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의 조선중기 무릉도원武陵桃源, 그리고 위치추적. 설화 야담 지괴류

4세기의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이래 무릉도원은 동아시아에서 '이상향'으로 꿈꿔 온 환상의 장소입니다. 그 특징은 한번 우연히 발을 들여놨더라도, 그 이상향의 주민이 아닌 외부인은 일단 그곳을 떠나면 다시 들어가기 힘든 숨겨진 곳이란 점이지요.

그런데 16-7세기 조선중기에 무릉도원과 비슷한 이상향이 야담에 몇 군데 나옵니다. 공통점은 강원도. 우선 첫 이야기는 매우 구체적입니다.

조선중기 무릉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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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야담

백문 밖에 사는 권진사는 어린 나이에 성균관에 들어갔으나 공부에는 뜻이 없고 오로지 놀러다니기만 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사마천처럼 세상을 유람하는 풍취가 있다고 자부하였다. 그는 전국을 두루 돌아다녀 안 가본 곳이 없었으며, 명산대천과 경치 좋고 조용한 곳은 모조리 찾아갔고 어떤 곳은 두세번 가기도 하였다.

그가 어느날 춘천 기린창에 갔는데, 그 날은 마침 장날이었다. 권진사가 주막에 앉아 있는데 약립을 쓰고 소를 탄 어떤 사람이 주막에 오더니 그 곳의 주모에게 물었다.

"저 방 손님은 어떤 양반이오?"

주모가 말하였다. "저 분은 서울에 사시는 권진사님입지요. 전국 팔도를 두루 돌아다니며 유람하지 않은 곳이 없는데, 저희 집에도 3번이나 오셨기에 편히 지내고 계십니다."

"저 양반이 잘 아는 게 있소?" "풍수지리학에 꽤 통달하셨지요." "그럼 내가 혹시 저 분을 좀 모셔갈 수는 없겠소?" "아마 괜찮을 겁니다."

잠시 뒤 주모가 방에 들어가 권진사에게 고했다. "어느 마을에 사는 첨지가 진사님의 재주를 듣고 지금 진사님을 모셔가겠다고 청하고 있습니다. 진사님께서는 의심하지 마시고 잠시 다녀오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마침 권진사는 주막에만 며칠을 있어 심심했기에 바로 대답했다.

"이 곳에서 멀지만 않으면 한 번 놀고 오는 것을 내 어찌 마다하겠소." 이에 첨지라는 자가 와서 권진사를 뵙고 말하였다.
"제가 진사님의 명성을 들은지 오래입니다. 제가 지금 소를 타고 왔으니 잠시 누추한 제 집으로 가시는 게 어떠실지요?"

권진사가 물었다. "첨지의 집이 이 곳에서 몇 리나 되오?", "이 곳에서 30리 밖에 있습니다."

그래서 바로 같이 소를 타고 가게 되었는데, 첨지는 고삐를 잡고 뒤에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정오 무렵이었다. 타고 있던 소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걸었다. 대략 3, 40리쯤 갔을 때 권진사는 첨지에게 물었다.

"영감께서 사시는 마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구려." 
"제가 사는 곳은 아직 멀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몇 리쯤 온 것이오?"
"80리 정도 왔습니다."

권진사는 몹시 이상히 여기며 말했다.

"지금 이곳까지 거의 100리를 왔는데도 마을이 아직도 멀리 있다니요? 그럼 어째서 처음에 30리라고 거짓말을 하셨습니까? 영감은 나를 속여 데려가서 무엇을 하려는 것입니까?"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주막 주인은 내가 30리쯤 되는 마을에 산다고만 알지, 내가 진짜 사는 곳은 알지 못합니다."

권진사는 마음 속에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와버린터라 그냥 가기로 했다. 마을로부터 30리 정도 나오자 그 후에는 계속 깊은 산과 골짜기였다. 낙엽은 사람 정강이까지 차올라 있는데, 그 사이에 단지 작은 길 하나만 나 있었다.

오후 세네시쯤 되자 첨지가 소를 멈추며 말했다.
"잠시 내려서 요기나 하고 가시지요."

