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말 조선중기 날틀, 비차 (飛車)에 대한 고찰 역사전통마

역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도 '신기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은 들어봤을 조선시대의 신기한 물건이 있지요. 바로 임진왜란 당시 울산성 전투에서 활용되었다는 '비차飛車' (혹은 비거) 말입니다.

오늘은 이 비차에 대한 자료를 조금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개인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또한,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나 그릇된 정보가 여기저기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온라인 상으로 가장 많은 사람이 쉽게 접하는 자료로 위키백과의 소개를 들 수 있을텐데, 이곳에서는 (그리고 보통 어디서건) 이 비차기록을 네 군데로 적고 있습니다.

일본 역사서 《왜사기》(倭史記)
신경준의 《여암전서》(旅庵全書)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州衍文長箋散稿)
1923년 한글학자 권덕규가 쓰고 광문사(廣文社)에서 출판한 《조선어문경위》(朝鮮語文經緯)

그런데, 위키에서도 '어떤 문헌을 정확히 가리키는지 모르겠다'라고 되어있지만, 종종 온라인상으로는 일본측에도 倭史記라는 책에 비거(비차)이야기가 실려있다고 종종 나오는데, 필자의 확인결과 ''왜사기'라는 책은 실존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적어도 검색한 결과 이런 책은 없는데 왜 이런 이야기가 돌게 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飛車에 대한 주요기록

저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가장 앞선 기록, 즉 임란 당대와 가장 가까운 시대의 것일 겁니다. 당대의 기록이 있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저중 가장 오래된 기록인 [여암전서]의 경우 여암 신경준(1712 ~ 1781년)의 저작이므로 벌써 100여년 후대의 기록이 됩니다. 신경준은 비차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지는 않고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여암유고(旅菴遺稿) 권 8, 
거제책(車制策)에 바람을 이용하여 나는 수레는 기굉 지방 사람들이 은나라 탕임금 때에 타고 왔다는 것인데 장화(張華)가 괴이한 것을 기록한 것에 불과하니, 번다스럽게 설명할 필요는 없겠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경우 홍무(洪武) 연간에 왜구가 영읍(嶺邑, 영남지방고을)을 포위하자, 어떤 은자(隱者)가 읍쉬(邑守수령)에게 이 거법(車法)을 가르쳐 주어 성에 올라가서 쏘아 올려 한번에 30리를 가게 하였다. 이것 역시 비거의 일종이다.

그러니까 사실은 연암전서가 아니라 [거제책]이라는 저서의  내용을 옮긴 것임을 알 수 있는데, 이 저서는 1754년 역시 신경준선생이 당대의 수레, 배, 수차와 의복제도등을 연구한 기술서적에 가까운 책입니다. 이 거제책에 나오는 비거에 대한 기록은 현재도 전합니다. 다만, 번역을 한 본이 없어 일단 원문중 비차부분만을 공개합니다 (원문은 몇배길이의 장문입니다).

車制策甲戌 

問。車之爲器。其利博哉。隨其所用。名亦各異。有路車焉。有戎車焉。有乘車焉。有田車焉。有水車焉。其制可得詳聞歟。始刱昉於何代。而取衆亦在何物歟。車服以庸。書稱命德之器。大車以載。易取求贒之象。其義安在。數車以對。見於戴經。乘殷之輅。著於魯論。其義云何。三輪自運。漢儒著論。飛車從風。博物記異。其制可得聞歟。以戎車言之。則武王克商。只有三百乘。중략.

飛風之車。奇肱之人所乘而來於殷湯之世者。而不過張華之志怪也。不足煩說。而洪武年間。倭寇圍嶺邑。有隱者敎邑守以車法。登城放之。一去三十里。此亦飛車之類也。人之才智。不可測度。有如是夫。噫。今日所論之車有五。而路車則自秦始皇去其輪而舁之。중략.

