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明)과 원(元)은 (송과 달리) 동류가 아니다 (동북공정 관련 기록) 역사

이젠 최근이라고 하기도 어색하게 세월이 오래된 '동북공정'에 대한 비판적 논리는 워낙 많을 수 있습니다. 필자는 그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이고 "빼도박도 못하는" 사실은 바로 중국인들의 '전통적 민족동류 정체성의식'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많이들 알려졌듯 중국은 대대로 한족왕조만을 정통으로 여기고 그외의 북방민족들의 왕조는 정통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는 한족이 중국이자 유일한 중화문명이라는 그들의 전통적인 민족국가관이었습니다. 이마저 부정하고 있는 것이 바로 현재의 동북공정, 다시 말해 자신들의 선조들의 정통적 민족국가관마저 전복시키고 있는 말도 안되는 정치적 시도가 동북공정(그리고 서남공정)입니다. 예전에 서남공정에 관한 재밌는 글로 서유기의 기록을 살핀 적도 있었습니다.
감정적으로 들끊는 냄비현상보다 현재 한국인들이 그리고 학계가 파고 들어야하는 부분은 따라서, 중국의 역대 민족관을 철저히 분석, 해외의 학계와 정치권에 알리는 일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작업은 현재 활발한 중국고문헌 번역작업 (동북아재단, 고전번역원등)과 단행본출간등으로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매우 유의미한 작업이라 평합니다.

그런 좋은 예로 2009년 발행된 [북방민족과 중원왕조의 민족인식]이란 책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송나라의 문인 소철(蘇轍,1039~ 1112년)은 11세기 당시 강성하던 요나라의 침공에 다음과 같은 시를 남깁니다.

발췌:
이 땅을 떼어 준 이는 누구던가?
노린내가 오랫동안 씻기지 않았다.
슬프다 한나라 당나라 이후로,
왼섶을 한 오랑캐가 지금은 반이나 된다.
옥과 비단 같은 귀중품은 말할 거리도 못 되고,
자녀들이 유린을 당해 왔다.

보잘것없는 오랑캐 법령 사용하여,
세월 가자 그들의 군현으로 얽혀 버렸다.
예로부터 제왕이 군대를 사용함은,
그 요체가 망해 가고 어지러운 나라를 억누르는 데 있었다.

견고한 적을 공략함은 옥을 깨뜨리기보다 어렵지만,
흠집을 찾아내면 얼음 녹듯 쉽게 풀린다.
중원이 늘 잘 다스려지기만 하면,
적의 형세 저절로 변하게 마련이다.
응당 은하수를 끌어 와,
이곳의 억만 백성을 깨끗이 씻어야 하리.

이 글이 중요한 것은 당시 송나라인에게도 중국(중화)라는 국가적 정통성은 역시 '한족'의 국가였던 '한나라'와 '당나라'였다는 것입니다. 저서에서의 설명부분입니다. "소철은 이 시에서 한족(漢族)과 이족(夷族)의 경계가 되어 왔던 연산의 산세와 유연지방에서 활약했던 소공석(召公奭)・악의(樂毅)・태자단(太子丹) 등의 활약상을 찬양했는데, 이는 이 지방이 예로부터 한족의 구토(舊土)였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이어서 소철은 석경당(石敬瑭)이 유연지방을 요나라에 할양한 이후로 요나라의 지배하에 살아온 옛 한인의 가련한 처지를 슬퍼했다."

이 책에는 이런 송대 지식인들의 한족기반 문화적+국가적 정체성이 수도 없이 등장합니다. 특히 거란족의 '요나라'와 송나라의 관계, 그리고 만주족의 '청나라'와 명나라의 관계는 따로 챕터를 빼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북송문인 소철(蘇轍,1039년 ~ 1112년)

오늘은 이 책의 성격에 부합하나, 내용에 등장하지 않는 필자가 찾아낸 구절하나를 보태 보겠습니다. 매우 중요해 보이는데 그 이유는 위의 책에 나오는 [송과 요, 명과 청]외에 '명-송-원 (그리고 크게는 고려까지)' 연계되는 민족국가적 정체성인식을 보여주는 '공식문서'의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본 저서의 송대인식의 주요상대왕조인 요(遼, 916년 ~ 1125년)의 바로 다음시대 상대왕조가 바로 원나라(元,1260년 ~ 1368년)인 것이지요.

