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7년 괴수의 궁궐 습격 (16세기 중종대 실록 기담), 작서의 변 설화 야담 지괴류

새해 첫 요괴이야기.

오늘은 꽤 많이 알려진 그러나 그 상세한 정보는 아는 분이 드문 일명 '중종대의 괴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6세기 그러니까 (본 블로그에선 종종 강조하는) 임진왜란 이전의 일명 '조선전기'까지는 단순히 하드웨어적 문화 (건축물등)뿐 아니라 소프트웨어적인 요소 (정신문화등)에서도 그 분위기가 17세기 성리학의 교조화이후와는 사뭇 다릅니다.

그 좋은 예가 불교나 도교적인 분위기에서 탄생하기 쉬운 '지괴류'이야기들입니다. 본 블로그에서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기담' 카테고리로 묶어 소개해 오고 있지요. 하지만, 오늘 소개하는 이야기가 좀 색다른 것은 '야담'이 아니라 '정사' 그것도 '왕조실록'의 기록이란 점입니다.


이 으스스한 이야기는 1511년에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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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 6년(1511년) 5월 9일
○戊午/夜有獸類犬, 自文昭殿後, 出向前殿。 殿僕怪而逐之, 踰西墻走。 命驅索不得。
【史臣曰: “寢殿非野獸所入之處, 前夜廟園松火, 今夜有獸怪。 數日之內, 災與變比見疊出, 必有所召也。”】

기이한 짐승이 나오다
밤에 개같은 짐승이 문소전(文昭殿) 뒤에서 나와 앞 묘전(廟殿)으로 향하는 것을, 전복(殿僕)이 괴이하게 여겨 쫓으니 서쪽 담을 넘어 달아났다. 명하여 몰아서 찾게 하였으나 얻지 못하였다.

침전(寢殿)은 들짐승이 들어갈 곳이 아니고, 전날 밤에 묘원(廟園) 소나무가 불타고 이날 밤 짐승의 괴변이 있었으니, 며칠 동안 재변이 자주 보임은 반드시 원인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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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이 즉위하고 6년째인 1511년 늦은 봄, 태조의 비 신의왕후 한씨를 모신 사당인 문소전(文昭殿)에 개처럼 생긴 짐승이 나타납니다.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지는 모습입니다. 
그로부터 5년뒤인 1516년의 기록을 보면 당시 얼마나 기이한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었는지가 보입니다.

중종 11년 병자(1516,정덕 11)
7월24일 (계묘)
장마로 인해 수성하고 구황하는 뜻을 널리 알리라고 전교하다

정부(政府)에 하교(下敎)하였다.
“내가 어리석은 자질로 외람되게 한 나라를 맡으매, 임금의 도리에 어두워 온갖 거동이 궤범에 맞지 않고 거의 다 잘못되니, 위로 천노(天怒)를 범하고 아래로 인화(人和)를 잃으므로 여기(戾氣)가 충적(充積)하여 재변으로 나타나서, 천문(天文)이 이변을 보이고 지기(地紀)가 차서를 잃으며, 인요(人妖)·물괴(物怪)가 거듭 나타났다. 

비록 경구(警懼)할 마음이 간절하기는 하나, 오히려 수성(修省)하는 방도에 어두워서, 재변이 그칠 가망이 없고 더욱 천의(天意)를 거스리매, 봄부터 한 여름까지 큰 가뭄이 초토(焦土)로 만들어 농사를 거의 망쳤고, 가을철에 들어서 장마가 계속되어 열흘이 지나도 그치지 않아서 냇물이 사납게 넘쳐 전지(田地)를 침손(沈損)하였는데 비의 재해는 평안도가 더욱 심하고, 또 대풍(大風)의 이변이 경상도에 일어나 집을 무너뜨리고 나무를 뽑아 곡식이 많이 상하였다. 농사가 이미 오랜 가뭄에 시달렸는 데다가 바람과 물의 재해를 만났기 때문에 추수에 이미 가망이 없으니, 흉황(凶荒)이 거듭 이르러 백성이 생업을 잃을 것을 깊이 염려하매 자나깨나 근심으로 불안하여 편치 않다. 이 어찌 나 한 사람의 죄가 허물 없이 백성에게까지 옮아가서 모두 이런 극심한 지경에 이르렀는가?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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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보면 중종이 스스로의 인품을 탓할만큼 '인요(괴상한 인간들)'과 '괴물'들이 출현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요괴류에 더해 자연재해까지 심한 모습으로 이런 모습은 바로 이듬해인 1517년에도 계속됩니다. 여기서는 부제학 이자등이 중종의 부덕함을 비판하며, 이 때문에 '물괴'와 재난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중종 12년 정축(1517,정덕 12) 7월22일 (병신)
윤순의 처 구씨를 내쫓을 것을 아뢴 부제학 이자 등의 상차문
전하께서 즉위하신 지 이제 10여 년이 되었습니다만, 이렇다 할 치적(治績)이 없이 국사(國事)가 날로 미미해가며, 현사(賢邪)가 섞이고 시비(是非)가 뒤바뀌어, 조정에는 흩어질 조짐이 있고 외방에는 공고한 형세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민심을 격양(激揚)하고 광구(匡救)할 계책은 생각지 않고 도리어 화란의 씨를 심어 이를 배양하시니 참으로 알 수가 없는 일입니다.

