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라진 건축(14)- 성주군이 복원해야 할 특이한 정자, 쌍도정雙島亭 한국의 사라진 건축

현재 경북 성주군에는 19세기말-어쩌면 20세기초까지도 존재했던 고을의 명소가 될 만한 곳이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쌍도(雙島, 즉 쌍으로 된 섬)와 쌍도정 (정자). 

이 정자는 백 가지 꽃이 만발했던 '헌'(객사)이라는 뜻의 경북 성주(星州) 관아의 부속건축인 백화헌(百花軒)의 부속 시설인 연못에 있었습니다. 다음은 [동문선]에 실려있는 신숙주(申叔舟, 1417~ 1475년)의 15세기 백화헌이 중수된 것을 축하하는 기문입니다.

성주 백화헌 기(星州百花軒記) 중 발췌
신숙주(申叔舟)
재목을 모으고 공장(工匠)을 명하여 먼저 정청(正廳)의 동헌(東軒)을 짓되 옛 제도를 그대로 따라 약간 넓히기만 하였다. 그래서 몇 달 안 되서 끝마치니 모두 2영(楹)이다. 앞쪽은 횡무(橫廡)가 있어 밝게 탁 트였으며, 뜰 앞에 화단(化壇)을 만들어 온갖 화초를 심고 따라서 이름을 백화헌(百花軒)이라 하고, 이어 사환을 보내어 편지로 기를 청하였다. 

일단 그림을 보시지요.

정선(鄭敾,1676~1759년)의 쌍도정도(雙島亭圖)

이것은 18세기초에 겸재 정선이 그린 '쌍도정도'입니다. 즉 윗 기문으로부터 약 300년후의 모습으로, 조선시대 전형적인 네모꼴 방지(方池) 조원(造園)을 어느 그림보다도 잘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입니다. 네모꼴의 연못 속에 석축으로 둘러싼 2개의 섬이 있고, 왼쪽 섬에는 소나무, 오른쪽 섬에는 정자가 있습니다. 두 섬은 다리(아마도 목교)로 연결되어 있고, 그 주위를 소나무, 버드나무, 느티나무와, 단풍나무가 골고루 심어져 있어 조원의 형태를 잘 보여줍니다. 또한 연못 위쪽을 보면 도가의 영향을 받은 듯한 특이한 괴석이 보입니다. 

이병연과 조영석의 기문이 남아 있는데, 이 섬들이 인공적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물길을 따라 연못을 만들고 돌을 쌓아 섬을 만들었는데 모두 사람의 공덕이다"

김정호 (金正浩)가 1865년에 펴낸 대동지지(大東地志)에도 쌍도정이 보이는 것을 보면 19세기말까지도 분명 존재했던 정자입니다.
경상도(慶尙道) 성주목(星州牧)
【누정】 호산정(湖山亭)ㆍ쌍도정(雙島亭).

다시 보아도 이런 형태의 인공연못과 다리로 연결된 정자는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듭니다. 허나 현재 관아는 모두 사라졌고, 쌍도정이 있던 연못과 정자는 흙으로 다 메워져 버렸죠 (90년대까지도 연못은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최근 그림 왼쪽으로는 특색없는 성주 공영버스터미널이 들어서 있죠.
유홍준 선생이 2010년 [우리 문화유산을 보는 눈]이라는 강좌를 통해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40대에 지금 성주인데 성주의 쌍도정이라고 하는 섬 두 개를 놓은 성주 관아 뒤 후원에 있었던 정원입니다. 정말 마음대로 한다고 그러면 이것 하나 복원해 보고 싶어요. 얼마나 멋있겠어요? 옛날처럼 이렇게 이 그림 있는 대로만 해 놓으면. 그래서 성주에 한번 갔었어요. 이태후 교수하고 갔는데 바로 쌍도정이 있었던 그 터에 다른 것은 없고 늪으로 되어 있는 곳에 이 버드나무의 아마 7대 손, 8대 손 되는 버드나무들이 있더라고요. ‘저기에 쌍도정이나 하나 복원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 했는데, 재작년에 여기를 가봤더니 성주 공영버스 터미널이 되어 있더군요. 우리 시대 문화 능력이 지금 현재 그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아마 백년쯤 지나고 나면 그 공영버스 터미널을 사서 이것을 복원을 해 놓는 것을 우리 후손은 분명히 할 겁니다.