이 기록에 대한 국역본이 나온다면 보다 구체적인 실상을 알 수 있을텐데 아직 본 일은 없습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국내서중 가장 깊게 고찰을 한 기록은 이규경(李圭景, 1788∼ 1856년?)의 육필 저서인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수록되어 있는 [비거변증설]입니다. 다음의 기록이 그것입니다. 조금 길더라도 꽤 흥미로운 내용이니 시간이 되시는 분을 한번 찬찬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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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연문장전산고
비거변증설

수레가 뭍으로 다니고 배가 물에서 떠다니는 것이 배와 수레의 상도(常道)인데, 이제 바퀴를 깎아 날게 하고 나무를 파서 굴러 다니게 하는 것은 배와 수레의 이도(異道)로서, 이런 이치는 있을 수 없다고 한다면 곧 이치의 당연한 것이요, 필시 이러한 이치가 있다고 한다면 곧 이치가 상도를 거스르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믿지 않는다고 치면, 수레가 나는 것과 배가 굴러 다닌다는 사실은 버젓이 존재하기에 이러한 사실들이 서책에 기록되어 있어 증거할 수 있다 할 것이고, 믿는다고 치면 세상에 항상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간책(簡冊)에서나 볼 수 있는 것으로서 공허한 말로만 남아 있을 따름이라고 하리라. 

내가 이에 대하여 의혹을 품고 있었는데, 그 의혹이 점차 심해짐으로 인하여 그것에 대한 과거 사실들을 논하면서 나의 의혹을 풀고자 한다.

[제왕세기(帝王世記)]를 살펴 보건대, "기굉(奇肱)의 백성은 옥문(玉門 : 중국 감숙성 서부의 지명으로 돈황敦煌의 유적이 있음)에서 4만 리나 떨어져 사는데, 비거(飛車)를 만들 수 있어서 바람을 이용하여 멀리까지 다닐 수 있었다. 탕왕(湯王) 때에 서풍이 불어 오자 그 비거를 움직여서 예주(豫州)에 이르렀는데 탕임금이 그 비거를 부수어 버리고 그 곳 백성들이 보지 못하게 하였다. 그 후 10년 만에 동풍이 이르자 다시 비거를 만들 수 있게 허락하여 되돌려 보냈다." 고 하는데, 이는 혼란했던 시절의 허황된 설이기 때문에 고거할 도리가 없다.

악라사(顎羅斯 러시아)는 중하(中夏 중국)에서 수만 리나 떨어져 있고 구라파(歐羅巴)와 중국 사이에 위치해 있는 나라인데, 지금 이곳 사람들은 네 바퀴 달린 비거를 제작하여 하루에 천리를 간다고 하고, 또한 서오인(西嗚人)도 비거를 보유하고 있어 풀무질하여 바람을 일으키는 기술을 전용하여 바람을 일으켜 기운을 발생시켜 공중으로 떠서 다니기 때문에 뭍과 물에 장애되는 곳이 없고 난리를 당하여도 적을 방어하기 이롭다고들 하나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여 그 사실 여부를 제대로 알 수는 없으나 굳이 그 이치를 구하자면 역시 기법(氣法)에서 연유했을 것이다.

근세에 신승선(申丞宣 : 승선은 승지의 별칭 - 이름은 경준景濬으로 호남 순창군 사람이니, 곧 신말주申末舟의 후손이라고들 한다.)이 일찍이 책문(策問)에 답하는 대책 중 거제(車制)를 논하면서 말하기를, "임진년 왜추(倭酋)가 창궐했을 당시 영남의 고립된 성이 바야흐로 겹겹이 포위를 당하여 망하는 것이 조석지간에 달려 있었습니다. 이때 어떤이가 성주(城主)와 절친하였는데 평소 매우 색다른 기술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비거를 제작하여 성중으로 날아 들어가 그의 벗을 태워 30리쯤을 난 뒤에야 지상에 착륙하여 왜적의 칼날에서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하였는데, 만일 그러하다면 옛날부터 그 제도가 있었고 우리 나라 사람들도 만들 수 있었으되 다만 세상에 전해지지 않았을 따름일 것이다.

기굉의 비거와 영남인의 제도는 곧 악라사와 서오의 방법과 같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연도(燕都 북경)에 들어가서 어쩌다 악라사인과 접촉하게 될 때 그 비거제도는 고거해 보지도 않고 단지 망원경과 같은 하찮은 것만을 구하는 것은 왜 그러할까? 그 까닭은 우리 나라 사람들이 경제(經濟)에 소양이 없기 때문이리라.

