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층전각 연복사 내부 3층 통구조론에 대한 반박 (2015년 논문에 대한). 한국의 사라진 거대건축

오늘 읽은 논문 한편이 있습니다. 바로 얼마전 발표된 (2015) '조선초기 흥천사 사리각 영건에 대한 고찰'이라는 논문인데, 내용중 이견이 있어 씁니다.

이 논문에서는 사리각과 연복사 5층목탑을 모두 외부 5층, 내부 3층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즉, 내부는 3층 통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인데, 특히 그 근거로 1) 당대 몇 사료에서 경천사지 10층 석탑을 13층으로 전하는 등, 기단부를 함께 층수로 인식했다는 기록, 그리고 2) 필자가 어제 소개한 '연복사의 상층은 불사리를, 중층은 대장경을, 하층은 비로자나의 초상을 모셨다는 설명에 의거 3층으로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리각의 경우는 후일 살펴보겠지만 우선 어제 소개한 김에 연복사 5층목탑에 대한 개인적인 졸견을 제시합니다.

본 논문은 '연복사는 외부에서 보면 5층이지만 내부적으로는 통층의 구조를 가진 3층목탑이었던 것으로 추정한다'라고 단정짓고 있는데, 필자는 어제 올린 시리즈글등을 통해 지난 몇년간 고찰한 바로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우선 본고에는 11세기 당대 이웃국가들의 같은 5층 건축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이전 글에서 소개한 대로 같은 시기에 지어졌으며 5층건축인 응현목탑에 대한 고찰이 전혀 없습니다. 응현탑전이 현전하는 유일한 올라갈 수 있는 구조의 당대 목탑임을 생각하면 이것은 심각한 오류라 생각합니다.

필자의 짐작으로 통구조에 대한 이러한 시각은 현존하는 한국의 고건축중 중층건축이 모두 통구조 (특히 유일한 현전 고층목탑인 법주사 팔상전, 경복궁 근정전등)를 가지고 있다는 시각의 관성이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팔상전의 경우 임란후 다시 지어진 조선후기의 건축물이며 높이가 22미터에 불과합니다. 연복사 5층목탑의 경우 200척이 넘는다는 고려도경 (1123년)기록으로 이 기록을 고려하면 55-60미터임을 감안한다면 통구조라는 것은 무리한 설정입니다 (이 경우 수십미터나 되는 내부 통구조면서도 사다리만 안쪽으로 위험하게 빙빙 둘러서 난간부로 나가게 하는 특이한 구조가 되어버립니다). 현존하는 국내 목탑중 가장 비근한 비례를 가진 건축물은 예전에 소개한대로 96년 지어진 역시 올라갈 수 있는 보탑사 3층대목탑 (43미터)가 될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입니다. 이 비례의 층수가 5층으로 지어지면 60미터로 정확히 맞아 떨어집니다.

현 보탑사의 3층에 비슷한 비례로 2층을 얹었을 경우를 상상해보고 다음 유호인의 기록을 살피면 얼추 감이 오실 겁니다.

십천교(十川橋)를 경유하여 곧장 연복사(演福寺)에 당도하니, 한가운데 우뚝이 솟은 5층각이 온 성중을 압도하고, 부시(罘罳 창문) 호릉(觚棱 누각의 모퉁이 기와를 말한 것)에 채색 노을이 얼켰다. 참으로 굉장한 건축이라 하겠다. 정서(正西)에 비석 하나가 섰는데, 권양촌(權陽村)의 글에 성독곡(成獨谷)의 글씨였고, 정동(正東)은 능인전(能仁殿)인데, 세 대사(大士)의 소상이 있다. 주승(住僧)이 말하기를, “이 부처가 본시 화산에 있었는데, 역적 신돈(辛旽)이 국병(國柄)을 쥐었던 시절에 배로 실어다 옮겨 모신 것이다.” 한다. - 유송도록

또한, 어제 소개한 수많은 선비들이 직접 올라가서 지은 시등, 당대 문헌을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읽어보시지 못한 분은 한번 읽어보시면 흥미로울 것입니다.

내구구조중 황룡사목탑처럼 사다리를 둘러 내부에서 올라가는 구조이며 응현목탑이나 황룡사목탑처럼 바깥으로 나아가 구경할 수 있는 난간이 존재하는 등, 현전하는 통구조건축물과는 다른 부분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음에도 이런 기록은 생략, 과감하게 통구조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단부'를 층수로 착각했다는 추정 역시 무리하게 보이는데, 만약 외부에서 전각전체를 보고 기록한 것이라면 가능한지 몰라도, '한층 한층' 모두 직접 오른 명사들의 기록이라면 기단부부터 오르지 않고 자신이 직접 오른 층수를 세어 3층이라고 그대로 적었을 것이라 사료됩니다.