이 글은 명태조 주원장 시절, 고려에 보내는 국서에 '송과 원'의 관계에 대한 명확한 민족(동족)의식을 드러낸 중요한 공식문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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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절요
공민왕 (恭愍王三)
기유 18년(1369), 대명 홍무 2년

○ 명 나라 태조(太祖) 고황제(高皇帝)가 부보랑(符寶郞) 설사(偰斯)를 보내어 새서(璽書 황제의 옥새를 찍은 친서)와 사라(紗羅) 단필(段匹)을 내리니, 왕이 백관을 거느리고 숭인문(崇仁門) 밖에 나가서 맞이하였다. 

그 글에, “대명 황제는 고려 국왕에게 글을 보낸다. 송 나라가 천하를 통어(統御)하지 못하여 하늘이 그 제사를 끊은 뒤로 원 나라가 우리의 동류가 아닌데도 하늘의 명령으로 중국에 들어와서 왕노릇 한 지가 1백여 년이 되었다. 하늘이 혼암(昏暗)하고 음란함을 싫어하여 역시 운명을 끊어버려 중화(中華)와 오랑캐가 요란하게 싸운 지 18년이 되었다. 

많은 영웅이 처음 일어나는 때를 당하여 짐이 회우(淮右)의 포의로 있었는데, 갑자기 폭병(暴兵)이 빨리 이르므로 잘못하여 그 속으로 들어갔으나, 그들이 성공하지 못할 것을 알고는 근심하고 두려워하여 편안히 지내지 못하였는데, 하늘의 영(靈)을 입어 문(文)ㆍ무(武)의 재주를 주었으므로, 동쪽으로 강좌(江左 양자강의 동쪽)를 건너 백성 기르는 도를 익힌 지 14년 만에 서로는 한주(漢主) 진우량(陳友諒)을 평정하고, 동으로는 오왕을 고소(姑蘇)에서 결박하고, 남으로는 민월(閩越)ㆍ팔번(八蕃)을 평정하고, 북으로는 호군(胡君 원의 황제)을 쫓아내어 화하(華夏)를 숙청(肅淸)하여 우리 중국의 옛 강토를 회복하였다

금년 정월에 신민(臣民)이 추대하여 황제의 위에 올라 천하를 평정해서 차지한 칭호를 대명(大明)이라 하고, '홍무(洪武)'란 연호를 세웠는데, 사이(四夷)에게는 알리지 못하였으므로 국서를 만들어 사신을 보내어 바다를 건너 고려로 들어가서 왕에게 알린다. 옛날 우리 중국의 군주는 고려와 땅이 서로 접했으므로, 고려 왕이 혹은 신하로 혹은 손[賓]으로 사귀었으니, 대개 중국의 풍습을 본받아 생령을 편안하게 하려 한 것뿐이었다. 하늘이 그 덕을 내려다 보시니 어찌 고려에 길이 왕위를 누리게 하지 않으랴. 짐이 덕은 중국의 선철왕(先哲王)이 사이로 하여금 붙좇게 하는 정도에는 미치지 못하나 천하가 두루 알게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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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9년의 본 [고려사절요]의 기록을 보면, 명태조 주원장은 외국인 고려에 명확히 공식적으로 자신들(명)은 오랑캐가 일시적으로 중화를 침범한 '원나라'의 정통성을 잇지 않는 '송나라'의 후예임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고려국왕은 공민왕입니다. 그리고 주원장이 회복한 고토는 '우리중국, 즉 한족왕조'의 옛 영토임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즉, 문단에 나오는 원나라, 팔번, 만월, 오등은 중국으로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소개해드린 책 내용중 몽골과 명나라간의 관계를 보면 15세기 이후 긴박한 긴장관계에 놓이게 되는데, 이러한 배후에 이미 명태조시절의 정체성이 기저에 자리잡고 있음을 유추하게 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원래 원조(元朝)의 붕괴 이후 초원의 유목경제로 돌아간 몽골세력은 조공무역이든 약탈이든 대명(對明) 경제관계를 확대하려고 하였는데, 약탈을 통한 경제이익의 확대는 몽골사회의 유지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대명 조공무역의 확대를 시도해 왔다. 그러나 명대의 몽골 각 부족은 과거의 방대한 유목왕국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분열 상태에 놓여 있었고, 또한 토목보(土木堡)의 변(1449) 이후 명조의 북변방어는 구변진(지도 1)이 갖추어지는 등 갈수록 강화되었기 때문에 몽골부족에게 전쟁과 약탈은 점점 어려워지고 조공무역의 중요성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었다. 한편 명조는 조공권을 몽골부족의 분열을 유도하기 위한 방책으로 이용하였다. 특히 에센 칸 이후 명조는 몽골의 칸으로 인정한 소왕자(小王子)에게만 조공권을 부여하였는데, 이후 몽골의 통합을 지향하는 부족 간에 끊임없이 반복된 내분과 칸 지위의 쟁탈은 대명 조공권의 획득과 이를 통한 몽골사회 내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위한 싸움으로 전개되었다. (119쪽)

