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왕의 직속부대 도열모습 (12세기) 역사전통마

고려시대의 왕 직속부대의 사열모습이 남아있을까요? 현재 고려시대의 부대모습이라든가 왕의 부대를 검색하면 단 한장의 제대로 된 사진이나 그림도 없습니다 (항시 본 블로그에서 비판하는 한국사회의 문화'가시성'의 희미함이 또 다시 드러나는 부분이지요).

그나마 한국사극사상최초로 규모면에서 고려군의 모습을 제대로 구현한 [정도전]

그럼 고려시대 왕의 직속군대 의장은 어떤 모습인지 알 방법이 있을까요? 다행히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도 자세히 (물론 12세기 한정이긴 합니다만).

의종 (毅宗, 1127~ 1173년)대 
凡法駕衛仗條(범법가의장), 즉 왕을 호위하는 일반 군대 의장항목입니다. 의종의 경우 추락했던 왕권을 다시 세우려 (초반) 노력했던 인물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꽤나 화려한 의장이지요. 이 기록은 오래전부터 학계에서는 주목해 오던 것으로 예를 들어 김낙진 선생의 [고려시대 금군의 조직과 성격](2005)이라는 논문에서도 상세하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위에 열거한 부대 가운데 白甲隊, 中禁班, 都知班, 牽龍班, 巡檢軍 등은 여복지 이외에 高麗史나 高麗史節要등의 다른 부분에서도 散見되지만, 先排隊, 淸遊隊, 防牌隊, 銀粧長刀隊, 銀骨朶子隊, 銀斫子紅羅號隊, 玄武軍隊 등은 달리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고려兵制 전반을 설명하고 있는 高麗史 兵志에는 별도의 언급이 없다. 이러한 까닭은 명확하지 않지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이들 부대가 의장 임무만 맡은 儀仗隊(軍)였기 때문에 兵志에서 다루지 않고 의장 규례와 연관지어 輿服志에서 다루었다고 생각된다. 다른 하나는 이들 부대가 2軍 6衛의 京軍처럼 상설적인 부대가 아니고 軍號로만 편제되어 있다가 의장행사가 있을 경우 京軍 소속의 병사들이 다양한 軍號 아래 재편되어 의장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기 때문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답답한 점은, 여기 나오는 다양한 모자 (예를 들면 방각(放角), 삽각(挿角등)나 의복(소수의(小袖衣)등)나 갑주, 그리고 물건들에 대한 (역시나) 그림자료가 없어서 어떤 모습이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는다는 점이지요. 일단 내용을 훑어보시기 바랍니다 (*삽화는 내용과 관계없이 문화컨텐츠 사이트등에서 가져온 고려시대 병사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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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여복1(輿服 一) 의위> 법가의 위장
범법가의장(凡法駕衛仗)

의종(毅宗)대 상정(詳定)하기를, 
“선배대(先排隊)는 영장군(領將軍) 1명【비단 옷에 띠[帶]를 두르고 장도(長刀)를 차며, 기를 들고 말을 탄다】, 
장교(將校) 6명 【방각(放角)을 쓰고 자의(紫衣)를 입고, 띠를 두르고 칼을 차며, 기를 든다】, 

군사(軍士) 100명이 좌우에 나누어 선다【자의를 입고 장도를 든다】. 

청유대(淸遊隊)는 영도장(領都將) 2명【자의를 입고 장도를 차며 깃발을 들고 말을 탄다】, 
장교 10명【자의를 입고 띠를 두르며 칼을 차고 깃발을 들고 말을 탄다】, 
군사 200명【푸른색 옷을 입고 동심결(同心結)의 활집[弢鞬]을 메고 말을 탄다】이다. 

금오위(金吾衛)의 절충도위(折衝都尉)는 
장군 2명【자갑(紫甲)을 입고 장도를 차며 깃발을 들고 말을 탄다】, 
장교 4명【의복은 위와 같다】, 
군사 80명【활집을 메고 철갑옷을 입으며 말을 탄다】이다. 

