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점은 이제 푸른깃발(혹은 포렴)을 달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음식전통마

흔히 전통술집 혹은 요즘 흔한 말로 '민속주점'이라는 형식의 술집은 이런 식의 모양새를 갖추는 추세입니다. 점점 늘어나고 있어 반가운 일이죠.
첫 사진은 꽤 신경쓴 주점으로 보입니다. 필자가 좋아하는 예중 하나는 홍대에 있는 "민속주점"이라는 곳으로, 너와지붕이 인상적인 곳입니다.
하지만 보통은 이 정도죠. 이곳만 해도 꽤 괜찮아 보이긴 합니다만.
마지막 사진은 약간 일본식 선술집 느낌이 납니다.
요즘 들어 나무로 재질을 바꾸는 등 뭔가 전통적인 느낌을 내려 시도하는 것이 좋아보입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한국 술집'이라는 느낌을 주는 '한방'이 모자라는 느낌입니다.

예를 들면, 중국주점하면 이런 붉은 홍등이라든가,
일본전통술집의 이런 포렴이라든가 (포렴이야 모든 일식당의 공통문화지만), 매다는 기다란 등처럼 끌어당기는 아이템말입니다. 참고로 이런 등을 죠우징(提灯)이라고 합니다. 한국어로는 한자그대로 '제등'이라고 하는데, 이 뜻은 손에 들고 다닐 수 있는 휴대용등을 뜻합니다. 사실 일본식당등에 걸려 있는 이런 등들도 잘 보시면 보이겠지만 위에 손잡이가 붙어있죠. 저 손잡이를 거는 형태로 진화한 듯 합니다.
그럼 전통주들의 개발과 맞물려 점차 늘어나는 한국형 전통주점 (민속주점)의 경우 어떤 아이템을 갖추면 좋을까요? 필자의 생각에는 한국술집하면 앞으로 떠올릴 만한 아이템은 다음의 이 녀석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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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점, 주막의 '푸른깃발' (혹은 푸른 포렴)

바로 '푸른 색 깃발'입니다. 이 푸른 깃발은 통일신라시대부터 꾸준하게 술집의 형태(주점, 주가, 주루, 주막등등)와 시대에 관계없이 등장합니다. 

한문으로는 靑帘이라고 쓰는 데, 사실 엄밀히 말하면 '帘'은 '포렴'할때 '발 렴'이므로, 원래는 깃발의 형태가 아닌 위에 보이는 일본술집의 '포렴'에 가까운 형태라 봐야 할 것입니다. 이런 형태의 술집 표시는 사실 중국에서도 무려 한대부터 유행하는데, 아래의 기록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酒樓
酒幕영효부(詠曉賦) 최치원

隱暎靑帘 村逈而鷄鳴茅屋 熹微朱閣 巢空而鷰語雕樑 罷刁斗於柳營之內 儼簪笏於桂殿之傍 邊城之牧馬頻嘶 平沙漠漠 遠江之孤帆盡去 古岸蒼蒼 漁篴聲瀏 蓬艸露瀼 千山之翠嵐高下 四野之風烟深淺 誰家碧檻鸎啼而羅幕猶垂 幾處華堂 夢覺而珠簾未捲 是夜寰縈 天地晴 蒼茫千里 曈曨八紘 潦水泛紅霞之影 疎鍾傳紫禁之聲
희미하게 비치는 술집의 푸른 깃발, 마을에서는 초가집에서 닭이 운다. 희미한 붉은 누각에 새집은 비었는데 제비가 지저귀며 들보를 쫀다. 유영 안에서는 야경을 마쳤으나, 궁궐 가에는 관리가 엄연하다. 중략. 몇 곳 화려한 집에는 꿈을 깨고도 주렴을 걷지 않았네. 