구양형(歐陽衡)이 말하기를, "만력(萬曆) 연간에 부제국(浮提國) 사람들이 강우(江右)에 와서 수일을 머물다가 날아가 버렸다." 고 하였는데, [종신록(從信錄)]에 기록되어 있으며, 서거원(徐巨源)도 상세히 언급하고 있다. 황명(皇明) 말기의 기이(記異)에 전하기를,

"만력 말기 어사(御史) 섭영성(葉永盛)이 강우지방을 순무할 때, 그 곳의 유사(有司)가 보고하기를 '한 떼의 광객들이 스스로 황백사(黃白事 연금술)에 능하다고 하는데, 술을 많이 마시고 오락을 즐겼습니다. 또 그들이 지니고 있는 물건도 매우 사치스럽습니다. 주옥을 많이 사면서 기증(綺繒 비단의 일종)으로 값을 치뤘는데, 값어치보다 많았습니다. 저녁 무렵이 되자 갑자기 보이지 않기에 여관을 물어서 찾아가 보았으나 옷가지마저 간 데 없다가 아침 일찍 돌아왔습니다. 매우 기이한 일이니 대수색을 하소서.' 하였으나 허락하지 않고 다만 자기 앞으로 오도록 하였습니다. 

그들의 손에 돌맹이 하나를 쥐고 있었는데 칠척(七尺 : 엄지손가락 일곱마디)쯤 되는 수정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책상에 놓으니 상하 전후에 있는 물건이 그 가운데 투영되어 작은 먼지까지도 자세하게 보였습니다. 또 한 개의 금루소함(金縷小函)이 있었다. 검은 종이에 녹색 글씨로 쓰여져 있었는데 반야어(般若語) 같았습니다. 그것을 다 보자마자 글자가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두가지 물건을 섭 어사에게 헌납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러자 섭 어사가 말하기를, '너희들은 다른 나라 사람이 분명하니 바친 것들을 내가 받을 수 없다. 그러니 속히 경계를 넘어가 우리 백성들을 현혹시키지 말라.'고 하자 머리를 조아리며 돌아가 버렸습니다." 고 하였다.

대개 해외에 부제국이 있는데, 그 나라 사람들은 모두 비선(飛仙)으로서 천하를 유람하기를 좋아하였는데 도착한 지방의 사투리를 잘 쓰고 그 지방 옷을 입고 그 지방 음식을 먹는다. 음주를 좋아하여 절제함이 없고 간혹 양태별관(陽태別館 : 창녀촌)에 들르기도 하는데, 그러다가 자기 나라에 돌아가고자 하면 한순간에 홀연히 바람을 일으켜 만리나 갈 수 있었다.

바야흐로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여간인(중국에서 로마인을 지칭하는 말)의 환법(幻法  마술)과 비교해 보건대, 위에서 말한 것들은 그른 것이라 생각된다. 환법이란 한순간에 다른 사람을 속이는 기술인데, 어찌 마술로써 큰 바다를 건널 수 있단 말인가! 원서등(遠西鄧)의 [옥함(玉函)]에는 기기도(奇器圖)에 사람을 태우고 날아가는 그림이 있었는데 원본은 없어져 버렸으니, 그 이유는 혹시 그 기술을 비장하려고 발설하지 않고자 하는 의도에서인가? 악라사와 서오는 이미 서양에 있으니 어찌 기굉의 유종이 아님을 알 수 있겠으며, 옥함의 그림도 어찌 기굉의 유제가 아님을 알 수 있겠는가.

[태평광기(太平廣記)]에 이르기를, "노반(魯班)이란 자는 돈황 사람으로 연대는 상세치 않다. 그의 기술의 교묘함이 귀신 같았는데 양주(凉州)에 있으면서 부도(浮圖)를 만들고 나무연을 제작하여 가로나무를 계속 두드리고 세 번 내리면서 그것을 타고 내려왔다." 고 하였고, 

[홍서(鴻書)]에는, "당나라 목종 때에 한지화(韓知和)는 본시 왜인으로 나무 다루기를 잘 하여 온갖 새들의 형상을 제작하였는데, 마시고 쪼는 동작이 진짜 새와 다름없었다. 관려(關려)를 복중(腹中)에 설치하여 띄우자 구름을 넘어 힘차게 날아 백척이나 높이 날고 이백보 밖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지상에 착륙한다." 하였는데, 만일 이 제도를 수레에 적용한다면 수레가 날 수 있을 것이다. - [두양편(杜陽編)]에 "당나라 목종조에 비룡사(飛龍士) 한지화는 본래 왜국 사람으로서 능히 호랑이를 다루어 춤추게 할 수 있는 사람인데, 오대무(五隊舞)와 양주곡(梁州曲)을 지은 자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이가 북원(北原 원주)과 노산(魯山 노성)에 비장된 비거에 관한 서적을 전한다고들 하는데 허황된 설일지도 모른다. - 어떤 이가 말하기를 "일찍이 원주 사람이 소장하고 있던 책을 보았는데, 곧 이거제로서 풀 종류로 만든 것에 네 사람을 태웠는데, 고니와 따오기 형태를 만들어 복중을 쳐서 바람을 일으키면 공중으로 떠올라 백장(百丈)이나 날아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양각풍(羊角風 : 회오리바람)이 불면 날아 가지 못하여 추락하고 광풍을 만나도 날아 갈 수 없다. 그 제도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고 했으며 