권진사는 소에서 내려 물가에 가서 앉았다. 미리 가져온 도시락을 먹고 물을 떠서 마신 뒤 다시 소를 타고 갔다. 해는 이미 서산에 지고 시간은 황혼으로 향하고 있었다. 잠시 뒤 멀고 먼 곳에서 어떤 사람이 부르는 소리가 나자 첨지가 [왔네!] 라고 크게 소리쳐 대답했다. 권진사가 소의 등 위에서 보니 수십명이 횃불을 들고 고개를 넘어오는데, 모두 젊은이들이었다. 이들이 횃불을 가지고 권진사와 첨지 가는 길을 인도했다.

고개를 넘어 내려가자 어렴풋한 가운데 한 큰 마을이 있고, 닭과 개 짖는 소리, 다듬이 방망이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곧 어떤 집에 도착해 소에서 내려 문 안으로 들어가니, 방과 창이 정교하고 깨끗하였으며 용마루와 처마가 앞이 탁 트여 널찍하였으므로 산골 촌사람들이 사는 곳 같지 않았다.

그 다음날 마을을 두루 살펴보니, 인가는 200여호 되는 것 같았고 앞에 펼쳐진 평야는 끝없이 펼쳐져 있는데, 모두가 기름진 땅이었다. 그 둘레가 얼마나 되는지 물어보자 20여리라고 하였으니, 이 곳은 사람들이 모르는 세상 밖 무릉도원이었다.

또 벽을 사이에 둔 대여섯간의 방에서는 밤마다 책 읽는 소리가 들려 물어보니, 마을의 젊은이들이 헛되이 시간을 낭비하며 놀지 않고 주경야독하며 모여서 공부한다는 것이었다. 권진사가 팔도를 두루 유람하면서 소원이 무릉도원을 한 번 보는 것이었기에 너무 기쁜 나머지 첨지에게 무릎을 꿇고 물었다.

"주인께서는 신선이십니까, 귀신이십니까? 이 마을은 무슨 마을입니까?" 

첨지가 놀라서 말했다. "진사님! 어째서 갑자기 존댓말을 하십니까! 나는 괴상한 사람이 아닙니다. 선대에는 경기도 고양에 살았는데, 우리 증조부께서 마침 이 곳을 찾아서 이사를 왔습니다. 그 때 친가 외가 친척을 통틀어 따라오고 싶어했던 30여호가 따라왔지요. 일단 이 곳에 온 후에는 세상과 연을 끊기로 하고 경서 몇 권과 소금, 양념만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땅을 개간하고 논을 만들어 먹을 것을 해결하였고, 결혼은 이 안에서 해결해서 우리끼리 살고 있습니다. 자손이 번성하여 이제 마을에 집만 200채 가까이 됩니다."

"먹고 입는 것이여 이 안에서 농사 짓고 베 짜는 것으로 한다고 하여도, 소금 같은 것은 어찌 하십니까?"

"진사님께서 어제 타셨던 소는 하루에 200여 리를 갑니다. 저희 증조부께서 이 곳에 오실 때 데려온 소가 새끼를 낳은 것인데, 이처럼 잘 걷는 소가 매년 한 마리씩 태어납니다. 이웃 마을에 다닐 때는 이 소를 타고가서 소금을 사옵니다. 산에 노루, 사슴, 멧돼지, 산양이 있으니 그 고기를 먹고, 산 주변에 벌꿀통 300여개를 치고 있는데 주인이 없이 서로 양보하며 쓰고 있습니다."

하루는 첨지가 소년들에게 말했다.
"오늘은 날씨가 좋으니 권진사님을 모시고 물고기나 좀 잡아오거라."

그 소년들 중 어떤 소년은 겨와 쭉정이를, 어떤 소년은 뾰족하게 깎은 막대기를 가지고 일제히 한 연못에 모였다. 물 속에 겨를 풀어 넣고 그것이 아래로 가라앉자, 소년들은 일시에 몽둥이를 가지고 수영하며 내리쳤다. 조금 지나니 한 자나 되는 물고기들이 물 위로 떠올랐다. 무슨 고기냐고 묻자 [목멱어] 라고 하였는데, 붕어와 비슷하였으나 흰 비늘이 있었다.

