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검계단(劍契團)에 대해. 역사전통마

조선시대의 '살수집단'인 검계(劍契)를 다루면서, 20세기에도 '검계단'이란 이름의 단체가 있었음을 짤막하게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아래 부분입니다.


20세기 검계단 劍契團
검계라는 이름은 놀랍게도 일제시대에도 등장합니다. 이 검계단이 이전의 검계라는 이름을 승계했을 가능성은 꽤 높아 보이는데, 이때의 검계단은 전대와 달리 바로 일제에 저항하던 의병조직이었지요. 현재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에 소장되어 있는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이건 필자가 찾아낸 것인데, 아직까지는 논문이나 다른 글에서 본적이 없는 기록입니다.

明治·大正篇 4門 司法及警察 
4.3 危險思想取締 
4.3.1 要視察人及團體

劍契團ノ所在ニ就テ 所在 京城北部園洞 15頁 明43.7.5 代表 崔錫夏

경성 (서울) 북부 원동이란 곳에 '검계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원동은 현재의 인사동-낙원동근처입니다 (주: 무애자님 제보로 원동은 가회동추정에서 현재의 인사동과 낙원동부근으로 수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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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단에 대해 계속해서 궁금함을 가지고 있던 바, 주로 고신문의 기록을 중심으로 소개해 보려 합니다. 


20세기 검계단(劍契團)

우선 애국독립신문으로 유명했던 '황성일보'에 필자가 찾아낸 것으로는 가장 오래된 기록이 있습니다. 1905년 3월 24일자 기사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립니다.
옮기자면 이렇습니다.

1905년 03월 24일 (大韓光武九年 三月 廿四日 金曜)
기사제목 安岳郡◈ 吏鄕輩의 傾軋이 成習야 劒契黨과 別巡校廳어 互相爭鬪事로
 
●安岳郡은 吏鄕輩의 傾軋이 成習야 劒契黨과 別巡校廳에 互相爭鬪事로 信川郡守가 兼任되고 殷栗郡守가 明査한다더니 契黨의 威脅을 不勝하여 兼官여 不能行政고 査官이 不明覈으로 本人 等이 憤歎不勝야 京◈에 呼訴次로 上來야 玆에 廣佈하오니 內外國僉君子 照亮홈  安岳郡居 鄭允豊 嚴錫漢 等 告白

개인적으로 이 기사가 매우 흥미로운 점은 '검계단'이 원래는 '검계당'이라고 나오고 있는 듯 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활빈당'...). 이 부분은 이 집단의 기원을 파악할 중요한 키워드로 보입니다.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간단히 말해 황해도의 安岳郡 (안악군)에 시골벼슬아치 무리들이 서로 모함이나 하며 엉망이라 '검계당'과 '별순교청(別巡校廳)'이 서로 전투를 일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별순교청의 '순교청'은 19세기말 원래 '군관청(軍官廳)'의 명칭이 새롭게 바뀐 곳으로 즉 조선후기 군관들의 지방 중심관청 같은 곳입니다. 이곳과 검계당이 쟁투를 펼쳤다는 것이지요.

이때 검계당의 위협이 얼마나 심했는지 군수가 도저히 막아낼 수 없어 경성에 호소차 들른다는 정도의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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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1905년의 정보에는 독립조직으로서의 모습이 아닌 어떤 폭력관련 집단이라는 인상만 풍깁니다. 그러던 것이 정확히 5년 뒤인 1910년에 다시 검계이라는 아주 비슷한 이름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다음의 기사입니다.

1910년 06월 23일 (大韓隆熙四年六月卄三日木曜)
기사제목 劒契團何團
 
劒契團何團 三昨夜에 何許人이 所謂同志贊成會副會長徐彰輔의 前後罪狀▣臚列야 同會館門牌上에 貼揭고 書凾一封을 受信函內에 投入얏다 其書封內槪를 漏聞즉 汝軰를 殱滅다얏고 書末에 劒契團이라 書얏더라더라

三昨夜 그러니까 이틀전 밤인 6월 21일에 어떤 사람이 '일명 동지찬성회'의 부회장이었던 서창보(徐彰輔)라는 자를 단죄하기 위해 그의 모든 죄를 모두 적어서 공개하게 됩니다. 그리고 처단하겠다는 이야기도 적혀있었죠. 그런데 그 편지의 말미에 적힌 이름이 '劒契團'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치 홍길동같은 이야기지요.

