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세기 백제 구구단표 확인 (2016. 1.20 기사) 역사뉴스비평

조선시대 초기의 문인인 서거정(徐居正, 1420~1488년)의 [사가집]에는 이런 싯구가 있습니다.

좌상의 미인들은 모두가 이팔청춘이요 / 座上佳人皆二八
문전의 식객들은 절로 삼천이나 되거늘 / 門前食客自三千

한자로 뭔가 흥미를 끄는 부분이 없으신가요? 좀 더 좁혀서 말하자면 이 부분입니다.
이팔청춘이요 (원문: 二八)

이팔청춘이라는 관용구는 16세를 말함을 모두들 아실 겁니다. 그런데 저 당시 한문원문으로도 二八이라고 쓰고 있죠.
즉 二 X 八 = 16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구단'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구구단을 이미 당시에 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럼 '구구단'이라는 수학개념은 언제부터 우리에게 알려진 것일까요? 


삼국시대 구구표

모르고 있던 소식인데 저번 달인가 이글루스 유저이신 저금통님의 글로 알게 된 뉴스가 있습니다. 바로 2011년 부여에서 백제시대의 목간이 발견되었고, 이 목간의 내용이 '구구표(구구단을 적은 표)'로 올해 초 확인되었음을 알려주는 신기한 뉴스였습니다. 일부를 읽어보시죠.

2011년 부여 쌍북리 유적에서 발굴한 백제시대 목간에 적힌 글자가 구구단이라는 주장이 제기 됐고 한국문화재재단의 정밀조사 결과 국내 첫 구구단표 목간 유물로 확인됐다. 6~7세기 백제인들이 나무문서에 구구단을 적어 공부한 사실이 입증됐다. 오락가락 하던 백제목간 구구단표 논란에 마침표를 찍었다.

한국문화재재단은 “2011년 부여 쌍북리 유적에서 나온 목간의 글씨를 한국목간학회 등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된 전문가 검토회의에서 한반도 최초 구구표(九九表) 목간(木簡)으로 확인했다”고 20일 밝혔다. 

쌍북리 백제시대 목간에 적힌 글자가 구구단일 가능성은 최근 한국목간학회 발표에서 제기됐다. 윤선태 동국대 교수 등이 지난 16일 한국목간학회에서 정훈진 한국문화재재단 연구원이 발표한 ‘부여 쌍북리 출토 목간’ 토론 중 한자의 내용이 구구단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양한 한자 숫자가 일정한 간격으로 표기된 것으로 추정해서다. 당시 한국문화재재단은 구구단 표가 아닐 수도 있다며 공식적으로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적외선 촬영 등 검토회의 결과 목간 한쪽 면에서 구구단의 9단부터 2단까지 칸을 나누어 기록한 구구단을 확인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광개토대왕릉비와 삼국사기 등 문헌기록에서 구구 셈법 표기와 산학(算學)을 가르친 기록은 있으나 구구표가 표기된 유물을 확인한 적은 없었다. 중략.
-김용운 기자 lucky@

참고로 2011년 당시 발굴기사입니다. 이 목간의 발견은 우리나라의 수학'사'에 큰 의미가 있겠지요. 해석한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국 최초의 문헌사료의 '산학'기술부분은 [삼국사기]의 이 부분입니다 
산학박사 또는 조교 한 사람에게 '철경' '삼개' '구장' '육장'을 가르치게 한다.

철경이니 삼개니 하는 것은 모두 중국의 '산술' (수학)을 다룬 고대서적들입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책이 '구장'인데 풀 네임은 [구장산술(九章算術)]로 무려 '원주율 계산법'이 이미 담겨 있는 책이죠. 원작자는 알 길이 없지만, 현재 버젼은 3세기, 정확히는 236년에 삼국시대 (네 그 삼국지의 시대입니다)의 위나라인인 유휘(劉徽)가 주석을 붙여 펴낸 것이 전하고 있습니다. 

유희는 서문에서 '전설의 왕 포희씨가 팔괘를 그리고 구구셈을 지었다'라고 하고 있어, 구구단은 굉장히 오래전부터 이미 파악하고 있던 산법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미 3세기에 말이죠).

