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해외옥션에서 발견한 18세기 조선 양각조각판입니다. 얼핏 보기에도 굉장히 희귀해 보이는 것으로 적어도 필자는 이와 흡사한 조선시대 조각은 경험이 없습니다.
우선 옥션측의 설명입니다.
Very Rare Carved Battle Scene Panel with Inscriptions
A Very Rare Open Carved Battle Scene Panel with Inscriptions Korea, Choson, 18th –early 19th Century This open worked and mineral pigment painted with gold, silver, red, green, blue, yellow and black panel to be believed to have ornermented the attar of a temple or a Gerneral’s pavilion in commemoration of the battle scene.againt his enemy about 800 years ago or older (It’s believe to be a battle scene between Koryo (高麗 ,고려) and Yuan ? (元, 원).
Made of wood approximately 2 inches thick,various images of Generals on horses back with long poles with short knifes, long swords, and each side soldier holding a large banner in a deep forest fields. This is a very rare Korean open worked panel with a mineral color in a battle scene. It is in excellent condition without any noticeable damages at all. It measures 36 1/2” x 10” x 2” thick (93cm x 25,5cm x 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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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을 보신대로, 아주 희귀한 전투장면을 새긴 조선 18세기에서 19세기초의 조간판이며, 장식조각 (사찰등)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매우 드문 각종 채색을 새긴 조각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긴쪽의 길이는 약 93센티로 꽤 크죠. 아쉽게도 이미 팔렸습니다.
이 조각이 흥미로운 것은 미술양식자체도 그렇지만, 이는 필자의 관심사는 아니고 세가지 측면때문입니다.
1. 전투장면을 담고 있는 조각품,
2. 고려대원수라고 나부끼는 깃발 (즉 고려 대 어느 나라의 전투씬)
3. 관우로 추정되는 고려측 장수의 모습
우선 이렇게 맹렬한 창검 전투씬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언월도 대 방천화극... 생생하죠.
긴수염의 장군뒤에 군사들이 들고 있는 깃발에는 선명하게 '고려대원수'라고 씌여 있습니다.
필자가 스스로 파악하기 힘들어 댓글로 이웃분들께서 답을 주셨습니다. 다시 보니 "성씨 설 薛" 자가 맞는 것 같습니다.
확대한 것입니다. 아무리 옥편을 들여다보아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옥션측 영문설명에는 고려의 역사를 참조했는지 '원'나라와의 전투씬이 아닐까 추정하고 있는데, 이 경우 원측의 장수깃발중 하나가 될 수 있겠지만, 역시 댓글로 여러분께서 알려주신 추정이 더 옳은 것 같습니다.
즉 이것은 고려 대 원이 아니라 그 전대의 고려, 즉 고구려 연개소문 대 당나라의 설인귀(薛仁貴, 613년 ~ 683년)의 전투라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고려대원수깃발아래에는 한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오른쪽은 탁본을 뜬 것입니다 (Nocchi 님의 "xx담의 제자 황득령이 공경하여 새기다 (XX潭 弟子 黃得令 敬刻)" 해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황득령이라는 사람은 사료에서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관우의 모습에 가까운 고려(고구려)측 장수모습입니다. 사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에서는 관우를 받들어 모시는 풍습이 많아졌죠. 그래서 그를 수호신격으로 사당에서 모시는 모습이 종종 발견됩니다. 임란기록중 하나인 [갑진만록]을 보면 윤국형(尹國馨, 1543∼ 1611년)의 자세한 설명이 나옵니다.
갑진만록(甲辰漫錄)
판서 윤국형(尹國馨) 찬
○ 중국 사람들은 관왕(關王 관우(關羽))을 존경하여 국가에서 사당을 세우는 외에 집집마다 화상을 그려 놓고 생활하거나 음식을 먹을 때에는 반드시 제사를 올리고,특히 전쟁에 출동할 적에는 더욱 정성을 드린다.
무술년 봄과 여름 사이에 명 나라 군사가 많이 왔을 때, 남대문 밖 도제고현(都祭庫峴)에 관왕묘(關王廟)를 세웠는데,대소의 장수들이 예를 드리지 않는 이가 없었고, 심지어는 성상께 예를 드리도록 청하기까지 하였다.기해년 전쟁이 끝나 군사가 돌아갈 적에, 성지(聖旨 중국 천자의 분부)를 받들었다 하고, 동대문 밖에 사당을 세우는데 관원 한 사람을 두어 공사를 감독하게 하였다.그 비용을 비록 중국에서 지급한다고 하지만, 그 액수는 얼마 되지 않았고,공사가 커서 모두 우리 나라에서 재력(財力)을 동원하게 되니, 그 수는만 냥도 넘었다.공사가 끝난 다음에는 국가에서 관리를 두어 지키도록 하였다.
도제고에는 소상(塑像)을 세웠고, 동대문 밖에는 동상(銅像)을 세웠다.관왕이 비록 충성스럽고 용맹스러운 장수라고는 하나, 남의 손에 죽음을 당한 사람이고,공이 후세에 끼쳐진 사람도 아닌데,중국에서 이처럼 존경하니, 그 까닭을 알 수 없다.어떤 사람의 말에는,‘고황제(高皇帝 명 태조(明太祖)주원장(朱元璋)을 가리킴) 때에 신병(神兵)을 내어 도왔다.’ 하나,알 수 없다.
바로 이런식으로 관우를 모시고 있죠 (모두 서울에 있습니다).
필자는 고려대원수라는 글자에 의지해 고려 (고구려가 아닌) 당대의 '원수'직책을 맡은 이방실이나 김득배로 추정해 보았습니다만, 이 추정은 고구려 대 설인귀 (설자가 밝혀짐으로 인해)라는 추정이 더 옳은 듯 하여 지웁니다.
또한 게렉터님, 낙으네님, 도연초님등의 말씀을 살피고보니 예전에 다큐멘터리로 중국 경극에서 연개소문 대 설인귀의 모습을 '이런 관우와 비슷하면서도 더 악인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린 것을 본 기억이 납니다.
바로 이 악인의 모습 (중국 경극의 연개소문)
그리고 경극에서 이렇게 설인귀와 한판을 벌입니다. 따라서 관우로 보인 것은 착각...
만약 이 조각이 옥션측의 설명처럼 조선의 작품이라면 매우 희귀한 것입니다. 중국측것이라도 희귀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흥미로운 조각입니다.
덧글
상대편 장수 한자는 爵 같기도 하고 薛 같기도 하고... 설인귀?
고려는 고려왕조가 아니라 고구려 일지도 모르겠다는 망상을 하고 갑니다
실제로 창작에서 설인귀는 여포의 상징이기도 한 방천화극을 주무기로 쓰는데다 독목관에서 연개소문은 '관우와 닮은 모습의 잔인무도한 맹장'으로 묘사되거든요
말씀대로 이런 조각은 처음 접했습니다..
마치 경극의 한장면을 연상케 하네요.
http://cfile239.uf.daum.net/image/2271CB3B5264A322260E8E
이글루스 아이디가 없어서 비로그인으로 글 남기게 되네요 ㅈ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