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뱀 구슬 기담 추가버젼 (학산학언, 천예록, 동야휘집) 설화 야담 지괴류

예전에 거대뱀을 중심축으로 이야기를 살펴본 '우연히 표류하게 된 섬에서 구슬로 부자가 된 사신'이야기를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천예록]에 나오는 이야기였죠 (포스팅 중간에 다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보신 블로그 이웃인 남중생님께서 또다른 조선기담집인 [동야휘집]에 나오는 '박포장 이야기'를 링크로 소개해주셨더랬죠 (그 기담도 포스팅 중간에 첨부하겠습니다). 비슷한듯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x 2, 오늘 또다른 비슷하면서 또다른 구슬기담을 발견, 소개합니다. 이 이야기는 [학산학언]에 등장하는 것입니다.

학산학언

한 관리가 중국에 가는 사신의 부사가 되어 배를 타고 가는데, 바다 가운데에서 폭풍을 만나 침몰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바다의 신에게 제사해 빌고, 배 안 사람들의 이름을 써서 차례로 바다에 던지니, 부사인 이 사람의 이름만 가라앉았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부사가 인근 섬에 내려, 굴속에서 잠자고 준비한 양식이 다 떨어져 풀뿌리와 나무열매로 생활하니, 어느새 온몸에 털이 몇 치나 자랐다. 이렇게 18년간을 사는 동안 해안에 빛나는 돌멩이가 있어서, 그것이 보석인지도 모르고 주워 모아 7개의 포대가 이루어졌다. 

이때 우리나라 사람의 배가 근처를 지나다가 이 섬에 정박하니, 이 사람이 사실을 얘기하고 같이 태워 주기를 요청했다. 뱃사람들이 태우고 보니 7개의 포대가 값진 보석이 들어 있기에 그것을 탈취하고, 혀를 잘라 말을 못하게 만든 다음, 허리에 쇠사슬을 매어 채찍으로 때리면서 원숭이 춤을 추게 했다. 

그리고 상륙하여 시장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구경시키고 돈을 버는 것이었다. 어느 날 한 절에 들어갔을 때, 마침 감사의 사위가 절에 왔다가 갑자기 기절해 오랜 시간이 지나 깨어나니 이미 밤이 되었다. 감사 사위가 그 쇠사슬에 묶인 것을 보다가 자기의 생부임을 알게 되었다. 

감사 사위는 놀라 기절했다가 깨어나 곧 스님을 시켜 감사에게 연락했다. 그래서 감영에서 군졸이 와 뱃사람들을 모두 잡아 죄를 물어 적고, 부친을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아내가 살아 있었지만, 이후 같은 방에서 거처하지 못하고 외롭게 혼자 살았다. 재물이란 화를 부르는 근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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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의 핵심은 중국에 사신(직책명 부사)로 간 인물이 풍랑을 만나 각자의 이름이 적힌 물건을 바다에 던져 가라앉는 유일한 사람으로 결정되어 섬에 표류하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온몸에 털이나고 (마치 정조대의 기담인 '모인'(털인간)이야기가 연상됨), 18년간을 지내는데 7포대나 되는 구슬을 주워담아, 구출되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야기의 후반부에 가면 갑자기 비극으로 둔갑되는데, 이 구슬들이 어마어마한 부가 됨을 알아차린 구출에 동참한 뱃사람들이 이 사람의 혀를 자르고 원숭이 춤을 추게하면서 구경거리로 전락시킨다는 것이죠 (이것이 가능한 것은 이 사람이 '털인간'이 되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연히 한 사원에서 고을의 감사사위가 이 털인간이 자신의 아버지임을 알아차리고 구출해 낸다는 기이한 이야기입니다 (아들이야기는 이야기초반에 나오지도 않는데 갑자기 등장합니다).

