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 생활사 (미시사 포함) 단상 (근원적 반론) 독서

2005년에 출간된 [19세기 조선, 생활과 사유의 변화를 엿보다]를 읽다가 이 부분에 와서 저자 세 분의 대담부분에서 근원적인 답답함을 느꼈다.

다음은 그 부분으로 대담자는 다음의 세 분.
서울대 규장각 책임연구원 김호 박사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주영하 교수
배화여대 전통의상학과 김소현 교수

202-207 쪽중.

주영하- 생활사의 연구방법은 무엇일까요?

김 호-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생활사는 분야사가 아니라 하나의 종합적인 학문 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좀 속되게 표현하자면 이규경은 시골에 혼자 앉아서 알기는 알고 싶고 정보는 부족하다 보니 한 가지를 알게 되면 곧바로 변증의 대상으로 삼은 듯 합니다. 사실 오늘날의 생활사도 이런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다 존재의 가치가 있고 연구할 가치가 있다는 말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에는 반드시 유의미한 것과 무의미한 것을 구별하는 기준이 있어야 하고 그 기준은 바로 현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생활사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가 있는 것을 명확히 하고 가능한 한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주영하- 사실 의식주에만 국한하여 본다면 의식주의 변화는 역사를 바꾸는 원동력이 되기 보다는 역사의 반영물로 나타나는 경향이 강합니다. 즉 시대적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의식주에도 변화가 생기는 것이지요. 

따라서 시대적 패러다임의 변화가 이른바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밝히지 않으면 오늘날의 '생활사'는 그야말로 잡학이 되고 말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저는 이제 민속학이, 전근대와 근대의 전환과정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그 시대에 적응해왔는가 하는 점을 살피고 주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사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게 된 시대적 맥락과 원인을 밝히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김 호- 그 변화의 양상과 원인, 시대적 맥락을 밝히는 것, 그것이 바로 역사학입니다. 역시서 제가 말하는 역사학은 하나의 분과, 즉 국문학에 대항하는 역사학 또는 민속학에 대항하는 역사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역사는 인문학의 기초거든요. ... 이것은 역사학이 잘났다는 것이 아니라 역사학적인 토대위에서 모든것이 재구성될 때 힘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주장에 동의합니다. 중략.

김소현- 저는 관점이 약간 다릅니다. 역사학을 바탕으로 연구의 기준을 설정하는 것도 좋지만, 여러 분야에서 시시콜콜한 것까지 자세히 살피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펴본 이규경은 그야말로 잡다한 지식을 다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그래서 보통은 그를 '희안한 사람'으로 생각하지만, 그 덕분에 생활 속에 파묻혀버리고 말았을 법한 사실들을 지금 알 수 있게 된 것이 아닌가 싶어요.

주영하- 생활사를 의식주나 일상생활 같은 아주 좁은 의미에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생활사 연구의 궁극적인 목표를 '어떤 생각과 인식 속에서 시대정신이 움직여왔는가'를 밝히는 데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는 복식 전공자니까 복식만 연구한다' 또는 '나는 음식만 연구한다' 이런 자세에서 벗어나 복식이나 음식, 세시 풍속을 통해 시대정신의 변화를 밝힌다는 입장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중략.

주영하- 그동안 민속학이나 복식학 등 다양한 학문분야에서 사소한 일상사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포괄적인 역사의 변화라는 틀 속에서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살핀 오주 이규경은 본인이 살던 시대에 변화하고 있던 사소한 여러가지 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변증하여 [오주연문장전산고]라는 책으로 남겼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역사적 변화, 즉 패러다임의 변화를 읽는 안목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때 우리의 생활사 연구는 사소한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물론이고 세상의 변화를 가져오는 역사적 원인을 밝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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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주영하교수와 김 호 연구원의 의견에 일부분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즉, '역사학'에서 상식적인 두 관점, 랑케  vs. 카 (즉 바닷가 모래알의 집합체와 같은 객관적인 사건, 사실들의 집합체 vs. 주관적인 사관이 반영된 기록으로서의 역사)에서 이 두분은 어떤 면에서는 (아주 적확하지는 않지만) 후자 즉 E.H. 카의 '기록으로서의 역사'에 가까운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이러한 주장은 '역사'를 바라볼 때 즉 우리가 생각하는 '역사학과' 학도로서의 생각으로서는 건강한 생각이고 옳은 의견이라 생각한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은 결국 현재 우리에게 저러 이러한 사실들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작업이며, 그렇지 않은 사실의 집합체는 위에서 주영하 교수가 말한 것처럼 '잡지식'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런데, 필자는 이 두 분의 생각은 역사학이라는 관점에서는 위와 같이 이해하지만, 한국학 그 중에서도 속칭 생활사라는 분야에 대해서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과연 이 분야를 '사'라는 명칭으로 붙여야 하는지는 별개의 토픽). 그 이유는 두 가지. 목적과 현실이다. 목적은 더 뒤에서 설명하고, 우선 현실적으로는 한국학 분야에서 그러한 'selection'과정과 'filtering'과정을 거칠 만큼 과연 각 생활사분야별로 자료가 넘쳐나느냐는 질문을 하고 싶다.

