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송인저택의 노루머리 뱀 설화 야담 지괴류

오랜만에 지괴류이야기.

부계기문(涪溪記聞) 
노루머리뱀

이암(頣庵) 송인(宋寅)은 중종 때의 부마(駙馬)이다. 문장에 능숙하고 예서(隸書)를 잘 써서 사류의 인정을 받았다.
일찍이 집을 팔고 이사를 하자 남들이 이상히 여겨 물으니, 송인은 말하기를,

“이 일은 매우 괴이하다. 매양 밤이 깊어서 인적이 고요하면 행랑채 사이에서 무슨 물건이 지나가는 것 같았다. 집안 사람들이 몰래 엿보니 큰 뱀이 있어서 머리는 노루 머리 같고 길이는 두 길이 넘었는데, 사람 소리를 들으면 문득 달아나서 남쪽 계단에 이르러 사라지곤 하였다. 

거기에 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돈 구멍만한 작은 구멍이 있는데, 미끄럽고 평이하여 길을 이루고 있었다. 파보니 깊이가 끝이 없어서 끝까지 파볼 수 없었다. 드디어 큰 돌을 쌓아놓았는데 두어 밤 뒤에는 그 괴물이 다시 나왔다. 날이 밝은 뒤에 그 구멍을 보면 전과 같고 큰 돌들은 다 전에 있던 자리에 돌아가 있어서 파낸 일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일이 매우 헤아릴 수 없으므로 드디어 집을 팔았다.” 하였다 한다. 판서 서성(徐渻)이 직접 이암에게서 듣고 나에게 이야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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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문인인 김시양(金時讓, 1581~ 1643년)이 1612년에 귀양살이를 할 때 지은 책이 [부계기문]입니다. 이 책에 이암 송인이란 사람의 집에 '노루머리 뱀 괴물'이 등장하여 이사를 할 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가 전하지요. 

머리가 노루머리에 길이는 두 길, 즉 7미터가량이 되는 큰 뱀입니다. 이 괴물을 막기 위해 돌을 쌓아 막아 두어도, 다음 날이 되면 다시 괴물뱀이 나와 혹시 파헷쳤는지 보면, 돌들이 그대로 있어 이해할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 결국 겁이 나서 집을 팔고 이사를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송인(宋寅, 1517∼1584년)은 10세에 중종의 셋째 서녀인 정순옹주(貞順翁主)와 결혼하여 여성위(礪城尉)가 되고, 명종 때 여성군(礪城君)에 봉해진 '부마' 그러니까 왕의 사위입니다. 

그럼 이 이야기는 정확히 언제쯤 일어난 일일까요? 단서는 마지막 줄에 나오는 '판서 서성'이라는 인물에게 있습니다. 서성(徐渻, 1558∼1631년)은 송인보다 훨씬 어린 인물로 그가 '판서'가 되는 것은 1592년 그러니까 임진왜란 이후의 일이나 되서입니다. 그런데 송인의 생몰년을 보면 이미 임란전에 사망한 인물이므로, 서성이 판서가 된 후가 아닌, 그 전에 이미 들은 일을 나중에 이야기한 것일 테지요.

서성이 태어난 1558년에 송인은 이미 40세였습니다. 그러니까 서성에게 그가 이야기를 하려면 최소 20대가 되었을 무렵 (송인은 50대), 그러니까 1570년대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 기이한 기담을 실록 기록과 비교하면 꽤 재미있는 지점이 있습니다.

중종 실록 1541년의 기록이 이런 것이 나옵니다.

