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라진 대건축물(10)- 24 미터급 쌍목탑, 신라 망덕사 13층 동*서목탑 한국의 사라진 거대건축

망덕사라는 절은 그 태생을 항상 통일신라의 호국사찰 사천왕사와 함께 합니다 (최근 다른 가설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전 포스팅에서 다룬 바 있습니다 (발췌:)

즉, 사천왕사를 건립한후, 당군이 진격해오자, 명랑대사가 일종의 밀법인 문두루(文豆婁)란 비법(秘法)을 쓰자 서해에 풍랑이 일어 신라함대와 채 붙어보기도 전에 당나라의 군선이 모조리 침몰하여 침략이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명랑이 이 비법을 쓰는 장면은 마치 영화와 같은데 다음과 같습니다. 당의 진격정보를 접한 명랑이 귀국후, 왕에게 낭산(狼山)의 남쪽에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세우고 도량을 열 것을 제의합니다. 이때 사천왕사를 완전히 짓기는 시간상 너무 급박해서, 채백(彩帛)으로 가건물을 짓고 5방(方)에 신상(神像)을 세운 뒤 유가명승(瑜伽明僧) 12인과 함께 문두루비법을 썼다고 합니다 (즉, 오방신의 이름과 법력으로 악한 기운을 쫓는 비법입니다, 삼국유사에는 정확히 '‘채색 비단으로 절을 짓고 풀로 오방신상을 만들고'라고 나옵니다.)- 따라서 사천왕사는 당의 전함들이 서해에서 침몰할때 완전하게 그 모습을 갖추지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재미있는 것은 사천왕사를 '짓기 시작하기 전'에 사전작업이 있었다는 것인데, 치열한 스파이전이 벌어집니다. 

즉, 670년 의상대사가 당에서 귀국후 9년뒤인 사천왕사가 건립되기 전, 그 기간동안 당에서 이소식을 첩자를 통해 입수합니다. 당에서 이에 예부시와 악붕구라는 사신을 파견해서 정보를 확인할려고 신라에서는 사천왕사를 보여주지 않고 더 작은 '망덕사'를 급히 지어 보여줍니다. 여기서 정치가 나오는데 악붕구는 쉽사리 이절이 사천왕사라고 믿지 않고 “이것은 사천왕사가 아니다. 망덕요산(望德遙山)의 절이다.” 라고 주장합니다. 신라왕실에서는 무려 황금 1천냥이라는 뇌물을 안겨주니, 이 인간이 당에 돌아가서 “신라에서는 천왕사를 창건하고 皇壽를 빌고 있었다.”라고 보고합니다. 신라의 정치적 승리나 다름없죠. 여기서 이렇게 임시방통으로 지은 망덕사의 이름이 (망덕요산에서) 정해졌다는 설이 일반적입니다. 참고로 망덕사에는 13층 쌍목탑이 (즉 13층짜리 목탑 두기) 있었다고 삼국사기 기록에 전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명랑대사의 어머니가 '황룡사의 9층목탑을 짓게 권유한 '자장'의 딸 '남간부인'이란 점이죠. 망덕사와 사천왕사의 설계 (목탑등)에 명랑대사 가문의 입김이 작용했을 가능성을 유추케 합니다.

그런데 사실 사천왕사와 망덕사의 위치를 보면, 과연 저 위치에 절을 지어두고 사천왕사를 숨겨둘 수 있었을까 싶긴 합니다.
망덕사지는 일제시대와 70년대말등 발굴은 여러 번 했지만 제대로 보존이 되고 있지 않습니다. 아직도 여기 저기 유구가 흩어져 있습니다.
사실 망덕사지는 이제껏 소개한 여러 대사찰들과 달리 사지자체는 그다지 큰 사원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라진 대사찰 시리즈에 넣지 않았지요). 하지만, 주인공은 따로 있습니다.
망덕사 동 목탑 심초석

망덕사 13층 쌍목탑

이 사찰에는 매우 흥미로운 13층짜리 쌍목탑 (13층 동목탑, 13층 서목탑)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쌍둥이절인 사천왕사에도 역시 쌍목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앞서 살펴본 사천왕사 편글에서 사천왕사 목탑의 높이를 추정한 이전 연구에 이 목탑들의 최대 29.,67미터가 됨을 설명한 바 있습니다.