이야기 자체로도 흥미진진하지만, 학구적으로 살펴볼만 한 것이 앞서 말씀드렸듯 아주 비근한 기담이 두 가지나 더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 이 이야기는 천예록의 이야기와 매우 흡사한 구석이 있습니다 (거대뱀 원 포스팅). 길지만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천예록
표류한 섬의 거대뱀에게서 두 섬의 구슬을 줍다

예전에 바닷길을 통해서 조천하는 사신의 행렬이 있었다. 사신 일행을 실은 배가 바다 한가운데 이르러 어떤 섬에 닿게 되었다. 그런데 바람이 섬에서부터 불어오기 시작하더니 배 주위를 돌며 파도를 일으켜 집어삼킬 듯하였다. 이때문에 배는 앞으로 나아가기는 커녕 금방이라도 뒤집힐 판이었다. 

사공의 말이, "배 안에 필시 수신(바다의 신)이 가지려는 물건이 있어서 이러하답니다. 그 물건을 바다로 던지면 무사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분명 위태로워 질겁니다" 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신 일행은 가지고 온 물건들을 바다로 내던지고 상황을 보았으나, 바람은 그래도 여전하였다. 그러자 사공이 다시 말하였다. "그렇다면 필시 잡으려는 사람이 있어서 이러할 겁니다."

이 말을 들은 사신은 대동하던 역관과 부관들 중 한 사람을 섬안에 내려놓고 보기로 하였다. 수십 명이 차례로 내려가 보았지만 전혀 효과가 없자 모두 배로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한 역관이 섬으로 내려갔는데, 그가 섬에 내리자마자 바람의 세기가 갑자기 잦아들며 물결도 잠잠해졌다. 사신일행은 이구동성으로, "이 사람에게는 안타깝게 되었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라고 말하며, 쌀과 나머지 식량을 잔뜩 내려주고, 죽 그릇과 칼 도끼등의 물품은 물론 역관이 소지했던 의복과 행장도 모두 꺼내 주었다. 서로 이별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많았으나 마침내 사신 일행은 배를 띄워 출발해 버렸다.

이곳은 원래 사람이 살지 않은 빈 섬으로, 잡짐승들도 없이 수목과 대나무만 울창하게 우거져 있을 뿐이었다. 남겨진 역관은 작두로 나뭇가지를 잘라 해안에다 나무집 한 채를 얽고 대나무를 베어다가 지붕을 이어 잠자리를 마련하였다. 밤이 되어 누워 있는데, 바다에서 '쉬익 쉬익'하는 소리가 섬쪽으로 들려왔다. 몸을 숨긴채 밖을 엿보니 한 거대한 이무기가 나타났다.
일본인 시게루가 그린 대구시 전설- 용마

어찌나 큰지 몸뚱아리는 집채만하고 길이는 수십 길이나 되었다. 섬의 제일 높은 곳으로 올라가더니 한참 뒤에 다시 섬에서 내려와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데 '쉬익 쉬익'하는 소리가 귓청을 울렸다. 매일 밤 이렇게 나타나며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그리고 가고 오는 길이 정확히 일치하여 조금도 벗어나는 일이 없었다.

역관은 대나무를 잘라 끝을 뽀족하고 예리하게 꽂아두고 그것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날 밤, '쉬익 쉬익'하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큰 이무기가 바다에서 나와 가던 길로 오고 있었다. 섬 위로 올라와 수십길을 전진하더니 그만 멈추어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곳에 그대로 엎어져 움직이지 않았다. 

다음날 가보니 이무기는 사력을 다해 대나무로 만든 못 위를 지나가다가 가슴과 배가 모두 찢겨 속이 터진 채 죽어 있었다. 며칠이 지나자 뜨거운 태양이 내리 쬐어 이무기의 몸뚱아리는 다 썩어 문드러져 악취가 온 섬을 덮었다. 역관은 나무 조각으로 그릇을 만들어 그 썩은 고기를 담아 모두 바다 속으로 던져 버렸다. 

그런데 주검이 있던 그 밑을 보니 크고 작은 명주(밝은 구슬)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널려져 있었다. 모두 두 섬 남짓 되었다. 역관은 갈대와 대나무를 베어 두 개의 가마니를 만들어 채워 넣고 다시 해변의 둥글고 희어 보기 좋은 조약돌로 구슬 위를 덮어 안 보이게 하였다.