왜냐하면 여기 나오는 서상보(생몰년대 미상)는 대한제국의 관료 출신으로 친일단체인 국민동지찬성회 부회장을 지낸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이 인물이 부회장을 맡았다는 국민동지찬성회(國民同志贊成會)는 대한제국 말기에 일진회의 한일 병합 청원에 지지 의사를 표명하고 지지 여론을 확산시키기 위해 조직된 완전한 친일단체였습니다.
서상보라는 인물이 위협을 받았다는 것은 큰 뉴스여서 [황성일보]뿐 아니라 [대한매일신보]에도 같은 날, 다음의 뉴스가 뜹니다.

대한매일신보 
1910년 06월 23일 (西曆壹千九百拾年六月廿三日 木曜日)
기사제목 凶黨의 罪名
 
三昨夜에 何許人이 國民同志賛成會 副會長徐彰輔의 前後窮凶極惡 罪狀을 臚列야 該會事務所門壁上에 揭付고 凶黨을 次第殄滅다엿 尾附에 劍契團이라 書엿다더라
당시에 꽤 큰 뉴스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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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일본경찰의 검계단 색출

사실 검계단에 대한 관심은 해방후 우리 언론에서도 현저히 낮아서 필자가 파악하기로는, 언론에서 다룬 유일한 예가 2010년의 조선일보 섹션에서 다룬 다음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를 보면 위의 사건 직후 그러니까 1910년의 여름, 일본 유학생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들어감이 나옵니다. 일단 관련부분을 읽어 보시지요.

1909. 8. 29.~1910. 8. 29.

1910년 7~8월 일본 유학생들이 여름방학을 맞아 귀국하자, 경찰은 이들을 닥치는 대로 체포했다. ‘황성신문’에는 일본 유학생의 동향 및 체포 기사가 연일 실렸다. 일본은 한국 ‘병탄’을 앞두고 일본 유학생들을 특별 감시 대상으로 정했다. 일본 경시청은 동경 유학생에 대한 단속을 엄중히 하기로 하고 통감부 경무총감부와 협의하여 ‘불온행동을 방어’하기로 방침을 정했던 것이다(황성신문 1910.7.21.). 이에 따라 귀국 유학생들이 어디를 가고 어느 단체의 누구를 만나는지 일일이 감시당했다.

일본 경찰이 감시한 ‘불온행동’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 시기 일본 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일본 경찰은 한국 유학생들이 국내의 검계단(劍契團)이나 블라디보스토크의 자객단과 연락하여 ‘모종의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파악하고 있었다. 특히 유학생들이 제2의 안중근 의거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하여 이를 방어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요시찰 학생을 미행하거나 체포하여 심문하였으며, 유학생 단체에 밀정을 심어 놓기도 했다.

일본 유학생들이 벌인 합방 반대 운동은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9년 12월 일진회가 합방 청원서를 발표하자, 일본 유학생들은 대한흥학회 총회를 열어 일진회 규탄 운동을 결의했다. 이어 대표를 국내로 파견하여 합방반대 국민대연설회에 참여하도록 하였고, ‘합방 불가’와 ‘매국노 처벌’을 주장하는 ‘포고십삼도문(布告十三道文)’과 ‘토일진회문(討一進會文)’을 발표했다(대한매일신보 1909.12.14~15.). 유학생들의 애국열은 매국노를 직접 처단하려는 움직임으로까지 발전하여, 원주신(元周臣)은 매국노 송병준을 처단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자 그는 다른 사람들을 마주할 수 없다면서 귀국 길에 바다에 투신하여 자살했다(매천야록). (2010년 조선일보 기사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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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보면 국내의 '검계단'이나 러시아의 자객단과 일본의 한국유학생들의 어떤 연관성을 의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이 집단들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럼 당시 신문기사를 조금 볼까요. 다음은 [신한민보]의 1910년 7월20일자 기사로 '학생까지 구속'이라는 제목의 기사입니다. 참고로 신한민보는 미주 한인사회의 민족단체인 국민회 북미지방총회의 기관지였으므로 국내신문들에 비해 검열이 없다시피했고, 1945년까지 꾸준하게 보도가 가능했습니다.
즉 일본에 유학하는 한국학생 3백명은 서울 검계단이라는 비밀단체와 연락해서 귀국하는 날 큰 거사를 하고자 하는 낌새가 있다고 일본관리가 단속을 엄하게 하고 있는 중이라는 정보입니다. 