置思婦於深閨 紗囱漸白 臥愁人於古屋 暗牖纔明 俄而曙色微分 晨光欲發 數行南飛之鴈 一片西傾之月 動商路獨行之子 旅館猶扃 駐孤城百戰之師 胡笳未歇 砧杵聲寒 林巒影疎 斷蛩音於四壁 肅霜華於遠墟 粧成金屋之中 靑蛾正畫 宴罷瓊樓之上 紅燭空餘 及其氣爽淸晨 魂澄碧落 藹高影於夷夏蕩回陰於巖壑 千門萬戶兮始開 洞乾坤之寥廓
상사의 부인을 둔 깊은 규방에는 사창이 점점 밝아오고, 고옥에는 근심많은 사람이 누워있다. 어두운 창이 조금 밝아오고, 잠시 후 새벽빛이 희미하게 분간된다. 새벽빛이 드러나려 하는데, 몇 줄 남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 떼. 한 조각 서쪽으로 기운 달, 움직이는 상가 길에 홀로 가는 남자, 여관은 아직 잠겼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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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제목부터 '주루'로 최치원 (857년~)이 당나라에 가서 다가오는 새벽녘 거리를 보며 지은 시입니다. 그런데 굵은 체를 보면 '희미하게 비치는 술집의 푸른 깃발'이라는 구절이 보이지요 (엄밀히 말해, 당시에는 포렴형태일 것입니다). 그리고 최치원이 이를 당연한 듯 바라보고 있어 이미 인식적으로 술집의 상징임을 파악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이런 유행은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시대에도 한국의 국가들에서 유행하는데 예전에 다룬 아래 12세기초 [고려도경]을 보면 완벽한 모습이 구현되어 있어, 그대로 복원해도 될 정도입니다.

고려도경 중 문유 門帷
門帷之制。靑絹三幅。上有提襻。而橫木貫之狀如酒旂。蓋宮室之中。婦人。用以映蔽之具也。
宣和奉使高麗圖經卷第二十八
문유의 제도는 푸른 비단 세 폭인데, 위에 거는 고리가 있어 거기에 가로 나무를 꿴다. 모양은 술집의 깃발과 같다. 궁실 안에서 부인들이 가리는데 쓰는 제구이다.

이 기록을 보면 門帷, 즉 문의 '휘장'이라는 고려의 문화를 소개하면서, '푸른 비단 세폭'을 가로로 늘이고 위는 고리를 걸어 나무를 꿰는 포렴형태의 물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모양이 당시 고려술집의 포렴과 같다라고 되어 있어, 고려시대 중기의 술집포렴 모습을 그대로 알 수 있는 기록이 됩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런 기록이죠.
狀如酒旂。형상이 술집 깃발과 같다. 

흥미로운 것은 여기서는 또 깃발 기자를 쓰고 있다는 점인데, 따라서 당시에 '포렴형태'의 휘장도 '깃발'의 한 종류로 포함해서 불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고려도경은 1123년, 이러한 형태의 깃발(포렴)에 대한 묘사는 이규보(1168∼1241년)의 '주막의 깃발'이란 시에도 강조됩니다.

봄바람이 주막의 푸른 깃발 날리니
멀리서 한번 보매 컬컬한 목 축여지는 듯 
무뢰한 수양버들 요란히 흔들리어
시흥 어린 눈으로 뚜렷이 보지 못하게 하네
오직 백만 전을 가지고 술을 마실 뿐
술집의 푸른 깃발 보이든 말든 물을 것 없네
중략.

고려시대에는 저렇게 길다란 푸른 물감을 먹인 휘장을 아래로 발처럼 늘어뜨리는 표식이 술집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기록들외에도 [동국이상국집]등 여러 번 등장하는 묘사입니다. 예를 들어 아예 술집을 '청기'라고 상징적으로 묘사한 글도 있습니다.

동국이상국집
슬프다 계양을 지키는 사람 / 嗟嗟桂陽守
월급이 적어 술 빚기 어렵네 / 祿薄釀難支
몇 집 안 되는 쓸쓸한 시골에 / 蕭條數家村
어느 곳에 청기가 있을는지 / 何處有靑旗

다만, 전통적인 깃발처럼 푸른 천을 매단 형태도 공존했을 가능성도 엿보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싯구가 [동문선]에 전하지요.