권진사는 한 달 가량 그 마을에 머물며 모든 것을 구경하였다. 그 마을을 떠날 때 첨지는 거듭 부탁했다.

"이 마을은 춘천도, 또 낭천도 아닙니다. 이 너른 들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 몇 리나 되는지 알지 못하는데다 사람들이 이곳에 온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합니다. 진사님이 이 곳에 오셨던 것도 다 인연이니, 이 산을 나가신 후에도 다른 사람에게 이를 알리지 마십시오." 권진사가 말했다.

"나도 집에 돌아가 가족들을 데리고 다시 오겠습니다." 첨지가 말했다.

"쉽지 않을 것이오. 쉽지 않을 것이오." 

권진사는 산을 나온 이후 늙도록 집에서 머물며 매일 탄식하였다. "내 평생에 한 번 진짜 무릉도원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그만 속세일을 완전히 벗어버리지 못한 까닭에 집안 사람들을 데리고 그 곳에 가지 못하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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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담은 [청구야담] (편찬추정-1826∼1835년)에 실려 있는 것으로, 매우 특이한 점은 어쩌다가 찾아가게 된다는 여타 무릉도원적 이야기와 달리, 그 이상향의 장로급의 노인이 직접 주인공인 권진사를 마치 스카웃하듯 마을로 데려간다는 플롯입니다.

이 곳은 어디일까요? 한가지 단서 "그가 어느날 춘천 기린창에 갔는데, 그 날은 마침 장날이었다." 즉 이곳은 춘천에서 약 80여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곳이란 것입니다. 즉 '강원도' 어디쯤이죠. 

위치는 깊은 산속으로 낙엽을 헤쳐야 보이는 좁은 길을 따라 구불구불 들어갑니다. 마을에 들어가보니 산촌스럽지 않은 좋은 주택들이 약 200호이 있고 젊은이들이 많으며 양봉까지 하는등 경제적으로도 풍요롭습니다. 그리고 고장의 명물로는 속세에 없는 '목멱어'라는 물고기가 잡힙니다.

주인공은 가족을 데리고 오겠다고 마을을 떠나지만, 다시 돌아오지 못해 평생 한이 되었다는 이야기.

두번째 이야기 역시 같은 저서에 실려 있는 것으로 이번에는 춘천에서 약간 남쪽인 강원도 이천지역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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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야담
병자호란을 예언한 이인(覘天星深峽逢異人)

서울의 한 선비가 함경북도에 갔다가 산 속의 지름길로 와서 하루만에 강원도 이천 즈음까지 이르렀는데, 날이 이미 저물고 있었다. 사방은 산으로 둘러 쌓이고 큰 나무가 높이 솟아 아직 낮인데도 호랑이와 표범이 으르렁대고 이리와 여우가 뛰어다녔다. 이곳 저곳을 돌아다녀봐도 사방이 고요하고 인적이 없었다.

선비가 사람 사는 집을 찾아 돌아다니다 문득 큰 돌을 보게 되었는데, 돌 가운데가 열려 있어서 마치 돌로 만든 문 같았다. 큰 강이 그 가운데에서 흘러나오며, 때때로 부추 잎이 떠내려 왔다.

선비가 말했다. "이 안에 반드시 사람이 살 것이다. 아마 무릉도원이나 신선이 사는 곳일게야!" 선비가 시종에게 헤엄쳐 들어가도록 시켰다. 한참 있으니 시종이 작은 배를 타고 왔다.

선비도 그 배에 타서 노를 저어 강을 거슬러 가다 물이 그친 곳에 배를 세우고 언덕 위로 올라갔다. 이곳 저곳을 찾아다니다 어떤 곳에 도착했는데, 그 곳에는 민가 수백채가 있었다. 산은 높고 골짜기는 깊어 세상 모습과는 전혀 달랐고, 마을이 맑고 깨끗해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나왔는데 옷이 옛날 옷이었고 얼굴은 세속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노인이 선비를 맞이하며 말했다. "이 곳은 깊숙하고 조용한 곳이라 인간 세게와 통하지 않은지 벌써 백년이 넘었소. 세상에서 이 곳을 아는 자가 없을 터인데 그대는 어떻게 이 곳에 오셨소?"