황리성[黃麗生]의 통계에 따르면,3 가정 원년(1522)부터 융경(隆慶) 5년(1571) 명조와 몽골 간에 통공호시가 성립되기 전까지 거의 50년 동안 알탄이 명의 북변을 침략하지 않은 해는 거의 없었다. 한해에 수차례 침략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침략 경로는 명조의 북변 전반에 걸치지만, 그가 통솔하는 부족이 주목(駐牧)하는 풍주탄의 지리적 관계로 주로 선부(宣府)와 대동,연수(延綏), 관중(關中)의 각 변경을 통하였다. 침략의 규모는 대체로 많은 때는 10만, 중간은 1만 여, 적을 때는 수천 명이었다. 가정 28년, 29년, 36년에는 20만 이상의 병력으로 대거 침략하였고, 가정 10년, 42년, 융경 3년에도10여만의 기병으로 침략하였다. (121쪽)
 
오늘 필자가 소개한 부분이 동북공정관련 연구에 보탬이 되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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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글은 예전 초록불님의 본 책소개.


핑백

  • 까마구둥지 : 부활한 목우병마와 고대의 마리오네트, 그리고 비차 2015-07-03 06:29:11 #

    ... 고 표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惟此中人戴文開 (비교로 '납조교'에 대한 홍대용의 설명은 이렇게 나오죠. 拉助敎名永壽。滿洲人). 참고글- 원과 명은 동류가 아니다 아무튼, 목우유마로 돌아가서 이 자동나무말을 실제로 만든것을 홍대용이 믿지 못하자, 대문개는 자신의 친구이며 자신이 직접 두눈으로 보았다고 말합니 ... more

덧글

  • 낙으네 2015/06/15 10:18 # 삭제

    이러니 저러니 가장 중요한건, 중국은 막가파로 눈귀를 막고 그냥 자기들 하고싶은대로 하고 있다는 것이고, 우리는 힘도 없을 뿐더러 일부를 제외하면 중국의 행보에 관심조차 없는것 같습니다.
    쩝...
  • 역사관심 2015/06/15 15:11 #

    정치적으로 그렇다하더라도, 학계에서는 꾸준히 세계학회등에 저변을 깔고 알려둬야 할 것입니다. 그런 움직임이 쌓여서 결국은 현실에도 반영이 되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니까요.
  • 낙으네 2015/06/15 15:44 # 삭제

    네, 맞는 말씀입니다. 다만 언론같은 대중매체에서도 지속적으로 이 문제를 언급해주면 좋겠고 대중들이 독도문제만큼이나 경각심을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한편, 동북공정 관련해서 직접겪은 일화가 떠오르는데, 대학교 다닐 때, 중국사 관련 교양강의를 들었는데 그 교수님(한국인이었습니다)이 일사양용이라 해서 고대사를 굳이 우리나라에 한정시킬 필요가 없다며 동북공정은 굳이 따지자면 우리측에서 먼저 왜곡을 제시한것이고(아무래도 환빠를 이야기 하는 것 같았습니다)그래서 중국측에서 반작용으로 내놓은 것이다 라는 우호성 멘트를 날려서 벙쪘던 기억이 납니다.
  • 역사관심 2015/06/16 08:18 #

    동감입니다. 뭐든 꾸준하고 차분하게 연구하고 알리고 해야합니다.
    말씀하신 교수님의 논리는 사실 꽤 들어본 주장인데, 너무 수세적인 태도라 생각합니다. 환빠니 국수주의니 하는 것은 국익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지만, 매맞는 아내 심리와 비슷한 논리와 다를게 없어보입니다. 모든 문제를 '나에게서' 찾는 태도는 일부 도움도 되지만, 문제해결의 근본원인을 오도시키곤 하지요.