이로부터 일주일 뒤인 1910년 7월 27일, 같은 신문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뜹니다. 여기 보면 '비밀 단체 검계단'이라는 단어가 나와 당시 이 조직에 대한 전모가 베일에 쌓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기한 점은 보통 해방후 대개의 조직은 그 전모가 밝혀지고 연구되어 조직원이라든가 어느 정도 우리에게 알려진 바에 비해, 이 정도의 단체가 지금까지도 어느 곳에서도 전모를 알려주는 본 적이 없어 흥미롭기도 하고 궁금증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대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생겨났으며 누가 회원들이었고, 무슨 일을 했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필자가 파악하는 한 '검계단'이라는 조직이 수면위로 가장 떠올랐던 두 가지 시기가 바로 저 '서상보 제거'사건과 이 일본유학생 검거사건의 두 시기였습니다. 오죽하면 '일보의 농필 (논필)'에서 컬럼으로 다룰 정도였지요. 그런데 여기서도 이 조직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에 검계단이란 비밀결사가 있단 말을 듣고..."라고 쓰고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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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하(崔錫夏)라는 이름의 의아함

일단 이 1910년 7월의 기록을 끝으로 검계단 (혹은 검계당)에 대한 기록은 사라집니다. 이들은 수면 밑으로 다시 가라앉은 것입니다 (검거 기사는 전혀 없었지요).

그런데 1910년 당시 일본 외무성 기록에 이상한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이 기록은 필자가 애초에 소개했던 '조선시대 살수집단 '검계'' 포스팅의 말미에 소개했던 그 기록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4.3.1 要視察人及團體
1 井上角五郞ノ擧動取調一件
2 要視察外國人ノ擧動關係雜纂
2-1 韓國人之部 10冊 1886~1909

1910 劍契團ノ所在ニ就テ 所在 京城北部園洞 15頁 明43.7.5 代表 崔錫夏

보시다시피 검계단의 주소처럼 보이는 경성의 '원동' (현재 낙원동-인사동)이란 곳의 지명이 적혀 있고, 말미에 '대표 최석하 (崔錫夏)' 라는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최석하(崔錫夏, 1866~ 1929년)라는 인물입니다. 그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관료를 지낸 대표적인 친일인사였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데 1) 최석하라는 이름의 동명이인, 혹은 2) 최석하를 대표로 검계단 조사를 맡겼다는 가능성입니다. 첫번째도 가능한 것이 당시 '신민회' (그 독립전쟁을 꿈꾸어 무관학교를 건립한)의 인사중 서간도를 맡은 세 명의 인사중 하나가 바로 최석하(崔錫夏)라는 동명이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두명은 이회영, 이시영). 공교롭게도 이 신민회가 같은 해인 1910년 그해 3월에 긴급간부회의를 열어 '독립전쟁 전략'을 채택하게 되지요. 따라서 신민회 소속의 최석하라는 인물을 검계단 대표로 파악했을 가능성이 엿보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맥락이 이어지지요. 즉 독립전쟁을 채택한 노선의 신민회 인사가 대표로 있던 비밀조직인 '검계단'을 어느 정도 파악했던 1910년의 일제가 당해 7월 유학생들을 일제 검거 조사하는 일을 벌였다는 것이 됩니다.

이는 필자의 과감한 추측에 기댄 가설에 불과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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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이처럼 20세기초의 독립운동을 그림자처럼 전개하던 이 [검계단]은 그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비밀조직입니다. 다만 필자는 그 독특한 이름으로 인해, 이들이 16세기에서 18세기에 악명을 떨치던 폭력살수집단 '검계' (일명 살수계)의 이름을 이어받았을 것이라는 추정을 합니다. 그냥 우연히 짓기에는 그 이름이 너무 독특하며, 암살등의 일을 하는 것도 비슷하지요.

그런데, 사료에서 다음의 아주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했습니다. 1895년의 실록기록입니다.

고종 32년 을미(1895, 개국504)

○ 전주부 관찰사(全州府觀察使) 이도재(李道宰)가 상소하기를,..
사당(邪黨)에 대해 말한다면, 동학(東學)의 무리 외에 남학유도(南學儒徒), 검당(劍黨)이라고 일컬어지는 무리들이 도처에서 무리를 불러 모아 그 도당이 수천 수백이나 되었고 요상한 주문(呪文)과 괴이한 술법으로 어리석은 백성들을 현혹시켰는데, 완전히 뿌리뽑기를 비록 엄하게 하였으나 막을래야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인심이 의심하고 두려워하여 유언비어에 술렁거리고 있으니, 만약 위엄과 신망이 사람들을 복종시키기에 충분하지 않으면 진실로 손을 대기가 어렵습니다. 