당나라대에는 이미 (이 구장산술을 포함) 10가지의 수학책을 공부하도록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구장산술]은 주로 관리들이 실무적인 일을 처리하기 위해 각종 문제를 제출하고 답을 구하는 식인데 각 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1장 방전(38문제)은 농지의 면적을 계산하는 것으로 분수계산, 최대공약수 포함
제2장 속미(46문제)는 곡물을 교환 할 때의 환산법에 관한 것들
제3장 쇠분(20문제)은 수열의 합에 의해서 실생활에 적용한 것들.
제4장 소광(24문제)은 직사각형이나 입방체의 한 변을 구하는 것으로 제곱근 세제 곱근의 계산등 포함.
제5장 상공(28문제)은 제방이나 토목공사 등 작업량을 계산법.
제6장 균수(28문제)는 세금 징수 할 때 곡물의 운반에 관한 계산법.
제7장 영부족(20문제)은 과부족셈 문제.
제8장 방정(18문제)은 연립 1차 방정식문제,
제9장 구고(24문제)는 피타고라스정리를 응용해서 푸는 문제와 2차방정식의 해법 포함.

놀라운 것은 제 8장에 이미 '음수'가 등장하고 있다는 것인데, 유럽에서는 17세기나 되어서 다루게 됩니다. 그리고 9장에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응용한 문제가 나옵니다. 실제 문제를 볼까요? 9장중 한 문제입니다.

[문제]한 변의 길이를 알 수 없는 정사각형의 마을이 있다. 그 마을의 네 개의 성벽 중앙에는 문이 나 있다. 북문을 나와 20보가 되는 지점에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남문을 나와 14를 걸은 다음 방향을 바꿔 서쪽으로 1,775보를 갔더니 그 나무가 보였다. 그렇다면 마을의 한 변의 길이는 얼마인가?

[답]250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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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장산술은 한국와 일본에도 적극적으로 수입, 우리나라에서는 이 구장산술을 위 [삼국사기]기록에 나오듯 삼국시대부터 신성한 책으로 취급합니다. [고려사]에는 고려시대 때 수학 시험을 3일간 보았는데 첫날 시험장에서는 "구장산술의 제9장 10조를 외워 보시오"라는 구술 시험과 둘째날 "제6장의 일부를 암송시키고 제3일에는 6문제를 푸는데 4문제를 통과해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이처럼 동아시아에서는 일반대중들이 생각하는 고정관념과 달리 이미 '수학'의 개념이 꽤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럽에서 수학이 발전하고 우리는 그렇지 못했죠. 그 결정적인 차이는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러합니다. 

유럽의 철학은 플라톤의 각주라는 말처럼 이들에게 '이데아'로 대변되는 변치않는 개념의 왕국은, 절대적이고 또한 파악해야하는 '진리의 세계'였습니다. 이 진리의 세계는 속세의 만물이 변화하는 하등한 세계의 실생활적 경험으로 파악되는 것이 아니었죠. 그래서 '논리'와 '수학'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도 변하지 않는' 진리의 도구가 세계의 진리를 파악하는 수단이 됩니다. 그 수단이 아니면 저쪽에 있는 진리를 탐구할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동양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자백가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도 철학은 '실생활'을 기반으로 우리가 웃고 떠드는 이 세계를 파악하고, 인간이 살아가는 이 땅에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이러한 '산술책' (구장산술 포함)의 '목적'에서도 명확히 드러납니다.

관리들이 자기가 다스리는 구역을 '잘 다스리기 위해' 계산을 이용한 것. 이것은 르네상스당시 유럽의 수학책의 '서문'에서 볼 수 없는 목적입니다. 이 작은 차이가 (다는 물론 아니지만) 근대라는 시대를 누가 여는가를 크게 좌우한 큰 요소중 하나임은 부인할 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야기가 샜는데 각설하고. 저 백제의 구구표가 적힌 목간은 5-6세기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중국에서 나온 최초의 구구표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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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초의 구구표 목간

사마천 (司馬遷, 기원전 145년? - 기원전 86년?)의 [사기]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합니다. 
어느날 한 노인이 찾아왔다. 그대는 무슨 재주가 있소? 소백이 물으니 노인은 "나는 구구단 외는 재주밖에 없는 사람이요"라고 답한다. 소백은 기가 막혔다. "그게 무슨 재주라고 나를 찾은 거요?" 중략.