이 두 분에 따르면 어떤 사건이나 사실이 그 시대의 거대 패러다임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전대와 후대에 어떤 맥락과 의미를 가지는지 밝히는 것이 '복식학, 음식학', 조금 더 나아가 (얼마전 블로그이웃을 통해 알게 된 명칭인) 최근의 미시사를 포함하는 생활사가 모두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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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들에서 이런 질문들이 머리속에서 터져 나왔다.

왜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사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게 된 시대적 맥락과 원인을 밝히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하는지,  "생활사를 의식주나 일상생활 같은 아주 좁은 의미에서 이해해서는 안" 되는지, 왜 "생활사 연구의 궁극적인 목표가 어떤 생각과 인식 속에서 시대정신이 움직여왔는가를 밝히는 데 두는 것'이 되어야 하는지, "생활속의 구체성이 역사적 원인을 밝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는 것인지 강하게 반문하고 싶다.
'생활사'라는 이름으로 묶고 있지만, 과거 사람들이 어떻게 먹고 자고 생각하고 살아갔느냐는 것을 연구하는 행위에는 '다양한 목적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저자들은 간과하고 있다. 역사학자라는 배경으로 두 분의 생각을 (재차 말하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며, 또한 역사학이라는 틀에서 이분들의 생각은 그 목적이 걸맞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러한 목적만이 생활사를 하는 전부라는 착각은 버려야 한다. 생활사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필자가 감히 붙인 단어로 하자면 '각 분야별 전통마켓팅'도 포함) 소중한 '데이터베이스'와 같은 역할을 한다. 숲도 중요하지만, '구체적인 나무의 생김새'가 이런 목적에서는 훨씬 더 중요하다.

필자는 대담에서 거의 묻혀버리고 있는 김소현 교수의 말에 동의한다. "저는 관점이 약간 다릅니다. 역사학을 바탕으로 연구의 기준을 설정하는 것도 좋지만, 여러 분야에서 시시콜콜한 것까지 자세히 살피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필자가 항시 이야기해 온 '한국학의 형이상학적 강세'와 '구체적 가시감의 결여'현상이 바로 이러한 관점이 강한 현재 상황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라 경주의 흥망성쇠와 그 이유에 대한 연구는 많았고, 정치제도, 경제제도, 전쟁사와 같은 관련 연구는 활발하다. 역사학이 할 일이다. 하지만 신라의 건축에는 어떤 구체적인 다양한 모습들이 있었는지, 구체적인 의복들은 뭘 입었는지, 뭘 먹었는지는 대중들은 배우기도 접하기도 힘들다. 그렇기에 '머리속에도 드라마속 몇 장면만이 티미하게 떠오를 뿐'이다. 

'한국학'은 = '역사학'이 아니다. '한국학'은 정의를 옮기자면 '한국에 관한 다양한 면의 분야에서 고유의 것을 연구계발하는 학문'이다. 그 분과가 언어, 역사, 지리, 정치, 경제, 사회, 문화등 다양하게 갈려있으며, 역사학은 그 일부이다.


