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른 남산부근 요괴추가- 홰나무(槐樹 괴수)의 신 설화 야담 지괴류

오랜만에 지괴류 이야기.

작년 글중 조선중기에 집중된 남산을 중심으로 북쪽부근의 요괴이야기를 정리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지도에 두 녀석을 더 추가해야겠습니다 (흥인지문(동대문)을 중심으로 붉은 원안의 두 녀석이 주인공들입니다).
남산북부 조선중기 요괴분포도

흥인문 안쪽의 홰나무 요괴

첫 이야기는 [청파극담]의 기담입니다.

청파극담
○ 파성군(坡城君)의 집이 흥인문(興仁門 동대문) 안에 있었는데, 집 앞에 큰 홰나무가 있었다. 남편 모씨가 밤에 사청(射廳) 앞길을 걷고 있었다. 그때 보니 수를 알 수 없는 많은 무사(武士)들이 사청 위에서 궁술을 겨루다간, 다시 말을 타고 창을 휘두르며, 혹은 격구(擊毬)도 하고 혹은 말을 타고 활을 쏘기도 하니, 사청(射廳) 앞길이 막혀 버렸다. 

그리고는 모씨를 무례하다 하여 묶어놓고 구타를 했다. 애걸하였지만 듣지 않으니,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 그런데 한 장부(丈夫)가 흔연히 여러 사람들 속에서 나와 여러 사람들에게 노하여, “이 분은 나의 주인이신데, 어찌 이토록 괴롭히느냐.”고 말하면서, 결박을 풀어주고 잘 부축하여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문 안으로 들어와서 뒤를 돌아보니, 그 장부는 홰나무 밑으로 사라져 버렸다. 아마도 사청 앞에 나타난 무사들은 모두 귀신이었으며, 붙들고 집으로 보내준 장부도 역시 홰나무에 의탁하여 화신(化身)한 귀신이었는가 한다 (이 허다한 武士[무사]들은 鬼衆[귀중]이요, 一 [일]장부는 槐樹[괴수]의 정령이었다.)
=====

조선전기의 문인인 청파(靑坡) 이륙(李陸,1438~1498년)이 엮은 야담집인 청파극담에 나오는 이야기로, 흥인문(동대문)안쪽에 살던 '파성군'이란 자의 집앞에 홰나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밤길을 걷던 중 관청앞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사집단이 궁술을 겨루고 격구도 하면서 길을 막고 있더란 겁니다 (15세기...이때만 해도 고려대처럼 격구가 성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글초입에 나오는 파성군이라는 것은 지위로 이름이 아닙니다.

이를 방해했다고 이들은 모씨를 두드려 패기 시작하는데, 어둠속에서 한 장사가 나타나 '내 주인이다'라고 하면서 그를 구출해내서, 집으로 부축해 돌아옵니다. 집문을 들어서니 그 정체불명의 장사는 집앞의 홰나무밑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깨닫고 보니 관청앞의 무사들은 귀신무사들이었고, 이 장부는 홰나무의 정령이었다는 이야기. 원문에는 '槐樹'(괴수)라고 되어 있는데 이 단어에 대해선 예전 포스팅에서 설명을 옮겨 봅니다.

식물의 한자 이름은 문맥에 따라 달리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식물이름 중에 음과 뜻이 쉽게 정립되지 않은 것으로 ‘괴(槐)’와 ‘규(槻)’자가 있다. ‘괴’자는 ‘회화나무(홰나무) 괴’이기도 하지만, ‘느티나무 괴’로 쓰거나 읽기도 한다. 예컨대 느티나무는 한자로 괴목(槐木), 규목(槻木), 거(欅) 등이라 쓰고, 회화나무는 괴화(槐花) 또는 괴화목(槐花木) 등으로 쓰고 있다. 또한 ‘규’자도 ‘느티나무 규’와 ‘물푸레나무 규’ 등 두 가지의 뜻이 있다. 괴(槐)는 木자와 鬼자가 뭉쳐져서 한 글자를 완성하고 있는데, 이를 자형대로 풀이해 보면, 나무와 귀신이 함께 있다는 뜻이 된다. 즉 ‘나무귀신’이거나 ‘귀신이 붙은 나무’로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플롯... 어디서 많이 본 느낌이 납니다. 바로 예전에 홰나무와 관련된 기담들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룬 바가 있었지요. 목요木妖 (나무요괴)들- 홰나무 신, 백귀(白鬼), 황금산 나무귀신

이 포스팅에서 소개한 매우 흡사한 이야기가 [송와잡설]에 전합니다. 다시 한번 소개해보죠.