전주부 사람인 김시양(金時讓 조선 仁祖 때의 문신)이 말하기를 "호서 지방 노성(魯城)에 윤달주(尹達主)라는 사람이 있는데 명재(明齋)의 후예로서 교묘한 기기를 잘 만든다. 이 사람 또한 비거제를 가지고 있어 기재하여 간직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처럼 신비스러운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자세히 알 길이 없다.- 만일 이러한 제도가 있다면 바람을 타고 올라 가고 먼지를 일으키며 천지사방을 돌아 다니는 것을 집안 뜨락에서 다니는 듯이 하며 마음먹은 대로 가도 도처에 방해가 되는 것이 없으니 어찌 상쾌하지 않겠는가.

진정으로 그 제도를 모방하려고 한다면 우선 수레를 나는 연과 같이 만들고 날개와 깃털을 부착하고 그 안에 기계를 설치하여 사람이 그 가운데 타서 기계를 작동하기를 잠수부가 수영하듯이 굼벵이가 몸을 굽혔다 폈다하듯이 움직여서 풍기를 발생하게 한다면 양날개로 스스로 훨훨 날아 올라 눈깜짝할 사이에 천리를 날 수 있으리니, 열구(列寇)가 순오(旬五 : 15일)만에 돌아 오고 대붕(大鵬)이 삼천리를 나는 기세가 어찌 이보다 나으리오.

그 기계는 오로지 연결쇠가 좌우로 움직이며 연결되어 신축하고 서로 운행하며 공기 중에서 바람을 일으키면서 양 날개가 펄럭거려 확연히 떠서 경풍(勁風)·대기(大氣)의 위에서도 그 기세를 막지 못할지니, 이는 곧 기(氣)로써 기계를 움직이고 새로써 방법을 삼았기 때문에 생각으로는 가능하다고 하겠다. 이치가 그 가운데 있기는 하나, 스스로 억측으로 돌리고 방치하고 논하지 않는 것이 옳겠다. - [해국도지(海國圖志)]에 비거도(飛車圖)가 있으니 후에 고거하기 바란다. -

그러니까 이규경선생이 설명하신 비거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이런 글라이더류가 아닌 것이지요 (공군박물관 재현 비거)


최초의 전설, 결흉국結胸國의 기굉인

이 기록을 보면 비단 임란대의 조선시대 비거만이 아니라, 여러 기록이 나오고 있지요. 사실 이 '비거'라는 표현은 18세기에 나온 독창적인 것은 아닙니다. 이미 중국의 신화시대의 전설속에 나오는 '날아다니는 수레'를 飛車라고 했고, 조선의 문인들도 이 단어를 싯구등으로 나타내기도 했지요. 진(晉)나라 황보밀(皇甫謐)의 [제왕세기(帝王世紀)]에 이 부분입니다. “기굉씨는 나는 수레를 만들어서 바람을 따라 멀리 날아다닌다 (奇肱氏能爲飛車 從風遠行)."

여기 나오는 이 '기굉'은 사람이름이 아니라 감숙성 옥문관의 서쪽 4만 리에 있다는 결흉국(結胸國)에 사는 사람들을 총칭하는 표현이었습니다. 조금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누자면 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비단 제왕세기만이 아니라 서진시대의 의 재밌는 책인 [박물지]에 나오는데, 앞서 소개한 [오주연문장전산고]에도 나오지만 간단히 이런 이야기입니다.

아주 먼 옛날에 하늘에 뜨는 수레, 즉 비차(飛車)를 타고 세상을 마음대로 날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중국 감숙성 옥문관의 서쪽 4만 리에 있다는 결흉국(結胸國)에 사는 기굉(奇肱) 사람들인데 아득히 먼 옛날 비차를 타고서 탕(湯) 임금이 다스리던 중국 은나라를 방문했다. 하지만 탕 임금은 비차를 보고, 자신의 백성들이 보지 못하도록 파괴해 버린다. 이후 10년이 지나 기굉인들은 비차를 수리해서 고향으로 돌아갔다. 