선비가 산길을 걷다 길을 잃었다고 말하자 노인은 그를 맞아들이고 저녁밥을 먹였는데, 산나물과 채소 등은 결코 세간에서 먹을 수 있는 맛이 아니었다. 식사를 마치고 노인과 선비는 같은 방에 누워 잠을 자며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노인이 말했다.
"나의 몇대 선조님이 더럽고 시끄러운 세상을 싫어하여 동지 5, 6인을 거느리고 이 곳에 자리 잡은지 거의 백여년이 흘렀소. 한 번도 이 산 밖으로 나가본 적 없이 아들, 딸 낳고 서로 시집, 장가보내서 지금은 수백채의 집이 있는 마을이 되었소. 밭을 갈아서 먹고, 베를 짜서 옷을 입으며, 서로 싸우지도 않고 세금도 없소. 다만 나뭇잎이 떨어지면 가을이구나 하고, 꽃이 피면 봄이구나 할 뿐이지요."

밤이 깊자 함께 뜰을 거닐었는데, 갑자기 별 하나가 지는 것을 보고 노인은 놀라며 말했다.
"평구에 사는 박진헌이 죽었구나."

그리고 노인은 또 탄식했다.
"가까운 시일에 반드시 전쟁이 일어날 것이니 이를 어찌할꼬?"

선비는 이상하게 생각해서 행랑 속에 있던 책에 그 날짜를 적어두고 노인에게 물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화를 피할 수 있습니까? 부디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노인이 말했다.
"강릉이나 삼척 쪽으로 피난가면 화를 면할 수 있을 것이오."

다음 날 선비가 석문을 나서 집으로 돌아가다, 평구에 들러 박진헌이라는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자 마을 사람이 말했다. "이미 죽었습니다."

죽은 날짜를 물어보니 과연 별이 떨어지던 그 날 밤이었다. 그 후 병자년 겨울에 청나라 오랑캐가 쳐들어왔다. 선비는 노인의 말을 생각해내서 아내를 데리고 삼척으로 피난을 가서 온 집안이 무사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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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이야기 역시 '무릉도원'에 굉장히 가까운 것으로 특히 '물속에 있는 동굴에서 부추 잎이 떠내려온다'는 구절은 복숭아 꽃잎으로 무릉도원을 처음에 발견하는 것과 거의 흡사합니다. 앞선 이야기와 달리 산속일 뿐만 아니라, 그전에 배를 타고 물길을 헤쳐 올라가야한다는 점이 흥미롭죠. 이번에는 선비(주인공) 혼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시종도 갑니다.

그 곳에 사는 노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몇대 선조님이 더럽고 시끄러운 세상을 싫어하여 동지 5, 6인을 거느리고 이 곳에 자리 잡은지 거의 백여년이 흘렀소. 한 번도 이 산 밖으로 나가본 적 없이 아들, 딸 낳고 서로 시집, 장가보내서 지금은 수백채의 집이 있는 마을이 되었소. 밭을 갈아서 먹고, 베를 짜서 옷을 입으며, 서로 싸우지도 않고 세금도 없소. 다만 나뭇잎이 떨어지면 가을이구나 하고, 꽃이 피면 봄이구나 할 뿐이지요."

따라서 벌써 이뤄진지 백년이 넘는 고장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노인은 '도인'에 가까운 양반으로 이 숨겨진 도원에서도 바깥일을 천리안으로 알 수 있는 능력자입니다. 전쟁 (여기서는 병자호란)이 터질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1636년 이전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어느날 '평구에 사는 박진헌'이라는 사람이 죽었다고 탄식하죠. 박진헌이라는 사람은 정식 사료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출처를 알 수 없는 글로 문화컨텐츠 사이트에 이런 흥미진진한 글이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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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구에 박진헌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글재주와 무예가 모두 남보다 뛰어났다. 정수의 하늘닭 별자리가 높이 떠 있을 무렵, 박진헌은 사냥을 나갔다. 푸드득 날갯짓을 하며 달아나는 꿩을 발견한 박진헌이 화살을 쏘았다. 그러자 꿩은 화살을 맞은 채로 숲 속으로 뛰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늘닭 별자리가 이동했다. 