금오위의 과의(果毅)는 장교 2명【복색(服色)은 전대(前隊)와 같다】, 
군사 80명으로, 좌우에 나누어 선다【갑옷과 말을 타는 것은 절충대와 같다】. 
행루여(行漏輿)는 1개로, 길의 한가운데에는 
청도(淸道) 1명 【삽각(挿角)을 쓰고 자의를 입으며 띠를 두르고 장(杖)을 든다】, 
군사(軍士) 8명【입각(立角)을 쓰고 자주색 보상화의(寶祥花衣)를 입고 가은대(假銀帶)를 두른다】, 
태사국(太史局)의 이속(吏屬) 2명으로, 좌우에 나누어 선다【방각을 쓰고 자의를 입는다】. 
우후차비대(虞侯佽飛隊)는 영장교 2명【갑옷을 입고 칼을 차며 깃발을 들고 말을 탄다】, 
군사 48명으로, 좌우에 나누어 선다【활집을 메고 갑옷을 입으며 말을 탄다】. 

방패대(防牌隊)는 영도장(領都將) 2명【갑옷을 입고 칼을 차며 깃발을 들고 말을 탄다】, 
장교 6명【의복은 위와 같다】, 군사 100명【가죽옷을 입고 갑옷에 작은 깃발이 달린 창을 든다】, 
차비장교 2명【철갑옷에 기를 들고 말을 탄다】, 
군사 24명으로, 좌우에 나누어 선다【갑옷을 입고 칼을 차며 말을 탄다】. 
앞 줄에 수를 놓은 안장을 놓은 말 12필(匹)과 갑옷을 입은 말 8필, 
공군사(控軍士) 40명을 둔다【입각을 쓰고 자주색 보상화 무늬가 있는 대수의(大袖衣)를 입고 가은대(假銀帶)를 두른다】.
경령전 판관(景靈殿 判官)은 길 가운데에 있는데, 
청도 1명【삽각을 쓰고 자의를 입으며 홍정(紅鞓)과 띠를 두르고 장자(杖子)를 든다】, 
군사 9명【조사모(皀紗帽)를 쓰고 자주색 소수의(小袖衣)를 입고 띠를 두른다】. 
행로(行爐)와 다담(茶擔)은 각 1명, 군사는 4명이다【복장은 전행마(前行馬)와 공군사(控軍士)와 같다】. 

채라번(彩羅幡)은 10개인데, 좌우에 나누어 두며, 
군사는 20명【입각을 쓰며 수놓은 머리띠[繡抹額]를 하고, 채라번의 색깔과 같은 대수의(大袖衣)를 입고 구리로 도금한 금대(金帶)를 두른다】, 
인장교(引將校)가 2명이다【방각을 쓰고 자의를 입으며 칼을 차고 기를 든다】. 
황수번(黃繡幡)은 10개인데, 좌우에 나누어 두며 군사는 20명이고 인장교는 2명이다【의복은 모두 위와 같다】.
청곡병대산(靑曲柄大傘) 1개는 길 가운데에, 청양산(靑陽傘) 2개를 좌우에 나누어 두는데, 
공학(拱鶴)은 8명이다【금화모자(金畫帽子)를 쓰고 비단 옷을 입으며 띠를 두른다】. 

평련(平輦)은 1대로, 인가(引駕) 1명【방각을 쓰며 금의(錦衣)를 입고 띠를 두르며 장자를 든다】, 
호련도장(護輦都將) 2명, 장교 2명으로, 전후에 나누어 서있으며
【모두 방각을 쓰고 금의를 입고 띠를 두르고 장도를 찬다】, 
공학은 32명【입각을 쓰고 보상화의를 입고 가은대(假銀帶)를 두른다】이다. 

은구장(銀毬仗)은 40개로, 전성(殿省)의 남반원(南班員)이 좌우에 나누어 선다
【자주색 공복(公服)을 입고 홍정을 차며 말을 탄다】. 
어갑담(御甲擔)은 1개로 길 가운데에 두는데, 공학 4명이 선다
【입각을 쓰고 보상화가 그려진 대수의를 입고 가은대를 두른다】. 
청곡병대산(靑曲柄大傘) 1개를 길 가운데에, 황산(黃傘) 1개를 왼쪽에, 홍산(紅傘) 1개를 오른쪽에 두며, 
공학은 8명이다【금으로 그림을 그린 모자[金畫冒子]를 쓰고 금의를 입으며 띠를 두른다】. 

