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에는 이미 주막에 온돌이 보편화, 그리고 당시 온돌의 형태 역사전통마

꽤 오래전 무한도전에서 박명수씨가 "주모 오늘 봉놋방 좀 뜨듯하게 데워놓으시게...." 라는 말을 날린(?) 적이 있습니다.

사실 주막에서 '온돌방 좀 뎁혀 놓으라'라는 말은 사극에서 하나의 클리셰처럼 들릴 정도로 우리에게는 익숙한 문장이지요. '봉놋방'이라는 말은 '光炕 봉노'라는 온돌의 구어중 하나로, 보통 주막에서 여러 명이 묶고 갈만한 큰 방을 말합니다. 사실 ' ' 이라는 글자는 구들 강이라는 글자로 중국어 발음으로는 '캉'이 됩니다. 이 '캉'은 중국측에서 부분온돌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지요.

그럼 이 '주막의 뜨뜻한 방' 표현은 언제부터 구체적으로 '사실'이었을까요? 

필자가 찾아본 바로는 최초의 기록은 1600년대, 그러니까 17세기 중반무렵이 됩니다.이미 전면온돌이 보편화된 것이 이르면 12세기, 늦어도 13세기로 보고 있으니 이 기록은 새로울 것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래도 '구체적으로 한국의 숙박역사의 온돌기록'으로 가장 이른 것에 속한다고 보는 지라 한국학쪽에서는 의미있는 사료라 생각합니다.
=====


근래에 병자가 많이 죽는 것은 대체로 출막에서 연유한다. 모쪼록 신칙해서 반드시 병막(病幕)을 튼튼하게 짓도록 하고, 또 주막과 같이 편안한 온돌방을 만들게 하며, 또 그 집안사람을 함께 나와서 간호하게 하여 얼어 죽는 근심이 없게 해라. 이 또한 정사이니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목민심감(牧民心鑑)》이 매우 좋고 긴요한 말이 매우 많이 있어서 보내니, 깨끗하게 베껴서 항상 보도록 해라.

比來病者之多死。蓋由於出幕。須申飭之。必令病幕完固。且令安堗如酒幕。且令其家人同出救護。俾無凍死之患可矣。此亦政也。不可忽也。牧民心鑑一冊。極好看。極有要語。故送去。精謄而常覽可也。

구체적으로 보자면 다음의 문장.
且令安堗如酒幕 주막과 같이 편안한 온돌로 만들라고 명하라.

시기적으로는 가장 이른 표현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1792년 정조 16년의 [일성록] 기록이 있습니다.

일성록
정조16년 임자(1792,건륭 57) 12월 3일

역참에서 또한 말을 빌릴 수 있어서 밤 2경 무렵에 행렬이 홍제점(弘濟店)의 주막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숨이 거의 끊어질 듯하여 앞에 있는 고개를 넘을 길이 없으므로 하는 수 없이 급히 온돌에 들었으나 옷을 채 벗기도 전에 사관이 또 별유를 받들고 이르렀습니다.

行及弘濟店幕
不得已急就溫堗

홍제점이라는 주막의 온돌방이 묘사되고 있지요. 그럼 17세기 당시 주막의 온돌방의 구조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17세기의 주막에 쓰이던 온돌의 형태를 짐작하게 해주는 소중한 기록이 있습니다.
=====
오래된 주막온돌의 형태묘사 기록

17세기 후반의 문신 역옹(櫟翁) 이정신(李正臣, 1660~1727년)이 남긴 [역옹유고] 중 중국을 다녀와 쓴 기행문인 [연행록] 부분이 있습니다. 이 중 이런 기록이 전합니다 (번역본은 아직 제공되지 않고 있음).