마치 숲 속으로 들어간 꿩이 있는 곳을 알려주기라도 하는 듯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하늘닭 별자리가 멈춰선 순간, 박진헌은 화살을 꽂은 채 달아난 꿩을 쫓아 숲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꿩은 온데 간데 없고 다만 한 권의 책이 놓여 있었다.

“이게 무슨 책이지?” 박진헌이 책을 들어보았다. 그것은 운수를 점치는 천문 책이었다. 박진헌은 사냥을 했던 꿩은 잊은 채 천문 책을 읽고 또 읽기 시작했다.

어느 날, 박진헌과 매우 가까운 친척인 이이첨이 찾아왔다. 이이첨은 박진헌의 학문과 무예가 남달라 그가 쉽게 출세할 것이라 생각하여, 그와 가까이 지내고 싶어하였다.

“내, 자내와 같은 친척이 있어 자랑스러우니, 친척끼리 잘 지내보세.”

이인첨은 당부의 말을 남기도 돌아갔다. 이인첨의 머리위로 밤하늘에 떠 있는 하늘닭 별자리의 별빛 끝이 가시처럼 돋아나 뿔같이 보였다. 박진헌이 찬찬히 하늘닭 별자리의 움직임을 보며 말했다.

"저 사람은 본시 흉악한 사람이라, 필시 장차 목이 잘리고 멸족을 당할 것이다."

박진헌은 그와 더불어 사귀기를 기꺼워하지 않았다. 이이첨은 관직이 높아질수록 막강한 권세를 장악하였다. 그는 정인홍과 함께 자기 심복을 끌어들여 대북의 세력을 강화하였고, 임해군과 유영경을 죽게 하는 등 소북 일파를 숙청하였다.1612년에는 김직재의 죄 없는 사람을 무고하여 일으킨 옥사 때문에, 김직재와 그 아들 백함, 선조의 손자진릉군 태경 등을 죽였다.

이 글을 보면 이이첨(李爾瞻, 1560 ~ 1623년)이 박진헌이라는 양반의 친척으로 나오고 있어 역시 위의 기담과 시대가 맞아 떨어집니다. 즉 17세기이전입니다. 이 글에서 박진헌이라는 사람은 '풍수지리에 관한 도가서적'을 입수하고 도인이 된 것으로 보여, 강원도 무릉도원의 노인과 서로 상통하는 사람이었음을 유추케 합니다.

물론 이 이야기들은 야담일 뿐입니다. 하지만, 재미로 한번 생각해 볼때 실제로 있었다면 그럼 이 곳은 어디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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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했던 환상의 가일(可一) 마을

[청구야담]이라는 야담집과 달리 조선문인의 정식 문집인 [약포집]에는 이런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약포집 기(記)
가일재기〔可一齋記〕

내 친구 예성(蘂城) 안돈숙(安敦叔)이 춘주(春州 춘천)에서 돌아와 종남산 우사(寓舍)로 나를 찾아와서 나에게 말하기를 “내가 우거(寓居)하고 있는 고을에 새롭게 별장터를 잡아 ‘가일(可一)’이라 이름을 붙였네. 삼면(三面)이 산으로 둘러 있고 한 면이 물에 가로막혀 있어서 외부인들은 사람이 사는 줄도 모르네. 

이곳을 찾아오는 자는 반드시 뗏목을 타고 물을 거슬러 오다가 10여 리쯤 와서 비로소 언덕에 내리면 하나의 골짜기가 보이는데, 산이 밝고 물이 맑아 무릉도원(武陵桃源)에 그다지 양보할 것이 없네. 내가 장차 풀을 베고 돌을 쌓아 작은 집을 짓고 우거하면서 노년을 마칠 생각이네. 공이 나를 위해 기문을 지어 주시게나.”라고 했다.