    굳이 그분의 말씀중 옳은 것이 있다면 동북공정 초창기, 한국쪽의 다큐멘터리와 중국개방초기의 일부 한국인들의 만주여행시 태도를 보고, 그리고 소수 한민족 (동북아의)과의 접촉을 보면서, 중국정치권에서 긴장한 일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이유가 근본원인은 아니며 더 큰 이유들중 작은 일부일 뿐입니다. 서남공정등 다른 프로젝트역시 일괄적으로 시행되었으니 말이 안되는 것이기도 하구요.
  • 초록불 2015/06/15 11:08 #

    잘 봤습니다..^^
  • 역사관심 2015/06/15 15:12 #

    감사합니다. 그때 사두고 읽은 책을 소개할 기회가 없었는데, 조금이나마 쓸 수 있어 좋았습니다 ^^
  • widow7 2015/06/15 16:54 # 삭제

    무협지를 싫어하지만 '영웅문'은 하도 떠들어대서 좀 봤습니다. 15년 전쯤에요. 어느 부분인지 기억도 안나지만, 몽고 원나라를 나라의 원수로 여기고 외적을 쫓아내야 한다고 열불을 토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동북공정 하도 해쌌는데 그 부분은 수정했나 모르겠네요.

    원나라가 중국의 역사면, 중국 침공한 일본은 왜 중국 역사가 되지 않을까요? 동북공정식으로 역사를 해석하자면, 난징대학살은 일본이란 타국이 중국의 인민을 학살한 사건이 아니고, 일본계 중국인이 본토 중국원주민을 학살한거니, 일본이 사과할 필요가 없네요?
  • 역사관심 2015/06/16 08:44 #

    영웅문 오랜만이네요 ㅎ. 중국의 전통드라마들은 대부분 악비등 한족출신 장수를 영웅으로 그리고 징기스칸은 악인으로 그리곤 했죠. 그 악비동상마져 철거할만큼 정치적인 색감이 강한 움직임이 (체계적이고) 이 '공정'입니다. 사실 이론적으로는 현재의 중국논리라면 일본이 힘이 빠지고, 접수할만 하다하면, '동이'중 하나였으니 먹는다라고 달려들 수도 있는 논리죠 (고구려보다는 힘들더라도 못할것도 없는 분들입니다).
  • 역사관심 2015/06/16 08:43 #

    실제로 이런 예를 다룬 일본인 저자도 있습니다 (다음글은 그 책에 대한 블로거감상):

    중화민족의 탄생 - 중국의 이민족 지배논리
    현재 우리나라 국민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친근하게 느끼지만, 안보에 가장 위협이 되는 국가는 중국입니다. "중화민족의 탄생"에서는 지금 중국이 어떤 체계로 구성되었으며, 주위의 이민족을 어떻게 지배하는지 설명합니다. 상당히 모순적인 논리 구조로 억압적 정복을 하고 있습니다. 만주족에 의해 노예상태로 떨어졌다가, 청나라가 주위로 침략하며 넓힌 영토를 물려 받은 한족이 지금 어떻게 주위 민족을 소멸시키고 있는지 밝히고 있습니다.

    현대 중국은 쑨원의 신해혁명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만주족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한족의 광복혁명과 황제에게서 국민주권을 찾으려는 공화혁명의 성격이 합쳐져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각각을 민족주의와 민권주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묘한 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광복혁명을 하여 '타타르 오랑캐'를 추방하면 '한족의 중국'과 이민족의 주위나라가 각각 생겨야 하는데, 결과적으로 정체가 이상한 '중화민족의 중국'이 남았습니다.