발췌:
강기슭 어가 여덟 아홉 집에 / 傍岸漁家八九屋
술 파는 푸른 기가 두어 장대에 펄럭이네 / 誇酒靑帘數竿竹
얼씨구나, 청동 3백 전을 가지고 / 好將三百靑銅錢
곧바로 목노에 가서 잠깐 쉬어보자 / 直就壚頭聊憩息

이 시는 [양화답설]이라는 작품으로 현재 마포구 합정동에 있던 망원정에서 내다 보이던 '양화벌' (현 양화대교근방)을 묘사한 시입니다. 따라서, 이 당시 합정동에 있던 술집에는 '장대에 파란 기'를 매단 형태의 술집들이 있었던 것이죠.

誇酒靑帘數竿竹 술집의 푸른 깃발이 '간죽' 즉 대나무로 만든 깃대에서 펄럭인다.

이런 모습을 보여준 고려시대(추정)의 시골에 등장하는 (아마도) 주가의 깃발이 등장하는 회화가 한 점 있습니다. 몇년전부터 진위파악중인 고려시대 추정 회화인 [독화로사도]에 나오는 묘한 깃발이죠.
고려시대 그림으로 추정, 진위파악중인 [독화로사도]중 주가로 추정하는 깃발

그럼 다음 왕조인 조선시대가 되면 이런 유행은 사라졌을까요?


조선시대 주막의 푸른 깃발, 푸른 포렴

조선초 문신인 서거정(徐居正, 1420년~1488년)의 [사가시집]에는 이런 싯구가 전합니다.

어느 집 소년인지 놀러 다니는 풍류랑은  誰家少年遊冶郞
좋은 말 타고 한가히 봄 경치를 완상하고 閑䭾細馬遊尋芳
검은 모자에 큰 가죽신 신은 이는 누군지 烏帽大靴是誰子
제멋대로 잔디 밟기를 서로 함께하누나   隨意踏靑聊相將
어느 산 옛 절은 절벽 위에 걸쳐 있는데   何山古寺架層巖
이곳 술집 마을엔 푸른 깃발이 펄럭이네  是處酒村搖靑帘

是處酒村搖靑帘 
이곳의 술집마을(酒村)에 푸른 깃발 (푸른 포렴)이 흔들리네 (펄럭이네)

즉 당시 주막들이 모여있는 촌락이 있었고, 거기에는 푸른 포렴이 펄럭이고 있다는 상징적인 묘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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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로 건너 뛰어 18세기의 술집상황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가 있습니다. 위백규(魏伯珪,1727 - 1798년)의 [존재집(存齋集)]에 이런 흥미로운 설명이 나오지요.

존재집 잡저(雜著)
○정현신보(政絃新譜)
부자가 서로 버리고 부부가 인연을 끊고 형제가 서로 도망하여 인정과 도리가 없어지는데도, 서로 의심하거나 괴이하게 여기지 않는다. 모두 고향을 그리워하고 삶을 즐기려는 뜻은 없고, 이익을 독차지하고 안일(安逸)을 탐하려는 생각만 간절히 한다. 고을의 치소와 역(驛)과 보(堡)에는 술집이 민가의 반이나 되고, 궁벽한 동네에도 술집이 10집 가운데 3, 4집이나 된다. 

또한 모두 자기가 살던 마을을 버리고 갈림길로 흩어지니, 술ㆍ떡ㆍ국수ㆍ과일의 판매가 사철 끊이지 않고, 목로주점(木壚酒店)이 후정(堠亭)에 잇달아 있어, 담배 피는 행상은 불을 끄지 않고도 천리를 간다. 이들은 모두, 남자는 농사를 짓지 않고 여자는 길쌈을 하지 않아도, 겨울에 명주옷을 해 입고 여름에 쌀밥을 먹으며,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요역을 박쥐처럼 피하고, 재능도 없이 군정(軍丁)의 수만 채운다.

위백규(魏伯珪)는 조선후기의 학자입니다.  [정현신보政絃新譜]는 저자의 정치 철학과 실학 사상을 가장 잘 대변하는 것으로, 각종 사회상을 13조에 달하는 시폐로 설정, 당시의 사회 현상과 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조목조목 피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기록은 당대의 사회상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입니다.