홰나무 신
송와잡설 (松窩雜說)

무주(茂朱 무주는 지명으로, 무주 원님을 나타내는 것) 윤명은(尹鳴殷)은 집이 흥인문(興仁門) 안 동학(東學) 근처에 있는데, 문간 뜰에 늙은 홰나무가 있었다. 윤명은이 벼슬하기 전에 한번은 사정(射亭)에 있는 친구 집에 걸어서 갔다가, 술을 너무 마시고 흠뻑 취하여 날이 어두워서 홀로 돌아오다가 길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술이 깨어 머리를 들어보니, 달은 지고 별은 엉성한데 고요하게 사람 소리가 없었다. 다만 남자 한 명이 자신이 누워 있는 곁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으나 윤명은은 감히 성명을 묻지 못하였다. 술이 덜 깨어서 느린 걸음으로 돌아오는데, 그 남자도 뒤따라오는 것이었다. 길에서 어떤 사람이 그 남자와 만나 서로 말하는데, “어디를 갔었는가?” 하자, 남자가, “주인이 밤 늦도록 돌아오지 않아, 가서 맞아 온다.” 하는 것이었다. 

자기 집 홰나무 밑에 와서 돌아보니 보이지 않았다. 그때서야 비로소 그 남자가 뜰에 있는 홰나무의 신(神)임을 알았다.
=======

우선 배경부터 똑같습니다. 흥인문 동학근처, 즉 지금의 동대문성곽공원 입구부근이 됩니다. 에스코트를 해오는 홰나무 정령의 이야기는 똑같은데 다만 귀신군사들이 격구를 하고 주인공을 구타하는 장면은 없습니다. 

흥인문은 (역시) 임진왜란때 파괴되므로 (영조대에 재건), 기담의 배경은 임진왜란전임에 틀림없습니다. [청파극담]의 저자인 이륙보다 24년후의 인물인 이기(李蕎,1522-1600)가 지은 책이 [송와잡설]입니다. 송와잡설은 정확히 1601년에 탈고되었습니다 (이상한 것은 주인공인 윤명은(尹鳴殷, 1601~1646년)은 1601년, 즉 송와잡설이 쓰여진 그 해에 태어난 인물인지라 동명이인인지, 후대에 기록이 첨가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어찌됐든 신기하게도 두 이야기는 기본플롯과 장소, 그리고 시대도 거의 일치, 하지만 세부장면과 결정적으로 주인공이 다릅니다.
모두 '홰나무'관련 기담들이며 관련된 요괴(정령)이야기입니다. 그림은 현재 한국 요괴문화에서 정말 드물게 '회화'로 묘사된 홰나무 요괴/신 (문화컨텐츠닷컴 제공).
=====

흥인문 밖의 홰나무 요괴
그럼 다음 이야기로 일단 넘어갑니다. 짧막한 위 이야기에 비해 조금 긴 이야기입니다.

성소부부고
장산인전(張山人傳)

장산인(張山人)의 이름은 한웅(漢雄), 어떠한 내력을 지닌 사람임은 알 수 없다.

그의 할아버지로부터 3대에 걸쳐 양의(瘍醫) 업무에 종사했었다. 그의 아버지는 전에 상륙(商陸 한약재 이름)을 먹고서 귀신을 볼 수도, 부릴 수도 있었다 한다. 나이 98세 때 40 정도로 보였는데, 출가(出家)하여 가신 곳도 알지 못했다. 그분이 집을 떠날 때, 2권의 책을 아들에게 주었으니 바로 [옥추경(玉樞經)]과 [운화현추(運化玄樞)]였다. 산인(山人 장한웅(張漢雄))이 그걸 받아 수만 번을 읽고나자, 역시 귀신을 부릴 수 있었고 학질(瘧疾)도 낫게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던 일을 그만두고는, 마흔살에 출가(出家)하여 지리산(智異山)으로 입산하였다. 그곳에서 곧 이인(異人)을 만나 연마법(煉魔法)을 배웠고, 또 도교(道敎)의 진리에 관한 10권의 책을 읽었다. 빈 암자(菴子)에 앉아 거의 먹지도 않으면서 3년을 보냈다.

