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웅장한 부분이 유실된 한양성- 1884년 숭례문 인근 10-11미터 성벽구간 한국의 사라진 거대건축

삼봉 정도전 (1342~1398년)은 그의 저서 [삼봉집]에서 한양 도성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성은 높아 천 길의 옹성이고
구름은 둘렀어라 봉래 오색이
연년이 상원에는 앵화 가득하고
세세로 도성 사람 놀며 즐기네.

최근 (2014년이후) 한양도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면서 그 동안 일반적으로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던 성곽들에 대한 정비와 이용이 활발해지고 있지요. 우선 다음의 지도를 봐 주시기 바랍니다.

지도에서 보라색으로 그려진 구간은 현존하거나 복원된 구간입니다. 즉 '성벽이 존재하는' 곳들입니다. 총 18킬로중 12킬로에 해당되는 구간으로 이렇게 잘 보존되어 있는 긴 구간이 유네스코 등재에 큰 역할을 하리라 생각하고 있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착각하기 쉽습니다. 저 정도 사라진 구간쯤은 '한양 성곽'의 총 길이를 생각할 때 그다지 중요하지 않거나 이미지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그런데, 필자의 의견으로는 안타깝게도 바로 저 유실된 구간이 한양도성의 '성벽'이라는 느낌을 가장 잘 보여주던 곳이라 생각합니다. 즉 Iconic한 구간이 하필이면 사라진 것이지요.왜냐하면 지도에서도 잘 드러나듯, 현재 남아있는 구간이 거의 '산악지역'인 반면, 사라진 구간은 '평지성'으로써의 한양성을 잘 보여주던 구간이기 때문입니다.이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사라진 가장 웅장한 한양성벽 구간, 상징적인 숭례문 부근 성곽

우선 이 부분을 지도에서 좀 더 살펴 봅시다. 유실된 가장 긴 구간은 다름아닌 '돈의문(서대문)'에서 한양의 얼굴이던 '숭례문'을 지나 남산도서관을 지나가는 수 킬로의 구간입니다.
다만, 얼마전 숭례문을 복원하면서, 그 옆의 성곽 특히 우측은 53미터라는 꽤 긴 구간을 재건했습니다. 섬처럼 잘렸던 성루를 일부나마 되살린 것은 꽤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떤 언론에서도 성곽의 좌우넓이만 설명할 뿐, 높이에 대해서는 (특히 조선시대의 모습) 소개한 글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숭례문근처의 성벽은 한양성곽에서도 가장 웅장하던 구간입니다. 그래서 짧게나마 조선말기의 사진을 통해 당시 한양 성벽중 높았던 구간인 이 곳을 살펴 보겠습니다.

우선, 예전에 1900년대 초의 숭례문과 한양성벽 모습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링크) 오늘은 그보다 더 오래전 사진인 1884년의 사진을 보시기 바랍니다.  당시 한국에 대리공사로 있던 죠지 클레이턴 포크(George C. Foulk)라는 사람이 찍은 사진으로 건재하던 숭례문 부근의 성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숭례문 동벽 (1884년)- 클릭하면 크고 넓게 확대됨

좀 더 큰 사진으로 보겠습니다. 약간 오른쪽 뒤에 보이는 큰 누각건축이 숭례문입니다
지도에서 다시 보자면 붉은 원 부분이 이 구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진은 꽤 중요한 정보를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진의 성벽 끝에 위태롭게 한 남자가 도포자락 차림으로 서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조상님). 확대해 볼까요. 사진의 한 가운데 위에 흰 도포차림의 인물이 보이지요.