당대에는 역과 보에는 술집이 민가의 반이나 되고, 궁핍한 동네에도 10집중 술집이 무려 3, 4할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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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정조대왕(正祖大王, 1752~1800)의 시문(詩文)을 규장각(奎章閣)에서 편찬하고 간행한 책인 [홍재전서(弘齋全書)]에 나오는 싯구입니다.

홍재전서 
춘저록(春邸錄) 시(詩)
국도 팔영(國都八詠)

운대의 곳곳마다 번화함을 과시하여라 / 雲臺著處矜繁華
만 그루 수양버들에 만 그루의 꽃이로다 / 萬樹柔楊萬樹花
가벼이 덮인 아지랑이는 좋은 비를 맞이하고 / 輕罨游絲迎好雨
막 재단한 빤 비단은 밝은 놀을 엮어 놓은 듯 / 新裁浣錦綴明霞

백겹으로 단장한 사람은 모두 시의 벗이고 / 糚成白袷皆詩伴
푸른 깃대 비껴 나온 곳은 바로 술집이로다 / 橫出靑帘是酒家

혼자 주렴 내리고 글 읽는 이는 뉘 아들인고 / 獨閉書帷何氏子
동궁에서 내일 아침엔 또 조서를 내려야겠네 / 春坊朝日又宣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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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도팔영은 조선 후기의 서울의 경승을 살필 수 있는 문헌인데, 발췌한 부분은 필운 화류(弼雲花柳)를 읊은 부분입니다. 필운대(弼雲臺)는 종로구 필운동의 배화여자고등학교 뒤뜰에는 큰 암벽이 있는데, 그 왼쪽에 "필운대(弼雲臺)"라는 정자(正字)가 크게 새겨져 있습니다. 이곳입니다.
이 근처에 '술집들'이 있었다는 것인데 이런 재미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위의 번역본만 보면 깃대가 있는 [동문선]의 형태처럼 보이지만, 사실 [고려도경]의 가로로 거는 포렴형태일 가능성도 있는데 다음의 이유때문입니다.

橫出靑帘是酒家
橫出이라는 뜻은 '가로로 나와있다'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즉, "가로형태로 푸른 포렴이 나온 곳은 곧 술집이다". 어떤 쪽이든 청색 포렴이나 깃발이 있는 곳이 주막이었음을 알 수 있지요.

정선(鄭敾,1676~1759년)의 필운대상춘(弼雲臺賞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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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선생은 술을 못하는 분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런 분의 눈에도 술집깃발은 선명했나 봅니다.

다산시문집
영호정 팔경. 장흥정씨를 위해 짓다[映湖亭八景 爲長興丁氏作]
부분:
산들산들 산들바람 술집 기가 펄럭이고 / 獵獵輕風颭酒旗
강오리는 물을 부니 푸른 물결 일렁이네 / 鷿鷈吹作翠漣猗
한 쌍의 저 돛대는 어디메서 오는 걸까 / 一雙蒲幔來何郡
잠깐 사이 수사를 지나가네 / 彈指聲中過水祠

獵獵輕風颭酒旗
바람이 가볍게 불면 술집 깃발이 일렁인다.

사실, 기록을 찾아보기 전까지는 혹시 '푸른 깃발'이라는 것이 중국쪽에서 넘어온 '관용구' (즉 술집을 상징하는 관용구)가 아닌가 하는 의심도 있었습니다. 일부는 그런 식으로 쓰였을 수도 있겠지만, 이 곳에 옮긴 글들은 대부분 '실제로 본' 느낌을 주는 사료들만을 옮기려 노력했습니다. 예를 들어 아래의 싯구 역시 그러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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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당전집 시(詩)
운석 지원과 동반하여 수락산 절에 함께 놀고 석현에 당도하여 운을 뽑다[同雲石芝園 偕遊水落山寺 到石峴拈韻]
부분:
쌍남이 부끄러라 몸에 견주긴  雙南慙自比
일적은 그대에게 허락했거든  一笛許君任
다리 위에 나타난 작은 술 깃대  小帘橋頭出
모점(茅店)에 말을 내려 마시자꾸나 茅柴下馬斟