역시 궁금한 것은 목탑의 높이와 층수입니다만 황룡사나 망덕사와 같이 높이 혹은 층수와 관련된 문헌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추정만이 가능합니다. 층수는 몰라도 높이는 기단을 통해 추정이 가능한데, 층수 역시 높이를 통한 비례적인 부분으로 추정해 볼 수도 있습니다. [사천왕사 목탑의 복원적 고찰]이라는 논문을 보면, 당대 신라에 조성된 탑 중에서 높이를 알 수 있는 탑의 비례관계를 통해 살펴볼 수 있는데, 대표적인 예로 "황룡사 목탑으로 기단의 크기와 목탑의 높이에 대한 비례관계를 살펴보면, 기단 크기(95尺):목탑 높이(225尺)가 1:2.3로 목탑의 높이는 기단 크기의 약 2.3배가 됨을 알 수 있다" 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천왕사의 목탑은 기단크기가 12.9미터 (이중기단시)이므로 최대 약 29.67미터가 됩니다. 이러한 높이를 가정해서 추정도를 만든 것이 다음의 그림입니다. 서탑입니다.

사천왕사에 비해 망덕사에 대한 발굴과 연구는 상대적으로 많았던 것은 아닙니다. 그 목탑의 추정 비례관계나 높이 역시 찾아볼 길이 없었죠. 그래서 넷상에서는 목탑지의 규모로 볼때, 그리고 당대 같은 시기의 9층이었던 황룡사 목탑의 높이를 고려할 때 13층이라는 것은 과장일 가능성이 있다는 류의 이야기만 떠돌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올해 아주 흥미로운 논문이 발표되었습니다. [망덕사지 동서 13층목탑과 정혜사 13층석탑의 상관적 고찰] (황세옥, 2015)란 논고입니다.

사실 이전에도 정혜사지 13층 석탑 (아래사진, 국보 40호)은 주목을 받았던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성덕왕 원년(737년)에 당의 백우경이 세원 이 작은 석탑은 정혜사와 망덕사가 두 탑을 세운 연대가 비슷하며 서로 13층이라는 점등으로 비교분석한 연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앞서 언급한 것처럼 망덕사 13층 목탑이 황룡사, 미륵사 목탑등과 비교할 때 그 유구의 면적으로 보아 비례가 많지 않아, 이런 이형의 탑구조를 가진 것으로 유추한 것입니다 (따라서 탑의 높이도 낮습니다).
정혜사지 13층 석탑

이 연구를 자세히 건축적인 부분까지 세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대강의 논고를 살피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또한 법주사팔상전과 같은 후대에 쓰인 옥심주 보강재를 망덕사지 목탑에 적용한 오류를 범한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체감을 크게 하는 경우 13층에서는 거의 노반 밑면크기 정도가 되며, 2층에서 정혜사지 13층석탑처럼 평면의 규모를 줄인다면 평주는 물론이고 심주나 사천주의 크기로 볼 때 도저히 입주가 불가능한 구조라고 하겠다. 따라서 망덕사지 동, 서 13층목탑은 정혜사지 13층석탑과 다르게 웅장하게 보일 뿐 아니라 목조의 특성상 황룡사지 9층목탑과 매우 유사한 형태로 조탑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 결과 국제적으로 쓰인 당의 건축문화가 유입되어 당에서 사용된 당척이 쓰였다고 보여진다. 당척은 곡척으로 환산하여 29.4~7cm정도로 각종 건축물과 석조물 등에 쓰였으며, 망덕사지에도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통일신라시대에는 당 문화의 영향을 받아 0.98당척을 사용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영조척으로는 당척사용설이 일반적이다.  중략." "망덕사지 방형초석은 백제계양식이다. 따라서 망덕사지 동서 목탑과 정혜사지 13층석탑은 비례를 고려하여 탑신부를 상당부분 생략함으로써 조탑의 기간을 줄이는 효과를 갖는 백제계양식과 신라계양식이 잘 조화된 통일신라시대 이형석탑이라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황세옥, 2015).