그럼 이 분의 신장을 조선후기인으로 잡아 최소 150에서 최대 160센티미터 정도로 잡아 보겠습니다. 그리고 수직으로 비례를 한번 대강이나마 정해보면 성벽의 높이를 추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과는 아주 최소한으로 7배정도로 잡을 수 있습니다. 
150센티로 잡으면 150*7= 10.5미터
160센티로 잡으면 160*7= 11.2미터

즉, 최소 10.5미터에서 11.2미터정도는 되는 성벽높이임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런 높이는 예전에 살펴본 함흥성의 성곽을 떠올리게 합니다. 1890년대말에서 1910년대경으로 추정되는 이 사진에서 역시 성벽의 가장 높은 구간을 보면 도포차림의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위의 숭례문 부근의 높이와 비근하거나 약간 낮은 느낌입니다.
19세기말-20세기극초반 함흥성벽

=====

그렇다면 14세기말 인물인 삼봉 정도전은 이 성을 보고 "성은 높아 천 길의 옹성이고" 이렇게 읊었을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에 있습니다. 
이것은 한양성벽을 소개하는 게시물로 보시다시피 14세기말 삼봉의 시대의 축성법은 중간의 세종대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위의 사진을 잘 살펴보면 사진의 축성법은 1422년의 그러니까 두번째 시기의 것임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 10미터 이상구간은 조선초기인 15세기 세종대의 구간임을 알 수 있지요. 사진의 가장 앞부분 (그러니까 보는 사람시각에서)은 18세기초의 것임도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단원 김홍도(1745년 ~ 1806년?)의 그림에서도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왼쪽은 조선전기 (혹은 중기), 오른쪽은 숙종대인 1704년이후의 구간입니다.
부상도(負商圖)

이 구간을 더 넓게 찍어 놓은 두 장의 사진이 있습니다. 주로 당시 선교사나 서양인들이 찍은 사진들인데 똑같은 구도의 사진이 많다는 점 역시, 그들의 '눈'에 이 구간이 성벽에서 가장 웅장하고 뛰어난 곳이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라 생각합니다.
다음의 사진은 화질이 더 좋은 것으로 확실치는 않지만 성내의 원경에 근대식건축이 조금 보이는 듯 합니다. 그렇다면 더 후대의 사진일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 사진은 잘 살펴보면 매우 중요한 자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화질의 상태덕분에 숭례문 부근의 성벽을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클릭하시면 숭례문을 둘러싸고 있는 성곽이 마치 중세의 유럽도시같은 느낌이었음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지요. 이 사진은 필자가 일본의 정보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꼭 한번 클릭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 구간은 현재 어떤 모습일까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숭례문 동쪽구간 현재모습

이제 왜 필자가 아쉽다고 하는지 감이 조금 오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나마 이 부분은 위에서 반정도가 뭉텅 잘렸어도 남아있고, 아시다시피 숭례문 근처의 성벽은 완전히 유실, 재건되기 전까지 숭례문은 그냥 '문만 남은' 섬이었죠. 그래서 20세기이후 사실 '도성', '사대문안'이니 하지만, 현대의 한국인들에게 한양은 '성'의 느낌을 거의 주지 못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 가장 큰 이유가 개인적으로 이 '상징적인' 구간의 대규모 유실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아 있는 곳은 잘 아시듯 '산책로'처럼 남산을 비롯, 북한산등의 산위에 있는 나지막한 구간이 많습니다. 따라서 '거대도시를 둘러싼 거대한 성'이라는 느낌을 주는 가장 중요한 부분인 얼굴격인 '숭례문'을 중심으로 한 성곽의 유실은 현재 우리 시민들의 '한양도성'에 대한 느낌을 조선인들과 '다르게' 만들어 버린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현재 그나마 복원된 구간이 아래 사진에 나오는 숭례문과 비근한 높이로 구성된 일부구간입니다.
1905년 추정 숭례문 바로 옆


지금은 문마져 사라진 돈의문(서대문) 구간

다음은 지도에서 유실된 구간의 약간 윗부분에 해당하는 돈의문(敦義門) 구간입니다. 이 구간이죠.
돈의문은 정확히 1915년 일제에 의해 철거됩니다. 그런데 보통 사라진 '문'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지 그 주변의 역시 가장 장대하고 수도의 성벽다운 모습을 자랑하던 이 구간에 대한 관심은 철저하게 낮습니다.