더구나 근년 이래로는, 천재(天災)와 물괴(物怪), 일월(日月)과 성신(星辰), 수한(水旱)·상박(霜雹), 그리고 닭과 벌레들의 재앙이 거듭거듭 나타나니, 이는 모두 음(陰)이 성하고 양(陽)이 쇠미한 징후(徵候)입니다. 하늘에서 징후를 내려 보낼 때에는 반드시 까닭이 있는 것이니, 진실로 황공하고 두려워하며 깊이깊이 살피고 생각하여, 하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찾아야 합니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명쾌한 단안(斷案)을 내리시어, 사사로운 정분(情分) 때문에 지체하지 마시어 구씨(具氏)를 교외(郊外)로 내쫓으시고, 윤순(尹珣)의 조적(朝籍)을 삭탈하여 조정이 숙청(肅淸)되고 국조(國祚)가 오래가게 하시면 이보다 큰 다행(多幸)이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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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드디어 1527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1527년, 작서의 변과 괴수의 역습

이 해, 중종의 총애를 받던 경빈 박씨는 자신의 소생인 복성군을 세자로 만들기 위해 야욕을 불태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덜컥 둘째 부인인 장경왕후 윤씨가 낳은 원자가 세자(훗날 인종)로 책봉된 것입니다. 확실하게 물증은 없었지만 박씨는 이에 일명 '작서의 변'을 일으킨 주범으로 여겨지게 되는데 다음과 같은 일을 벌입니다.

1527년 2월 25일. 세자의 생일날, 동궁 북쪽 뜰의 은행나무에서 산채로 불에 탄 쥐가 발견됩니다. 어떤 이가 쥐를 잡아다가 입, 눈, 귀를 불로 지져서 나무에 매달아 둔 것입니다. 입, 눈, 귀를 지져 기괴한 형상으로 만든 이유는 세자의 간지가 '쥐띠'였기 때문이며 따라서 세자를 저주하기 위한 목적이었지요. 거기에 더해 생나무 조각에 세자의 생년월일과 세자를 저주하는 내용의 방서까지 발견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박씨와 복성군이 사망한 이후인 1533년에도 이와 비슷한 필체로 다시 방서가 발견되면서 음모론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후 김안로의 아들인 '김희'의 서체가 이 두 방서와 같음이 드러나면서 김안로의 사주를 받아 김희가 일으킨 사건으로 결론납니다.

그런데 이 '작서의 변'이 일어난 그 해, 4개월후 '망아지만한 개모습의' 괴수가 다시 궁에 재등장합니다 ('망아지'만하다고한 것을 기억해두시기 바랍니다).

중종 59권, 22년(1527 정해 / 명 가정(嘉靖) 6년) 6월 17일(임술)
○壬戌/政院啓曰: “去夜有吹螺甲士一名, 夢壓氣絶, 同類驚起救療, 而喧呼, 諸軍一時驚動。 起而視之, 有物如厖狗, 大如兒馬, 自吹螺赤房, 走向西明門。 且西衛所部將, 亦牒報云: ‘軍士等亦見是物, 自忠贊衛廳隅, 高聲馳突, 向所而來, 皆驚惶叫號, 吹螺赤房, 且有腥膻之臭。’ 云。 此乃怪誕之事, 不足取信, 然闕內之事, 故啓達。”

