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라진 선박 (6)- 왕건의 10세기 대누선(大樓船) 한국의 사라진 거대건축

판옥선만큼이나 (혹은 거북선만큼이나) 널리 알려질 수 있는, 그러나 이 시리즈의 많은 문화재가 그렇듯 알려지지 않은, 중세한국의 선박을 대표할 만한 선박이 있습니다.

바로 '고려태조 왕건의 대누선'입니다.


2000년, CG로 재현해본 大누선

동국통감 신라기(東國通鑑 卷11 新羅紀)
915년 음력 6월
신라 신덕왕 4년, 후백제 견훤 24년, 후고구려 궁예 15년

○참포(槧浦, 흥해(興海))의 물이 동해의 물과 서로 부딪쳐서 높이가 20장(丈)이나 되었는데, 3일이 지나서야 멈추었다.

○ (궁예가) 드디어 보장(步將) 강선힐(康瑄詰)·흑상(黑湘)·김재원(金材瑗) 등으로 하여금, 왕건을 도와 배 백여 척을 더 만들게 하였다. 큰 배 십여 척은, 각각 사방이 16보(步)로 위에는 누로(樓櫓)를 만들었는데, 말을 달릴 정도였다. 군사 3천여 인을 거느리고 군량을 싣고서 나주(羅州)로 가니, 이 해 남방에는 기근(饑饉)으로 도둑이 벌떼처럼 일어나고, 수졸(戍卒)은 모두 반숙(半菽)을 먹었다. 왕건이 마음을 다하여 구휼(救恤)하니, 이에 힘입어 제대로 살게 되었다.

遂以步將 康瑄詰·黑湘·金材瑗等副太祖, 增治舟舸百餘艘, 大船十數, 各方十六步, 上起樓櫓, 可以馳馬. 領軍三千餘人, 載粮餉, 往羅州. 是歲, 南方饑饉, 草竊蜂起. 戍卒皆食半菽, 太祖盡心救恤, 賴以全活. 初太祖年三十, 夢見九層金塔立海中, 自登其上.

사방이 30미터인 대선

고려시대 초창기인 궁예시대에 부하인 왕건을 시켜 대선을 만들게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전함의 규모. 이 누선은 사방이 각각 16보라고 되어 있는데, 1步가 6尺. 1척이 181.80cm이니 1.82m로 치면, 29.12미터가 됩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대군함인 '판옥선'의 경우 판옥선중 가장 컸던 15-17세기 대형모델의 경우 26.13m~27.03m이니, 그보다도 더 컸던 배입니다.

그런데 이 기록은 사실 조금 더 면밀하게 연구해 볼 여지가 있습니다. 즉 이 표현이 너무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各方十六步
'각 방 십육보' 즉, 각 방면 (동서남북 사방면)이 각각 16보씩이라는 것입니다. 즉 표현대로라면 위에 역사스페셜에서 재현했던 전형적인 선박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사방이 굉할한 정말로 사료대로 '말을 달릴만한' 모습이 되는 것이지요. 이 경우 전투함이라기보다는 수송함의 역할에 더 적합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배는 '누선'이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제공한 설명을 빌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각선도본 (各船圖本) 중의 전선도는 바로 이 (중국)누선을 그린 그림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중국 사신이 내왕할 때 평양 대동강에서 뱃놀이하면서 탄 배도 누선이라 하고 있으나(中宗實錄 卷84 中宗 32년 3월 壬午, 同 4월 辛亥), 그것은 단지 차양으로 지붕을 얹어놓은 강선(江船)에 지나지 않고, 고려사에도 태조가 구사한 대형군선(高麗史 卷1, 太祖 世家)을 후세에 누선이라 하고 있으나(高麗史 兵志 2, 辛禑 14년 8월) 그것은 단지 다락(樓櫓)을 갖춘 배라는 뜻에 지나지 않는다.