轢翁遺稿 역옹유고
燕行錄 중
淸人之炕。實爲大駭然。若以南向三間家形容言之。則東邊間割半。而從東壁下築造房堗。西邊間又割半而從西壁下。又築造房堗。所謂房堗。卽炕也。兩邊房堗。前面皆設中房木。以防房堗崩壞之患。而居中間及東邊間之半間。及西邊間之半間。則不設板架。皆舖磚壁。所謂炕堗。但設中房而已。中房之上。別無障壁牕戶等物。以其家全軆言之。則三間北壁。無一窓。東西兩壁。亦無一窓。但於居中間南邊。設大戶。則彼此相對。無所蔽隔。鋪壁之間。則積置日用器皿。兩炕之頭。設竈而炊飯。其炕形狀畧同我國酒幕之溫堗。自鳳城至于北京。無論家主筋力之盛殘。歷路民家及皇城壯麗之興隆寺炕制則皆同。譯官亦曰。宗室宰相之家。亦皆設炕而無房云。譯官又曰。炕者。淸制也。本非明制云。胡人食飯者。全不用匙。但以箸引而納之於口。以此胡市無一匙。但有箸。吾問譯官。則答曰。用箸不用匙。本來胡風云。及其返國之後。聞諧博儒士之言。以爲大明太祖立制曰。北胡未滅之前。不可安逸。今姑作炕而寢。用箸而食。以待滅胡。然後可以設窓而作房。捨箸而用匙云。胡人以其簡便。仍用明制云。上項譯官之言。皆錯誤矣。

이 중 직접적으로 묘사한 아주 부분만 해석해 보자면,

兩炕之頭。양쪽 구들의 앞부분이 있어,
設竈而炊飯 부엌을 설치하고 밥을 짓는다.
其炕形狀畧同我國酒幕之溫堗。그 캉(구들)의 형상이 대략 우리나라(조선)의 주막의 온돌과 같다.

그러니까, 17세기 당시 '조선 주막'의 온돌구조의 형태를 이 부분을 통해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전문을 번역할 시간도 능력도 부족해 일단 원문만 둡니다만, 저 부분은 청나라의 캉(온돌)제도를 설명한 부분으로 우리나라 온돌연구에서도 중요해보이는 부분이라 사료됩니다.

=====

마지막으로 더 이전 시대인 16세기에 어떤 곳에서는 주막이 흔히 생각하는 한 채로 구성된 형태만이 아닌 꽤 큰 규모도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구절이 있어 소개하고 마무리하려 합니다.

다음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정경운(鄭慶雲, 1556~ 1610년)이 기록한 최근 주목받는 임란 1차사료인 [고대일록]에 나오는 1594년의 장면입니다.

고대일록
갑오(甲午, 1594) 겨울 11월
○ 11월 17일 신묘(辛卯)

갈원(葛院)의 주막에서 유숙하였다. 주막이 무너지고 헐리어 다만 몇 집만이 남았는데, 날이 저물었으므로 들어갔다.

원문을 볼까요.

十七日辛卯
宿葛院酒幕 갈원주막에서 숙박했다.
幕毁廢只餘數家 주막이 헐리고 폐하여 다만 몇 집(채)만 남아있다.
而因暮入焉 날이 이윽고 저물어서 들어가다.
 
16세기면 거의 '주막'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최초의 시대입니다 (예전에 이미 소개한 바처럼). 그런데, 이 기록을 보면 '갈원주막'이라는 곳이 (아마도 전쟁통에) 헐리고 무너져서 다만 '몇 집(數家)'만 남아 있다고 묘사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이 갈원주막이 몇채의 집으로 구성된 꽤 큰 규모였음을 유추하게 해주는 구절입니다.

이 기록과 일치하는 귀한 회화가 한점 있습니다. 비록 더 후대이긴 하지만 이인상 (1745~1821년)의 유천점 주막거리(柳川店逢爐圖)라는 작품입니다.
柳川店逢爐圖

이 작품을 보면 여러 유천점이라는 주막에 여러 부속건물이 딸려 있는 것이 보이는데, 이 것이 하나의 주막일수도 여러 주막이 몰려 있는 것일수도 있겠지요.