몇달이 지나 사신의 선단이 돌아와 이 섬에 당도하였다. 역관이 무사히 살아남아 있는 것을 목격하고 여러 사람들은 모두 놀랍고 반가워 환성을 지르며 배를 대고 그를 맞았다. 역관은 가마니 두 섬을 배로 옮겨 실었다. 여러 사람들이 이것이 무슨 물건이냐고 묻자, 역관은 '내가 몹시 아끼는 해변의 조약돌로 직접 주워 모았으며, 짐이라곤 이것뿐이니 버리지 말고 실어주기 바란다'고 대답하였다. 사람들은 그가 죽지 않고 살아있는 모습에 기쁜 나머지 더 이상 따지지 않고 흔쾌히 실어 주었다. 아무도 이것이 명주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역관은 마침내 이것을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구슬을 거내 일부는 나라 안에 팔기도 하고, 또 일부는 왜관에 팔았다. 대부분 대단한 가치가 있는 보석이라 셀 수 없을 정도의 돈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마침내 나라의 거부가 되었다.
=====

여기 보면 우선 [천예록]이 훨씬 자세하지만, 완전히 비슷한 부분으로 두 가지가 있습니다.
1) 중국으로 가던 사신중 [학산학언]은 부사가, [천예록]에서는 역관이 어떤 형식으로든 추첨에 걸려서 섬에 버려진다는 점입니다. 다만, 학산학언에서는 바다에 가라앉는 물건여부, 천예록은 섬에 내려서 바다가 잠잠해지는 여부로 방식이 다릅니다.

2) 다음으로 구슬을 모아서 조선으로 돌아와 거부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학산학언에서는 일곱 포대, 천예록에서는 가마니 두 섬입니다. 

다른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거대뱀의 등장여부 (천예록만).

2) 구슬을 노린 뱃사람들의 배신 (학산학언만)- 특히 천예록을 보면 뱃사람들이 이게 뭐냐고 묻는데 주인공이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하고 있어 완전히 다릅니다.

3) 아들이 구출해주는 장면 (학산학언만)- 또한 '털인간'화되는 장면도 학산학언에만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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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마지막으로 [동야휘집]의 구슬기담을 살펴보죠 (남중생님의 글에서 퍼옵니다).

동야휘집- 박포장 (砲匠) 기담

박화포장(朴火砲匠)은 훈련도감의 군졸로 위인은 성실하였지만 얼굴이 매우 못생겨서 궁상이라고 조롱을 받았다. 그는 술을 퍽 즐겼으나 가난하여 마음대로 취할 도리가 없었다. 언제나 군문(軍門)에서 요미(料米, 급료로 받는 쌀)를 타면 곧장 술집으로 달려가 술 한 잔을 받아가지고 혼자 골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꽉 잠그고 몇 날 며칠을 새우고 나오는 것이었다.

그의 아내가 수상하게 생각하여 하루는 문구멍으로 들여다보니, 처음엔 두 손을 모으고 엄숙히 앉아 술을 앞에 놓고 한참이나 음미하며 차마 들고 마시지 못하는 것이 마치 사랑하는 여인을 대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문득 껄껄 웃고는 풀쩍풀쩍 뒤어가서 두 손으로 술대접을 받치고 쭉 들이키는 것이었다. 안주도 먹지 않고 흥치며 일어나서 무릎을 치고 노래를 부르며 빙빙 돌다가 금방 돌아와서 몸을 구부리고 동이에다 병에 물을 기울여 쏟듯 가는 물결을 일으키며 마신 술을 토해내는데 먼저만큼 동이에 차서 술이 조금도 축나지 않는 것이었다. 이윽고 다시 아까처럼 마시고 토하기를 수십 번이나 반복하니 해가 저물고 밤이 이미 새벽이었다. 이튿날 아내가 곡절을 물었더니, "내가 주량이 워낙 커서 졸지에 배를 채우기 어렵다네. 한 번 꿀꺽 마시고 나면 갈증을 참을 수 없어, 부득이 그렇게 마셨다가 토해냈다가 하여 아쉬운 대로 목을 축이고 흥을 돋우는 것이지."