추사 김정희 (金正喜, 1786∼1856년)의 이런 구절은 사실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작은 깃발'이라고 하는 묘사가 인상적인데, 사실 시기적으로 딱 맞아떨어지는 당대 그림이 한 점 전하지요. 다음의 그림입니다.
이형록- 설일주막(雪日酒幕)

이 그림은 제목부터 '주막'이 들어가 있는 이형록 (1808년~?)의 [설일주막]입니다. 이 그림이 그려졌던 당대에 추사선생이 4-50대로 시기상 거의 같은 시대죠. 촌에 가까운 마을의 작은 주점에 작은 깃발과 깃대가 소박하게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조선후기에도 '장막형' 포렴을 주막같은 곳에 설치했을 가능성이 보이는 사료가 한 점 있습니다. 운양 김윤식의 싯구입니다.

운양집 
시(詩) ○습유만음(濕遊漫吟)
자원에 들러서〔過瓷院〕

담 모서리 미풍에 술집 깃발 기울고 / 墻角微風酒幔斜
가마 연기 속 버드나무엔 까마귀 숨었네 / 窰煙鎖柳暗藏鴉
열다섯 살 자원의 계집아이 주막에 앉아 / 院姬十五當壚坐
새로 사온 자기 병에 꽃 가득 꽂아놓았네 / 新買瓷甁滿揷花

자원(瓷院)이라는 곳은 분원(分院)의 별칭으로, 조선 시대 경기도 광주 일대에 설치된 관영 사기(沙器) 제조장이 있던 곳을 말합니다.
이 곳에 주막이 있는데, 酒幔斜 이 말은 바람에 술집의 '장막'이 기울어진다 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깃발형태보다는 포렴에 가까운 느낌이지요. 김윤식(金允植, 1835~ 1922년)의 시대가 구한말인지라 이런 형태가 이때도 있었는지 한번 알아볼 가치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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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웃국가들의 경우, 이러한 전통적 상징 아이템들을 이미 활발하게 전승, 활용함으로써 관광은 물로, 해외에서 영업중인 수많은 중국, 일본의 식당들에서 이용하고 있습니다.

중국 자국내 전통 주가거리
뉴욕의 중국식당내부
일본의 자국전통 주점 (일본식 술통으로 외관을 장식한 모습)
사실 저렇게 본격적으로 꾸민 주점외에는 단촐하게 한 두가지 상징성을 지닌 물건만 가져다 놓고 영업을 합니다 (물론 모던한 식당들은 제외). 예를 들어 아래 사진처럼 포렴과 등만 간촐하게 달아놔도 일식당의 정체성은 명확하게 보이지요.

시카고 대학가에 있는 일식당내부 
아래 마지막 사진은 박진영이 몇년 전 뉴욕에 문을 연 Kristalbelli (크리스탈밸리)입니다. 모던 한식당이라 위의 예들과 직접적인 비교는 무리입니다만, 만약 오늘 소개한 포렴이나 주점의 작은 깃발을 활발하게 소비한다면, 언젠가는 이런 식의 모던한식당이나 주점에도 산뜻한 디자인으로 정체성을 부여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일본과 중국의 경우 주로 붉은 계통의 포렴과 등을 달고 있어, 한국의 전통주점의 경우 '푸른 포렴과 깃발'을 한글과 함께 이용한다면 세월이 조금 흘러 차별화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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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까마귀옹 2016/03/06 11:21 #

    아직은 전통 술집하면 '기방' 아니면 '주막'이란 인식이 많이 남아 있어서 당장 바뀌기는 어렵겠지요.