조선 후기의 전선에는 통제사가 탑승하는 통영상선(統營上船), 각 도 수사(水使)·방어사 등이 탑승하는 중급 전선 및 각 읍진(邑鎭)의 일반전선 등 세 계층이 있다. 그들은 모두 상갑판 위에 사령탑으로 쓰는 다락을 설비하였는데, 이러한 식의 전선을 다락이 없는 다른 군선들과 구별하기 위하여 누선이라고도 하였다. 전선의 전신인 판옥선(板屋船)이 처음으로 개발되었을 무렵에는 누선이 별로 없었는데, 임진왜란 이후에 전선이 점차로 커지면서 누선이 늘어나 정조 무렵에는 경상좌수영 관하에만도 10척을 헤아리게 되었다(正祖實錄 卷33 正祖 15년 11월 壬辰).

누선은 위가 무거워 복원성능이 좋지 않고 운용도 불편하여 방패선 또는 거북선 등으로 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顯宗改修實錄 卷12 顯宗 5년 11월 丁酉, 正祖實錄 卷33 正祖 15년 11월 壬辰). 중국에도 일찍부터 누선이 있었는데(武備志), 조선 후기의 누선은 그것과 아무런 관계가 없이 엄연히 구별되는 배이다.
누선 [樓船]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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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이 설명을 보면, 고려대의 이 '대누선'은 중국의 누선과는 다른 종류의 선박이라는 것입니다. 현재 문화컨텐츠에서 '누선'이라고 설명하면서 제공하는 전형적인 배는 다음의 것입니다.

이 설명중 "단지 樓櫓'를 갖춘 배"라고 왕건의 대누선을 표현하고 있는데, 누로는 엄밀히 말해 그냥 '다락'이 아닙니다. 누로(樓櫓)는 을 망보는 높은 전망대를 말합니다. 누로라고 구글검색을 하면 다음과 같은 사진들이 검색되죠. 
이야기를 조금 돌려보자면 현재 한국문화재학에서 한가지 안타까운 점 혹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바로 현재 유구로 남아있지 않은 고대-중세 건축등에 대한 성급한 혹은 고정된 시각입니다. 엄연히 '누로'라는 단어가 어떤 식으로 쓰이고 있었음은 당대 같이 공존하던 이웃국들에서 그 모습이 가시적으로 확인됨에도 현재 생경한 이런 단어 (마치 고려시대 '침루'(잠을 자는 루)처럼)가 나오면 쉽게 접근성이 쉬운 개념으로 대치하거나, 무시해버리기 일쑤입니다. 이는 반드시 생각해 볼 문제라는 생각입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이런 누로는 성곽등에 방어를 위해 배치됩니다.

이수일(李守一) 비명(碑銘)
甲子死節勘難人

계묘년(癸卯年, 1603년 선조 36년)에 또 경상 우병사(慶尙右兵使)로 제수되었다. 영(營)이 창원(昌原)에 있었는데, 조정 공론이 진주(晉州)가 후일의 방어지로 적당하다고 하므로 공도 공론에 따라서 영을 진주로 옮겼다. 공은 가시밭을 헤치고 성부(城府)와 누로(樓櫓)와 치첩(雉堞)을 건립하였는데, 전면이 대단히 화려하였으나 백성에게 폐단은 없었다. 조정에서 품계를 더하였으니 곧 정경(正卿)의 품계이다.

이런 누로를 갖춘 배를 '단지 다락을 갖춘 누선'이라고 설명해버리면 이런 모습이 연상되게 됩니다. 
조선사화의 누선도

아래는 조선후기 [각선도본]에 나오는 판옥선모델입니다. 제 느낌으로는 '누로'라는 것은 저 가운데의 '장루'의 원형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장루보다 더 위로 솟구친 모습이 아닐까요.
또한 같은 한국학중앙연구원측의 설명을 보면 보통 고려군함에 탈 수 있는 인원수를 대략 30명으로 잡고 있습니다.

고려 누선의 특징
하지만 태조의 누선이 중국의 누선을 똑같이 모방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굳이 두 배를 비교하자면 중국의 누선은 3층 누각을 두고 한쪽 현에 노를 7개씩 달았으며 범장(帆裝, 돛대)은 없다. 태조의 누선은 주로 개경에서 호남 지역을 내왕하는 데 쓰였으므로 노역장치보다는 오히려 범장이 더 중요시되었을 것이다. 아무튼 고려 태조가 당시에 갑판 위에 상장을 꾸미고 길이가 무려 96척이나 되는 장대한 누선을 운영하였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사실이라 할 수 있다. 고려 누선은 신라 말에 장보고가 사용한 대형 무역선 건조 경험 등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을 것이며 조선기술이 그만큼 발달하였다는 증거가 된다.