그 때 해로(海路)로 중국 사신이 떠나는데, 박씨는 포장(砲匠)으로 끼이게 되었다. 대개 옛날엔 중국을 해로로 내왕했는데, 상사(上使), 부사(副使), 서장관(書狀官)이 각기 배를 따로 타고 표자 문서(表咨 文書, 외교문서)도 각기 일부씩 소지하여 불의의 사고에 대비했다. 가령 고려 때 상사 홍사범이 익사하고 서장관 정몽주가 홀로 살아온 것(1372년 사행선이 허산(許山) 앞바다에서 조난당한 일)이 그것이다.

사행선이 장연(長淵), 풍주(豊州, 황해도 송화군) 등지에서 출발하여 적해(赤海)와 백해(白海)를 건너는데, 그 사이 수천리에 허다한 도서를 거치고 바람과 조수를 보아 항로를 택하기 때문에, 항해 중의 필요한 물건과 중국 가서 무역해 올 밑천에 기예(技藝) 공장(工匠) 등 세 사람에 이르기까지 두루 구비하여 선적하게 된다. 사행선이 떠나매 지방관이 풍악을 크게 잡혀 전송하고 친족들이 뱃전을 잡고 울음으로 보내는 것이다. 지금 기악(技樂)에 타루악(拖樓樂), 선리곡(船離曲, 배따라기)이 있으니, 그때 전해오는 곡이다.

박포장은 상사의 배에 오르게 되었다. 동승한 수행원들은 각기 가산을 기울여 중국 무역을 해올 셈으로 모두 꾸러미가 풍성했으나, 박포장 만은 빈천한 사람인지라 홀로 냉냉하게 빈 몸 뿐이어서 동행자들의 비웃음을 샀다. 배가 넓은 바다로 나가자 파도가 갑자기 크게 일어 바야흐로 위험이 눈 앞에 있었다. 도사공이 말하기를, "일행 중에 불길한 사람이 있는 때문이오. 이런 위기에 당해서는 상하를 물론하고 각기 입은 옷 한가지 씩을 벗어내야 합죠."

모두들 그 말을 좇았다. 사공이 그 옷을 차례로 물 속에 던지니, 박 포장의 옷에 이르러 유독 물에 잠기었다. 사공이 "한 사람 때문에 배에 탄 사람 전부 수액을 당할 수 있소? 원컨대 속히 물 속에 집어넣어서 온 배의 생명들을 구하십시오." 한다. 

상사는 박포장이 죄없이 죽음에 나아가는 것이 가련하여 한참 동안 묵묵히 생각하다가 "이곳 가까이에 섬이 있느냐?" 사공이 대답하기를, "조그만 섬이 멀지 않은 곳에 있읍지요." 상사가 뱃머리를 돌리라 명하여 조그만 섬에 배를 대었다. 박포장을 섬에 내려놓으려는데, 그도 차마 못할 노릇이었다. "어찌 사람을 죽을 땅에다 내버릴 수 있겠느냐? 풍세가 잠잠해지니 굳이 안 그래도 되겠다." 하고 닻을 들라고 명했다. 그런데 배가 빙빙 맴돌면서 나아가지 못했다. 배에 탄 사람들이 모두 "지금 이 배 안에 틀림없이 수액을 당할 사람이 있소. 시험해 봅시다."

하고 한 사람 씩 하선을 시키는데, 여전히 위태위태 맴돌다가 박포장에 이르러 자유로이 움직였다. 그래서 만부득이 서로 의논하여 식량*의복*솥*도끼*칼 등속을 내려주고는 박포장을 섬에 남겨놓고 떠났다. 회로에 꼭 들려 그를 맞아 함께 돌아가겠음을 언약하고 서로 눈물로 헤어진 것이다. 박포장은 고도에서 혼자 풀로 움막을 얽어 비바람과 추위와 더위를 피하고, 조개*소라를 줍고 청개구리*메뚜기를 잡아서 배를 채우며 지냈다. 염라 대왕 외손자라도 꼼짝없이 절해 고도의 마른 뼉다귀가 되겠구나 싶었다.