중종 36년 신축(1541,가정 20)
11월1일 (계미)
도벌하여 만든 목판을 되돌려 주는 것이 온편치 못하다고 공조 판서 홍경림 등이 아뢰다

공조 판서 홍경림(洪景霖), 참판 윤개(尹漑)가 아뢰기를,
지난번 강원도 관찰사 김섬(金銛)의 계본에 ‘서울 사람 홍장수(洪長壽) 등이 정선(旌善)의 금산(禁山)에서 황장목(黃腸木)을 많이 베었다.’고 하였으므로, 즉시 형조(刑曹)에서 추고하여 죄를 다스리고 도벌하여 만든 목판(木版)은 선공감(繕工監)에 환속(還屬)시키고, 본도(本道)에서 바치는 재목을 감해 주도록 이미 전교를 내렸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그들의 상언(上言)【홍장수 등이 거짓으로 꾸민 상언에 “정순 옹주(貞順翁主)의 집을 수리하려고 목판 5백 장을 사가지고 왔는데, 연고도 없이 빼앗겨 관청에 귀속되었으니 은혜를 베풀어 되돌려 주십시오.” 하였다.】에 따라 되돌려 주도록 판부(判付)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당초 형조의 추고에 의해 스스로 진술 할 때에는 정순 옹주에 관한 말이 전혀 없었는데, 이제 이처럼 상소를 한 것은 간사한 거짓말을 꾸며낸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도 거짓 꾸며댄 말을 믿고 이미 구별하여 처리한 물건을 되돌려 주는 것은 매우 온편치 못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감히 여쭙니“당초에 이미 관청에 귀속시키고 외공(外貢)을 감한 것은 민폐(民弊)를 덜어 줄 수 있는 것인데, 그 후 상언(上言)을 보고서 자기의 물건이 아닌 줄로 알고 되돌려 주도록 한 것이다. 아뢴 뜻이 과연 그러하니 아뢴 대로 공사(公事)를 만들도록 하라.”다.”하니, 전교하였다. “당초에 이미 관청에 귀속시키고 외공(外貢)을 감한 것은 민폐(民弊)를 덜어 줄 수 있는 것인데, 그 후 상언(上言)을 보고서 자기의 물건이 아닌 줄로 알고 되돌려 주도록 한 것이다. 아뢴 뜻이 과연 그러하니 아뢴 대로 공사(公事)를 만들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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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과 정순옹주는 1526년에 혼인합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이 기록이 나오는 1541년에는 결혼한 상태가 되며, 정순옹주의 집= 송인의 집이 됩니다. 이야기인즉슨, 홍장수라는 사람과 몇 몇이 황장목을 함부로 불법으로 베어서 팔았는데, 그 중 정순옹주 (송인)의 집을 수리하려 5백장의 목판을 주문받았던 것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이 황장목이라는 녀석은 조선궁실에서 귀한 일에나 쓰던 (예를 들면 관짜기) 아주 귀한 황금빛 목재였습니다. 이런 걸 불법으로 베어서 관가에 잡혔는데, 홍장수라는 인물이 '정순옹주(송인)의 집'에 대려고 했던 물건이니 (즉 공식적으로 궁궐의 인물들의 요구에 의한 것이니) 봐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황장목을 벤 곳이 '강원도 정선'의 '금산'. 이건 어디일까요? 사실 금산이란 것은 지명이 아닙니다. 원래 황장목은 소나무를 오랫동안 잘 키워서 만든 것이므로 사람들이 못들어가게 '금산' 그러니까 출입을 금지한 것입니다. 이런 산에 붙이던 표를 '황장금표(黃腸禁標)'라고 합니다.

이 당대 정선에 있던 '금산'구역의 정확한 산의 명칭은 파악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당시 정선은 특히 노루와 사슴이 많던 고장입니다. 야생짐승이 거의 사라진 지금도 '사향노루'는 정선의 가리봉산에서 볼수 있는 동물일 정도지요 (가리봉산 야생동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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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노루'라... 앞서 소개한 기담에 나오는 뱀의 머리가 '노루머리'라고 했었던가요. 그러니까 강원도 정선에서 불법체취한 황장목을 가지고 수리한 송인의 집에서 집수리후 약 20-30년동안 노루머리를 가진 뱀 요괴가 출현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재미로...)

실상은 어찌되었든, 그래서 송인과 정순옹주(공주님)은 괴물을 피해 이사를 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이들은 이 뱀요괴에게서 완전히 벗어나실수 있었을까요?

수차례의 포스팅으로 말씀드렸듯 16세기는 만만한 시대가 아닌 '요괴의 시대'.

이사하시고 고작 몇 년후, 실록에 이런 기록이 전합니다.

선조 13년 경진(1580,만력 8)
8월2일 (기해)
공조가 정순 옹주의 집이 불타자 다시 지어주는 일로 의논을 청하다

공조가 아뢰기를, 정순 옹주(貞順翁主)의 본가가 불이 나서 모두 타버렸는데 여염의 상가(常家)에 거주할 수 없으므로 그 집을 다시 수리하고 조성할 것으로 전교하였습니다. 그러나 본조의 등록(謄錄)을 상고해보니 옹주의 주택을 새로 지을 경우에 40간을 짓는데 필요한 재목과 척촌(尺寸)만 마련되어 있을 뿐이고 별도로 불이 난 후에 개조하는 규례는 없었습니다. 전례에 없는 일을 새로 설치하는 것이니 어떻게 해야 할지 감히 아룁니다.”하니, 전교하기를, “비록 전례는 없더라도 이미 실화하였으니 지어주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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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노루머리 뱀 요괴는 이사한 송인의 저택으로 다시 침입, 집을 전소시켜버린 것일까요?
(재미로 읽어주시길...^^)


덧글

  • 이선생 2016/04/12 15:04 #

    노루머리의 뱀이라니...신기하네요...
    용같은 느낌이 나면서 또 색다른것이....
  • 역사관심 2016/04/14 03:38 #

    원문을 찾아서 한문을 한번 보고 싶은데, 확실히 노루인지 다른 짐승인지 한번 확인해보고 싶습니다.
  • 신병훈련행성알바리움 2016/04/13 00:14 #

    혹시 그 터에 터잡고 용이 되려다 집을 올려버려 못올라가게 되버리니 쫓아가기까지 해서

    분풀이 한게 아닐까요? 전 처음 읽고 이사가고 나서 전에 살던집이 불탔다는 줄 알았습니다...
  • 역사관심 2016/04/14 03:38 #

    전통적 관을 투영한 멋진 해석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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