아무튼 '봉놋방' 좀 뎁혀놓으라는 말은 비단 19세기 선교사들이 묘사하기 훨씬 이전부터 쓰일 수 있는 묘사가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저 17세기의 주막 온돌 구조기록을 관련연구자들이 좀 제대로 들여다 보고 활용할 수 있으면 합니다.
=====

주막에 대한 기록은 이 후에도 한 두편 더 쓸 주제가 있습니다..



덧글

  • Nocchi 2016/04/11 09:17 #

    저 무한도전 편은 드라마 <이산>에 까메오 출연 당시 사진 아닌가요?
    멤버들이 수문병사 행인1 2 등으로 까메오 출연하던
    거기서 박명수 가 주모한테 작업(?) 걸던 씬
    이렇게 보니까 딱딱한 역사가 더 재미있어 지네요
  • 역사관심 2016/04/12 10:01 #

    맞습니다. 사실 저 화면은 '이산특집'보다 몇년 뒤에 나온 최근의 것으로, 당시를 재현해본 것이죠. 당시 박명수씨가 실수를 연발한 것을 '만회'한 회였지요 ㅎㅎ.
  • 레이오트 2016/04/11 09:56 #

    주막이라는게 지금으로 치면 술도 파는 식당을 겸하는 민박집이라고 볼 수 있고, 이는 주막 건물이 (지금 민박집이 그렇듯이) 당시 서민 주택의 구조를 그대로 혹은 주막 영업에 맞게 소소한 변경을 했다는 점을 볼 때 저런 온돌방이 있어도 전혀 어색할게 없지요.
  • 역사관심 2016/04/12 10:02 #

    그런 듯 합니다. 한편으로는 댓글덕분에 주막이란 곳이 서민주택의 '전용'만 있었는지 혹은 다른 특별한 목적으로 (즉 전문적으로) 지은 곳도 있었는지 궁금해지기도 하네요. 또다른 토픽...^^
  • 천하귀남 2016/04/11 11:57 #

    종로등의 건물 유구에서 온돌자료 쌓인것도 좀 될테고 슬슬 전국 주요 건물의 온돌관련 자료가 정리되 나오는건 어떨까 싶군요.
  • 역사관심 2016/04/12 10:03 #

    벌써 연구가 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분야는 꽤나 오래전부터 연구가 활발해서...
  • 대범한 에스키모 2016/04/11 12:06 #

    온돌자체는 삼국시대부터 발굴되고 잇으니..
  • 역사관심 2016/04/12 10:03 #

    그렇긴 합니다만, '주막의 뜨끈한 봉놋방'의 역사로 한정지어 살펴보니 또 다른 맛이 있네요.
  • BaronSamdi 2016/04/11 15:34 #

    외국건물들의 히터가 위층만 실컷 덥혀주는 걸 보면 온돌의 위대함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그나저나 저번에 추천해주신 한일 교류사는 절판이 되고 한일 양국의 교사들이 공동저술한 한일 교류의 역사라는 책이 있어서 구입했습니다. 제게는 더 쉬운 책이 필요한 것 같기도 하고요 ㅎㅎ
  • 역사관심 2016/04/12 10:04 #

    히터하고 온돌을 같이 적절히 틀어주면 그야말로... (쪄 죽으려나요).
    아 책이 벌써 절판이라니, 역시 좋은 책이라고 베스트 셀러가 안되는 아쉬운 현실...이네요.
    구입하신 책은 저는 잘 모르지만, 즐거운 독서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 신병훈련행성알바리움 2016/04/12 23:35 #

    온돌 보급이 생각보다 빨리, 잘 되있었군요 모르던걸 알게되어 기쁩니다. 다만 온돌 보편화에

    의한 반작용으로 산이란 산에 나무가 남아나질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는걸 본 기억이 납니다. -_-

    그래서 구한말엔 산천이 거진 다 민둥산이었다죠...
  • 역사관심 2016/04/14 03:42 #

    저도 들은 이야기인데 반박글도 어디서 본 것 같습니다. 기회가 되면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2018 대표이글루_history

마우스오른쪽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