    그리고 정약용 선생의 경우엔 술을 '못'하는게 아니라 '안'하는 쪽에 가깝지 않을까요.
    ('악덕 상사' 한테 소주를 필통에 채워서 그걸 원샷하라는 짓을 당했는데 먹고 싶을 생각이 들리가)
  • 역사관심 2016/03/08 06:16 #

    음 생각해보니 정말 다산선생은 '안 한' 쪽이실 것 같네요 ^^
  • 레이오트 2016/03/06 12:19 #

    한국 전통주에 대한 제대로 된 복원과 이미지 개선도 같이 이루어져야겠죠.
  • 역사관심 2016/03/08 06:16 #

    맞습니다. 할 일이 태산이죠...
  • 존다리안 2016/03/06 12:45 #

    전통을 살리려면 이런 거나 살렸으면 합니다.
    전통에 대해 이상한 생각 하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 역사관심 2016/03/08 06:16 #

    전통이라는 단어를 너무 무겁고 형이상학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 채널 2nd™ 2016/03/06 15:28 #

    혹여 ... 우덜 대한민국에서 '점'쟁이들은 다 대나무인가 뭔가 깃대를 세우고 뭔가 펄럭거리게 달아들 두셨던데 ......... 과거의 술집 컨셉을 그대로 베낀 것인지 궁금하게 생각해 봅니다.

    어째 비스무레하군요. (다른 나라의 점쟁이들은 자기들의 나와바리를 어떻게 표시하는지 문득 궁금해지지만, 저는 역알못이라 더 이상은 NAVER) ;;;
  • 푸른별출장자 2016/03/06 17:12 #

    중국 문화권에서는 주로 마을마다 있는 도교 사원들을 중심으로 역술집들이 활동을 하고

    유럽에서는 주로 집시들이 점쟁이 역할을 헀다고 합니다.
    북유럽에는 동양계인 라플란드 인들이 그 역할을 했다고도 하고요.

    집시나 라플란드 인들은 정착민들이 아니라서 대체로 자신들의 포장마차가 영업장이었고 그래서 나와바리는 없었을 듯 한데 가끔 서로 다른 집시 씨족들끼리 우연히 같은 마을에 머물다가 영역이 겹치면 분쟁이 일어나기도 했답니다.

    백인계 점쟁이들(Fortune teller) 들은 오랜 기간 마녀로 몰려서 처형이 되어서 대놓고 영업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아마 종교계에서 나와바리 침범을 이유로 처형한 것이 아닐까 싶다는...

    아프리카나 중남미의 아프리카계 후예들은 부두 를 비롯해 원시 신앙이 촌장을 중심으로 정교 일치내지 정교 복합체를 이뤘다고 하는데

    이슬람계에선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채널 2nd™ 2016/03/06 18:10 #

    문득 양키들의 유구한 -- 마녀 사냥 -- 전통을 생각해 보니 다들 끽 소리도 못하고 살았을 그 긴긴 시간이 오버랩됩니다.

    (솔까말, 점쟁이로 살아야 하는 자들이 기존 종교의 틀 속에 들어가 변용되어 살아 남았을 수도..)

    서양은 직업(?)의 자유가 있어서 아무나 다 점쟁이를 했을 것 같은데 .. 특정 인종들에게 물려 주는 것을 보니 ㅎㅎ 동양이나 서양이나... 도찐 개찐.


    이슬람에서는 ㅎㅎ '점쟁이'가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할 듯요. <-- 이 모든 것은 마호메트의 뜻대로 이루어지는데, '점쟁이'라니.... ㅎㅎ ;;;
  • 채널 2nd™ 2016/03/06 18:12 #

    제가 정말 궁금했던 것은 양키들은 점쟁이들이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 밝히고 ... 또 어떻게 영업을 했을까였습니다.

    대충 찾아본 결과, 특별한 상징은 대부분 쓰지 않은 것 같은데 ... 우덜 대한민국의 "일부" 점쟁이들만 ... 자신들의 파워를 강조하는 각종 치장을 -- 대놓고 -- 해 놨다는 것만 확인했습니다.
  • 역사관심 2016/03/08 06:17 #

    생각해 본 일이 없는데, 정말 점집의 경우 그런 깃발들이 있더군요. 두분 말씀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 푸른별출장자 2016/03/06 17:19 #

    진짜 조선 시대의 주막이나 객주들이 머무는 곳들의 식당들이 어떤 모양일지 상당히 궁금합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재현하는 것은 좀 믿어지지 않고요.
  • 역사관심 2016/03/08 06:37 #