내가 말하기를 “무릇 사람이 성시(城市)에 살기를 좋아하는 것은 온 세상이 다 그러하나 달사(達士)는 스스로 멀리하고, 영화와 이익을 좋아하는 것은 천만년을 두고 똑같으나 고사(高士)는 스스로 피한다. 스스로 멀리하고 스스로 피하는 것은 옛사람들만이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근세의 군자 중에서도 또한 많이 있으니 어찌 말이 없을 수 있겠는가.

대저 사람들이 자신의 덕을 고수하지 못하는 것은 대부분 동요하는 데에 달려 있으니, 대현(大賢) 이상(以上)으로서 수양을 충분히 하여 굳게 지키며 돌아보지 않는 자가 아니라면 스스로 확립하여 그 덕을 온전히 할 수 있는 자가 드물다네. 그러므로 군자는 이를 삼가며, 거처와 연관됨은 그 절실함이 이와 같다네. 지금 돈숙이 정토(淨土)에 터를 잡고 속세를 영원히 작별하여 장차 그 덕을 온전히 할 방법을 찾고 있는 것도 어찌 여기에서 볼 수 있지 않겠는가.

내가 생각건대, 저 ‘가일(可一)’ 구역은 별다른 하나의 동천(洞天)이네. 푸른 산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맑은 물이 비단을 펼쳐놓은 것처럼 흐르며, 조망이 탁 트이고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지 않을 듯하니, 혼자서 조용히 지내며 생각을 잠재우면 몸과 마음이 함께 편안해지며 모든 인연이 끊어져 한 점의 먼지도 날지 않을 걸세. 이러한 때에 이 마음을 하나로 할 수 있으니 마음이 이미 하나가 되고 나면 덕도 하나가 될 수 있다네. 마음과 덕이 모두 하나가 되면 모든 거짓이 물러가게 되어 삶과 죽음에 망설임이 없어 처음에서 끝까지 하나가 될 수 있으니, 이는 거처가 반드시 도움이 되는 것이라네.

아, 돈숙은 이미 그 그칠 바를 안다고 말할 수 있으며, 또 성인 문하의 일이관지(一以貫之)의 뜻을 터득했다고 할 수 있다네. 만약 그러하다면 공부하는 단계와 등급은 순서에 따라 나아갈 수 있으니, 또 어찌 정정안려(定靜安慮)가 방도를 얻지 못할까 걱정하겠는가? 하나가 될 수 있는〔可一〕 공부는 진실로 적합한 거처를 얻는 것에 달려 있다네. 운곡(雲谷)에 서원이 있고, 죽림(竹林)에 정사(精舍)가 있는 것 또한 그 공효이니, ‘가일(可一)’로 재사(齋舍)에 편액함이 또한 마땅하지 않겠는가?” 하였더니, 돈숙이 일어나 말하기를 ‘알겠네.’라고 하였다. 드디어 그 말을 써서 기문으로 삼는다.

만력 기해년(1599) 초가을 하순에 약포 노인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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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의 문신인 정탁(鄭琢, 1526~1605년)의 [약포집]에 나오는 이 부분의 시대는 정탁의 생몰년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역시 병자호란 직전의 시대입니다. 이이첨과도 그다지 차이가 안나는 사람이죠. 저자인 정택선생의 친구인 예성(蘂城) 안돈숙이라는 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는데, 예성은 충주(忠州)의 옛지명이므로 안돈숙은 충주 목사를 역임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 보면 이 사람이 역시 '강원도'의 춘천 (첫번째 기담의 출발점) 부근에 '가일'이라는 별장터를 잡았는데, 이곳은 삼면이 산으로 둘러쌓여 있고 한 면은 물이 깊어 외부인들은 어디인지 알지도 못하고, 들어갈때는 반드시 '뗏못'을 타고 들어가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건 마치 첫번째와 두번째 기담을 섞어 놓은 듯한 묘사죠.

그렇다면 실제로 이곳은 어디쯤이었을까요?


추정지 16세기 남이섬?

우선 이 이야기의 배경들을 지도로 한번 살펴 봅시다. 첫 지도에서 왼쪽위에 첫 기담의 출발지인 춘천시가 보이고, 

두번째의 기담 배경인 이천시가 아래 보입니다.
가운데 동그라미- 남이섬

그런데 첫번째 기담에서는 산속에 있다고 하고, 두번째 기담에서는 물길을 배로 거슬러 가야 한다고 되어 있죠. 춘천과 이천을 물길로 연결하는 곳의 아름다운 곳. 어디일까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역시 이곳입니다.

