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 습하여.... 한국의 사라진 건축

오늘 읽다가 눈에 들어온 부분입니다. 확실히 삼국시대-고려대까지의 기후는 달랐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건축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중국사서인 위서(魏書)에 나오는 백제의 일반여염집의 모습입니다.

[魏書 열전 제88권]
백제
땅이 습하여 대부분의 백성들은 산에 산다. 

945년의 구당서를 보면 이제 성내외에도 백성들이 집을 짓고 살고 있음이 나옵니다. 또한 '탑'(목탑, 석탑)이 별처럼 많았다는 경주뿐 아니라 사비성이나 웅진성에도 수없이 많았음이 나오죠.

[唐書 열전 제41 이역 상권]
백성들은 성 내외에 집을 짓고 살았고 도성 내에서는 승니(僧尼)가 많고 사탑(寺塔)이 대단히 많다.

재미있는 것은 고구려 역시 살림집이 대부분 산중에 많다는 기록입니다. 구당서입니다.

[舊唐書 열전 제149권]
고구려
살림집을 반드시 산곡(山谷)에 짓는데 대부분 이엉을 이어 지붕을 만든다. 다만 부처님을 모신 절이나 신묘 (神廟)·왕궁·관부(官府)건물에는 기와를 이었다. 가난한 백성들의 습속으로 겨울에는 모두 장갱(長橙,구들)을 설치하고 불을 지펴 따뜻하게 지낸다. 

온돌이 나오죠. 그런데, 같은 시기 아직 춥지 않은 시대였던 남쪽의 신라는 난방방식이 전혀 다릅니다. 마치 일본의 전통난방같죠.

[唐書 동이열전 제145권]
신라
겨울에는 방안에 화덕을 설치하고 여름에는 음식을 얼음 위에 둔다. 

그림은 센트룸님이 만드신 삼국시대건물 내부 (링크)

여기서 예전에 소개한 '습한 날씨의 삼국시대'기록을 다시 조금 살펴보겠습니다.

박정재(2013)는 다음과 같이 한반도의 기후변화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대략 AD 1400년에서 AD1900년 사이에 상대적인 저온 상태가 지속되면서 전세계 여러지역에서 빙하가 확장되었던 시기를 소빙기라 부르는데(Grove, 2004), 나이테 등의 고환경 자료뿐 아니라 다양한 역사문헌에서도 이 시기의 존재가 뚜렷하게 확인된다. 특히 소빙기의 저온 현상은 이 시기 인간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과거의 역사문헌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다. 중략.

이 화분 비율의 증감을 기준으로 일본 중부 지역의 기후 변화를 추정하면, 대략 BC 1000-BC 580년, BC 250-AD 700년, 1300-1800년이 추웠고 BC 580-BC 250년과 AD 700-AD 1300년이 따뜻했으며, 이러한 변화는 Park et al.(2013)과 Park(2011)에서 제시된 한반도의 기후변화와 매우 유사하다. ......이러한 자료들을 통해 홀로세 후기 극동아시아의 인접한 남한지역, 일본 중부, 중국 북동부의 기후 변화는 서로 엇비슷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여말선초에 해당하는 1300년대말부터 즉 조선으로 접어들면서 한반도는 고온다습했던 약 600년의 시기를 끝내고 한랭한 기후로 접어들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수종 역시 급격히 소나무등의 수종으로 바뀌지요.

이러한 습속 (땅이 하습함을 싫어해서 건축을 올려짓거나 마루를 까는 것)은 예전 글에서 소개한 1488년의 조선부와 한경지략 기록에서 살펴본 바 있습니다.