정원이 아뢰었다. 
간밤에 소라 부는 갑사(甲士) 한 명이 꿈에 가위눌려 기절하자, 동료들이 놀라 일어나 구료(救療)하느라 떠들썩했습니다. 그래서 제군(諸軍)이 일어나서 보았는데 생기기는 삽살개 같고 크기는 망아지 같은 것이 취라치(吹螺赤)방에서 나와 서명문(西明門)으로 향해 달아났습니다. 그리고 서소위 부장(西所衛部長)의 첩보(牒報)에도 ‘군사들이 또한 그것을 보았는데, "(忠贊衛廳) 모퉁이에서 큰 소리를 내며 서소위를 향하여 달려왔으므로 모두들 놀라 고함을 질렀다. 취라치 방에는 비린내가 풍기고 있었다." 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괴탄(怪誕)한 일이니 취신(取信)할 것이 못됩니다. 그러나 궁궐 안의 일이므로 감히 계달(啓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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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괴수는 '삽살개'처럼 생겼는데 크기는 망아지만큼이나 큽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냄새'까지 풍겼다는 점으로 '비린내'가 났다고 합니다.

이것의 최초 등장은 매우 흥미로운데 '소라를 부는 갑사', 즉 '취라치'가 꿈에 기절할만큼 강력한 가위에 눌립니다. 그런데, 이 '가위'는 '실물화'되었는지 그 취라치의 방에서 이 괴물이 뛰쳐 나와 서명문으로 달아난 것입니다. 참고로 '서명문'은 1440년 세종대에 조선전기 경복궁에 있던 '서직방'의 문이름으로 지정된 곳입니다 (지금은 없지요).

그로부터 나흘 뒤인 6월 21일기사를 보면 이 '가위눌림'이 이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로 인해 중종은 세자를 '이피' 즉 동궁에서 다른 곳 (창덕궁등)으로 이어시키려 하고 있을 정도 입니다. 이 기록이 중요한 것은 '작서의 변'과 이 '괴물'의 연관성때문인데, 중종은 이 두 사건을 연장선상에서 바라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세자가 머물던 '동궁'은 경복궁 동쪽, 그러니까 바깥에 따로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중종 59권, 22년(1527 정해 / 명 가정(嘉靖) 6년) 6월 21일(병인)
○丙寅/命召左議政鄭光弼、右議政沈貞, 傳曰: "近日, 闕內連夜有夢壓之妖, 慈殿聞之, 深以爲未安。 且慮世子年幼, 深欲移避。 予啓以不可輕易移避之意, 而强欲移避。 若上殿移御, 定省亦難, 故予亦欲移御于昌德宮, 以待安靜, 還御何如?" 光弼等啓曰: "妖怪之事安靜則自然止息, 豈可輕易移避? 假使, 有此妖怪, 須當鎭靜, 不可搖動。 以此意, 達于上殿何如?" 傳曰: "以此啓達則慈殿欲令世子, 移避閭閻, 而今年適合宮, 不可出寓民間。 以此强欲移避, 予不可强請止之, 其更議之。" 光弼等又啓: "若上殿, 强欲移避則果爲難矣。 非有大害於義者, 從命爲當。" 傳曰: "上殿移避則予當侍衛而移御。"

명하여 좌의정 정광필·우의정 심정을 불러 전교하기를, “근일 궐내에서 밤에 연달아 꿈에 가위눌리는 요괴로운 일이 있었는데, 자전(慈殿)이 들으시고 깊이 불안해 하신다. 그리고 세자가 나이 어림을 염려하여 간절히 이피(移避)시키려 하신다. 내가 경솔히 이피시키는 것은 불가하다는 뜻으로 아뢰었지만 굳이 이피시키려 하신다. 만일 상전(上殿)이 이어하신다면 정성(定省)이 또하 어려울 것이므로 나도 창덕궁(昌德宮)으로 이어하였다가 안정된 뒤에 환어(還御)하려 하는데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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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그로부터 이틀 뒤와 나흘 뒤, 중종이 '심지를' 굳건히 하면 요괴는 사라질 것이라면서 이어에 반대하는 주장이 잇달아 나옵니다. 또한 이 소동이 '궐밖'으로 퍼져 민심마져 동요하고 있음이 나옵니다. 당시로썬 유명한 사건이 된 것입니다.