하루는 계곡을 지나는데, 두 사람의 승려가 그를 따랐다. 우거진 숲 사이에 이르자, 두 마리의 호랑이가 나타나 엎드려서 맞아 주고 있었다. 산인이 꾸짖자, 호랑이들은 귀를 내리고 꼬리를 흔들며 살려 달라고 애걸하는 태도를 보였다. 산인 자신이 한 호랑이에 올라타고, 두 중으로 하여금 함께 다른 하나에 타게 하여 절[寺] 문 앞에 이르자 호랑이들이 내려 놓고 물러가 버렸다.

산에서 머문 지 18년 만에 서울로 돌아와 흥인문(興仁門) 밖에서 살았다. 나이가 60세였으나 용모는 정정하였다.
이웃에 비워 둔 집이 있는데, 흉측하여 거처할 수가 없자, 그 집의 주인이 귀신을 물리쳐 달라고 그에게 청했다. 산인이 밤에 그 집으로 가 보았다. 두 명의 귀신이 와서 꿇어 앉아 말하기를,
“우리는 문(門) 귀신과 부엌 귀신입니다. 요사스러운 뱀이 이 집을 차지하고서 간사한 짓을 하고 있으니 제발 그것을 죽여 주십시오.” 하면서, 곧 뜰 가운데의 큰 홰나무 밑둥을 가리켰다. 

산인(山人)이 주술(呪術)의 물을 뿜어내자 조금 뒤에 사람 얼굴 모습의 큰 뱀이 번쩍거리는 눈빛으로 꿈틀거리며 절반도 나오지 못한 채 죽어버렸다. 그것을 태워 버리게 하자 집은 마침내 깨끗해졌다. 사람들과 어울려 놀면서 화살로 꽂아 물고기를 잡으면, 산인이 죽은 것만 골라서 물동이에 넣고는 숟갈로 약을 떠 넣는다. 그러면 물고기가 다시 살아나 유유히 헤엄치곤 하였다. 사람들이 죽은 꿩으로 시험해 보라고 하자, 또 숟갈에 약을 묻혀 입 속으로 넣으면 훨훨 날개를 치며 살아나곤 하였다. 

사람들이 모두 이상스럽게 여겨, “죽은 사람도 다시 살려낼 수 있습니까?” 물으면, 산인(山人)은, “일반 사람들이란 태어나면서 그 정(情)이 방자하여 삼혼(三魂)과 칠백(七魄)이 택사(宅舍)에서 떠난 사람도 3년이 지난 뒤에야 끊어지니 약으로써는 살려낼 수가 없다.”고 대답하였다.

산인(山人)은 사실과는 다르게 글자를 해독하지 못한다고 했지만 글만 잘 지어 냈고, 또 밤눈이 어둡다고 말하며 밤에 바깥 출입을 않으면서도 어두운 곳에서 잔 글씨도 읽을 수 있었다. 그 이외의 잡기(雜技) 놀이로, 베로 만든 병에 술을 담는 거나 종이로 만든 그릇에 불을 피우는 것과 같은 일 등 세상 사람의 눈을 휘둥거리게 한 것들이 모두 기록할 수 없이 많았다. 

점쟁이[卜人] 이화(李和)란 사람이 점 잘 치기로 한창 유명했었는데, 산인은 자기보다 아랫수로 여겼다. 그가 점치는 것을 볼 때마다 잘 맞히지 못하면 산인이 고쳐서 말해주는데 모두 적중되는 말이어서 이화가 한마디도 감히 보태질 못했다. 이화가, “산인(山人)의 좌우에는 항상 3백 명의 귀신들이 호위하고 있으니 참으로 이인(異人)이다.” 하였다.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났을 때 산인의 나이는 74세였다. 그는 가산(家産)을 처리하여 조카들에게 나누어 주고는, 승복(僧服)에 지팡이 하나만 짚고 5월에 소요산(逍遙山)으로 입산하였다. 그곳의 중에게,“금년은 나의 명(命)이 다하는 해이니 반드시 화장(火葬)해 달라.” 고 말하였다. 오래지 않아 적군이 들어와 앉은 채로 칼에 찔렸는데, 그의 피는 하얀 기름 같았으며 시체가 엎어지지도 않았다. 잠시 후에 큰 뇌성을 치며 비가 내리자 적군은 겁이 나서 가버렸다.