조선부(朝鮮賦)

富則陶瓦皆동(同+瓦) 而?序之翼東西者 棟反聳出於南北 塗?皆土而堂寢之位前後者 脊反低下於中間[堂寢皆一間?序乃反三間] 門則皆循東序之東設梯以升 必矩步乃可達於堂寢[其門雖皆南向 然不自中開 皆就東?之棟 南向以開 以基多高故須梯升 其面東西者亦然] 地則皆畏下濕之沾 鋪板以隔

중략. 모두 동쪽 곁채[동무(東?)]의 마룻대로 나아가 남쪽으로 연다. 터가 많이 높은 까닭에 반드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다[동쪽과 서쪽으로 면한 것도 역시 그렇다]. 땅은 모두 하습(下濕)함이 스미는 것을 싫어하여 판자를 깔아 띄운다.

한경지략(漢京識略), 부(附) 동명(洞名)
車洞 有洪慕堂履祥世居之宅 奉祀孫入居 凡爲十三世 而內屋四十間 甚宏傑 古之屋製 皆房少而廳多 蓋古之老人 始居溫? 少年輩?宿處于廳事 故如此耳

차동(車洞)에는 모당(慕堂) 홍이상(洪履祥)(1549~1615)이 여러 대 거주한 집이 있는데 봉사손(奉祀孫)이 들어가 사는 지 무릇 13세(世)이다. 내옥(內屋)이 40칸인데 매우 굉걸하다. 옛날의 가옥 제도는 모두 방이 적고 마루[청(廳)]가 많다. 대개 옛날에는 노인이 되어야 비로소 온돌에 거처했다. 젊은이는 마루방에서 많이 잤다. 그러므로 이같이 생겼다.
=====

기후와 문화의 변화, 특히 건축분야에 대한 좀 더 활발한 연구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에 따른 구체적인 삼국-고려의 주거형태에 대한 좀 더 치밀한 시각도 나오면 좋겠네요.

 

덧글

  • 천하귀남 2015/09/04 09:26 #

    이번에 서울의 종로 청진동 지역을 재개발 하면서 나온 일반 가옥과 종로변 상업시설등에서 많은 온돌 흔적이 나왔는데 15세기에도 방의 일부만 시설되 있기는 해도 설치 자체는 많은 집들에되있더군요. 이것이 16~17세기에 걸쳐 대부분의 방이 온돌로 변화되는 양상이 나와 흥미롭더군요.
  • 역사관심 2015/09/05 11:50 #

    예전에 그 가옥들에 대해서 한번 다룬바가 있습니다 ^^. 말씀대로 변혁기의 가옥들인듯해서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 존다리안 2015/09/04 19:04 #

    요새 점차 아열대로 변한다는 느낌도 드는데
    앞으로의 주거 패턴에 어떤 영향을 줄지 궁금합니다.
  • 역사관심 2015/09/05 11:51 #

    아무래도 역시 뜨근뜨근한 방보다는 시원하게 가겠죠 ^^;
    벌써 80년대의 맹추위시절에 펄펄 끓는 방들은 싹 사라진 것 같아요.
  • ㅇㅇ 2015/09/05 16:41 # 삭제

    단순히 온돌때문에 건물이 작아졌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보다 이렇게 전반적인

    기후변화와 식생변화를 건물 규모와 연관지어서 생각해보는것도 굉장히 좋을듯 싶습니다

    규모가 큰 목조건축물 짓기에는 확실히 침엽수보다 활엽수가 좋은게 맞는것 같습니다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를 봐도 그렇고.. 소나무가 조선시대 목조건축물 자재로

    많이 쓰였지만 대규모 건물 짓기에는 그다지 적절하지도 않고 내구성 문제라던가

    대규모 건물에 맞는 크기의 소나무 구하기도 쉽지가 않죠

  • 역사관심 2015/09/08 09:11 #

    분명히 이런 쪽의 연구가 시작되고는 있는데, 아직 시작단계인 것 같습니다.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는 데이터가 이제 쌓인 듯 해요.
  • ㅇㅇ 2015/09/06 09:06 # 삭제

    따뜻했던 것은 남북국~고려후기까지고 삼국시대 및 여말선초부터 얼마전의 온난화가 시작되기 전까지가 추웠던거에요.
    즉 삼국시대도 비교적 추웠습니다.
    습한 날씨의 삼국시대가 아니라 땅은 언제나 습합니다.
  • 역사관심 2015/09/08 09:13 #