중종실록 59권, 중종 22년 6월 23일 무진 1번째기사
1527년 명 가정(嘉靖) 6년
홍문관 전한 박우 등이 세자 이피의 부당함을 아뢰다
○戊辰/弘文館典翰朴祐等啓曰: "近因物怪, 自內驚動, 欲爲移御。 當初見之者, 非有識人也, 乃出於無知軍士, 而其妖說之眞妄, 亦不可的知。 假使, 有此妖怪, 人君當堅定心志, 不爲搖動然後, 下人亦不疑(惟)〔懼〕 矣。 今若移御則下人愚惑, 傳播訛言, 而厥終之弊, 必不小矣。 大抵, 人君堅定則妖怪自止, 請勿移御。" 傳曰: "上殿以世子年幼, 强欲移避, 予豈能强止? 然當以侍從之意, 更啓也。"

홍문관 전한(弘文館典翰) 박우(朴祐) 등이 아뢰기를, 근일 물괴(物怪) 때문에 궁내에서 경동하여 이어하시려 하고 있습니다. 처음 본 자가 유식한 사람이 아니고 무지한 군인이었으니, 그 요괴스러운 말의 진부를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가령 이런 요괴가 있었다 하더라도 임금이 심지(心志)를 굳게 정하여 동요하지 않은 뒤에야 아랫사람들 또한 의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이어하신다면 하인들이 미혹, 와언(訛言)을 전파하게 되어 그 끝의 폐단이 반드시 적지 않을 것입니다. 대저 임금이 심지를 굳게 정하면 요괴는 절로 멈추는 것입니다. 이어하지 마소서."

중종 59권, 22년(1527 정해 / 명 가정(嘉靖) 6년) 6월 25일(경오) 2번째기사
간원이 궐내의 요괴한 일로 경동하는 일이 없도록 조처하기를 아뢰다     
간원이 아뢰기를,
“궐내가 근일 요괴로운 일 때문에 모두 경동(驚動)하고 있습니다. 신들이 자세히 들으니 충찬위(忠贊衛)에 있는 어떤 사람이 꿈에 가위눌린 데서 시작된 것인데, 이로 인하여 소요가 일었고 간밤에는 도성 안이 흉흉하였습니다. 오늘 듣건대 장례원(掌隷院) 앞에서 어떤 사람이 꿈에 가위눌렸는데 동료가 불러 깨울 적에 깨우는 소리를 들은 다른 사람들이 경동함에 따라 장안이 일시 소동했다 합니다. 그리하여 인심이 동요되어 불안에 떠는 상황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신들은 장차 무슨 일이 있으려고 이러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어(移御)는 자전의 뜻이니 중지할 수는 없습니다. 청컨대 오부(五部)에 효유하여 그것이 허사(虛事)임을 알려 인심을 진정시키게 하소서. 이 뒤에도 감히 경동되어 함부로 떠드는 자가 있으면 그 죄를 통렬히 다스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였다.

“효유하는 일은 아뢴 대로 하라. 그리고 근일의 일은 혹 간사한 사람이 틈을 타서 도둑질하려는 것인가 여겨진다. 군령을 철저히 신칙하여 요괴로운 일을 보더라도 경동하거나 떠드는 일이 없도록 할 것으로 병조에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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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록을 보면 중종 역시 신하들의 말에 설득되어, '아마도 간사한 이가 괴물소동을 일으켜 도둑질을 하려는 것이 아닌가'하는 논리적인 추론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다음 순서는 주모자의 처벌이 됩니다. 이렇게 말이지요.

중종 59권, 22년(1527 정해 / 명 가정(嘉靖) 6년) 6월 26일(신미) 3번째기사
간원이 궐내의 요괴한 일을 조처하기를 아뢰다    
간원이 아뢰기를,
“이어(移御)하신 일은 상전(上殿)에 핍박되어 부득이해서 한 것입니다. 그러나 듣기로는 도성의 인민이 모두들 요괴 때문에 이피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더욱 경혹(驚惑)하고 있습니다. 대저 와언(訛言)이 자주 일어나면 인심이 위구하는 것이니 이는 실로 국가의 큰 변고입니다. 지금 진정하려 한다면 당초 허망한 일을 발설한 자를 대죄(大罪)로 다스려 쾌히 중외에 보여 사람들에게 그것이 허망한 일임을 알게 한다면 인심을 진정시킬 수 있겠습니다. 