다음으로는 망덕사지 목탑지의 평면크기를 기준으로 차례차례 비례를 추정합니다. 1층은 3칸x3칸으로 4.9미터씩이고 이것을 사방어칸 퇴칸을 고려하고 5.5당척으로 보고, 곡척으로 환산 1.6335m로 계산합니다.  
그리고 2층은 1층편면보다 1층 기둥직경이 300mm만큼 줄어든 전체길이를 잡습니다. 2층기둥은 1층기둥 위의 포부재위에서 대각선 방향 안쪽으로 놓이게 되고, 1층 전체길이 4.9005m에서 300mm가 줄어든 4.6005m가 전체길이가 되며 주칸길이는 1.5335m가 됩니다. 기둥직경은 1층보다 10mm정도가 줄어든 290mm입니다. 이런 식으로 13층까지 진행합니다.
그 다음으로 방형 가구식 기단유구가 남아있는 기단 (사방 27.5당척)과 계단, 초석, 사천주, 심초석등을 파악 다음과 같은 종합적인 추정도가 나옵니다. 이것은 당척으로 80척이 됩니다.
이 포스팅에서는 다루지 않지만 공포양식, 가구구조, 상륜모양등도 당대의 타 문화재 유구등을 비교해서 추정한 것입니다. 정혜사진 13층 석탑은 망덕사지 13층 목탑을 조형으로 하는 번안석탑으로 탑신부를 축소시키고, 1층은 동일한 형태를 유지했으나 2층부터는 5.5당척을 3당척으로 축소시킨 상태에서 망덕사지 동, 서 13층 목탑의 체감처럼 하층기둥 직경의 1/2 범위내에서 체감시키는 기법을 적용 석탑의 조형미를 더 돋보이게 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8쪽).

이렇게 되면 적어도 규모면에서 최대추정 29.67미터 사천왕사의 쌍목탑과 비슷하면서도 약간 작은 적절한 높이 (23.74미터)가 됩니다. 즉, 13층이라는 확실한 사료를 무시하는 쪽이 아닌, 당대 목탑의 구조를 잘 따르면서도 문헌사료와 충돌하지 않게 되는 것이지요.

참고로 몇 안되는 망덕사 목탑의 형태에 대한 선행연구중 1984년 김정수교수의 연구에서도 1층부분이 조금은 정혜사 목탑에 가깝지만, 전반적으로는 오늘 소개한 추정도와 비슷한 형태로, 층고 역시 73척 (약 22.5미터)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아래 발췌 그림 두개).

망덕사지 폐사지
그럼 약 24미터짜리 목탑이 주는 인상은 어땠을까요? 우리는 황룡사목탑 (7-80미터)이니 거의 그 규모의 미륵사 목탑이니, 또 다른 거대목탑으로 드러나고 있는 실상사 9층목탑 (7-80미터추정)등만 생각하고 이 높이가 어느 정도인지 감을 못잡기 쉽습니다.

그럼 이 사진을 보시지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정문에 들어서면 상징처럼 서 있는 한국석탑의 대표격인 경천사지 10층석탑입니다.
이 탑신의 약 7/10가량 더 높아지면 망덕사 13층목탑 (추정)

아래 서 있는 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느껴지듯 직접 보면 꽤 압도적입니다. 이 석탑은 몇미터 높이일까요? 13.5미터입니다. 그러니까, 망덕사지 동, 서 목탑 두기는 여기서 10미터가 더 올라가는 것이지요. 그리고 사천왕사의 쌍 목탑은 29미터이니 현재 국내에서 유일하게 비근한 높이를 느낄 수 있는 탑은 미륵사 동탑 (27.8미터)이 될 것 같습니다.

사천왕사 목탑과 비근한 높이의 미륵사 동석탑 (사람이 있는 사진으로 넣었습니다)

문헌사료의 망덕사 쌍목탑

이 목탑들이 고층이었음을 유추하게 해주는 구절로 [삼국사기]의 기록이 있습니다. 탑이 세워지고 약 85년후의 기록입니다.