마치 외계인같은 이야기입니다. 참고로 결흉국의 '結胸'이라는 단어는 가슴이 부푼 형상을 말합니다. '감숙성 옥문관의 서쪽 4만리'에 있다고 하는데, 아래의 붉은 색 지역이 감숙성 (간쑤성)입니다. 4만리면 약 15,680 킬로미터가 됩니다. 이 정도 서쪽으로 가면 북아메리카대륙이라고밖에 추정할 수 없죠. 그것도 미국이나 캐나다 동부에 가까울 겁니다.
여하튼 이러한 전설은 우리 선비들에게도 알려져서 예를 들면 임란전인 조선중기 성현(成俔, 1439∼1504년, 그렇습니다 용재총화의 저자죠)의 [허백당집]에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쌍성호에서 큰 바람을 만나다〔雙城湖遇大風〕
이산의 구름 움직임은 마치 비거 같고요 / 籬山雲氣如飛車
태호의 흰 물결은 공중의 꽃이 번득이는 듯 / 太湖雪浪飜空花 중략.

또한 박제가(朴齊家, 1750~1815년)의 [정유집(貞蕤集)]에도 비차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柳幾何 
珍重朱門且曳裾, 好風天末托飛車, 莫欺寒屋朝虀闕, 吏部家人爲煮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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飛仙 부제국 사람들, 그리고 정평구외의 윤달주(尹達主)등 또다른 조선시대 비차제조인들

기록에는 악라사, 즉 러시아인들과 서오인들도 이미 19세기당대에 하늘을 나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태연스럽게 적고 있죠. 러시아인의 경우 네 바퀴가 달린 비거로 천리를 하루에 가고, 서오인(西嗚人)은 풀무질로 바람을 발생시켜 공중을 떠다닌다고 되어 있어 마체 프로펠러같은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서오인이 어느 국가를 가리키는지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만, 블로그 이웃이신 적륜님의 제보로 이규경선생이 참조한 것으로 보이는 일본의 1787년 저서인 [홍모잡화紅毛]의 이런 일종의 기구를 묘사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찾아보니 홍모잡화는 네덜란드의 지식을 바탕으로 난학자인 모리시마 주조가 저술한 서구에 대한 잡학사전격인 저서인데, '홍모'는 '홍모인' 즉 네덜란드인이나 영국인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홍모잡학중 기구비행선 부분 (1784년 (적륜님제보))

그런데 이 홍모잡학은 매우 빨리 지식을 입수한 예가 됩니다. 왜냐하면 세계 최초의 기구를 프랑스의 몽골피에 형제가 만들어서 최초로 성공적으로 비행시킨 것이 불과 1783년 6월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이건 무인비행이었고 이로부터 5개월뒤인 1783년 11월이 되서야 최초의 열기구 유인비행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홍모잡학의 저 기록이 만약 프랑스의 열기구소식이라면 약 3년만에 당시의 동서의 거리감을 따지자면 거의 실시간으로 전파된 셈입니다 (참고로 비행선에 '동력'기관을 부착시킨 것은 1852년이 되서나 가능해집니다).

다시 오주연문장전산고 기록으로 돌아가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바로 '부제국'사람들에 대한 기록인데 그 이유는 이 기록은 16세기 즉 임란대의 기록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구양형(歐陽衡)이 말하기를, "만력(萬曆) 연간에 부제국(浮提國) 사람들이 강우(江右)에 와서 수일을 머물다가 날아가 버렸다." 고 하였는데, [종신록(從信錄)]에 기록되어 있으며, 서거원(徐巨源)도 상세히 언급하고 있다." 라고 되어 있는데, 이 만력은 1573 ~ 1619년을 뜻합니다. 즉, 임진왜란 당대와 겹치는 시기입니다.
비근한 시기인 17세기 프랑스등에서는 이런 삽화나 상상들이 이미 종종 등장하고 있었습니다 (17c. 비행장비)

즉, 16세기말, 부제국이라는 국가의 사람들은 비차기술을 가지고 있었다는 기이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공교롭게도 그것이 바로 울산선전투의 시기와 같은 시기가 되지요. 이 부제국이 어디를 가리키는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 국가명은 1804년의 기행기 [계산기정]에도 등장하는데 다음의 구절입니다.

浮提國은 내가 읽은 明末記異에 있는 나라다. 부제국 사람들은 飛仙처럼 놀기 좋아하며 천하를 돌아다니고, 남녀가 정사를 나누는 陽臺別館에서 정을 통한다.- 계산기정

이 기록에서도 이 나라 사람들은 '비선' 즉 날아다니는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지요. 이뿐아니라 이보다 전대인 18세기 이용휴(李用休, 1708년 ∼ 1782년)의 문집에도 부제국사람은 뭔가 특이한 기술을 선보이는 종류로 등장합니다.