모든 궐내(闕內)의 군사는 위부장(衛部長)이 통솔하여 항오를 정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평상시 숙위할 적에 군령이 엄하지 않아 군중(軍中)이 여러번 경동함으로써 궐내를 소란하게 하였으니, 만일 변이 있게 된다면 나라가 나라 모양을 지닐 수 없을 것입니다. 당초 경동할 때에 금지하지 못한 위부장을 각별히 파면시켜 내쫓으소서. 그밖의 다른 위부장은 이미 조옥(詔獄)에 내렸으니 자연 치죄(治罪)가 되겠습니다. 또 헛된 일의 형상을 공초받아 문자로 적은 당시에 입직(入直)한 병조의 관리들도 함께 추문하게 하소서. 당직 낭청 조헌(趙憲)이 요망한 일을 형언(形言)하여 외간에 전파, 인심을 소동시켰으니, 조옥에 내려 추문해서 그 죄를 통렬히 다스림으로써 인심을 진정시키소서.” 하니 ‘모두 아뢴 대로 하라.’ 전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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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최초로 가위눌린 자, 즉 괴물의 탄생을 알린 자의 이름과 관직이 나옵니다. '당직 낭청 조헌'이란 자입니다. 낭청은 당시 '당하관'을 일컫는 말로 높은 관직이 아닙니다. 같은 날, 홍문관 부제학인 박윤경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문제를 '사헌부'전체의 문제로 비약시키려 합니다 (약간 정치적인 의도가 보입니다). 그러나 중종은 이에 대해서는 반대합니다.

중종 59권, 22년(1527 정해 / 명 가정(嘉靖) 6년) 6월 26일(신미) 5번째기사
홍문관 부제학 박윤경 등이 궐내의 요괴한 일은 사헌부의 탓이라 아뢰다    
홍문관 부제학 박윤경(朴閏卿) 등이 아뢰기를,
“근일 근거 없는 와언으로 하여 이어(移御)하시게까지 되었으니 이것은 큰 변고입니다. 궐내만이 아니라 민간도 모두 소동하여 형세가 금하기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법사(法司)에 있는 자들은 마땅히 처음 요언(妖言)한 자를 추문하여 요언으로 백성을 미혹시킨 율(律)로 그 죄를 다스려 그것이 허망한 일임을 명백히 보였다면, 소요가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 이어하였더라도 어찌 다시 경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백성은 말할 게 없거니와 유식한 사람까지 모두 요언을 믿어, 심한 자는 그 형체를 보았다고도 하고 부르짖은 소리를 들었다고도 합니다. 이런 때에 간악한 무리가 틈을 타서 그 술책을 부릴까 두렵습니다. 요언의 전파가 이렇게까지 되었는데도 법사에서는 한 마디도 여기에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그것을 믿는 것 같기도 하니, 어찌 그 소임을 제대로 수행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체직시키고 추문하소서. 또 정원(政院)은 후설(喉舌)의 자리이니 마땅히 자세히 살펴 출납(出納)하여야 할 것인데, 그 말을 믿고 감히 들어와 아뢰었으니 또한 그릅니다.” 하니, 전교하였다.

“이번에 이어한 것은 내 마음이 아니고 부득이한 데서 나온 조처이다. 또 헌부는 들은 바에 선후가 있는 것이니 이것으로 그르다 하는 것은 불가하다. 그러나 시종(侍從)에게 논박(論駁)받았으니 형세가 직(職)에 있을 수는 없다. 추문은 불가하니 체직시키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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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1527년의 괴수소동은 하급관리의 잠꼬대로 치부하고, 희생양으로 삼아 일단락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16세기... 본 블로그에서 소개해 온 온갖 요괴가 들끓던 만만치 않은 시대입니다. 이야기는 그렇게 쉽게 흘러가지 않습니다.


1530년대 재등장, 그리고 인종의 사망날 등장한 검은 기운의 요괴

이로부터 3년뒤인 중종 25년. 세자뿐 아니라, 모든 주요왕가가 이어하는 더 큰 일이 벌어집니다.