을미년 경덕왕 14년(당 현종 천보 14, 755)
○ 망덕사(望德寺)의 탑이 흔들렸다.
망덕사(望德寺) : 신라의 망덕사는 당나라를 위하여 세운 절이므로 이렇게 이름을 지었다. 두 개의 탑이 서로 마주 대하여 서 있는데, 높이가 13층이다. 이 탑들이 갑자기 떨고 흔들리며 문이 열렸다 닫혔다 하면서 (개합(開合)하며) 며칠 동안이나 쓰러질 것 같았는데, 그해에 안녹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났으니, 이는 아마도 그 조짐이 아니었던가 한다. 

두 목탑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데 흔들리면서 개합, 즉 열고 닫혔다하며 거의 쓰러질 것 같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해석을 문이 열렸다 닫혔다라고 했는데 만약 그렇다면 구조적인 측면에서 어떤 실마리를 줄수도 있는 기록이라는 생각입니다.

[동사강목]을 보면 이 후에도 798년과 804년 즉 지어진지 약 130여년이 지나 6년사이에 두차례나 두 탑이 부딪치도록 흔들린 기록이 나옵니다. 

무인년 원성왕 14년(당 덕종 정원 14, 798)
춘3월 망덕사(望德寺)의 두 탑이 서로 부딪쳤다.

갑신년 애장왕 5년(당 덕종 정원 20, 804)
○ 망덕사(望德寺)의 두 탑이 서로 부딪쳤다.

이러한 기록을 보면 같은 해에 근처의 사천왕사나 황룡사의 고층목탑이 흔들린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지진일 가능성도 적고 결국 사료대로 급히 지은 망덕사의 건축의 내구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즉 사료의 신빙성을 더해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한국을 '석탑의 나라'라고 하는 것은 남아 있는 유구로 한정지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한국은 일본 못지않은 "목탑의 나라"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목탑은 그나마 모형이라도 자주 제작되는 황룡사 목탑을 제외하면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관심은 현재 망덕사지 목탑지의 모습을 이렇게 잊혀지게 하고 있습니다.
망덕사지 13층 목탑 동탑지

목탑 심초석

오늘 소개하는 망덕사의 통일신라대 쌍목탑이나 사천왕사의 쌍목탑에 대해 좀 더 많은 대중이 알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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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http://www.silla.or.kr/gyeongju/histspot-p03.html
http://blog.daum.net/gtnam76/8423687

덧글

  • 레이오트 2015/08/22 11:53 #

    당장 황룡사 9층 목탑도 현재 기술로는 5층까지가 한계라고 하는데 13층 목탑은 그저 꿈일 뿐이지요.
  • 역사관심 2015/08/22 13:10 #

    네, 다만 황룡사 9층처럼 높은 고층은 아니고, 사천왕사 목탑보다 약간 낮은 높이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확연히 다른 것은 사람이 올라가는 구조가 아니죠. 이 논문은 현실적으로 어떤 비례로 구현이 가능한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 아빠늑대 2015/08/22 18:53 #

    목탑들은 그 성질상 어쩔 수 없이 오래가기 힘든 것들인지라 끊임없는 유지보수가 필요한데 우리는 너무 곡절이 많다보니 아까운게 많이 사라졌어요.그런데 딴나라는 어떻게 잘 보존했나 싶었고, 우리가 너무 무능하고 무심한게 아닐까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죄다 들 새로 지었더만요. :D
  • 역사관심 2015/08/23 12:12 #

    옳으신 말씀입니다. 사실, 그래서 나라선언등을 했던 것이고, 아시아 목조건축에 대한 유네스코의 시선을 바꾸어 놓았죠. 요즘 들어서는 당시보다 더 변화를 긍정하는 쪽의 추세를 만들고 있기도 합니다.
  • 낙으네 2015/08/24 11:52 # 삭제

    입면도를 보니 황룡사의 것과는 다른, 촘촘하고 세밀한 멋이 있군요. 높고 웅장한것도 멋있지만 이런 세련미를 가진 목탑도 좋습니다.
  • 역사관심 2015/08/25 00:22 #

    동감입니다. 만들면 비례상 아주 멋질 것 같습니다. 그리고 높이도 황룡사 목탑같은 거대한 미는 없지만 24미터면 충분히 압도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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