산승(山僧)이 다비(茶毗)를 하자 서광(瑞光)이 3일 동안 밤낮으로 하늘에 잇대어 있었고 사리(舍利) 72개를 얻었다. 그 중에서 큰 것은 가시연[芡] 열매만큼 컸었고, 감청(紺靑)의 빛깔을 띠었다. 모두를 탑(塔) 속에 매장해 두었다.
이 해 9월에 산인(山人)은 강화도(江華島)에 사는 정붕(鄭䨜)의 집에 왔었는데, 정붕은 그의 죽음을 몰랐으며 3일이나 머물다가 가면서 금강산으로 간다고 말하더란다. 다음 해에야 비로소 그가 죽었음을 알았는데, 사람들은, 죽은 뒤에 신선(神仙)이 된 사람이었다고 하였다.

정붕이란 사람 또한 이인(異人)을 만나서 점(占)을 잘 치고 관상을 잘 보던 상률가(象律家)였다. 하는 말마다 대부분 기이하게 적중하였으며 재랑(齋郞 참봉(參奉))을 제수(除授)했으나 받지를 않았다. 혹자는, 그가 귀신을 부릴 수 있었는데 젊어서 죽었다고 하였다.
=====

유명한 허균(許筠, 1569 ~1618년)의 [성소부부고]에 나오는 이야기로 매우 도가적인 이야기입니다. 이 글은 역시 비슷한 시기로 추정되는 작자미상의 소설 [전우치전]과 비슷하게 도가적인 능력을 가진 술사 (한웅이란 이름)가 주인공이지요. 그런데 주인공의 나이가 임진왜란때 74세라고 (즉 1519년생)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어 실존인물이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참고로 [옥추경]등의 도교책들은 현전하지 않는 이름만 전하는 저서들입니다.

이 장산인전은 하나의 짧은 소설이나 다름없는데, 그중 부엌신과 문신 (우리의 전통신들이죠- 조왕신과 아마도 성주신)이 찾아와서 홰나무 밑에서 나온 나쁜 요괴인 '뱀요괴'를 처치해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집을 독차지하려는 이 요괴를 물리치는데 그 모습이 '사람얼굴을 한 뱀'이었다는 구체적인 묘사가 등장하죠. 매우 그로테스크한데, 일본의 '누레온나'와 거의 흡사합니다 (다만 이건 항상 물에서 나오고 젖어있죠).
살펴본 바와 같이 이름 자체에서 '요괴' '정령'의 느낌이 배어있는 괴수, 회나무(홰나무)에 관련된 기담은 이와 같이 풍부합니다. 언젠가 홰나무를 이용한 공포영화나 만화를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덧글

  • 존다리안 2015/06/29 10:34 #

    우리나라 귀신들은 단체로 몰려다니며 사람패는 나쁜 버릇이 있나 보군요. 무슨 조직폭력배도 아니고....
  • 역사관심 2015/06/29 11:20 #

    ㅎㅎㅎ 그러게 말입니다.
  • 이선생 2015/06/29 12:45 #

    홰나무귀신은 알고 있었는데....
    사람머리의 뱀의 몸을 가진 요괴는 처음 알게되었네요^^
    오늘도 한 수 배워갑니다!
  • 역사관심 2015/06/29 13:07 #

    흔치않은 녀석인데 많이 알려주세요 :)
  • BaronSamdi 2015/06/30 16:14 #

    미즈키 시게루의 요괴도감처럼 우리나라의 요괴도감도 나왔으면 좋겠어요. 요괴대사전인가 나와서 반가운 마음에 사려고 했더니 요괴워치 팔아먹으려고 나온 거더라고요 ㅠㅠ
  • 역사관심 2015/11/15 02:16 #

    이 글을 이제사 봤네요. ㅠㅜ 깊이 동감합니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2018 대표이글루_history

마우스오른쪽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