초요(軺)는 1개로 길 가운데에 두는데, 인가 1명, 호군도장(護軍都將) 2명, 장교 2명, 
공학 48명이다【의복과 차고 있는 것[衣帶]은 모두 평련을 모시고 있는 사람들과 같다】.
은장장도대(銀粧長刀隊)는 영장교 2명【방각을 쓰고 자의를 입고 띠를 두르며 칼을 차고 기를 든다】, 
군사 20명이다【입각을 쓰고 보상화가 그려진 대수의를 입고 가은대를 두른다】. 
교상과 물주전자[水灌子]는 각 1개씩으로 좌우에 나누어 두며, 
군사는 4명이다【금으로 그림을 그린 모자[金畫冒子]를 쓰고 금의를 입으며 가은대를 두른다】. 

국인(國印)과 조서(詔書)에 쓰는 어보(御寶)를 담은 짐[書詔寶擔]은 각 1개씩으로, 좌우에 나누어 두며, 
중서성의 어보를 관장하는 이속[中書主寶吏] 1명【자의를 입고 조정(皀鞓)을 차며 그 뒤를 따른다】, 
군사 16명【입각을 쓰고 자주색 보상화가 그려진 대수의를 입고 가은대를 두른다】이며, 
부보랑(符寶郞)은 1명으로, 길 오른쪽에 선다【공복을 갖추어 입고 말을 탄다】. 

중위군(中衛軍)의 깃발은 1개로, 왼쪽에 두고 군사는 2명이며【갑옷을 입고 투구[兜牟]를 쓴다】, 
공학군의 깃발은 1개로, 오른쪽에 두며 군사는 2명이다【의복은 위와 같다】. 

청룡당(靑龍幢) 2개, 백호당(白虎幢) 2개, 주작당(朱雀幢) 2개, 현무당 2개, 홍수당(紅繡幢) 2개는 좌우에 나누어 두며, 
군사는 20명이다【입각을 쓰고 수놓은 머리띠[繡抹額]를 쓰며, 대수의는 각각 당(幢)의 색깔을 따르고 가은대를 두른다】. 

청당(靑幢) 10개, 적당(赤幢) 10개, 백당(白幢) 10개, 황당(黃幢) 10개, 흑당(黑幢) 10개는 좌우에 나누어 두며, 
군사는 100명【복색(服色)은 위와 같다】, 인장교(引將校)는 2명【복색은 은장장도대의 장교와 같다】.

은골타자대(銀骨朶子隊)는 영장교(領將校)가 2명【의복은 위와 같다】, 
군사가 40명이다【금으로 그림을 그린 모자[金畫冒子]를 쓰고 자주색 착수의(窄袖衣)를 입고 가은대를 두른다】. 
골타자

은장장도대는, 영장교가 2명【방각을 쓰고 자의를 입고 띠를 두르며 칼을 차고 기를 든다】, 
군사가 20명이며, 좌우에 나누어 선다【입각을 쓰고 보상화가 그려진 대수의(大袖衣)를 입고 가은대를 두른다】. 

은작자홍라호대(銀斫子紅羅號隊)는 영장교가 2명【복장과 잡는 것은 전대(前隊)와 같다】, 
군사가 20명이다【자주색 비단으로 된 관[紫羅冠]을 쓰고, 붉은 비단으로 된 배자[緋羅背子]와 녹색 비단으로 된 한삼[綠羅汗衫]을 입고, 자주색 수가 놓인 포두(包肚)를 입는다】. 

사극소기창대(絲戟小旗槍隊)는 영장교가 2명【복장과 잡는 것은 전대(前隊)와 같다】, 
군사가 40명으로 좌우에 나누어 선다【철갑옷을 입는다】. 
은작자홍라호는 4개로, 군사가 8명이며【주갑(朱甲)을 입는다】, 
장엄궁(莊嚴弓)은 12개로, 장교가 12명이며, 좌우에 나누어 선다【방각을 입고 금의를 입고 띠를 두른다】. 