이제 느낌이 오시겠지요? '구장산술'같은 고차원적인 책이 지식인들에게 알려진 시대에 '구구단'정도는 '그게 무슨 재주라고' 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2002년 후난성에서 (부럽부럽게도) 무려 2만점의 죽간이 발견되었습니다. 중국 역사학계에서도 큰 뉴스가 된 일대사건이었지요. 이 때 아주 잘 보존된 구구표가 그 중 하나로 발굴됩니다. 이 죽간이 바로 저 '사마천'의 고대의 물건이었던 겁니다. 발굴된 목간은 바로 秦나라(秦, 기원전 221년 ~ 기원전 206년)때의 구구표였습니다. 바로 [사기]의 시대의 기록에 나오는 죽간이 나온 것이지요.
바로 이 녀석입니다.
현재 중국 후난성 박물관에 보존중인 중국최초의 구구단표 (기원전 3세기)

중국과 비교하면 수백년 차이가 나지만, 이번에 확인된 6세기경 백제의 구구표도 동아시아의 수학사에 큰 보물이 될 존재입니다. 아주 큰 발굴이니 만큼 여러 사람이 알게 되면 좋겠네요.

마지막으로 이팔청춘이라는 말은 현대에 나온 말이거나,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도 한국사회에 더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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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까마구둥지 : 682년 통일신라 국학에서 배우던 수학수준 (구장산술 내용) 2016-06-19 04:27:06 #

    ... 목간표에서 구구단표가 확인되면서 [구장산술]이라는 고대의 수학책을 소개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236년, 무려 3세기의 책이죠. 6-7세기 백제 구구단표 확인 (2016. 1.20 기사) 당시에 간략하게 구장산술을 우리의 삼국시대에 가르쳤다는 이야기를 짧게 소개한 바 있습니다. 한국 최초의 문헌사료의 '산학'기술부분은 ... more

덧글

  • BaronSamdi 2016/03/12 21:28 #

    제가 요즘 다케다 신겐을 다룬 소설을 읽었는데 궁금한 게 생겨서 외람되지만 여쭤볼까 합니다. 혹시 고대 한일관계사에 대해서도 알고 계신지요. 그렇다면 저같은 역사 문외한이 처음 접하기 좋은 입문서를 추천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책을 읽다보니 다케다 가문이 신라사부로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데 자료를 찾아보니 실존인물이라는 설도 있고 신라다이묘진이라는 도래인의 신을 숭배한 거라는 설도 있고요. 궁금한 게 막 생기네요. 어찌 보면 신라의 화랑들의 이름과 일본의 이치로, 지로, 사부로 간의 연관성도 있는 것 같아 궁금하고요. 실례를 무릅쓰고 여쭤봅니다^^
  • 역사관심 2016/03/13 01:47 #

    저도 한일고대사에 관해서는 그다지 깊은 지식은 없습니다만, 얕은 정보로 추천해 드리자면, 일단 통시적인 (고대사뿐 아니라 전반적인) 입문서로는 [한일교류사]가 있습니다.
    http://www.yes24.com/24/goods/69474

    좀 오래된 책이긴 하지만, 계속해서 새판이 나오는 등 꾸준한 판매가 되고 있고, 특히 저자분들이 일본에서 활동하고 계신 한국분들이라 일본측의 기록이 더 풍부하지 않을까 싶군요. 다만, 260쪽의 분량이 좀 작다는 게 아쉽지만 입문서이니. 본격적인 책들은 역시 학술재단에서 나온 책들인데, 고대사의 여러 분야중 어떤 부분을 집중해 볼것인가에 따라 달라질 듯 합니다.

    참고로 신라사부로의 이야기는 제가 알기로는 확증하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제가 아는 지식은 다케다 신겐의 선조중 헤이안시대에 '신라사부로 요시미츠'라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이 사람의 원래 이름은 '미나모토노 요시미츠'입니다. '신라사부로'는 본명이 아니라 '별명'같은 것인데 정확히는 1045년출생이므로 11세기의 사람이죠. 따라서 '신라도래인'이라든가 하는 것과는 선조라면 몰라도 본인은 직접적인 관계는 없는 인물입니다.

    다만, 한자로도 '신라'가 들어가는 이유는 이 사람이 성인식을 오미 신라묘진(新羅明神)에서 했기 때문에 붙은 가명이 된 것인데, 이 분의 큰형과 작은 형 (총 3남입니다)도 역시 그런 식의 가명이 붙습니다 (큰형은 하치만신앞에서 성인식-> 하치만타로, 작은 형 요시츠나는 카모신사-> 카모지로).

    다만 굳이 궁금할 수 있다면 왜 '신라묘진'앞에서 성인식을 했느냐인데, 이는 얼마든지 다른 이유로 할 수 있는 것으로 이 이유만으로 그가 신라계 도래인의 혈족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로 들립니다. 참고로 '신라묘진' 자체는 신라와 관계가 있는 곳으로 園城寺의 수호신을 받든 곳인데 엔닌(円珍)대사라는 일본의 승려가 당나라에서 수학후 귀국할때 탔던 배의 뱃머리에 출현한 신이 스스로를 신라의 신이라 칭하고 있었던 것에 유래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한국에도 전문이 번역된 입당구법순례행기의 그 저자죠). 또 한가지 설은 원래 한반도에서 도래한 신이 이 지역의 지주 신이었다고 하는 설이 있습니다.