또한 이 시기에 사용된 일반 군선은 왕건과 견훤이 전쟁 때마다 동원한 군선과 군사의 수가 각각 70~100척, 2,000~3,000명이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한 척당 탑승인원이 30명 안팎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정원이 30명 정도인 군선의 예는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데, 조선 초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나타나는 중대선과 <경국대전>(經國大典)에 규정되어 있는 소맹선(小猛船)의 정원도 모두 30명이고, 조선 후기 병선의 승원도 17~36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한국의 역사, 지리적 조건으로 보아 30명 정도가 탑승할 수 있는 군선이 가장 전투하기에 적합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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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거북선을 다룬 글에서 이미 중맹선, 소맹선의 탑승인원을 살핀 바 있습니다. 하지만, 소맹선은 군함중에서도 가장 소규모에 속하는 것입니다. 하필이면 소맹선의 인원을 기저로 고려의 일반군함의 탑승인원을 유추한 것은 필자로써는 이해가 되질 않는군요. 참고로 이것은 '대누선'의 인원은 당연히 아닙니다.

숙종실록 40권, 30년(1704 갑신 / 청 강희(康熙) 43년) 12월 28일(갑오) 
이정청에서 오군문의 군제를 고치고 수군을 변통하는 절목을 올리다
수군의 제도는 《대전(大典)》을 상고하여 보니, 대맹선(大猛船) 1척에 수군 80명, 중맹선에는 60명, 소맹선에는 30명이라 하였는데, 대맹선은 지금의 전선(戰船)이요, 중맹선은 지금의 귀선(거북선)이고, 소맹선의 지금의 방패선(防牌船)이니, 병선(兵船)의 종류입니다 (주: 중맹선 즉 60명급이 들어가는 거북선- 중형입니다. 실록의 다른 시대에 125명급과, 방패선개조형이 등장하니 맹선으로 쳐도 대/중/소형급 거북선이 골고루 존재했음이 명확합니다). 그런데, 선제(船制)가 차츰 커져서 큰 것은 좌우 노로(櫓櫨)사이가 혹은 24간에 이르고 노젖는 군사가 1백 20명이 필요하니, 고제(古制)의 80명의 노군(櫓軍)으로는 결코 운용할 수가 없고 귀선과 방패선의 노군 역시 그 수로 기준을 삼기가 어려운데, 토졸(土卒)로서 구차하게 수를 채워 실제로 허술하게 되었으니, 한번 변통하는 것은 사세상 그만두어서는 안됩니다. (주: 그런데 배가 점점 커져서 80명으로는 도저히 운용이 안되고 노젖는 군사만 120명이 필요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중략.
각 선군(船軍)의 제정(制定)한 액수에는 전선(戰船) 1척에 선직(船直)·무상(舞上)·타공(舵工)·요수(繚手)·정수(碇手)·사수(射手)·화포장(火炮匠)·포수(砲手)·포도장(捕盜將)·노군(櫓軍)이 도합 1백 64인이요, 귀선(거북선)은 1백 48인이며 (주: 같은 기록에 대형급도 나타납니다), 정탐선(偵探船)은 79인이요, 병선(兵船)이 17인이며, 사후선(司候船)은 5인입니다

여기서 고려사 원문 해석판을 다시 한번 볼까요.
"왕건을 도와 배 백여 척을 더 만들게 하였다. 큰 배 십여 척은, 각각 사방이 16보(步)로 위에는 누로(樓櫓)를 만들었는데, 말을 달릴 정도였다. 군사 3천여 인을 거느리고 군량을 싣고서 나주(羅州)로 가니..."

이 설명을 보면 배를 대누선 10여척을 포함한 배 100척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이 배를 총동원해서 한번에 3,000명을 나눠싣고 나주로 갔다는 명확한 설명은 없습니다. 즉, 100척중 몇적의 대선과 몇척의 중소규모 함을 끌고 간 것인지는 모른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이 기록으로 3000/n 의 단순한 계산을 해선 곤란합니다.