이씨 아이 글씨에 쓰다
부제국(浮提國) 사람이 먹물을 뿌려 글을 이루었다 하니, 환어이거나 별도의 술책이 있던 것으로 의심된다. 만약에 인위(人爲)에 관련된 것이라면 모름지기 차서가 있는 공부가 있어야 할 것이므로 옛날의 글씨를 잘 쓰는 자가 높은 재주가 있더라도 그 성취는 반드시 중년 이후에 있는 것이다. 중략.

그리고, 이 부제국 사람들이 날개라든가 몸의 능력으로 나는 것이 아니라 '기계'의 힘으로 날고 있음은 역시 같은 [오주연문장전산고]의 다른 권인 제 5권 논사류에 등장합니다. 이 구절입니다.

《물리서》에 의하면, 반박충(斑駁蟲)이 하늘에 오른다는 말이 있으니, 그 나는 것은 한계가 있지 않기도 하다. 그리고 우민국(羽民國)과 부제국(浮提國) 사람들이 나는 것은 마치 이곳 사람들이 땅에 걸어다니는 것과 같아서 괴이하게 여길 것도 없거니와, 저 멀리 서양(西洋)에는 사람이 타고 다니는 기이한 기계(器械)가 있으니, 보통 사람들도 날 수 있지 않겠는가.

고대이집트의 나무새

사실, '나레(날것)'에 대한 로망은 고대로부터 전해져서 지괴류서적인 [태평광기]의 마치 행글라이더같은 노반이라는 자의 사람이 타는 연이라든가 당나라 목종대 (795년 ~ 824년)에는 한지화라는 왜인이 만든 무려 100척 높이를 날아 구름위로 날아가는 장난감 나무새 신비한 이야기도 언급되고 있습니다. 

또한 흥미로운 부분으로 원서등(遠西鄧)의 옥으로 만든 함(玉函)에 기기도(奇器圖)라는 그림이 있는데 여기 사람을 태우고 나는 기계가 그려져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오역으로 보입니다 (적륜님과 남중생님 제보). 이 구절은 '원서등이라는 사람의 옥함'이 아니라 '먼 서양의 등옥함'이라는 사람이라고 해석되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이 '등옥함'이라는 서양인은 예수회출신 선교사였던 요하네스 슈렉이라는 사람인데, 바로 글중에 나오는 [기기도설]의 저자라고 합니다. 이 부분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적륜님의 글(2011년)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아래는 일부 발췌한 부분). 흥미로운 것은 이 분은 '갈릴레오'와도 친분이 있었던 사람이라고 하는 부분으로 주지하듯 갈릴레오는 워낙에 비행물체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지요.

먼저 기기도설의 원제목은 《遠西奇器圖說錄最》로 1627년 처음 발간되었습니다. 지은이는 등옥함(鄧玉函, 1576-1630)과 왕징(王徵, 1571-1644)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등옥함은 일반적으로 검색을 하면 스위스 출신의 중국 예수회 선교사 J. 테렌츠라고 알려져있습니다. 출신지에 대한 논란이 실은 오래되었는데, 최근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스위스와는 무관한 남부 독일 바덴-뷔어템부르크주의 지크마링엔(Sigmaringen) 출신으로 프라이부르크 대학을 다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게다가 갈릴레오와도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해국도지(海國圖志)라는 그림책에도 비거도(飛車圖)라는 비거를 그린 그림이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해국도지(海國圖志)라는 저서는 중국에 여러 이본이 있는데 어떤 것을 말하는지는 더 알아봐야 할 듯 합니다. 다만, 이규경의 연대를 비교해볼때 가능성이 있는 것은 청조 후기의 사상가인 위원(魏源, 1794~1856년)이 1847년-1852년에 걸쳐 작성한 세계정세서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규경의 기록이 흥미로운 것은 비단 '비차(비거)' 기록을 앞서 소개한 [여암전서]만이 아닌 다른 기록들에서도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부분:

어떤 이가 북원(北原 원주)과 노산(魯山 노성)에 비장된 비거에 관한 서적을 전한다고들 하는데 허황된 설일지도 모른다. - 어떤 이가 말하기를 "일찍이 원주 사람이 소장하고 있던 책을 보았는데, 곧 이거제로서 풀 종류로 만든 것에 네 사람을 태웠는데, 고니와 따오기 형태를 만들어 복중을 쳐서 바람을 일으키면 공중으로 떠올라 백장(百丈)이나 날아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양각풍(羊角風 : 회오리바람)이 불면 날아 가지 못하여 추락하고 광풍을 만나도 날아 갈 수 없다. 그 제도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전주부 사람인 김시양(金時讓)이 말하기를 "호서 지방 노성(魯城)에 윤달주(尹達主)라는 사람이 있는데 명재(明齋)의 후예로서 교묘한 기기를 잘 만든다. 이 사람 또한 비거제를 가지고 있어 기재하여 간직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처럼 신비스러운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자세히 알 길이 없다.

그러니까 우리는 흔히 '비차'를 만든 조선인의 이름으로 김제출신의 '정평구(鄭平九)'라는 이름만을 알고 있는데, 사실 이규경은 그외에도 '원주출신 사람'이 소장한 책에 등장하는 네명이 타는 새모양의 비거와 전주출신의 인조대의 실제 문인이었던 김시양(金時讓, 1581~1643년)이 '충청도 노성출신 윤달주(尹達主)'라는 자가 비거를 만들 수 있는 제도를 가지고 있다라고 하고 있어, 임란당시 이러한 기술이 정평구 한명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여럿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요.

이규경은 사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비단 비차만을 떼어 설명한 것이 아니라, 어떤 특이한 자동기계라든가 수레의 분류안에 넣었었습니다. 다음은 그가 기록한 여러 신기한 수레들에 대한 고찰 목록입니다. 두번째 항목을 보시면 '자행차' (즉 저절로 움직이는 차, 자동차)라는 제목도 있습니다. 그리고 '용골차'같은 흥미로운 기록도 있지요. 비차는 네번째 항목에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 기록들은 아직 번역본을 찾기가 힘듭니다.

[0609]獨輪車辨證說 卷13 上426
[0610]自行車辨證說 卷18 上538
[0611]龍骨車辨證說 卷18 上542
[0612]飛車辨證說 卷2 上33
[0613]睡車辨證說 卷51 下663
[0614]牛車辨證說 卷60 下950

사실 이규경 선생의 이 기록을 그저 '기담'으로 신기한 소재로 매체에서 쓰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는 당대 우리 학자들의 치열한 고찰에 있다 할 것입니다. 이규경선생은 5권에서 이런 기록을 남깁니다.

새는 양쪽 날개가 있기 때문에 바람을 타고 하늘에 오르고 벌레는 얇은 죽지가 있기 때문에 바람에 의해 공중을 나는데, 대체로 이 날아다니는 것들은 각기 날 만한 까닭이 있기 때문에 나는 것이다. 그러나 공기(空氣)가 하늘에 닿도록 층층으로 펴져 있으므로 바람이 느리거나 빠르게 부는 데 따라 나는 각도도 제각기 한계가 있다. 그런데 신선이나 용의 경우는 날아서 충분히 하늘에 오를 수 있으므로 원래부터 한계가 없지만 붕새[鵬]는 가장 높이 나는 새이기는 하나 수십 리 거리의 상공(上空)에 불과하고 쓰르라미나 작은 비둘기는 기껏 날아봐야 느릅나무도 넘지 못하고 땅에 떨어지며, 집오리 같은 것들은 날개가 있기는 하나 날지 못하고 죽지가 달린 벌레의 경우는 두어 길[丈]의 높이도 다 날아오르지 못한다. 그러므로 제각기 그만한 까닭이 없다면, 아무리 땅 위로 일푼(一分) 높이나마 날아오르려 해도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선생은 그저 '흥미거리'로 이 기록을 남긴 것이 아니라, 실제로 어떤 원리로 이러한 날 수 있는 기계들이 당대와 전대의 기록에 남아 내려오는 지에 대한 생각과 활용에 관심이 있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점이 이규경 선생의 기록을 그저 흥미거리가 아닌 가치있는 기록으로 한번 더 평가할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물론 허황된 기담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진 정평구의 비거외에도 동아시아의 여러문헌에서 이러한 종류의 이야기가 전해온 것을 살펴보는 것은 나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관심있는 학자가 있다면 한번 제대로 파고 드는 것도 재미있는 연구가 되겠지요.