중종 68권, 25년(1530 경인 / 명 가정(嘉靖) 9년) 7월 16일(계묘) 1번째기사
대비전·대전·중궁전·세자빈·세자가 경복궁으로 이어하다
○癸卯/大妃殿移御于景福宮。 大殿、中宮殿、世子嬪、以此移御, 世子最後移御。 【大妃所居寢殿, 白晝鬼物, 亂打窓壁, 或以雜物欺戲。 非上在側時, 則恣行摸打, 無所不爲, 故移御。】

대비전이 경복궁으로 이어하였다. 대전(大殿)·중궁전(中宮殿)·세자빈(世子嬪)이 이때 함께 이어하였고 세자가 제일 나중에 이어하였다. 대비가 거처하는 침전에는 대낮에 괴물이 창벽(窓壁)을 마구 두드리는가 하면 요사한 물건으로 희롱하기도 했다. 상(上)이 곁에 모시고 있지 않을 때에는 못하는 짓이 없이 마구 난타했으므로 이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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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대비의 침전에 괴물이 등장 (그것도 白晝鬼物, 즉 대낮에 등장한 것입니다), 마구 창문과 벽을 난타하고 '잡물'로 그녀를 희롱합니다. 번역본을 보면 '마구 난타'했다고 되어 있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아마도 성적인 희롱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則恣行摸打' 이라고 되어  있는데 직역하면 '곧 마음대로 다니며 더듬고 때렸다'라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까지 일어나자 이어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된 것입니다. 이 기록에는 이 괴물이 1511년 최초의 '개 괴수'와 작서의 변의 해인 3년전과 같은 괴물인지 명확하게 생김새가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중종대'를 관통하는 괴물소동의 괴수는 일관성이 있음이 불과 2년후인 1532년의 기록으로 명확해집니다. 다음은 1532년, 즉 중종 27년의 흥미로운 기록입니다.

중종 73권, 27년(1532 임진 / 명 가정(嘉靖) 11년) 5월 21일(무진) 3번째기사
○禁軍夜驚。 【或妄言: "有怪物形如馬, 馳突橫行。" 云, 禁軍驚駭鬨動。】
금군이 밤에 놀라다
금군(禁軍)이 밤에 놀랐다. 어떤 자가 망령된 말로 ‘말[馬]같이 생긴 괴물이 나타나 이리저리 치닫는다.’고 하자, 금군들이 놀래어 소리치면서 소동을 피웠다.

5년전과 하급관리와 달리 이번에는 '가위에 눌리지도 않은' 더 용맹한 '군인'이 괴물을 목격한 것입니다. 금군은 용호영(龍虎營)에 속하여 있던 내금위(內禁衛), 겸사복(兼司僕), 우림위의 기사(騎士)등 아주 용감한 무관들입니다. 이들이 '말처럼 생긴 괴물 (物形如馬)'이 치닫는 걸 보고 혼비백산한 것입니다.

5년전과 달리, 이미 처벌이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인지 주모자색출도 없이 이 사건은 묻힙니다. 그리고 중종대의 괴수사건은 이 기록을 마지막으로 적어도 중종대 실록에서는 사라집니다. 그럼 중종은 이 요괴에게서 벗어난 것일까요? 불행하게도 그는 사랑하는 아들대까지 요괴에 시달린 것으로 보입니다.

그 후... 같은 시대인 16세기 중반이자 10여년 뒤인 1544년, '작서의 변'의 '저주대상'이던 장경왕후 윤씨의 아들이자, 중종의 세자였던 '인종'이 왕위를 계승하지만 문정왕후의 독살설이 전해질만큼 왕좌에 앉자마자 다음해인 1545년 덜컥 사망해버립니다. 

그리고...'인종이 사망(승하)하던' 날 그 밤에 이런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인종실록 2권, 인종 1년 7월 2일 임술 9번째기사 (1545년 명 가정(嘉靖) 24년)
○京城夜驚。 【自上昇遐之日, 京中人自相驚動, 衆播妖言曰: "有怪物夜行, 所過黑氣黯黮, 聲如衆車之行。"轉相狂惑, 群聚齊譟, 自闕下達于四街, 擊錚追逐, 聲振城中, 人馬辟易, 巡卒不能禁。 如是者三四日而止。】

경성에 밤에 두려운 일이 일어나다.
경성(京城)에 밤에 놀랄 일이 있었다. 상께서 승하하시던 날에 경중(京中) 사람들이 스스로 경동(驚動 매우 놀라 움직임)하여 뭇사람이 요사한 말을 퍼뜨리기를 ‘괴물이 밤에 다니는데 지나가는 곳에는 검은 기운이 캄캄하고 뭇수레가 가는 듯한 소리가 난다.’ 