遂以步將 康瑄詰·黑湘·金材瑗等副太祖, 增治舟舸百餘艘, 大船十數, 各方十六步, 上起樓櫓, 可以馳馬. 領軍三千餘人, 載粮餉, 往羅州. 是歲, 南方饑饉, 草竊蜂起. 戍卒皆食半菽, 太祖盡心救恤, 賴以全活. 初太祖年三十, 夢見九層金塔立海中, 自登其上.

오히려 해석에 따라선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배를 십여척의 '대누선'이라고 기록한 것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기록대로 사방이 30미터급의 수송선이라면 10척중 몇대 혹은 열척에 나누어 탄 것이 3000명, 즉 한 척에 300명 정도라는 것도 가능해 보입니다). 다음의 원문을 마침표로 끊어보면, 3,000명이 탄다는 기록은 왕건선단의 100척이 아니라, 10척의 대누선에 더 관련있는 기록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어디서 문장을 끊고 잇느냐에 따라).

增治舟舸百餘艘. 백여척의 배를 만들다.
大船十數. 대선이 열척이다.
各方十六步. (대선의) 각 방면은 16보이다.
上起樓櫓. 누로가 위로 우뚝 서 있다.
可以馳馬. 가히 말을 질주할 수 있다.
領軍三千. 삼천군사를 거느린다.

이와 관련된 기록이 1478년에 작성된 [동문선]에 실린 기록입니다. 동문선은 아시다시피 삼국시대후기부터 고려때까지의 기록을 편찬한 것입니다. 그중 고려말의 문신인 이 첨(李 詹,1345-1405년)의 글입니다.

동문선
이첨(리첨)

살펴 생각하옵건대, 옛 병선(병선) 36척 선기외에 3도에서 새로 만든 병선 가운데에 대선 37척은 1척에 원칙으로 마땅히 150인을 쓰고, 중맹선 10척은 1척에 80인이요, 초마선 30척은 1척에 50인이니, 모두 헤아려 보면 배에 탄 사람이 4천 5백 사람입니다. 이것으로써 적을 공격한다면 어디 가서도 이기지 못하겠습니까. 군병(군병)의 위엄을 크게 펼치는 것이 족히 놀랍다 하겠습니다. (주: 이것을 보면 여말선초의 선박들이 위에 나오는 18세기 숙종대 직전까지의 대/중/소맹선들보다 더 규모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50: 80, 80:60, 50:30 명으로 각각 줄어듭니다. 기록에 보이다시피 숙종대에는 대선의 경우 수부만 120명으로 다시 커지고 있습니다). 중략.