항상 밤에 잠을 못이루고 귀를 기울여 듣노라면, 매일 새벽 바람소리가 섬으로부터 산을 흔들며 언덕을 스쳐 바다로 나갔다가 해가 지면 소리가 바다로부터 물결을 일으키며 섬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따. 아주 이상히 여겨 그때를 타서 나무숲에 몸을 숨기고 엿보았더니, 한 마리 엄청나게 큰 구렁이였다. 대들보 같은 몸체에 길이가 몇 백자나 될지 꿈틀꿈틀하는 괴물이 눈깔을 이글이글 번득이며 굴 속에서 기어나와 곰*사슴*멧돼지 등을 잡아삼키고 바다로 들어가서 고기류*거북류 등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것이 아닌가. 괴물이 다니는 길로 도랑이 나서 족히 배를 용납할 지경이다.

박포장은 칼을 예리하게 갈아서 괴물이 다니는 길목 곳곳에 날을 위로 하여 묻어두고, 주변의 대숲을 전부 베고 밑둥을 뾰쪽이 깎아놓았다. 황혼에 괴물이 바다로부터 나와 그곳을 통과하다가 주둥이에서 꼬리까지 칼날에 찢어지고 대끝에 찔려서 주기(珠璣, 구슬의 일종), 낭간(琅玕, 암록색의 돌보석), 화제(火齊, 구슬의 일종)[8] 등속이 쏟아져나와 골짜기에 흩어졌다.

며칠 지나자 비린내가 숲에 진동하고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가보니 커다란 이무기가 숲 속에 죽어있다. 괴물의 내장을 들어내니 한 치가 넘는 반짝이는 보물들이 몇 천 개가 될지 몰랐다. 풀을 엮어 싸서 한 말 부피로 대여섯 섬을 만들어 헌 옷가지로 덮어 두었다. 배 돌아오기를 기다린 지 반년이 흘렀다.

문득 큰 배가 돛을 달고 바다로부터 다가와서 외치기를, "박포장! 박포장!" 

곧 중국을 다녀서 돌아가는 사행선이었다. 서로 손을 잡고 위로하며 배에 태웠다.동행한 사람들은 중국의 남금(南金), 화패(火貝), 문단(文緞), 채금(彩錦) 등속을 사서 배에 가득 싣고 돌아온 것이다. 박포장은 하는 말이, "여러분은 모두 중국에서 값진 물화를 얻었는데, 나 홀로 고도에 떨어져 눈이 빠지게 기다리다 말았으니, 이게 다 운수지. 무슨 면목으로 돌아가 처자식을 대할지...섬에서 하릴없이 바닷가에 둥글동글한 자갈을 주어모았는데, 혹시 아내가 상을 고이고 베틀을 받치며 길쌈하는 데 쓰일까 싶소."

하고 대여섯 섬의 꾸러미를 들어올리는 것이었다. 동행한 사람들은 속으로 웃음이 나왔으나, 한편 불쌍히 여겨졌다. 돌아와서 그것을 시장에 팔았더니, 값이 수백만 냥이어서 박포장은 동방의 갑부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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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야휘집]의 본 이야기는 미묘하게 [학산학언] 그리고 [천예록]과 비슷하면서도 다릅니다. 우선 비슷한 점들입니다. 두 이야기 중 하나만 비슷해도 썼습니다.

1) 역시 중국사신으로 가던 중 섬에 '추첨'으로 버려집니다. 하지만, 추첨방식이 [천예록]과 완전히 같고, [학산학언]과는 다릅니다.

2) 거대한 뱀이 등장합니다. [천예록]과 완전히 같고 (더 자세한 설명이 붙지만, 죽이는 장면도 완전히 같습니다), [학산학언]에는 등장하지 않지요.

3) 역시 구슬을 많이 주워서 거부가 된다는 결말입니다. [학산학언]에서는 비극이 되지만, [천예록]과 같이 거짓으로 구출한 뱃사람들을 속여 위기를 모면합니다. 다만, 천예록과 [동야휘집]에서는 신기하게도 구출을 원래의 그 일행들의 귀환길에 하게 됩니다.