    여기서 '중화민족'은 한족, 티베트인, 만주족이 모두 하나의 민족이라는 괴상한 논리입니다. 한족이 만주족을 추방하는데 그치지 않고, 몽골 위구르 만주족과 같은 여러 투르크 계열 민족을 지배하는 형태로 변질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을 합리화하는 논리가 바로 '중화민족'입니다. 투르크 계열은 터키부터 일본까지 이어지는 민족들을 말합니다. 북방의 초원의 길로 이어진 사람들이죠. 서융, 북적, 동이가 모두 해당됩니다.

    한족의 머리 속에 있는 중화세계를 이해하려면 '대통일'과 '화이지변'의 두 가지 개념을 알아야 합니다.

    화이지변은 한족 민족주의로서 중화와 이적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원래는 '민족차별'이 아니라 '문화수준의 차이' 개념이었습니다. 중국 중심부가 문명이 발전하였기에 주위 나라 보다 우월하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다가 점차 중원에 사는 한족이 우수하다는 개념이 됩니다. 그런데 이민족이 기마력과 복합궁에 의한 강대한 군사력으로 오히려 한족을 정복하자 상황은 복잡해집니다. 이러한 관계 역전을 '화이변태'라고 합니다. 청나라 말기에는 한족이 오랑캐 대제국을 해체하고 이민족을 쫓아내어야 한다는 화이지변의 논리가 강해집니다.

    대일통의 논리는 이와 반대입니다. 황제가 천하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중국이 주위 모든 나라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같은 민족이 아니지만 통일을 하겠다는 말이지요. 화이지변과 상반되는 논리입니다. 한족 중심의 중화제국이 오랑캐를 지배하는 구조입니다. 물론 만주족처럼 이민족이 전체를 다 지배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누가 통치를 하던지 힘이 앞서면 사방을 점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서로 다른 두 가지 논리가 모순되지 않고 일치하는 상황이 있습니다. 바로 "한족"이 지배하는 경우입니다.

    처음에 노예 상태일 때는 화이지변의 논리를 앞세웁니다. 만주족을 배척하겠다는 구호를 앞세웁니다. 그런데 일단 광복혁명에 성공하자 화이지변의 논리는 사라지고 청나라 시기의 '대일통'으로 돌아갑니다. 차이가 있다면 지배자가 만주족이 아니라 한족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러한 대일통을 위해 '이민족'이란 용어 대신에 '소수민족'을 사용하고 보호를 한다는 명분으로 지배를 합니다. 다르지 않고 같다면서 '중화민족'이란 말을 합니다. 각각의 민족에게 독립 권리를 주지 않고 강제적으로 지배하는 논리가 대일통입니다. "한족의 대일통"은 '화이지변'과 모순되지 않습니다.

    중국은 한족의 18성과 이민족의 번부, 동삼성으로 구성됩니다. 중화민족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족을 중심으로 이러한 것들을(만, 몽골, 회, 티벳트) 우리에게 동화시켜 ..... 한족을 중화민족으로 고쳐서" 여기서 '동화'란 멸족의 의미입니다. 현재 언어가 사라진 만주족은 이미 사실상 소멸되었습니다. 이러한 '동화'는 '이민족 지역에 한족을 보내는 이주 기반의 식민정책'으로 완성됩니다.

    보통 정복이라 하면 영토 점거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언어, 역사, 인종을 없애야 완성됩니다. 그래서 '인종학살'과 같은 반인륜적 행태가 나옵니다. 하지만 역사에서 실제적으로 실행되는 형태는 '이주정책'이 대부분입니다. 정복한 인종을 여러 곳으로 분산시켜 존재감을 줄이고, 자신들의 인종을 대체 이주시키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 중국이 한족의 대량 이주를 지속적으로 실행하는 이유입니다.

    또한 언어를 없애고 역사를 지우려 합니다. 특히 역사는 영토점거 전에도 가능합니다. 지형의 이름을 바꾸는 것이 가장 먼저 진행되고 이어서 문화와 역사를 변조합니다. 중국은 '중화민족'의 논리 위에서 고구려를 자국 역사로 넣고 있습니다. 조선족이 소수민족의 하나이기에 과거로 소급적용하겠다는 생각입니다. '동북공정'으로 조선족을 멸족시키고 한반도 점령의 논리근거가 마련되는 것입니다. 고구려만이 아닙니다. 만주족(여진, 말갈)이 피지배계층이고 고구려 후예가 다스린 발해도 중국의 역사로 넣습니다.

