산성만해도 어딘가 어색하죠. 하지만 한 50년 흐르면 또 나름 고색창연한 맛이 날것도... 결국 아무것도 없는 벽돌만 굴러다니는 곳은 일부재건하고, 저렇게 잘 남아있는 곳은 탄탄하게 받쳐줘서 보존을 잘 하면 합니다.
  • 봉래거북 2015/05/29 00:35 # 삭제

    조선조 성벽도 함경도처럼 여진의 침략이 잦았던 지역의 성벽들은 상당히 높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여말선초 왜구들이 많아사라진 이후에는 조선의 주적은 남쪽의 왜구보단 북방의 오랑캐들이었을테니 말이죠. 임란 이후에도 화기가 발달하다 보니 높은 성벽보단 나지막하고 튼튼한 성벽이나 화포 발사가 가능한 목책도니성이 많이 연구되었습니다.
  • 역사관심 2015/05/29 22:54 #

    저 역시 찾아보면서 조선초 성벽들에 관심이 있었는데 제대로 찾아보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사진을 보고 싶어집니다 ^^
  • 아빠늑대 2015/05/29 02:09 #

    위에 덧글에 언급이 되었지만 화약무기의 발달은 성곽을 낮게 만듭니다. 서구에서도 화약 무기의 발달은 성곽을 낮고 두텁게 만들고 또 경사지게 만들게되죠.
  • 역사관심 2015/05/29 22:55 #

    넵,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선읍성들은 좀 너무 낮은 감이 있어서;; 왠만한 뜀박질 잘하는 병사면 그냥 타다닥 올라갈거 같은;
  • 아빠늑대 2015/05/30 02:04 #

    관리를 안해서 많이 낮아진 측면도 있지요. 흥양읍성을 예로 들면 높이가 15척인데 조선시대 척이 시기마다 조금씩 달랐다 하더라도 못해도 3미터 제대로면 5미터 정도는 되어야 하죠. 다른 읍성들도 비슷한데 이 읍성을 예로 든 건, 북벽쪽에 옛날 모습의 성벽이 5.7미터 짜리가 남아 있습니다.

    옛날 사람들의 신장이 지금보다 작은걸 감안하고 화약무기의 발달도 염두에 둬 보면 3미터 정도만 되어도 방어에는 크게 무리가 없겠죠. 하지만 성벽 높이 뿐만 아니라 성벽에는 여장 부분이 있으니 그 높이도 더해야 할꺼고요.

    서구에서도 보면 보방식 요새로 많이 알려진 별모양 요새들의 높이들을 보면 예전의 성벽에 비한다면 확 낮아진 모습을 보이잖아요. 뭐... 그래도 우리나라 성벽이 낮은건 관리 부실의 측면이 꽤나 크다고 생각은 합니다.
  • 역사관심 2015/05/30 05:44 #

    아 그런 면도 있군요. 댓글말미에 말씀하신 부분에 관해서는 이왕에 복원/재건하는 것, 원래 규모가 더 컸다면 제대로 고증해서 그런 규모로 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성벽도 그렇거니와 문루도 그렇고...
  • 2015/05/30 10:09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6/01 03:5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평론가 2015/05/30 12:39 # 삭제

    조선시대 성이 낮은 이유는 뭐 수원화성을 지으면서 왜 낮게 지으십니까?
    아름다움이 우선이다라는 정조의 멘트만 봐도 알수 있죠. 그래도 한양 도성은 꽤 높은 높이인 편입니다. 저곳은 낙산 공원인가요?
  • 역사관심 2015/06/01 03:59 #

    정조대왕의 경우, 해자조차 백성들의 고생을 덜어주기 위해 그리고 땅을 놀리지 않기 위해 '논'으로 만든분이니... 정말 대단한 군주입니다. (사진의 정확한 정보는 모르겠네요).
  • ㅇㅇ 2015/05/31 20:41 # 삭제