옛적에 수나라가 진나라를 정벌할 때에 양소가 큰 배를 제조하니, 그 배를 오아라 불렀습니다. 그 배 안에 5층의 누각(루각)을 일으키니 높이는 백여 척이고, 군사는 8백 명이 탈 수 있었습니다. 다음은 황룡이라 부르는 배인데, 군사는 백 명이 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머지 평승과 책맹이라 부르는 배들은 위의 차례에서 제일 작은 배들이었습니다. 이제 중대선이라고 하는 배는 오아선보다는 적으며, 또 우리의 중맹선이란 것은 옛날의 황룡선입니다. 평승선과 책맹선은 그 크기가 지금의 우리 초마선과 같으나, 그 용도는 다만 왕래를 통하여 군사들이 쓸 나무와 물을 나르며, 보급을 대어 주는 일을 할 뿐입니다. 왕준이 오나라를 정벌할 때 이를 위하여 큰 배를 제작하였습니다. 배의 길이는 백 20보(보)쯤 되게 길며 2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으니 오아선보다 큰 배입니다.
(주: 여기 보면 이첨은 14세기당시 여말선초의 대전함은 150명으로 수나라의 5층누각선인 800명 탑승의 '오아'보다 작고, 중맹선은 80명이 탑승하고 수나라의 '황룡선'과 비근하다고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국가 해전(해전)의 준비가 이제부터 시작된다고 보겠습니다. 거기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이 배들 가운데에서 어느 배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저의 어리석은 생각으로 헤아려 보아도 용도는 진실로 큰 배에 있다고 보겠습니다. 양소가 친히 황룡선 수천 척을 거느리고 낭미탄(랑미탄)을 내려가니, 진나라 장수 척흔이 패전하여 도주하였고, 여중숙(려중숙)이 형문에 웅거하니 양소가 병졸 1천 명을 파견하여 오아선 4척에 나눠 태워서 적선 십여 척을 파괴시켰고, 무장한 군사 2천여 명을 생포하였습니다. 이것이 정말 뚜렷한 전과가 아니겠습니까. 또 지난 번 강주의 전역만 하더라도 배의 수가 많고 적음의 대적이 아니었으나, 도리어 우리가 승리를 거두었으니 이것은 큰 배를 쓴 전공이었던 것은 상공께서도 친히 보신 바입니다. 또 왜선의 크기가 우리의 중맹선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배가 작으면 배에 탄 병력도 따라서 적을 것이니, 어찌 감히 우리 중맹선에 당적하겠습니까. (주: 귀중한 기록으로 14세기당시 일본의 경우, 그 주력함의 규모가 중맹선에도 미치지 못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신 “작은 것이 진실로 가히 큰 것을 대적하지 못하며, 적은 수가 진실로 가히 큰 무리를 대적하지 못한다.”는 것이 바로 이것을 두고 하신 말씀인가 생각합니다. 이제 전쟁의 계책을 세움에 있어서, 중맹선을 정비하여 그 배들이 훼손되고 패괴된 것을 없게 하여서 생각하지 못했던 환란을 미리 경계하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그리고 초마선은 이미 준비된 바가 흡족하다고 생각합니다.지금 국가가 바야흐로 선박을 만드는 일에 힘쓰는 때이므로, 감히 저의 이 우매한 식견을 펴 본 것 뿐입니다. 이 중에서 채택할 만한 점이 있으셔서 만의 하나라도 베풀어 행하신다면 크게 국가에 다행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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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록을 보면 수나라의 오아라는 5층누선은 800명이 탑승하고 있습니다. 또한 14세기의 대규모 조선초 전함인 대선의 경우 150명을 수용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후대로 갈수록 탑승인원이 커지는 것은 결코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 태조 왕건의 '대누선' (엄밀히 말하면 궁예의 대누선)의 경우, 해석을 엄밀하게 (특히 당대 주변국가들의 기록들도 병행해서 연구할 필요가 있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3000명을 왕건에게 제작하게 한 대중소 선박 모두에 한번에 나누어타고 나주로 갔다는 식의 설명은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흥미로운 기록은 [동문선]기록중 이부분.
왕준이 오나라를 정벌할 때 이를 위하여 큰 배를 제작하였습니다. 배의 길이는 백 20보(보)쯤 되게 길며 2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으니 오아선보다 큰 배입니다.
20보길이의 배로 2천명을 수용했다는 구절입니다. 왕건의 대선의 경우 한면이 16보로 사면이라고 나오고 있지요.

참 흥미로운 것이 '문화컨텐츠'측의 설명을 보면, 이렇게 '중국의 대규모 누선'과 고려 누선이 다름을 강조하신 저자는, 그러나 반대로 저 '말을 질주할만 하다'라는 표현은 중국의 비슷한 비유표현을 끌어다 쓰면서 단지 '넓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할 뿐' 실제로 그런 정도는 아니라고 필요할 때는 중국측 기록을 가져다 쓰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이중잣대, 어불성설입니다). 더군다나, 사방이 16보라는 기록은 아예 무시하고 있습니다. [동문선]의 기록에서도 보이다시피 이미 고려-조선대에는 중국의 선박제도에 대한 지식도 상당합니다. 문화컨텐츠 글의 저자가 학자인지의 여부는 모르겠으나 이런 성급한 유추는 성실한 학자의 태도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2000년 방영된 역사스페셜에서는 이 대누선의 규모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간단한 실험을 했습니다. 아래 캡쳐에서 보이듯 배의 크기를 보여주기 위해서 실제로 운동장에 실제사람들을 모아서 비교합니다 (이것은 남북길이만을 29.2미터로 잡은 것입니다) 

당시 대선의 경계로 늘어선 인원수만 약 150명입니다. 먄약 이 배가 사료대로 더 넓다면 더 많은 인원이 탄다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 생각됩니다.
우리나라 선박을 정리한 책도 단 두권 (그것도 오래된 책들)밖에 없지만, 연구부족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으로 당연히 그 결과, 삼국시대부터 조선에 이르는 시대별 그리고 종류별 대표선박들의 가시적인 회화라든가 모델의 제공이 매우 부족합니다. 똑같은 이야기를 다음의 글에서 다룬 바 있습니다.