다른 점들입니다.
1) [학산학언]에서는 관직이 '부사', [천예록]에서는 '역관', [동야휘집]에서는 '포장' (총포를 만드는 사람)으로 모두 다릅니다. 더군다나 동야휘집에서는 "박씨는 포장(砲匠)으로 끼이게 되었다. 대개 옛날엔 중국을 해로로 내왕했는데, 상사(上使), 부사(副使), 서장관(書狀官)이 각기 배를 따로 타고 표자 문서(表咨 文書, 외교문서)도 각기 일부씩 소지하여 불의의 사고에 대비했다." 라고 되어 있어 '포장'이 따로 일행에 포함되어 있음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2) 구출이 되긴 하지만, [학산학언]에서는 뱃사람들이 악인으로, [천예록]과 [동야휘집]에서는 원래 같이 가던 사신단으로 묘사됩니다. 

3) 본 [동야휘집]이야기에서는 '박포장'에 대한 자세한 인물사가 전반부에 나옵니다. 이전 두 이야기와 달리 '주인공'이 아주 명확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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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기담들 (예를 들면 빗자루화되는 도깨비이야기라든가)이 공존한다는 것이 아주 특이한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 플롯이 특이한 구성의 기담이 각각 미묘하게 다른 버젼으로 3개나 존재한다는 것은 이 이야기가 조선조당시 꽤 유명하게 구전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됩니다. 우선 세 문헌의 시대는 다음과 같습니다.

천예록- 17세기후반 무렵 임방(1640~1724년)
학산학언-18세기초반 신돈복 (辛敦複, 1692~1779년)
동야휘집-19세기중후반인 1869년에, 이원명(李源命)이 각각 간행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연대별로만 나열해 보자면 [천예록]의 거대뱀과 야광주(명주)이야기에서, [학산학언]의 오늘 소개한 뱀이 등장하지 않는 구슬기담(털인간도 나오는)으로, 그리고 다시 19세기의 [동야휘집]의 거대뱀이 재등장하는 박포장이야기가 순서가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서로 영향관계가 꽤 이상하게 꼬입니다- 이야기의 중요 요소인 '거대뱀'이 중간에 사라졌다가 재등장하게 되죠. 그리고 결말부분이 세가지중 유일하게 비극적인 버젼이 연대상 중간에 끼어들게 됩니다.

각 이야기의 '자세한 묘사'부분, 예를 들면 동야휘집의 '박포장'이라는 인물이나, 학산학언의 '18년동안'이라는 정확한 표류기간이라든가, 천예록의 '역관출신이 왜관에 보석을 팔아 거부가 되었다'는 사실등을 잘 파고들어 본다면 어떤 이 이야기의 '원형'같은 사건의 존재가 떠오를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무튼 매우 흥미로운 비슷한 세가지 기담들입니다. 추후 더 발견되는 사실이 있으면 추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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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이선생 2015/09/21 11:15 #

    이름이 가라앉은 사람만 남는다는 것은 거타지 설화와도 흡사하군요.
    단 거타지 설화에서 용은 자기 종족을 잡아먹는 여우를 잡아달라고 부탁하는건데 이 이야기는 용(혹은 이무기)이 적으로 등장하는것이 흥미롭네요.
  • 역사관심 2015/09/21 10:41 #

    그러고보니 거타지설화가 또 있었군요. 한번 또 생각해볼만 합니다. 흥미진진...
  • 메주도사 2015/09/24 11:34 # 삭제

    장산범 검색하다가 우연히 들렀는데 정말 재미있네요ㅎㅎ
    제가 좋아하는 전설이나 설화, 기담이 가득..ㅠㅠ
    즐겨찾기 해두고 자주 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역사관심 2015/09/25 11:29 #

    반갑습니다 자주 들러주세요~.
  • 남중생 2019/01/11 05:05 #

    ㅠㅠㅠ 역사관심 님, 이런 포스팅 쓰셨는 줄도 모르고 제가 여태껏 답도 못 달았네요.
    제가 이번에 쓴 글에서는 역사관심 님께서 마지막에 말씀하신 "이 이야기의 원형같은 사건의 존재" 쪽으로 파고들어봤습니다.
  • 역사관심 2019/01/12 04:41 #

    감사합니다! 새 글도 잘 읽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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