극번(戟幡)은 4개로 군사가 8명【백갑(白甲)을 입는다】이다. 
한(罕)은 1개로 왼쪽에 두며, 필(畢)은 1개로 오른쪽에 두는데, 
군사가 4명이며【비단모자를 쓰고 금의를 입으며 홍정대를 두른다】, 
정편승지(靜鞭承旨)는 4명으로 좌우에 나누어 선다【방각을 쓰고 금의를 입으며 띠를 두른다】. 

절(節)은 6개이고, 정(旌)은 2개인데, 각각 좌우에 나누어 두며, 
정절랑(旌節郞)은 8명이다【자주색 공복을 입고 홍정을 차며 말을 탄다】. 

수정장(水精杖) 1개는 왼쪽에 두는데, 낭장(郞將)이 1명이며, 
월부(鉞斧) 1개는 오른쪽에 두고 낭장이 1명이다【모두 방각을 쓰고 금의를 입으며 띠를 두른다】.
중국의 각종 월부

중금반(中禁班)은 영지유(領指諭)가 2명【방각을 쓰고 금의를 입으며 띠를 두르고 칼을 찬다】, 
행수(行首)가 2명【자갑(紫甲)을 입고 칼을 차며 기를 든다】, 
반사(班士)가 36명인데, 모두 좌우에 나누어 선다【자갑을 입고 칼을 차며, 앞줄에 배열된 자들은 탄궁(彈弓)을 든다】. 

도지반(都知班)은 영지유가 2명【의복은 중금지유(中禁指諭)와 같다】, 
반사가 20명으로, 좌우에 나누어 서며【방각을 쓰고 금의를 입으며 흑간홍라호작자(黑簳紅羅號斫子)를 든다】, 
행수는 2명이다【칼을 차고 기를 든다】. 

홍수선(紅繡扇)은 12개, 공작선(孔雀扇)이 4개, 반룡선(蟠龍扇)이 2개이며, 
승지(承旨) 36명이 좌우에 나누어 선다【방각을 쓰고 금의를 입으며 띠를 두른다】. 

공작산(孔雀傘)이 2개인데 좌우로 나누어 두며, 황산이 1개로 왼쪽에 두고, 홍산은 1개로, 
오른쪽에 두며, 군사는 12명이며【금화모자(金畫帽子)를 쓰고 금의를 입고 띠를 두른다】, 

어견룡(御牽龍)은 22명【금화모자를 쓰고 금의를 입고 은을 도금한 띠[金塗銀帶]를 두른다】이다. 

어로(御輅)는 1대가 길 가운데로 가는데 봉로도장(奉輅都將) 2명, 
장교 2명【방각을 쓰고 금의를 입으며 띠를 두르고 칼을 찬다】, 
공학 150명【무변관(武弁冠)을 쓰고 붉은색 보상화가 그려진 옷[緋寶祥花衣]를 입고 구리로 도금한 띠[銅鍍金帶]를 두른다】이 있다. 

은작자홍라호(銀斫子紅羅號)는 4개로 낭장 4명이 좌우에 나누어 선다【금화모자를 쓰고 비단 옷을 입는데, 혹은 별장(別將)으로 충당하기도 한다】. 

내시관(內侍官)은 좌우에 나누어 선다. 어궁전장군(御弓箭將軍)은 1명인데 길 가운데에 서며【금의를 입고 띠를 두르며 말을 탄다】, 

승제원(承制員)은 의장대 안으로 가로질러 가고, 우산(雨傘)은 2개로 현무당(玄武幢) 뒤에 좌우로 나누어 두며, 
협산(夾傘)은 4명이다【금화모자를 쓰고 금의를 입고 띠를 두른다】. 

뒷 행렬의 말은 8필로, 공군사는 16명이며【입각을 쓰고 보상화가 그려진 대수의(大袖衣)를 입고 가은대를 두른다】, 
뒤를 옹위하는 말은 4필로, 좌우에 나누어 서며 공군사는 8명이다【비단 모자를 쓰고 보상화가 그려진 옷을 입으며 가은대를 두른다】. 