네, 현재 '나미나라'라는 재밌는 컨셉 (마이크로네이션)으로 아름답기로 유명한 남이섬(南怡섬)입니다. 현재 보아도 마치 무릉도원 같은 모습이죠. 이 곳이 15세기경에 숲으로 꽉 차있었을 때는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남이섬을 청구야담의 무릉도원으로 추정하기에는 한가지 치명적인 오류(처럼 보이는)가 있습니다. 바로 '섬'이라는 점이지요. [청구야담] 첫 기담을 보면 이 곳은 '산속'이고, 두번째 기담을 보면 '배를 타고 들어가다가 언덕을 오르는데 뒷편은 산'입니다. 그리고 [약포집]에는 더 자세한 지세가 나오는데 삼면이 산이고 한면이 물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즉 '섬'이 아니죠.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남이섬 부근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남이섬은 원래 1940년대까지만 해도 '섬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이곳에 청평댐이 들어서고 사면이 침수되면서 생긴 20세기형 섬입니다. 즉,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아래 사진의 오른쪽 물길은 언덕이었고, 뒤의 깊은 산으로 연결되는 구조였죠. 또한 현재의 대부분의 물길이 뭍이었다고 합니다. 즉, 삼면이 산, 한면이 물에 가까운 지세였을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 곳은 조선시대까지도 홍수때가 되면 일시적으로 섬이 되던 신기한 구조였습니다. 
현재 강원도뿐 아니라 서울근교의 아름다운 명소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남이섬. 앞으로 다른 가설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이런 야담과 문헌을 바탕으로 수백년전 무릉도원 역사 마켓팅을 펼치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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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의 기록) 것을 적은 형식입니다. 따라서 어딘가 '원전'이 있을 것 같은데 혹시 찾으면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내용은 매우 신비롭습니다. 마치 [강원도의 조선중기 무릉도원武陵桃源, 그리고 위치추적 (4년전 글)]의 형식을 띠고 있는데, 플롯의 길이는 짧으나 무엇보다 구체적인 '지명'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 일치합니다. 하지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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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ntalinus 2015/10/17 07:59 #

    좀 속된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스토리텔링을 이용해 관광상품화 된다면 인기있을 것 같습니다....
  • 역사관심 2015/10/18 04:03 #

    전혀 속되지 않습니다. 될 수 있으면 많이 써야죠. ^^
  • 아이스호케이 2015/10/17 08:04 # 삭제

    무릉도원에서 몇일 묵고 바깥세상으로 나왔더니 몇년이 흘러있었다는 이런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롭습니다.
    이런걸 잘만 활용하면 고려시대 사람이 무릉도원에서 몇달 살다 나왔더니 연도가 2015년이고 막 과거사람이 현대로 온 이런 이야기를 만들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 역사관심 2015/10/18 04:04 #

    그냥 타임슬립이 아닌, 무릉도원식 타임슬립.
    웹툰으로 먼저나오고 드라마화되면 재밌겠습니다. =)
  • 채널 2nd™ 2015/10/18 00:46 #

    남이섬 근처라면 ㅎㅎ 그 후손들은 20 세기에 들어서 개뜬금없는 난개발로 그만 삶의 터전을 잃어 버렸겠군요. <-- '둔갑'에라도 능했다면 몰라도 ... 20 세기 신유목민으로 살아 가야 했었을 것 같다는 느낌이........

    ((근데, 이런 식으로 뭔가를 비정해 보는 '스킬'은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타고 나는 건가.....)) ;;;
  • 역사관심 2015/10/18 04:04 #

    흥미진진한 상상입니다. 그리고 과찬이십니다 ;
  • ㅇㅇ 2015/10/18 04:22 # 삭제

    강원도 이천은 지금의 경기도 이천(利川)시가 아니라 휴전선 이북인 이천(伊川)으로 보입니다.
  • 역사관심 2015/10/19 02:51 #

    그럴 수도 있겠군요. 시간될때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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