    저도 너무 궁금한데, 이럴 때는 애초에 '진경'을 여러 생활사적 면에서 많이 담아두지 않은 선조들이 원망스러울 따름입니다.
  • Scarlett 2016/03/07 11:33 #

    오 생각보다 관련 사료가 많군요. 늘 잘 보고 갑니다^^
  • 역사관심 2016/03/08 06:37 #

    항상 감사드립니다.
  • 신병훈련행성알바리움 2016/03/08 04:51 #

    단순히 주막이라는 초롱을 달아놓는것 뿐이 아니라 무려 신라때부터 푸른기를 달아왔었군요...

    주막만 그랬었는지 아니면 흰색외에도 푸른색을 생활전반에 즐겨사용했었는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네요. 저 재현도에 대해서 제가 하고싶은말을 윗분께서 해주셨으니 저도 길게 언급은

    안할렵니다. 다만, 단다고 해도 오히려 일본식이면 영향을 싫든좋든 오래도록 받아왔으니 다들

    그러려니 하는데 다들 잘 모르실테니 오히려 없는걸로 '구라'치며 문화라고 우긴다고 욕먹을

    가능성도 없잖아 있으리라 봅니다. 술집주인들이 연합하던가 문화,역사 학계에서 널리 알리던

    가 하는 캠페인을 벌이지 않는한 문화연금술이라도 한거냐고들 반문할 가능성이 높아보여요.
  • 역사관심 2016/03/08 06:40 #

    네, 저도 글을 작성하면서 비슷한 생각을 했더랍니다. 그래서 '한글'을 기나 포렴에 섞는다는 아이디어를 냈고, 결국 나름 시행착오를 거쳐 우리만의 '새로운(발전된) 전통'을 만들어가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초기에 이런 저런 것과 비슷하니 뭐니 하는 것은 각오를 해야겠죠. 마치 백제재현단지를 보면서 일본색이 난다고 말하는 '아이러니한' 현상처럼 말입니다).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
  • 신병훈련행성알바리움 2016/03/08 07:00 #

    관련링크에서 고려조각상 항목도 보고왔는데 정말 탄성나올만큼 정교하더라구요 깜짝놀랬어요.

    제가 알고있던것 이상이더군요 모르던것을 알게 해주셔서 항상 감사할 따름입니다.
  • 역사관심 2016/03/08 07:41 #

    감사합니다. =)
    그런데, 고려조각에 관련한 링크가 어떤 것인지 (본문이나 고려깃발 관련글에는) 없는 것 같아, 잘 모르겠네요. 궁금합니다.
  • 신병훈련행성알바리움 2016/03/08 10:04 #

    글 중간에 고려술집과 피맛골 게시글에 들어가니 관련항목으로 고려조각상과 여관항목도

    등장하는데 (여관항목도 달려고 했는데 이제야 언급하네요 -_-) 아무튼 한국은 국토내에 근대

    들어 나라가 다수 존재해 상인이 자체적으로 오고갈일이 많거나 상업이 융성한것도 아니라서

    여관문화는 주막자체의 숙박제공이 전부인줄 알았는데 저의 식견이 짧았음을 깨달았습니다. ㅠㅠ
  • 역사관심 2016/03/08 12:57 #

    아마도 이영개소장의 고려미인상에 대한 댓글링크였나 봅니다. 저도 실물로 한번 보고 싶은 것인데 잊고 있었네요. 확실히 고려대의 조각상은 재질도 형식도 또 다른 맛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부분과 관련지어 예전에 글을 한번 써본 일이 있습니다.
    http://luckcrow.egloos.com/2545645

    감사합니다.
  • 밥과술 2016/03/08 10:06 #

    잘보고 많이 배우고 갑니다.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역사관심 2016/03/08 12:57 #

    항상 감사합니다. 밥과술님의 좋은 글 항상 읽고 있습니다.
  • 신병훈련행성알바리움 2016/03/09 00:39 #

    저 임진왜란때 그림들을 보면 의외로 수노궁을 꽤 쓴편이던데 수노궁에 대해서도 다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분명 자료들은 있는데 다들 희미하게 언급만 하는편이라 만족할만큼의 게시물