    네 700년부터라고 되어 있으니 분명 그렇습니다. 다만, 습하다는 표현은 조선시대부터는 나오지 않고 일부러 저런 식으로 건축이나 주거형태를 이야기하면서 표기할 정도라면 건축에 영향을 주었다는 생각입니다.
  • 응가 2015/09/07 16:03 # 삭제

    산에 산다는거는 아직도 시골에 내려가면 대부분의 마을이 산비탈에 만들어졌는데, 지금의 주거형태와 그당시의 주거형태가 서로 관련이 있는것일까요?
  • 역사관심 2015/09/08 09:13 #

    저도 이 분야의 연구자가 아닌지라 거기까지는 ^^; 언제 생각해볼 기회가 된다면 흥미로운 소주제같습니다.
  • ㅇㅇ 2015/10/08 18:34 # 삭제

    찾아보니 조선부 기록과 비슷한 여말선초풍의 건물들이 꽤 남아있군요.
    http://m.blog.daum.net/_blog/_m/articleView.do?blogid=0XwZN&articleno=5460
    링크속의 건물도 기록과 상당히 닮아있습니다
  • 역사관심 2015/10/10 04:50 #

    아 그렇지 않아도 예전에 비슷한 건축에 대해서 알려주신 분이 있어 찾아봤습니다. 더 있었군요! 고맙습니다 ^^
  • 응가 2021/04/09 11:22 #

    화분(꽃가루)분석으로 어떤 종의 식물이 서식했는지 확인하고 그로써 기후를 유추할 수 있는데, 딱 삼국시대의 것은 없지만 4000~3000년전 후기 구석기시대 경주일대의 기후는 지금도 흔히 볼 수 있는 소나무, 오리나무, 옻나무, 서어나무, 자작나무류와 부들, 백합류, 사초과의 식물군으로 이루어지는것으로 보아 기후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것으로 보입니다.
    안압지의 화분분석에 의하면 1300년전 7~8세기의 신라 왕경 기후는 소나무가 주가 되고 이것은 인간의 개입으로써 인한것으로 해당시기에도 기후자체에는 대단히 큰 변화가 없었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됩니다.
    안압지 화분분석 논문은 "http://koreascience.or.kr/article/JAKO198054058411375.pdf" 여길 참고하시면 이해에 큰 도움이 되실듯 합니다
  • 역사관심 2021/04/10 00:11 #

    오 그렇군요. 새로운 연구들이 나오나보네요- 저 논문은 오래된 것이지만 잘 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로 건축구조나 수종의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요?
  • 응가 2021/04/12 17:15 #

    건축구조는 아무래도 삼국의 주거생활의 발달로 그렇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애초에 삼국시대가 지금과 비교했을때 그렇게 높은 수준의 삶을 기대하는것은 현대에 지나치게 미화된 면이 강하기도 하고 건축양식 또한 지금 우리가 상상하는 건축물들은 사찰, 궁정건축에서는 고려이후, 주거건축은 조선이후에 건축양식이 크게 발달하고 정형화되어서 삼국시대까지만 해도 고대의 주거양식(고상식)이 남아있었던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수종은 삼국시대가 활엽수를 더 많이 이용했을테고 실제로도 그런것으로 알고있는데 이건 원래 활엽수가 목재로서 침엽수보다 뛰어난 점이 많기 때문에 아마 건물 축조용 목재로 이용가능한 수령이 많고 곧게자란 활엽수는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를 지나면서 드물어졌을것이라 생각합니다.
  • 역사관심 2021/04/13 04:16 #

    진짜 타임머신이 있다면 타고가서 10초만 보고왔으면 좋겠습니다. ㅎㅎ 요즘 수종에 대한 연구결과가 조금씩 쌓이는 중이라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글을 쓸 기회가 올 것 같습니다. 항상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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