그럼 이 구간의 조선후기 모습을 한 번 볼까요. 이 사진은 1904년의 돈의문(서대문) 성벽의 높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904 돈의문(敦義門, 서대문) 성곽

사진을 잘 보시면 역시 성벽의 중간부분이 2차, 3차 축성법으로 확연히 구분됨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높이는 그대로 고르게 유지하고 있지요. 이 구간이 정확히 성문의 좌우 중 어느 구간인지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숭례문 구간보다는 낮아 보입니다만, 역시 상당한 높이를 자랑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그 상태가 아주 좋았음을 알 수 있지요. 다음 사진은 1899년에 찍힌 서대문쪽 성벽의 전체적 모습입니다.

1899년 돈의문 근처 완전한 성벽-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다음은 같은 시기 돈의문 부근 성곽의 (아마도) 서북쪽이 아닐까 하는 사진 한점입니다. 이쪽에는 태종대의 축성법이 많이 눈에 띕니다.


한양도성의 진짜 얼굴

한양도성을 소개하는 최근의 뉴스를 보면 이런 '산성'의 느낌이 강합니다.
하지만 한양도성은 한양이라는 거대한 도시를 감싸고 있던 '진짜배기 거성'이었습니다. 다음의 사진들은 1890년대부터 1900년대초반에 찍힌 한양도성들의 사진으로, 클릭하시면 어떤 느낌을 받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한양 남산부근(성벽, 1890년경) (클릭하면 확대)

아래는 필자가 이 구간을 확대한 것으로 역시 클릭하면 각 사진은 확대됩니다.
다음은 역시 숭례문 구간으로 추정되는 고사진입니다. 역시 구불구불 한양을 보호하고 있는 거대한 성벽이 보입니다.
다음은 정확히 어느 구간인지는 모르겠지만, 2차축성 (세종대)로 보이는 6미터정도로 보이는 낮은 구간입니다. 1892년 사진으로 역시 '평지'구간중 한 구간으로 보여 의미가 있는 사진입니다.
마무리

우리는 한양을 둘러싼 사대문과 성곽이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상당부분 21세기에도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동시에 '사대문'이라는 느낌을 장안성에 살고 있는 중국시민들보다 훨씬 인식적으로 '덜 받고' 있음도 거의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큰 파이중 하나가 오늘 소개한 "4대문의 상징적인 구간"의 대규모 유실이 아닐까 감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필자가 느끼는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2013년에 서울시주최로 열렸던 '역사도시와 도시성곽' (주관-서울학연구소) 심포지움에서도 느꼈고, 여러 웹정보나 서적들로도 보이는 부분인데, 우리는 문화재를 다루면서 '높이'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빠져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예를 들어, 유실된 '숭례문'의 이야기를 하면서 수많은 매체를 살펴봤지만, 구간의 넖이만을 이야기할 뿐 문의 높이라든가 복원되는 성벽구간의 정확한 높이를 소개한 정보는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이 어떤 철학적 이유에서 비롯된 '경향'인지 혹은 그로 인한 사회적인 '무관심'의 흐름이 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이러한 부분에도 건축가나 건축학자, 그리고 문화재에 관련된 많은 분들이 조금 더 관심을 가지기를, 그리고 대중적으로도 관심들이 늘어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사라진 돈의문을 복원한다거나 숭례문의 현재보다 더 규모있는 구간을 복원할 때, 문화재의 아주 중요한 미학중 하나인 '웅장함' 역시 놓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21세기 복원된 성벽구간 (약 53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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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Nocchi 2016/04/02 09:49 #