왼쪽에는 상장군 1명이, 오른쪽은 상장군 1명이 서고, 천우대장군(千牛大將軍) 2명은 좌우에 나누어 서며【모두 금의를 입고 홍정을 차며, 말을 탄다】, 천우비신장군(千牛備身將軍) 4명과 비신장군 4명은 좌우에 나누어 선다【모두 자갑을 입고 장도를 차며 깃발을 들고 말을 탄다】.
용호위신대(龍虎衛身隊)는 영도장이 2명【갑옷을 입고 칼을 차며 기를 들고 말을 탄다】, 
장교가 30명【갑옷을 입고 칼을 차며 기를 들고 말을 탄다】, 군사가 600명이다【활집을 메고 갑옷을 입으며 말을 탄다】. 
고려 경번갑

백철갑소기창대(白鐵甲小旗槍隊)는 영도장이 2명, 장교는 12명이며【모두 갑옷을 입고 칼을 차며 기를 든다】, 
군사는 200명으로 좌우에 나누어 서고, 후전지응관(後殿祗應官)은 좌우에 나누어 서며, 감찰어사(監察御史) 2명도 좌우에 나누어 선다. 

어가(御駕)의 뒤에는 금오절충도위(金吾折衝都尉)가 2명【피갑(皮甲)을 입고 칼을 차며 기를 들고 말을 탄다】, 
장교가 4명【의복은 위와 같고 말을 탄다】, 군사가 80명【철갑(鐵甲)을 입고 말을 탄다】이다. 

현무대(玄武隊)는 영도장(領都將)이 2명【갑옷을 입고 칼을 차며 기를 든다】, 
장교가 6명【의복은 위와 같다】, 군사가 200명【갑옷을 입는데, 익위응양군(翊衛鷹揚軍)으로 충당한다.】, 
대복마(太僕馬)가 20필, 공학사가 40명【모자를 쓰고 소수의를 입고 띠를 두른다】, 
우산이 20개, 군사가 20명이다【의복은 위와 같다】. 

후전(後殿)은 영장군이 1명【금의를 입고 홍정을 차며 띠를 두르고 칼을 차며 기를 들고 말을 탄다】, 
장교가 5명【방각을 쓰고 자의를 입으며 장도를 차며 기를 든다】, 군사는 100명이다【자의를 입고 장도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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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은 고려사 권 72, 권제 26에 나오는 것으로 12세기당시 왕직속부대의 행장과 도열모습을 그대로 재현가능할 만큼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총 1740명이 도열하는군요.

개인적으로 더 찬찬히 살펴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지만, 우선 한가지 언급하자면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는 '채색된 머리띠'의 기록을 거의 최초로 여기서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이 기록을 보면 군사들이 이걸 씁니다.
繡抹額 채색된 비단으로 수를 놓은 머리띠

군사는 20명【입각을 쓰며 수놓은 머리띠[繡抹額]를 하고, 채라번의 색깔과 같은 대수의(大袖衣)를 입고 구리로 도금한 금대(金帶)를 두른다】, 

군사는 20명이다【입각을 쓰고 수놓은 머리띠[繡抹額]를 쓰며, 대수의는 각각 당(幢)의 색깔을 따르고 가은대를 두른다】.
 
청룡당(靑龍幢) 2개, 백호당(白虎幢) 2개, 주작당(朱雀幢) 2개, 현무당 2개, 홍수당(紅繡幢) 2개는 좌우에 나누어 두며, 
군사는 20명이다【입각을 쓰고 수놓은 머리띠[繡抹額]를 쓰며, 대수의는 각각 당(幢)의 색깔을 따르고 가은대를 두른다】. 

그러니까 이런 비슷한 걸 쓴 군사'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입각 (立角)을 쓰고 머리띠를 썼다라고 되어 있는데 입각은 고깔모와 비슷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네요.

영화 쌍화점 중


얼마전 소개한 신라시대 군대깃발 편제에 대한 기록도 그렇고, 아직까지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고대-중세사 컨텐츠는 무궁무진합니다. 쌍화점의 저러한 상상력의 군대 대신 제대로 복원할 수 있는 컨텐츠는 자세한 사료를 바탕으로 만들면 합니다. 이러한 역할은 각 방송사에서 시간과 공력을 들여 해내기는 불가능하고, 결국은 상아탑에만 몰두해 있지말고 해당 학계에서 '대중적 서적 (상세한 그림을 담은)'의 활발한 출간과 또한 문화재청등에서 국가에 프로젝트를 제의해 따와서라도 어떤 중심 시스템을 세워줘야 할 것 같습니다. 