    이러한 이민족 지배 논리는 공산당도 유지하게 됩니다. 쑨원이 처음에 화이지변을 강조하다 권력을 잡고나서 대일통을 말했듯이, 마르크스 레닌주의로 모든 민족의 동등을 말하다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자 민주족의 지배를 강화합니다. '대중화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민족우열 차별주의'에 기초한 '동화론'에 대하여 저자는 역사학자로서 강하게 비판합니다. 일본인 저자는 "과거에 '아시아의 해방'을 내세우며 아시아 각국을 침략했던 일본제국이 파경을 초래한 당시의 논리와 유사하다"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과거 일본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미래에도 자기 나라가 올바르게 행동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중국의 정복욕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http://windbook.blogspot.com/2015/03/blog-post.html
  • ABS 2015/06/15 18:21 # 삭제

    중국이 동북공정이나 서북공정으로 다른 민족의 역사를 '한족'의 역사로 만들고자 한다면 중요한 포인트가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쟤들이 시도하는 것은 '중화민족'이라는 정체불명의 개념을 내세워 현재 중국 내의 소수민족의 역사는 모두 '중화민족'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 아닌가요? 물론 '중화민족'은 허울이고 그 실상은 한족이 압도적 다수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쟤들이 한족과 소수민족을 포함하는 상위개념으로서 '중화민족'이란걸 내세우는 상황에서 단지 한족의 역사인식만을 내세우는 것은 그렇게 큰 의미는 없을 것 같네요.
  • 역사관심 2015/06/17 14:43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문제는 전통적인 '중화'는 한족뿐이며 (물론 그 한족이란 개념조차 단어자체는 근세에 만들어진 것이죠. 한인이란 개념은 유구합니다만), 그 '중화(민족)'에 사방 오랑캐민족은 들어가지 않는다는 뿌리깊은 전통관 (화이지변)을 뒤엎고 있다는 것이겠죠. 중화민족이란 역사적 개념을 고무줄 늘리듯 이리저리 정치적 상황에 맞춰 (자기들 편리한대로 어떨때는 민족중심, 어떨때는 영토중심) 잡으려는 것이 현재의 공정의 문제일 것 같습니다. 저런 사료나 이 책에서 지적하는 부분들 역시 '중화'에 저러한 현재의 소수민족들은 들어가지 않는 것으로 치던 당대의 사료들은 현재 중화민국이 내세우려 하는 '중화민족'(말씀대로 상상의)의 개념과는 다른 것이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구요.

    당장 송대와 명대의 사서만 해도 조선을 외국열전으로 넣고 있는데, 최근 편찬된 역사서에는 속국열전으로 넣고 있어, 선조들의 사료와 다른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정치색이 굉장히 강하죠. 이런 당대의 중국의 전통사관은 분석해서 해외에 알리는 작업은 유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을 동북아재단도 알고 파고들고 있지요) .
  • 킹오파 2015/06/16 00:13 #

    중국 영토내의 소수 민족이니깐요. 미국이 인디언들의 역사를 자신들의 "지역의 역사"로 취급하는 마당에 소수 민족이라면 뭐...
  • 역사관심 2015/06/16 08:13 #

    미국은 건국의 시발점 자체가 워낙 그 건국집단의 성격과 연대를 명확히 분석할수 있는 최근역사시대이고, 더군다나 동아시아처럼 동질성강한 동족국가가 아닌 다민족국가로 처음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동아시아의 특성과는 큰 차이가 있겠지요. 또한 원주민을 몰아내고 세운 국가의 '원'주민 개념에 그나마 대입가능한 것은 현 티벳일텐데 그것과도 성격이 많이 다르고... 그에 비해 중국의 역사야 언제 한족이란 개념이 정확히 탄생했고, 신화시대로 거슬러가는 건국년도조차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전통적인 '국경'개념 (만리장성등)내 한족이라는 동족집단외에는 '타민족' '타정치집단'으로 여겨오던 민족들마져 싸그리 최근 10년내에 원래부터 자신들자체였다는 무리한 논리를 펴니 말도 안되는 것이구요.