이 글에서도 유 선생이 방문했을 때만 해도 '늪'이 있었다고 나오죠. 이런 멋지고 특이한 형태의 연못과 정자는 분명히 새로운 명소와 문화재로써의 가치가 세월이 지날수록 명확해 질 것 같습니다. 꼭 복원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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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같은 성주의 고택인 한주종택에는 이 쌍도정을 축소해 둔 듯한 연못이 있습니다. 이름은 '쌍지'. 역시 다리가 놓아져 있고 주변에 느티나무등이 심어져 있고 연못섬도 두개. 이 한주종택은 1767년에 건립되었으므로 성주라는 지역도 같은 이 건물을 지을 당시 비슷한 형태의 쌍도정지를 보고 유행으로 따라지은 것일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의 '물'관련 유적은 이렇게 메말라 있는 것이 많을까요.


덧글

  • 낙으네 2015/08/27 09:08 # 삭제

    쌍도정이라니 이건 처음 보는군요. 연못이 메마르는 것은 강우가 여름철~가을철 한 때에만 집중되는 것의 영향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 역사관심 2015/08/28 05:09 #

    그런 면도 있겠지요. 다만 낙안읍성의 해자라든가, 경복궁내의 금천, 혹은 경주의 포석정같은 중요수(물수) 유적지는 관리를 해주면 좋겠어요. 훨씬 Attractive할 텐데 말입니다. 물이라는 존재 때문에 있는 유적지들이기도 하고.
  • 이 감 2015/08/27 18:41 # 삭제

    연못에 섬들이 있고 섬들이 다리로 연결되며 각각 섬에 정자가 있는 곳이 떠오르네요. 남원 광한루원이죠. ^^

    에, 집 정원에 연못을 만들어 섬 한 두개씩 놓는 것은 조선시대 사대부집 혹은 부잣집들의 전반적인 유행이긴 합니다. ^^;;

    쌍도정이 있던 곳이 시내 한가운데라 오히려 복원의 당위성이 더 클 수 있겠다 싶었는데 덜컥 버스정류장이 되어 버린게 아쉬운데요. 요새도 버스정류장은 이전하고 쌍도정을 복원하자는 얘기는 계속 나오더군요. -..-;;
  • 역사관심 2015/08/28 05:11 #

    아 규모때문에 떠올리질 못했는데 정말 그렇네요. 말씀대로 사대부집에서 섬을 놓는 건 일반적이었지요- 다만, 섬을 두 개 놓는 예는 그다지 많지 않다고 하네요. 보통은 한개 혹은 도가적 철학하에 세개를 놓는다고 하더군요.

    경북의 문화재로 꼭 복원되면 좋겠습니다.
  • 한라온 2020/05/27 23:32 #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제가 한 때 역사카페에 경복궁 내의 대은암천 어구를 충분히 복원할 수 있음에도 아직 완전히 복원되지 않은 이유를 질문했을 때 돌아온 대답 중 하나가 '물과 관련된 복원사업은 그 시공비도, 유지비도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함부로 시도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요.
    물과 관련된 유적에 섣불리 물을 대거나 유지/복원하기가 힘든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 역사관심 2020/06/01 01:46 #

    확실히 비용이...T.T 모든 유적지를 그렇게 관리할 수는 없다해도 경복궁 금천등 상징적으로 할만한 유적지라도 하면 하네요...(비용이 그렇다면 해외관련 문화유적지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도 궁금하구요.)
  • 한라온 2020/06/01 06:51 #

    그리고 경복궁 금천의 경우 지하 전기실의 존재 때문도 있다고 합니다.
  • 역사관심 2020/06/03 04:20 #

    아 그런 문제가 또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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