마치 조선시대 마을 하면 '민속촌 협조'가 당연스레 붙는 것처럼 말입니다. 
(혹은 이 모습을 재현하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관광요소도 될 수 있겠지요).


덧글

  • 레이오트 2016/02/24 09:16 #

    1. 이런 물건들은 일단 만들어두면 방송국 소품실이나 관련 업체에 보관해두었다가 필요시 대여하면 된다는 점에서 충분한 수를 제대로 만들어두었으면 합니다.

    2. 물건만 있는다고 다가 아닌게 감독과 작가를 비롯한 제작진이 사극 제작시 고증 관련해서 사학자나 관련 연구가들의 도움을 보다 더 쉽게 받을 수 있게 해야하지요. 실제로 서구권 국가와 일본에서 사극 제작할 때 관련 연구회가 참가해서 시나리오나 장면 구성은 말할것도 없고 자신들의 수집품을 소품으로 대여해주기도 하고 심지어 보조출연자의 연기까지 지도해줍니다.

    3. 무엇보다 해당 국가의 문화수준은 해당 국가가 떠받드는 문화보다 그 국가의 국민이 즐기는 문화라는 점에서 이런 쪽으로도 유무형적인 투자가 필요하지요.
  • 역사관심 2016/02/26 01:46 #

    1. 동감입니다. 어떤 전문업체와 제대로 된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합니다. 방송사별 주먹구구식이 아닌. 사실 이런건 문화재청에서 프로젝트로 추진해도 꽤 의미있는 협업인데...제가 문화재청 소속같으면 청에 제안하겠습니다.
    2. 위와 동일한 맥락에서 당연히 찬성입니다.
    3. 항시 주장하는 바와 일치합니다.
  • 존다리안 2016/02/24 09:51 #

    태조 왕건의 궁예 군대 사열식이 생각나네요.
    사열하다 병사 하나가 낙마하자 여자들이 웃으니
    여자들을 마구니가 들었다며 때려죽이라던...

    이거 실화인지 아닌지 궁금하군요.
  • 레이오트 2016/02/24 09:56 #

    군대 사열식 주목적 중 하나가 국력 과시라는 점과 신과 동급의 절대권력을 추구하던 궁예의 성향상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습니다.
  • 역사관심 2016/02/26 01:48 #

    찾아봐야 알겠지만, 이런 기록을 볼때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개 2년(915년), 그의 포악함을 보다 못한 왕후 강(康)씨가 자신에게 간언하자, "네가 다른 남자와 간통하고 있지 않느냐. 나는 관심법으로 보아서 다 알고 있다."며 쇠꼬챙이를 가져다 왕후의 음부를 지져 죽이고, 자신의 두 아들마저 죽였다.
  • 금린어 2016/02/24 12:00 #

    잘 봤습니다.
  • 역사관심 2016/02/26 01:48 #

    감사합니다.
  • 섹사 2016/02/24 14:17 #

    잘 읽었습니다.
  • 역사관심 2016/02/26 01:48 #

    감사합니다.
  • 신병훈련행성알바리움 2016/02/25 10:41 #

    말탄병사는 꼭 몽고군같이 보이네요 경번갑이라는게 고려당시 생각보다 널리 쓰인 모양이군요.

    하다못해 장수급쯤 되면 스케일 형태의 갑옷을 입지 않았을까 생각했었는데. 그리고 저떄에도

    이미 승자총통과 비슷한 무기가 있었다는게 참 신기하군요, 조선의 각종총통들이 갑툭튀 한것이

    아니었네요.
  • 역사관심 2016/02/26 01:42 #

    갑주나 무기사는 제 전공영역이 아닌지라 확실치는 않지만 그런 것 같습니다. 저 삽화의 화포는 아마도 최무선의 병기를 그린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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