    지역의 역사는 맞지만, 그 동족들을 '원래부터' 자신들의 일부로 여겨왔다는 논리는 역사가 일천한 미국조차도 펴지 않죠. 더군다나 아메리칸 인디언과 달리 한민족처럼 독립국가가 있는 국가의 소수민족마져 저런 식으로 편입시키려는 시도는... 이건 마치 캘리포니아에 있는 소수 멕시칸들은 지금 미국사람들이니 사실 예전에도 멕시코가 미국에게 조공무역을 해왔으므로, 캘리포니아의 고대-중세 멕시코 왕조역사는 현 멕시코의 것이 아닌 지금 미국의 역사다 라는 억지주장과 대응하면 더 맞겠습니다.
  • 킹오파 2015/06/16 09:56 #

    중국 역시 다민족 국가입니다. 한족도 사실 동화된 무리들이 한족이 된거죠.
    당시 원나라는 동화되지 않고 자기네 나라로 떠났습니다만.
    당시 한족에 동화되지 않았으니 한족 입장에서는 외국으로 적지. 뭘로 적을 까요?

    근데 지금은 그 외국인 취급했던 넘들의 후손은 죄다 중국인이 되었는데요?.
    가령 외몽골보다 내몽골의 몽골인이 몇배는 더 많은 마당에...
    요,금,청 그외 수많은 나라의 후손들도 다 중국인 되어버렸지.
    역사서 적었을 당시에는 동화 되지도 않았고 같은 중국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죠.

    근데 지금은 중국인이 되었겠다. 이런 마당이니 자국사로 적는거죠.
    만약 그들의 후손이 중국에서 독립해서 새로운 나라를 건국한다. 그럼 자국사로 적는다면 미친짓이지만요.

    가령 신라인들이 백제를 외국으로 생각하지. 그럼 뭐라고 생각할까요?
    하지만 고려인들은 백제를 외국이 아닌 자기네 역사로 보겠죠? 그거랑 같아요.
  • 역사관심 2015/06/16 11:04 #

    그리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역시 무리있는 비유로 보입니다. 킹오파님의 생각이니 존중하겠습니다. 다만 댓글로 논쟁하긴 좀 긴 주제같군요.
  • ㅇㅇ 2015/06/16 16:54 # 삭제

    그 당시 사람들은 그랬을 수도 있겠으나 지금 중국은 자신들을 중화민족이라 부르고 있죠.
    조선족도 자신은 조선족이지만 중화민족이다라고 칭하고 있으니..
  • 2015/06/16 23:16 # 삭제

    그게 동북공정효과인데 무슨말인지 모르겠네요.
  • 역사관심 2015/06/17 04:08 #

    문제는 그때는 타국이며 독립된 타국사였지만 이젠 그 후손들은 중화민국인이 되었다라고 명확하게 구별을 지어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은 우리영토니 (선조들은 외국으로 보던) 현영역에 존재하던 모든 왕조는 중국사라는 논리는 어불성설입니다. 아메리칸인디언의 현대사는 미국사지만 고대사는 고유의 것이죠. 그런 자세가 맞는거라 생각합니다. 주변국과 갈등요소도 없을테구요 (조금 다르긴 해도 영토사로 간다면 로마의 역사는 대부분의 유럽국가가 자국사라고 주장할 여지도 생깁니다. 중국쪽 태도라면 얼마든 가능한 시나리오죠).
  • 쿠사누스 2015/08/10 17:26 #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은 실은 청나라를 계승했다고 봐야합니다.
    겉으로는 중국 공산당이 청나라에 저항한 태평천국 운동과 청나라를 타도한 신해혁명을 계승한 것으로 스스로 정체성을 삼고 있지만, 실은 청나라의 만주족의 자리만 한족으로 바뀌었을 뿐, 청왕조가 티벳과 몽골, 위구르를 지배하는 논리인 오족화합 논리를 계승하고 있는 거죠.
    손문의 국민당도 처음에는 멸만흥한을 내세웠다가 나중에는 오족공화로 슬로건을 바꿨고, 이 오족공화를 모방한게 만주국의 오족협화이고....

    결국, 만주족의 청나라가 죽쒀서 개준 게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일 겁니다^^
  • 역사관심 2015/08/11 07:36 #

    말씀대로입니다. 그나저나 참 자기 편리한대로 이리저리 짜집기식 정체성을 보여주는 중국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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