    또 한가지 사료로 확인되는 점은 엔닌대사가 당으로 다니면서 타고 다닌 선박의 이름이 신라선이라는 점입니다. 이게 신라의 배인지, 신라의 기술을 가지고 만든 배인지, 아니면 우연의 결과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만, 상식적으로 어떤 연관이 있으리라는 것이 맞겠죠.

    그러니까 신라묘진은 고대한반도와의 교류에 대한 어떤 관계의 산물로 보입니다. 하지만, 신라다이묘진 (즉 미나모토노)의 신라관계설은 (개인적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당연히 다케다 신겐설도 조심해서 봐야하겠죠. 참고로 신라묘진에서 모시는 신의 모습입니다. http://me2.do/xtXsPFlG

    이 좌상은 평소 공개되지 않는데 일본에서도 이상한 모습으로 분류되는 밀교계 좌상이라고 합니다.
    新羅善神堂라는 건물에 봉인되어 있으며 木造新羅明神坐像라는 이름입니다. 円珍대사가 당에서 일본에 도착했을때 배에서 나온 물건으로 믿어지고 있습니다.
    ===
    말씀하신 '랑'과 지로, 사부로에 대해서는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러고보니 흥미롭네요.
  • 신병훈련행성알바리움 2016/03/13 11:42 #

    아 이거 저도 유투브에서 우연히 보고 깜짝 놀랬던 기억이 나는군요. 이걸 포스팅으로 다뤄주시니

    황송할 따름입니다. 잘 일고 보고 갑니다~ ^^
  • 역사관심 2016/03/13 12:22 #

    아 유튜브에서 다뤘었군요. 저도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 감사합니다.
  • 신병훈련행성알바리움 2016/03/13 12:53 #

    최근 저 백제유물이 별견되고 나서 새삼 백제가 가지고 있었다는 해외영토, 즉 담로들에

    생각이 미치더군요 자료가 자세히 있었다면 가능했겠지만 안타깝게도 사료들이 전부

    소멸하다시피 했으니... 하다못해 일본왕가 도서관에 잠들어있다는 한국 고서적들이 실제

    로 존재하며, 정말로 거기 잠들어 있다면 그리고 찾아올 수 있다면 나아지려나 생각도 해봅

    니다.
  • 역사관심 2016/03/13 12:57 #

    담로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모르지만 정말 우리의 경우 고대는 고사하고 고려당대의 사료라도 온전하게 덜컥 좀 나와주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 BaronSamdi 2016/03/13 13:20 #

    아.......정성어린 답변 너무 감사드려요. 추천해주신 책은 구입 1순위에 놓고 바로 사서 읽겠습니다. 답글을 잘 읽어보니 역사 인식에서 상상력은 주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이게 너무 지나쳐 억측으로 흐르도록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센코쿠시대 빠중에는 신겐이 도래인의 후손이라서 조선에 친밀한 마음을 갖고 있었고 신겐이 전국통일을 이루었다면 임진왜란은 없었을 것이라는 글도 읽은 적이 있는데 올려주신 자료를 읽어보니 지나친 억측이란 생각이 드네요. 심지어는 신라다이묘진이 장보고란 얘기도 돌던데.....잘 모르는 분야를 언급할때는 신중해야겠습니다.
  • 역사관심 2016/03/13 14:29 #

    저도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습니다만, 역시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맞다고 보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어떤 학문이건) 태도랄까 슬로건이 졸견입니다만 '상상은 자유롭게, 검증은 치밀하게'라는 태도인데, 어떨때는 전자를 우선시해서 망상이 되고, 어떤 때는 후자를 우선시해서 '있는 것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전자도 흔하고 후자도 생각보다 흔한데, 전자는 일반인들에게서 후자는 전문가들의 우가 되기 쉽지요.

    말씀하신 장보고 이야기는 사실 저 엔닌대사의 저작에 장보고가 자주 등장합니다. 그 이야기를 섞어서 나온 설이 아닌가 언뜻 생각이 드는데, 말씀하신 설을 제가 찾아보지 않은지라 잘 모르겠네요.

    흥미로운 정보 감사드리고, 좋은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 BaronSamdi 2016/03/13 17:30 #

    네 명심하겠습니다. 좋은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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