즉, 자신들이 정말로 밖으로 나가서 구경할때 5층 (혹은 내부는 응현목탑처럼 9층등 더 많은 층수)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즉 외부 전각층수자체가 5층이므로) 그런 식으로 기록했다는 것이 더 정확해 보입니다. 예를 들면 어제 소개하지 못한 이런 기록입니다.

추강집
東入演福寺。見能仁殿。有大佛三軀。四面有阿羅漢五百軀。又上五層殿極頭。令會寧吹笛。開囱下瞰。神氣舒暢。余等下來。見陽村所撰碑。乃我太祖重創演福事迹也。
동쪽으로 연복사(演福寺)에 들어가 능인전(能仁殿)을 보았다. 큰 불상 세 개가 있고, 사면에 아라한(阿羅漢) 500개가 있었다. 또 5층 꼭대기에 올라서 회령에게 피리를 불게 하고 창을 열어 아래를 내려다보니 정신과 기운이 활짝 펴졌다. 우리들이 내려와서 양촌(陽村) 권근(權近)이 지은 비문을 읽었다. 이는 바로 우리 태조께서 연복사를 중창한 사적이다.

만약 이중기단부가 높은 실제로는 3층짜리를 오르는 구조라면 이런 표현을 썼을까 심히 의심스럽습니다. 

又上五層殿極頭 또 오층전각의 맨 꼭대기에 올라
開囱下瞰   창문을 열고 아래를 굽어보니

무엇보다 '연복사의 상층은 불사리를, 중층은 대장경을, 하층은 비로자나의 초상을 모셨다는 설명에 의거 3층'이라는 식의 설명은 더욱 동의가 되지 않습니다. 이 주장은 권근의 다음의 기록을 근거로 든것입니다.

계유년 봄에 단청을 하니,구름 밖에 꿩이 날듯하늘가에 새가 날듯금벽(金碧) 휘황하여 반 공중에 비치었다위에는 부처의 사리(舍利) 봉안하고중간에는《대장경(大藏經)》을 간직하고아래에는 비로자나불상(毘盧遮那佛像) 안치하니국가에 복을 내리어 만세토록 영원히 이로울 것이다.

원문을 보죠.
上安佛舍利。中庋大藏。下置毗盧肖象。 어디에도 1층, 2층, 3층 등 명확한 층수를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냥, 상 중 하, 즉 위 중간 아래로 표기했을 뿐입니다. 이것은 1) 1층, 3층, 5층에 두었다는 표현으로 해석도 가능하며, 1-2층은 하, 3층은 중, 4-5층은 상으로 대강 표현했을 가능성도 절대 모자라지 않습니다. 또한, 응현목탑처럼 비로나자불의 경우 1-2층을 통과하는 구조로 되어 있을 수도 있고 여러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이미 소개한 16세기의 [오산설림초고]의 기록을 잘 생각해보면 현 팔상전같은 통구조라는 것은 힘들다는 것을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황계창(黃繼昌)이란 자는 송경(松京) 사람인데, 용력(勇力)이 뛰어나서 날아다닐 수 있었다. 연복사(演福寺) 5층(層) 전각(殿閣) 위의 감실[龕]에 금은자(金銀字)로 쓴 불경(佛經) 수백 본(本)이 있었는데, 황계창이 이를 훔쳐가지고 나가려 하자, 중들이 그 기색을 알고 앞을 다투어 올라가 그리 못하도록 붙잡고 막았으나, 계창은 그 경축(經軸)을 모두 챙겨서 허리춤에 어지러이 꽂고 또 두 손에도 각기 수십 축씩 움켜쥐고는, 5층에서 몸을 던져 날아 내려오는 것이 마치 나는 새와 같았으므로 중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하였다. 

이 기록을 보면 5층 레벨에 '감실'이 있고, 불경이 수백권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통구조에선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저 보관이라면 모르겠지만 황계창이란 사람은 이 5층에 올라가서 이 불경들을 훔치고, 또한 한 두명도 아닌 복수의 승려들이 5층까지 올라가서 그와 대립하는 모습입니다. 과연 이런 모습을 가운데는 텅 비어있고, 사다리로만 위태하게 서있는 구조에서 연출하기 쉬울까요?