컨텐츠의 활용이라는 측면에서도 이러한 작업은 하루빨리 시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현재 문화컨텐츠닷컴에서 일부 제공되지만 부실해보이고, 매력적이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예전에 살펴본 거북선, 해골선, 그리고 판옥선등과 함께 이 '대누선'은 현재 사실상 제대로 복원해 놓은 그림 (정확히 어떤 어떤 안에 근거해서 그렸다는 버젼들)이 전무하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이 매력적인 소재를 여러 방면에서 되살리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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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10&cp_code=cp0231&index_id=cp02310117&content_id=cp023101170001&print=Y




덧글

  • 레이오트 2015/09/08 09:52 #

    1. 한국은 한반도 지형 특성상 결국 해양을 지향하게 되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2. 고려 조선기술은 세계적으로도 상위 랭킹을 차지할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그 예 중 하나가 2차례의 일본 원정이라고 합니다. 그 당시 고려군 함선이 상당히 부실하게 건조되었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태풍 피해가 원나라군 함선(주로 남송 수군 함선이었다고 하네요)보다 태풍을 더 잘 견뎌내었다고 합니다. 이것 외에도 일본 배들은 표류를 할 때 고려 배를 만난다는 것은 생존 플래그로 인식되었다고 합니다.

    3. 그건 그렇고 누로는 왠지 모르겠지만 파고다 마스트처럼 폭에 비해 높이가 꽤 높았을 것 같네요. 그래도 범선의 특성상 통상항해를 방해하지않을 수준이었겠지만요.
  • 역사관심 2015/09/09 11:01 #

    고려 선박의 우수성은 예전부터 썰로 많이 존재하는데, 좀 더 전방위적인 활발한 연구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마도선이니 하는 유구로 전하는 소형배에 그치고 있어서 좀 아쉽죠.
  • 낙으네 2015/09/08 10:32 # 삭제

    음, 이것도 흥미롭군요. 서해, 특히 태안 이런쪽에 가라앉은 고려선박이 많다고 하던데 군선은 없는것인지... 그러면 원형 추적이 좀 가능할텐데 말이죠.
  • 역사관심 2015/09/09 11:02 #

    말씀대로 군선이 아쉽죠. 하지만, 일본근해에서 원-고려연합 전함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런것도 좀 같이 연구하면 좋을텐데.
    http://luckcrow.egloos.com/2250737
  • 낙으네 2015/09/09 12:59 # 삭제

    헉, 가라앉은 군선이 진짜 있긴 하군요. 이거 어떻게 복원이 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역사관심 2015/09/10 06:03 #

    연구자체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전혀 소식이 없어서 ㅠㅜ
  • 최강로봇 도라에몽 2015/09/08 11:44 #

    한마디로 고려시대의.벌크선이었단 소리가 되려나요?? 어째 느낌이 그렇게 드는 것 같습니다.

    역시 고려시대때도 선박 솜씨 하나는...
  • 역사관심 2015/09/09 11:02 #

    혹은 항공모함? ㅎㅎ. 배만드는 솜씨, 선조들 정말 좋았던 것 같습니다.
  • ㅇㅇ 2015/09/08 13:02 # 삭제

    연구부족도 연구부족이지만

    한국 학자들의 지적 오만함과 극단적 발전사관에 기초한 자국비하 패배주의 심리

    때문도 크다고 봅니다

    그리고 한문이란게 어떻게 띄어서 읽냐에 따라서 해석차이가 크니..

    아무튼

    이렇게 역사의 모든 측면에서

    특히 한국사의 경우

    발전사관 직선사관을 부정하는 기록과 유물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데

    언제까지

    조선후기보다 조선전기가 더 나을수 없다

    조선시대보다 고려시대 삼국시대가 더 나을수 없다

    이런 논리를 고수할 껀지..