    음 어릴적부터 보아 온 소위 '남대문'은 문 만 덩그러니 외롭게 있는 기억 뿐인 데
    주변에 성곽이 있으니까 웅장함의 느낌이 완전히 달라지네요 잘 보고 갑니다
  • 역사관심 2016/04/04 02:32 #

    동감입니다. 문만 덩그라니 있던 모습은 애처러워 보이기까지 했어요...
  • 홍차도둑 2016/04/02 10:03 #

    로마의 성벽 두개를 다 보았는데 그 웅장함으로 사람을 압도했죠...세르비우스 성벽은 유구에 가까운 모습으로 봤지만 그래도 토대를 보면서 오오 한니발이 포기할 만 했구나...하는 느낌을 받았고 아우렐리우스 성벽은 역대 교황들이 관리를 해서 그런지 웅장함 그대로라서 보면서 와아...당시 유럽을 주무르던...하는 느낌이 딱 하고 왔으니까요. 사람이 볼 때 이미지로 다가오는 모습은 정말 차이가 큽니다
  • 역사관심 2016/04/04 02:35 #

    저는 로마는 잘 몰랐는데 찾아보니 해자깊이가 무려 17미터라니... 어마어마했군요.
    확실히 이런 모습이 현존해서 실제로 오감으로 느끼는 것과, '그랬었어요'라고 텍스트만 보는 건 천지차이죠. http://s29.postimg.org/5hl1fz0qf/regfdg.jpg
  • 레이오트 2016/04/02 11:06 #

    성문이란 그에 걸맞는 성벽과 함께 있어야 보다 더 빛나는 법이지요.
  • 역사관심 2016/04/04 02:35 #

    확실히 그렇습니다.
  • 천하귀남 2016/04/02 11:14 #

    그러고 보면 현재 남대문은 일제시대 전차 설로 부설, 조선중기의 도로보수 등으로 현재 지면에서 160Cm를 더 파들어 가야 조선전기 도로면이라더군요.
    문제는 이제 주변의 높이도 1m이상 높아져 조선 전기 수준으로 복원하면 주위보다 낮아지니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부분은 다른 성벽 전구간에서 비슷하지 않나 합니다.
  • 역사관심 2016/04/04 02:36 #

    애초에 숭례문이라도 조선전기식으로 복원하려고 했어서 좋았는데, 왜 엎어진건지 모르겠어요.
  • 천하귀남 2016/04/04 11:22 #

    지금은 조선 전기로 복원하면 주변 지면보다 1m낮아집니다. 자연배수가 불가능하니 하고싶어도 못할겁니다.
  • 역사관심 2016/04/05 04:58 #

    예전에 본 기억이 나는데 결국 그 문제가 발목을 잡았군요... 아쉽습니다. 흥인지문쪽 처럼 유리로 지하구조를 보여주는 식이라도 하면 좋겠습니다.
  • 엑스트라 2016/04/02 12:00 #

    ........ 저 숭례문, 어린시절 가끔 서울에서 보는 숭례문은 정말이지..... 추억 중 추억이었는데......... 복원된 모습은 멋져보이지만....... 그 재앙만 아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 역사관심 2016/04/04 02:37 #

    사실 예전 숭례문에 성벽만 다시 재건하는 안건도 많았죠. 그 사건이 없었다면 언제 가능했을지는 모르는 요원한 상태였긴 했지만..
  • 漁夫 2016/04/02 14:18 #

    잘 보았습니다. 그간 저도 '높이'는 그다지 신경을 안 썼습니다..
  • 역사관심 2016/04/04 02:37 #

    언론이란 건 결국 전문가들의 시선을 쫓아가게 되어 있는데, 그 분들이 무관심한 것 같아 좀 안타깝습니다.
  • 제홍씨책사풍후 2016/04/02 20:22 #

    성벽 위에 있는 저 집들이 궁가弓家 7천여개?
  • 역사관심 2016/04/04 02:38 #

    확실한 것은 알아봐야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성위의 민가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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