서로 전하여 미친 듯이 현혹되어 떼를 지어 모여서 함께 떠들고 궐하(闕下)로부터 네거리까지 징을 치며 쫓으니 소리는 성안을 진동하고 인마(人馬)가 놀라 피해 다니는데 순졸(巡卒)이 막을 수 없었다. 이와 같이 3∼4일 계속 된 후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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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인종이 돌아가시던 날 밤 (전날인 7월 1일), 서울에선 이런 이야기가 퍼집니다 .
有怪物夜行, 괴물이 있어 밤에 돌아다닌다.
所過黑氣黯黮 그것이 지나가는 곳에는 검은 기가 있어 완전히 캄캄해지고 
聲如衆車之行 수레의 무리가 지나가는 듯 큰 소리가 나더라.

이 '검은 괴물'을 사람들이 떼를 지어 징을 치며 쫓아다니는데, 괴물이 소리를 내며 온 성안을 돌아다니니 사람들과 말들이 놀라서 피해다닌 것입니다. 그것도 무려 4일이나... '巡卒' 순졸이 막을 수 없었다라고 되어 있는데 순졸은 '밤에 순찰을 돌던 군졸'을 말합니다. 

혹 '궁안에서 일어난 일'을 소수의 희생자를 바탕으로 숨기려 했던 것을 중종의 아들인 인종이 사망하던 날 밤, 궁밖으로 뛰쳐나와 검은 기운으로 감싼 이 괴수가 마음대로 휘젓고 다닌 것은 아닐까요?


우리의 사료에는 이렇게 흥미로운 요괴류가 많이 전합니다. 특히 성리학이 교조화되기 전인 16세기까지는 말이지요. 예전에 필자가 소개한 16세기 남산북쪽 요괴들만 해도 이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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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으로 즐거운 소식 하나. 이 '작서의 변'과 '괴물'에 대한 영화화가 결정되었다고 하는군요.


핑백

  • 까마구둥지 : 1545년, 말머리 물괴 (작서의 변) 추가기록 2019-07-20 00:15:11 #

    ... 3년여전 (2016) 이런 글을 쓴 바 있습니다.[1527년 괴수의 궁궐 습격 (16세기 중종대 실록 기담), 작서의 변] 이 글에 나오는 '괴물'은 흥행에선 실패했지만 작년 '물괴'라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지요. 이 기록에 첨부할 만한 정보를 발 ... more

덧글

  • 존다리안 2016/01/14 15:18 #

    한국판 제보당의 괴수쯤 되겠군요.

    요새도 거대한 고양이과 맹수 같은 게 영국 같은데 나타난다는 도시전설(크립티드)이 있습니다.
  • 역사관심 2016/01/15 01:11 #

    제보당의 괴수의 경우 직접적인 피해자가 많았는데, 중종의 괴수는 그런 면은 없다는 게 가장 다른 것 같습니다. 하긴 대비전에 들어가 겁탈(추정)까지 했고, 최초 발견자는 사형당했으니...피해가 없다고 할 수 없군요. 이 놈은 뭔가 기분 나쁜 느낌이죠... 놀래키고 사라지는.
  • 아빠늑대 2016/01/14 16:13 #

    이 이야기를 보면서 위에 존다리안님 말씀처럼 제보당을 생각해서 시나리오 적으면 재미있겠다 싶었는데 역시나 바로 영화화 되는 소식이 있군요. ^^
  • 존다리안 2016/01/14 20:50 #

    제보당의 괴수도 늑대의 후예들이라는 영화에서 쓰였으니 뭐...
  • 역사관심 2016/01/15 01:09 #

    그러게 말입니다. 이 글은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는데 포스팅 말미에 검색하다보니 작년에 이 소식이 이미 떴었더라구요 ^^
  • 시원한인생 2016/01/21 20:47 #

    영화가 나온다니!
  • 역사관심 2016/01/21 23:47 #

    '신과 함께' 와 함께 매우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만, 감독이 시실리 2km’ ‘차우’ ‘점쟁이들'의 신정원인데.. 약간은 미덥지..)
  • 게렉터 2018/08/28 22:53 #

    괴물 백과 사전에서 자료를 다시 정리하며 검색하다가 까마구둥지님의 이 글을 찬찬히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위의 내용 중 마지막에 나오는 중종 사망 시기를 다루었다는 기사는 중종이 아닌 인종 사망 시기의 이야기가 아닌지요? 인종이 너무 짧은 시간 동안 재위했으니, 제가 착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역사관심 2018/08/28 23:37 #

    인종이 맞네요. 말씀대로 너무 짧은 시기였는지라, 연도를 아버지사망해와 착각해버렸습니다. 오류를 바로잡게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꾸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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