    을 올려주시는분은 아직까지 못봤거든요 아마 자료가 거의 없어서 그런것도 있겠지만 까마구

    님이시라면 장문의 글을 올려주실 수 있으리라 보고 감히 댓글 올려봅니다. 부탁드려요~
  • 역사관심 2016/03/09 01:13 #

    좋은 자료제공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문제는 제가 무기쪽은 문외한인지라, 거의 능력밖이라는 점인데 ^^;
    일단 생각은 해보겠습니다만, 만약 올린다 하더라도 따로 공부도 하고 하는지라 조만간이라는 약속은 드리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ㅎㅎ (사실 이쪽은 무갑님이 정말 잘 다루실 듯 한데... 찾와봐야겠지만 어쩌면 이미 다루셨을수도 있을지 모르겠군요 http://kyb0417.egloos.com/)
  • 둥글둥글 바둑이 2016/03/11 00:17 #

    아주 가끔씩 비로그인으로 댓글 달다가 비로그인 댓글작성이 불가해서 이글루스에 가입했습니다ㅋㅋ 대부분은 눈팅만 해왔는데 이번에 정말 궁금하게 있어서 물어봅니다

    가끔식 조선시대 관련 매체를 보면 아래는 파랗고 위는 하얗거나 빨간색의 등불이 눈에 띄는데요.

    https://www.google.co.kr/search?q=%EC%B4%88%EB%A1%B1%EB%B6%88&newwindow=1&hl=ko&biw=1600&bih=775&site=webhp&source=lnms&tbm=isch&sa=X&ved=0ahUKEwif1t6htLbLAhWMGY4KHYp1CGIQ_AUIBigB

    이것 또한 일본이나 중국에 대비되는 한국의 전통적인 포렴이나 깃발, 등불같은 것으로 볼 수있지 않나요?

    광해 왕이된 남자를 보셨을지 모르겠지만, 보시면 초반에 기생집을 묘사하는데, 거기서 특히 잘 보입니다 물론 조선시대를 묘사한 다른 매체들에서도 자주 보이는거 같고요

    이게 정확한 이름이 뭔지도 모르겠고 (초롱불이라고는 하는데, 이게 정확한 이름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몰라서 까마귀둥지님이 알고계시는가 궁금합니다

    기껏 링크를 달았더니 복사붙여넣기가 불가능하게 되어있네요 그냥 구글에 초롱불 치시고 이미지보기하시면 나옵니다 ^^;
  • 역사관심 2016/03/12 11:17 #

    반갑습니다. 이 부분은 사실 얉은 지식이 있으나 저도 궁금해서 더 알아보고 시간이 될때 답변을 드리고자 합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
  • manchuriancandidate 2016/09/24 02:59 #

    어디서 봤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언젠가 구한말 선교사가 조선의 가게에는 일본의 화려한 깃발과 중국의 조명같은건 찾아볼수 없다고 투로 언급한걸로 보아 이전에는 존재했을지 확실치 않으나 이미 조선말기에는 그와 같은 풍경은 볼수 없었다는게 중론인거 같습니다. 아무래도 상공업이 발달하지 못한탓이겠지요.
  • 역사관심 2016/09/24 03:31 #

    동감합니다. 구한말의 주막은 많은 사진에서 보이듯 그런 포맷이 보이지 않으니까요. 옛날에 존재했을 아이템들을 다시 살려보면 좋겠습니다.
  • manchuriancandidate 2016/09/24 21:25 #

    http://www.econotalking.kr/news/photo/first/201011/img_28411_3.jpg
    1923년 일본인 교수가 촬영한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으로 한일병합 시기 술집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또 일본이나 중국 등지에서 계란형의 등이 자주 사용된것과 대비되게 조선은 청사초롱으로 대변되는 사초롱이 주력이였던것으로 보입니다.
  • 역사관심 2016/09/25 00:23 #

    그렇지 않아도 청사초롱에 대한 글도 작성중에 있었는데 좋은 정보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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