1895년 그 동학혁명의 시기에 '검당(劍黨)' 이라는 이름의 무리가 수백-수천이나 생겨나서 속수무책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검당'이라... 꽤 친숙한 이름입니다. 포스팅 서두에서 기억해두시기를 바랬던 '검계당'이 있었지요.

그러니까 연대별로 정리하자면 이렇게 됩니다.

劍契 검계 (17세기~18세기)
劍黨 검당 (19세기말, 1895년)
劒契黨 검계당 (1905년 기사)
劍契團 검계단 (1910년 기사)

검계라는 조선후기의 살수조직이 가라앉은 후, '검당'이라는 이름으로 19세기말 동학의 혼란기에 다시 등장, 이들과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독립조직의 일부로 만들어서 '검계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이것이 검계단으로 바뀌었다는...(그냥 흥미로 읽어주세요).

어디까지나 제 반논픽션스러운 추정일 뿐입니다만, 꽤나 흥미로운 전개가 됩니다. 

검계단에 대한 연구가 얼마나 진행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와 별개로 조선시대 악인집단이던 '검계'가 20세기 비밀조직으로 이어진다는 소재는 여러모로 쓰임새가 있어 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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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레이오트 2016/04/05 13:30 #

    1. 이 검계단 이야기를 보니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 차기작 배경으로 일제시대 경성을 배경으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2. 암살단 신조가 인류의 자유 극대화이고 제국주의 식민지배에 대한 독립운동은 자유 극대화라는 암살단 신조에 부합하는데다가 어쌔신 크리드 : 신디케이트를 통해 근대 배경도 충분히 쓸 수 있다는게 입증되었으니까요.

    3. 무엇보다 한국의 3·1절이 세계 식민지 국가 독립운동에 미친 영향을 생각하면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해서 3월 1일 만세시위가 있을것을 예상하고 이를 막으려는 조선 총독부 & 조선 주둔군과 이 둘에 협력하는 친일파에게 한민족, 더 나아가 인류를 위해 암살검을 박아넣는 암살단 암살자를 보고싶습니다!
  • 역사관심 2016/04/10 03:58 #

    스토리가 꽤 매력적일 것 같아요. 검계단이란 소재가 들어맞는 느낌.
  • 2016/04/05 16:51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4/07 01:3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나인테일 2016/04/05 17:15 #

    한국전쟁 와중에도 살아남았다면 삼합회같은 유서깊은 폭력단이 되어버렸겠군요.
  • 역사관심 2016/04/07 01:32 #

    현재도 어딘가 이름을 바꾸고 살아남아 있을지도;;
  • 존다리안 2016/04/05 20:40 #

    일제시대 넘어서 한국전 직후까지는 살아남았지만 정치깡패로 변신했다가 박정희 집권기에
    단속 열풍에 사라졌을 것 같다...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 역사관심 2016/04/07 01:32 #

    현대도 어딘가 이름을 바꾸고 살아남아 있을지도;; (2)
  • 존다리안 2016/04/07 09:22 #

    한국전 때 밀수를 하며 알게 된 교포 계열 야쿠자와 손잡고 박정희 때 폭력단 일제소탕을 피해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 같은 데서 칼부림하다
    다시 귀국해 재계의 검은 큰손으로 군림한다는 시나리오도 생각할 수 있겠네요.
  • 역사관심 2016/04/07 23:54 #

    + 검계라는 특성상, 검으로만 승부. ㅎㅎ
  • 존다리안 2016/04/08 00:01 #

    야쿠자의 칼부림 스킬도 흡수해 자기들만의 기술을 개발할지도...
  • 역사관심 2016/04/08 09:43 #

    ㅋ...@-@
  • 신병훈련행성알바리움 2016/04/08 04:09 #

    역사의 망각의 장막 뒤편으로 스러져 잊혀져 갔을지언정, 어떤 성향이었는지는 짐작이 가능

    하네요. 우리는 '조선깡패'지 '왜놈나라' 깡패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
  • 역사관심 2016/04/08 09:44 #

    멋진 가설이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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