=====
사족:
마지막으로 명대말기의 [오잡조(五雜組)]에 나오는 명대초기의 신기한 이야기를 사족으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국초(國初)에 산동(山東) 신성 왕씨(新城王氏)가 막 홀아비가 되어 있을 때, 어느 날 태풍이 불고 날이 컴컴하다가 한참 뒤에야 맑게 갰는데, 먼지 속에서 18~19세쯤 된 한 아리따운 여자가 나오더니 ‘나는 외국(外國) 사람인데, 수레를 탔다가 바람을 만나 그만 이곳에 표락(飄落)되었다.’ 하였다. 이에 왕씨가 드디어 그녀와 부부(夫婦)가 되었는데, 그 후 1백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왕씨(王氏)들의 과명(科名)과 현달(顯達)이 누구보다 뛰어나니 모두가 천녀(天女)의 후손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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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레이오트 2016/02/03 10:21 #

    임진왜란에서 조선의 '비밀병기'라고 하면서 빠지지않는게 이 비차, 혹은 비거인데 여기 설명을 보니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설계했다는 하늘을 나는 기계와 유사점이 많네요.
  • 역사관심 2016/02/03 14:31 #

    저도 저 부분을 처음 읽었을때 그 생각을 했더랍니다. ㅎㅎ
  • 迪倫 2016/02/03 13:43 #

    1787년 모리시마 주료가 쓴 "홍모잡화"이라는 책에 비행선의 설명과 그림이 있습니다. 풀무질을 하여 기운을 일으킨단 오주연문장전산고의 기사는 아마도 이 비행선에 대한 정보를 접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일본 서적의 정보가 많습니다,
    참고하시라고 이미지 링크 합니다:
    http://archive.wul.waseda.ac.jp/kosho/wo07/wo07_01526/wo07_01526_0001/wo07_01526_0001_p0027.jpg
  • 역사관심 2016/02/03 14:31 #

    아 그렇지 않아도 러시아의 18세기 비행선기록을 찾아보려던 참인데, 이규경선생이 일본측 기록을 참조했었군요. 고맙습니다. 지금 첨부하겠습니다.
  • 2016/02/03 22:3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남중생 2016/02/04 02:54 #

    저 "부제국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였을까요? 명 만력제 연간이라면 여간 매력있는 시대이기도 한데다가... 적륜님이 지난 번에 다루셨던 "환술"의 언급도 보이는 것 같네요.
  • 2016/02/04 03:3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남중생 2016/05/31 22:19 #

    앗, 제 뒤에 답글이 달렸는데... 비공개로 되어있네요ㅠㅜ
  • 역사관심 2016/06/01 13:20 #

    아 적륜님의 비공개답글에 답글을 단 것이라 비공개로 되었나 봅니다. 별 내용이 아니라 고견에 감사드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
  • 존다리안 2016/02/03 22:30 #

    맹꽁이 서당에서는 헬리콥터처럼 그려졌습니다.
  • 역사관심 2016/02/04 07:48 #

    아 그랬었군요. ㅎㅎ 이런 부분까지 가져다 쓰신 윤선생님...
  • 남중생 2016/02/04 02:46 #

    "원서등(遠西鄧)의 옥함(玉函)에 기기도(奇器圖)"라고 된 것은 아마 오역일 듯 싶습니다.
    아마도 "먼 서양(遠西)의 등옥함(鄧玉函)이 지은 기기도설(奇器圖說)"을 말하는 것이겠죠.
    등옥함은 예수회 선교사 요하네스 테렌츠 슈렉(Joannes Terrenz Schreck)의 중국 이름입니다.
  • 역사관심 2016/02/04 03:38 #

    남중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해석이 이상해서 답답했는데 적륜님께서도 함께 지적해주셔서 고칠 수 있었습니다.
  • 헤르모드 2016/02/04 14:32 #

    바로 얼마전에도 <<왜사기>>가 실제로 존재하느냐는 문의를 받았습니다. 몇 년에 한 번씩은 받는 질문입니다.

    "왠 사기?" 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올시다.
  • 역사관심 2016/02/05 02:25 #

    헤르모드님 잘 지내시죠? 전문가도 모르는 사서를 어디서들 그렇게 구하는지...(;) 이런 정보들은 좀 바로 잡으면 좋겠습니다.
  • 신병훈련행성알바리움 2016/02/05 11:46 #

    조선시대의 로스트 테크놀로지... 이자 오파츠(?)취급을 받는 비차가 드디어 등장했군요!!!

    오랜만에 보니 참 반가운 소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
  • 역사관심 2016/02/06 07:03 #

    오파츠에 역시 가까운 기록들이죠... 현전하는 실물이 없어서 목록에 들어가진 못하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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