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츠시타 마코토- September Rain (First Light, 1981) 음악

80년대 초, '시티팝'이란 장르를 이해하려면 어떤 곡을 들어야 하나요? 라는 질문을 누군가 한다면 고민끝에 골라 낼 한 장.

바로 마츠시타 마코토의 걸작인 1981년작 [First Light]이다. 이 당시 일본 시티팝의 대표주자로 꼽을 수 있는 야마시타 타츠로의 대표 작품이 쏟아지던 이 시대의 앨범들이라든가, 이 분야의 대가 토시키 카도마츠등의 앨범들을 제치고 세션맨 출신의 초창기 앨범인 이 작품을 왜 뽑아야 하는가.

그 질문의 답은 이 곡을 들어보시라는 것으로 대체할 수 밖에 없겠다. 

음악이란 매체에서 '노스탤지아'라는 (그중에서도 도시 노스탤지어적인) 중요한 측면을 만약 100으로 측정할 수 있다면 마코토의 '9월의 비'는 꽉 찬 100점이다. 이 당시 미국동부에서도 이런 정도로 감성을 건드리는 곡은 없었다.

松下誠- September Rain (1981년)



덧글

  • Cheese_fry 2015/10/28 11:32 #

    좋네요. 약간 필 콜린스 분위기가 날랑말랑...;;;
  • 역사관심 2015/10/29 01:19 #

    오랜만입니다. 정말 좋은 곡이죠...특히 요즘같은 계절에...
    말씀대로 어떤 부분에서는 느낌이 나는 것 같기도 하네요 =)
  • Windylady 2015/10/29 14:28 # 삭제

    보컬은 누굴까요? 모든 참여 뮤지션이 일본인이라면.. 발음도 꽤 좋네요. 동시대 shakatak과도 유사한 사운드.
  • 역사관심 2015/10/31 07:37 #

    아 마코토 본인의 보컬입니다 ^^ 샤카탁도 좋아합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qR_SoJiuD9E
  • zajo0 2015/10/29 14:50 # 삭제

    주인장님 예전에 한국건축이 많은 부분에서 조선시대 들어와 사회경제적 혹은 기후적 변동으로 인해 화려함 혹은 전체적으로 퇴보했다라는 학계의 일반적 평가가 있다라고 말씀해 주셨고 저 또한 그런 점에서는 일정부분 동의를 했는데 저번주에 문뜩 수원화성을 다녀와서 18세기말렵의 화성의 건축술의 수준이 군사적으로나 공법적으로 거대건축물로서의 전체벅 조형에서 상당히 수위였음을 느꼈는데 이에대한 생각이 어떠신지 관련된 지식이 부족해 의견이 궁금합니다.^^
  • 역사관심 2015/11/02 05:23 #

    zajo0님 반갑습니다. 이는 전반적으로 그러한 추세가 있었다는 것으로, 사실 세기별로 지역별로 일괄적으로 말할 수는 없겠습니다. 임란직후의 황폐한 시기임에도 한때 사치하는 건축의 풍토에 대한 기록도 있고, 무신정권시대의 거대하고 화려한 건축들이 고려건축의 전반적인 흐름이라고 할수도 없지요 (고려말부터 남아있는 맹씨행단의 경우만 해도 조선후기의 저택들보다더 훨씬 간소한 건축이구요). 또한 건축물의 부분별로도 흐름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건축에 한해 특히 내부장식만을 말하자면 17, 18세기에 한정지어 말하자면 일천한 지식으로 말씀드려, 17세기보다 18세기의 조각장식이 더 발달하는 흐름이 있습니다. 18세기에 지어진 쌍계사 대웅전의 경우 대표적으로 내부장식이 화려한 건축이죠. 하지만 거꾸로 기와의 경우 주변국(중일)은 주택의 경우 이미 암-수키와를 쓰는 방식을 버리고 간략하게 발전해갔음에도 조선시대 기와는 그전대와 거의 같은 답보상태였습니다. 이렇듯 부분별로도 발전이 다르다고 볼수 있습니다.

    따라서 개별 건축별, 그리고 건축의 부분들별로, 아니면 전반적인 흐름등을 평가할때 모두 다른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주로 말씀드리는 것은 후자의 이야기라 감히 말씀드릴 수 있겠구요. 사실 건축의 경우, 우리가 말하는 규모의 미학을 갖춘 건축물에 한정지어 이야기한다면 (여염집이나 상류층 저택도 그다지 큰 차이는 나지 않죠), 규모를 갖춘 랜드마크적인 건축을 지으려면 두가지의 사회적 배경이 담보되어야 한다고 보는데, 종교의 활력성과 절대권력의 존재여부가 그것입니다. 즉 기술자체보다도 (그 결과 기술도 발전/쇠퇴하긴 하나) 다른 문화와 마찬가지로 우선 종교의 쇠퇴라는 부분이 매우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됩니다. 삼국-고려로 이어지는 과정의 경우 불교의 위세를 보여준 시대고, 조선시대는 그렇지 않았죠. 또한 그러한 성리학의 풍토에 더해 조선특유의 절대왕권의 부재 (좋은 의미지만)은 건축에서 대규모 건축을 주변국에 비해 만들지 않는 풍토를 부채질 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좋은 예로 조선시대 통틀어 가장 강력한 절대군주를 꿈꾸던 연산군대의 대규모 건축시도의 예를 들수 있겠지요 (완성되기 전에 폐위되어 버렸지만).

    말씀하신 수원 화성의 경우 그럼에도 정조께서 10년간의 준비과정을 통해 내탕고 (왕궁금고)에 차근차근 자금을 축적하고, 본인의 금위군 (경호대)까지 축소하면서까지 역량을 쏟아부은 대공사였습니다 (이러면서도 백성들에게는 한푼 걷지 않죠. 그가 왜 대왕인지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화성의 경우 단지 하나의 성을 축조했다기보다 지금으로 말하면 하나의 정치적 신도시를 건설하는 목적이 있었다고 봅니다. 군사력, 정치력, 그리고 실학적 사고가 존재하던 18세기의 기술력까지 쏟아부은 결과물인지라 너무나 훌륭한 건축물이 탄생했다고 생각합니다. 답변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개인적인 의견으로 생각해 주시길 ^^;
  • zajo0 2015/11/02 11:28 # 삭제

    상세한 설명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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