    창과 활로 싸우던 시대야 높은 성벽은 높은 방어력을 의미하지만 화포를 쏘는 전쟁에서는 높은 성벽은 넓은 표적을 의미하고 또 쉽게 무너지는 것을 나타내죠.
    그렇다치더라도 성들이 너무 낮은데 이는 아무래도 역량에 비해 지나치게 성을 넓게 둘러 만들었기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성 놔두고 전쟁이 나면 산성으로 들어가는 것도 그렇고.. 한성의 경우에는 전쟁이 나도 성이 너무 커서 방어를 못 할 지경이었다고 하니.. 이에 비해 삼국시대의 성들은 넓이가 좁기라도 하죠.
    저는 이게 진짜 치열한 전쟁의 방어를 위한 성보다는 마치 행정구역을 나눠놓은 상징적인 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 역사관심 2015/06/01 04:03 #

    네 저도 이 이야기는 자주 들었습니다. 위에 비밀댓글로 정보를 알려주신 분에 의하면 말씀이 맞습니다. 읍성의 경우 조선전기까지는 본격적인 전쟁보다는 왜구수준의 적을 방어하기 위한 시설이었는데, 이게 임란으로 무용지물이되자, 산성을 주력으로 하는 이원체계가 되었고, 전쟁후에는 읍성을 행정구역으로 (방어시설보다) 여기게된다고 하는군요.
  • ㅇㅇ 2015/08/19 20:54 # 삭제

    그런데 한반도는 임란 이전에도 삼국시대에도 평지성 산성 이원체제였어요
  • 응가 2015/05/31 21:33 # 삭제

    평양성의 높은 정자와 문들도 삼국시대 산성의 특징이라고 할수있을까요? 성벽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을밀대는 석축높이만 해도 11m나 되고 칠성문도 석축높이는 10m정도 되는것으로 알고있는데 다른지방과 달리 보기 드문 높이라 생각합니다.
  • 역사관심 2015/06/01 04:04 #

    성곽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어서 그 부분은 공부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평양성의 웅장한 모습은 제 느낌으로는 고구려부터 내려오던 벽을 무너뜨리지 않고 계속 보수-중건해가며 쓴 느낌이 있는데, 연관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K I T V S 2015/06/05 11:21 #

    조상님들 : 낮게 지어서 죄송합니다.
  • 역사관심 2015/06/05 12:39 #

    죄송...
  • 2015/08/08 10:15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8/11 07:3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룽나 2015/09/05 11:19 # 삭제

    돈,노동력도 이유이지요. 그러나 여러분, 성벽의 형태를 다시한번 보십시오. 고려시대의 대몽전쟁때에 고려인들은 화포나화약의 존재를 알게 되지만, 그때가 그전의 삼국시대과 조선시대의 축성의 차이점,즉 경계선으로 생각할수 있다고 생각할수있지 않을까요?
    삼국시대의 성벽의 단면을 보면 두깨의 비율이 높이보다 적습니다. 조선시대 성을 보면 높이는 낮게된 반면 두깨의 비율이 늘어졌습니다. 이건 화포를 막기위한 축성의 변화라도 볼수가 있지요.
    당연히 높게만드는 것은 기술적으로 는 불가능하진 않지만, 그만큼 두껍게 만들어야 하지요. 반드시 두께의 비율>높이의 비율 의 방식을 지켜야 합니다.

    이건 개인적인 의견일지 모르지만,신라의 삼년산성 과 조선의 수원 화성,남한산성 을 보면 삼년산성 은 성벽에 바깥쪽과 안쪽이 있는데(조선 읍성도 그렇지만), 남한산성이나 화성 성벽엔
    안쪽이 없습니다. 안쪽은 성벽돌 위에 흑으로 땅을 만들어 땅과 조금 일체화 한 부분이 보입니다.
    따라서 저는 화포가 등장하는 전후의 성축의 차이로 보고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말하자 면...극단적인 표현이지만,
    중국의 저 높은 성을 만들려면 저 2배정도 두껍게 해야 화포를 맞아도 견딜수 있다...라는 식입니다.
    하지만 울나라 의 노동력을 생각하면 그럴수도 없고.... 그 노동력으로 어떻게 화포 를 막는성을 만드는가, 라고 건축된 것이 조선시대의 성이 아닐까 라고도 볼수가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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