흥천사 사리각의 구조에 대한 본격적인 논고라 반갑게 읽었지만, 내부구조에 대한 분명 성급한 면이 있는 추정에 대해서는 감히 동의할 수 없어 글을 써 보았습니다. 특히 한양대 한동수 교수님의 최근 주장처럼 고려대 건축물의 경우, 현 학계는 중국과의 상호영향에 대해 아직 많이 미진한 전개를 펼치는 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접근성이 용이한 현전하는 국내 고건축위주로 사고하는 한계를 낳곤 합니다) . 이 점은 하루 빨리 개선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외의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 흥미로운 내용과 정보가 있어 많이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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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ㅇㅇ 2015/09/01 13:38 # 삭제

    오랜만에 덧글 답니다 그동안 잘 계셨는지요

    포스팅 하신대로 그게다 한국 역사학계에서 한국역사의 모든 기준을 조선후기기준으로

    그리고 역사관점에 있어 무리한 직선사관 발전사관 논리 사용 때문이겠죠

    한국 전통 식당은 주막뿐이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실제 유적지 발굴과 각종 기록들이 분명

    임진왜란 이전 유물 유적들의 화려함과 거대한 스케일을 증명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보수적 관성에 젖은 역사연구와 해석만 하는 학계가 안타깝습니다

  • 역사관심 2015/09/02 00:18 #

    그간 무고하셨습니까. 기존에 쌓여온 데이터(논문등)만을 중심으로 한 논리전개가 가장 아쉽습니다. 중국 일본쪽 논문들만 보아도 확실히 우리보다는 스케일이 크고, 특히 고대-중세 문화를 논할 경우 직접 그쪽 유적을 가본다던가 연구성과를 반영한다든가 하는 동시대 공간적인 느낌의 연구가 많은데, 우리는 아직도 너무 접근성이 한정된 연구가 많은 듯 합니다. 조금씩 더 광범위한 작업들이 많아지고 있으니 희망은 있지만, 아직도 얼마전 번역된 쿠쉬나메 연구에 대한 일부반응등을 보면 한숨이 나올뿐입니다 (완전히 말씀대로인 답답한 시각에 매달려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그저 즉각반응할 뿐인 사설도 많습니다). 이젠 신진학자들은 눈을 넓혀서 있는 그대로의 시각을 (Non-biased) 가지길 바랍니다. 20세기가 아니라 이젠 21세기입니다.
  • 이 감 2015/09/01 14:10 # 삭제

    기단부를 층 수로 인식하지 않았을까 하는 부분은 확실히 이상하군요. 석탑이면 그 특성상 그럴 수 있을지 몰라도 목조 건축이라면 석축으로 만들어지는 기단을 층 수로 보지는 않겠죠. 석축 기단에도 공간을 마련하는 경우라면 몰라도 말입니다.

    올려주신 기록들로 보면 암층에 대한 단서는 보이질 않으니 개인적으로는 내외 5층으로 보일 따름입니다. ^^;;
  • 역사관심 2015/09/02 03:43 #

    말씀대로입니다. 석조건축인 경천사지 13층석탑과 황룡사 9층목탑을 대응시키는 형국인데, 본문에서는 완곡하게 썼지만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냥, 3층설을 가정해두고 앞선 연구를 가져다 쓴 느낌입니다. 말씀대로 저도 암층보다 내외 5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 봉래거북 2015/09/02 01:12 # 삭제

    학자들도 사람이고, 자신이 연구하고 알고 있는 방향을 우선적으로 연구의 기반으로 삼을 수밖에 없죠. 유물 측면에서 접근하는 사람은 법주사 팔상전 같은 곳을 연구의 기반으로 삼을 테고, 문헌 사학자는 문헌을 기반으로 삼는 게 일반적이니까요. 학문 분과를 넘나드는 연구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지만 쉽지 않은 게 현실이죠. 당장 자기 분야도 파면 팔수록 나오는데...
  • 역사관심 2015/09/02 01:30 #

    말씀대로입니다. 다만, 이제는 데이터의 양이나 접근성이 예전보다 용이해진 만큼 좀 더 넓은 시각의 연구를 많이 보고 싶네요.
  • 응가 2015/09/19 15:43 # 삭제

    이글과는 관계가 없는말이지만, 저 보탑사 목탑이 일본에서 가장높은 토오지의 목탑과 높이가 비슷하다고 하더라고요. 다만 이제 아쉬운점은 쌍봉사 대웅전이나 법주사 팔상전과같은 기존의 조선시대 목탑에 비해서 아름답지가 않은것과 상륜부의 형태가 몹시 아쉽습니다.
  • 역사관심 2015/09/21 13:29 #

    그렇군요. 저 역시 직접 가보지 않아 뭐라 말씀드리긴 힘들지만, 말씀처럼 아주 유려한 맛이나 높이에 비해 웅장한 느낌은 사진으로는 받기는 힘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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