    참 답답합니다
  • 레이오트 2015/09/08 21:37 #

    기록에 대해서는 이전 시대를 능가하는 근현대에도 특정 기술에 대한 단절이 발생하면 그 격차를 만회하기가 정말 힘든데 말이죠.
  • 응가 2015/09/08 22:10 # 삭제

    각 시대마다 특징이 있는것 아니겠습니까.
    조선후기의 인삼무역이 고려시대의 벽란도 교역보다 비교가 안될만큼 거대하였지만, 조선전기는 열대과일인 리치를 제사상에 올리기도 하였고, 조선후기에 지금의 복잡한 한옥구조가 정형화 되었지만, 불전이나 누각같은 각종 대형건축물에 관련해서는 조선시대의 건물이 고려시대의 건물보다 특정건물을 제외한다면 규모면에서 떨어진다...이렇게 말하면 될까요?
  • 역사관심 2015/09/09 11:03 #

    각개격파식으로 여러 작은 주제와 연구가 결국 큰 담론으로 이어지리라 기대합니다.
  • 응가 2015/09/08 13:42 # 삭제

    지금은 왜이리 물에 관련된 문화가 매마른게 많을까요. 조선시대, 구한말까지만해도 황포돛배니 놀이배며 많은 사진과 그림이 남아있고 또 korean junk라 해서 대동강이나 한강, 압록강 만포진 같은곳에 황포돛배가 떠있는 풍경을 아름답게 그린그림이 서양화가에 의해서 상당히 많이 그려졌습니다. (연광정을 배경으로한 그림 http://blogimg.hani.co.kr/editor/uploads/2008/07/14/75540_96051.jpg_M513.jpg
    한강의 황포돛배 http://cfile206.uf.daum.net/image/2257C44B54C09C83144F35)
    근데 요즘은 뭐 경회루의 보잘것없는 배나 관광상품으로 만들어놓은 황포돛배보면 그저 한숨만 나올뿐입니다. 나라의 전통적인 이미지는 오히려 구한말과 일제시대가 더 나은지도 모르겠네요ㅔ
  • 이 감 2015/09/08 16:43 # 삭제

    구한말 사진들에 나오는 황포돛배나 어선들만 봐도 지금 관광용으로 만드는 한선들은 장난감같죠. 뭐...;;;
  • 역사관심 2015/09/09 11:04 #

    결국은 '돈'의 문제겠죠. 의지문제이고. 기술이 부족해서 못하고 있는 건 아닐진데... 경복궁 금천부터 어떻게 좀 했으면 합니다.
  • 존다리안 2015/09/08 15:18 #

    최무선이 만든 포격함인 화룡선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생김새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림이 남아 있던가요?
  • 역사관심 2015/09/09 11:05 #

    고려회화 자체가 전하는 게 한두점이니 회화는 정말 꿈속의 선물에 가깝습니다 흑.
    최무선의 전함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만약 있었다면 정말 흥미로울 듯 합니다 (아직 모르는데 한번 찾아보고 싶네요).
  • 평론가 2015/09/09 23:15 # 삭제

    우리나라 누선은 상당히 특이하죠. 중국이나 일본은 기와를 올리는데 약간 텐트형?인게 특이합니다.
  • 응기ㅣ 2015/09/10 14:15 # 삭제

    기와를올리기도하고 천막형태도있습니다. 평양에서찍힌 기와를올리고 배앞쪽을 봉황으로 장식한 놀이배 사진이있습니다.
  • ㅇㅇ 2015/09/10 15:42 # 삭제

    각 사방 16보라는 말은 이해가 안되네요. 배는 한쪽으로 길다랗기 마련인데 정사각형 배라는 것도 아니고
  • 역사관심 2015/09/10 23:49 #

    전공분야가 아니라 저 역시 확실히 이해는 안됩니다. 다만, 이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연구논문나 시도조차 본 적이 없군요. 이래서 이건 아니다라는 논증조차 없습니다. 이런 사료가 있으면 어떻게든 파악하려는게 아니라 가볍게 무시하고 넘어가는 풍토가 개인적으로는 좋아보이지 않습니다. 자꾸 비교하게 되지만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 지금의 시각으로 이해하기 힘든 기록도 그림이나 모형으로 구현해보고 시도해보곤 합니다. 그중 최대한 합의된 안을 채택하는 식인데, 우리는 그런 시도는 거의 없고, 좋게 말하면 최대한 조심스럽게, 비판적으로 말하자면 최대한 몸을 사리는 추정안을 택하곤 하는 모습이 장단점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답답할때가 더 많군요.
  • 봉래거북 2015/09/12 10:56 # 삭제

    한선 관련 책들은 제법 나오고는 있습니다. 국립해양박물관에서 전시회를 열거나 복원할 때마다 관련 도록이 나오고, 가장 최근 건 2012년 한선 연구계의 원로들이 쓴 한국전통선박 한선(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019969)이란 책도 있지요. 다만 말씀하신 대로 이 책의 모형 복원도 극도로 보수적이긴 합니다.
    본문에서 언급하신 누각의 문제도 네 면에 만들었다는 원문내용을 실었으면서 기존 역사스페셜 복원 식으로 만들었고(사실 역스 복원을 이 사람들이 만든 거지만) 거북선도 철갑이 없는 2층설 위주로 만들었고(그러면서 판옥선의 대형화포가 2층에 있다는 건 관련 사료가 비교적 최근 나왔을 텐데 잘 반영했습니다만...) 전반적으로 극보수적인 복원을 했습니다. 뭐 이순신 장게에 선원들이 아래층에서 쉬다가 위층으로 올라와 포를 쏜다는 기록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대형포는 2층 위주로 있었을 가능성도 아주 무시할 건 아닙니다만...
    한때 격벽과 늑골을 사용하고 용골을 덧댄 봉래고선의 발굴로 한선 이론이 바뀌는 거 아닌가 하는 얘기도 있었습니다만 얼마 전 관련 연구서를 보니 봉래고선은 사실상 중국 조선기술을 받아들인 쪽으로 결정난 것 같습니다. 하기사 이후 출토된 한선에서 격벽과 늑골이 안나오니...
    링크하신 문화컨텐츠 복원한 곳은 고증이 왔다갔다하는 곳이라...배는 그럭저럭 괜찮은데 이리저리 눌러보다 보면 조선시대면서 중국식 명광개 두른 장수가 나오니 뭐...
  • 봉래거북 2015/09/12 18:16 # 삭제

    김병륜님 네이버캐스트 보니 대포 배치 문서가 판옥선 관련 사료가 아니라 거북선 관련 사료네요
  • 역사관심 2015/09/15 06:31 #

    새 책이 나왔군요! 소개 감사합니다. 책의 첫장을 둘러봤는데 말씀대로 기존의 시각이 충실히 반영된 감이 있긴 한듯 합니다만, 한번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역.스. 복원판을 이분들이 만들었군요...
  • 봉래거북 2015/09/15 13:02 # 삭제

    이분들이 만들었다기보다는 ""이분들께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선에 대한 연구가 처음 시작되던 시절, 한선 수요가 없저져서 마늘행상으로 전직한 한선 기술자를 수소문해 찾아가서 한선 선 제작법에 대해 배우는 등 갖은 노력을 다한 세대고, 지금도 고선박 연구소를 설립하고 연구중이니까요. 대학원 입학 때 안 거지만, 현재 대한한국 사학계에 고선박 전문 연구자는 사실상 없습니다. 사실 현재 고선박 논문/책들을 봐도 사학 쪽보다는 기술공학 쪽에서 오히려 더 활발한 게 현실이죠.
  • 봉래거북 2015/09/15 13:07 # 삭제

    역스 방송 보면 한선에 대해 다룰 때는 이원식 선생님이 은근히 자주 얼굴을 비추십니다. 바꿔 말하면 그분 외에는 그만한 사람을 찾기 힘들다는 얘기도 되겠죠.
    저 책 자체는 한선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여타 어중이떠중이 식으로 대충 그래픽 복원자료만 긁어다가 채워놓은 흥미 위주의 한선 서적들보다야 훨씬 낫습니다. 물론 한선 연구에 대해 제일 좋은 자료들은 국립해양유물전시관 쪽 자료들이지만 이쪽은 직접 찾아가든지 대학도서관 아니면 접하기가 좀 힘들다는게 문제긴 하죠.
  • 역사관심 2015/09/15 22:53 #

    그렇군요, 각 세부분야에 전문가가 부족한 건 비단 이 쪽만은 아니지만... 선박강국이면서 전통적으로도 조선기술이 유명한 국가에서 이런건 참 암담합니다. 말씀해주신 책은 돈이 좀 모아지면 구입해보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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