다시 돌아가 대담에서 김 호 연구원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실 역사는 인문학의 기초거든요. ... 이것은 역사학이 잘났다는 것이 아니라 역사학적인 토대위에서 모든것이 재구성될 때 힘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앞 문장은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두 번째 문장은 동의할 수 없다. '역사'자체가 '역사학'이라는 맥락으로 이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역사는 어떤 목적을 가진 이에게는 '역사학적'맥락으로 또 다른 목적을 가진 이에게는 '순수한 과거의 팩트'로 혹은 '그냥 흥미거리'로 이용되는데 아무런 문제와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 특히 생활사와 같은 현재의 여러 전통분야에 직결되는 분야에서는 '데이터베이스'로서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한 기초적인 정의와 목적과는 별개로, 실제적으로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과연 우리에게 역사학적인 맥락으로 거대담론속에서 의미있는 것만을 뽑아낼 만한 자료자체가 있을까? 건축, 의복, 음식등 각 분야에서 과연 우리가 현재 그럴만한 '사치' (감히 말한다)를 부릴 수 있느냐는 말이다.

이 대담이 담긴 책의 주제인 19세기 백과사전인 [오주연문장전산고]는 아직도 60권이라는 방대한 분량중 일부만이 번역이 끝났을 뿐이고, 그제 소개한 [고대일록]같은 자료 역시 고작 6-7년전에 번역이 끝났을 뿐이다. 필자가 항상 이야기하듯 '문화'라는 동물은 '연역법'으로 접근하면 그 실체가 잡히지 않거나, 잡혔다고 착각하는 순간 손아귀에서 자꾸 빠져나간다. 그래서 그렇게 접근하는 사람들은 자꾸 곁가지 (사실은 실체중 일부인)를 쳐내고 (filtering) 자신의 잣대로 과거의 문화를 맞추어 '다듬어 낸다'. 

그 결과는? (온전히 필자의 생각이지만) 문화사에 대한 '교조주의'가 발생한다. 특히 현재 우리나라와 같이 많은 과거가 묻혀있고, 파괴되어 땅속에 잠자는 상황에서는 아주 일부의 해석이 확대해석되는 위험성도 아주 빈번하게 보인다. 크게 보자면 조선후기식의 미학담론을 마치 통시적인 한국문화 전반으로 해석하는 우는 수없이 나오고 있고, 미학뿐 아니라 각 분야에서도 이런 경향이 보인다 (예를 들어 '고려시대의 건축물은= 주심포'라는 식이다. 이 부분도 최근 반박연구가 나오고 있으며, 한국도깨비는 순박하고 나무방망이에 뿔이 없다라는 희미한 실체의 거대담론 역시 마찬가지 맥락이다).

다시 말해 '역사'에서 패러다임이나 시대정신의 흐름은 두 분의 말씀처럼 접근해야 하는 것을 이해하고 그렇지 않고는 방법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일명)'생활사'는 이와 달리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이것이 역사학에서 말하는 '절충주의'일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겠지만). 즉, Elton (19세기 역사학자)의 말처럼 '중요한 것은 뽑을 수 없다. 그것 자체로 중요한 것이다'라는 말은 다름아닌 '문화사', 혹은 '생활사'에 적용해야 하는 말은 아닐까.


마지막으로 예전에 필자가 몇번이고 올렸던 비슷한 글에서 일부를 발췌해 본다.

"모든 형이상학은 연역적 원리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절대적으로 참인 원리를 바탕으로 현실을 설명해나간다. 허나 연역은 대단히 공허하다. 이미 "모든 사람은 죽는다"라는 대전제 속에 소크라테스가 죽는다는 사실이 포함되어 있다. 연역법은 현실에서 아무런 새로운 정보도 제공해주지 못한다. 다만 논리적 근거만을 밝혀줄 뿐이다. 따라서 연역은 새로운 정보가 아닌 논리적 과정을 중시한다. 또한 연역은 대단히 폭력적일 수 있다. ... 연역체계는 매우 정밀하고 완벽해 보이지만 실상 그 자명한 진리로서의 공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 체계자체가 아무런 쓸모가 없어지게 된다." (link)

"다시 말해서, 한국인은 한국적인 것을 만드는 주체이지만 무엇인가 만들어진 후라면 주체인 한국인이 없어도 한국적인 것은 존속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잉카 문명의 흔적에서, 잉카인이 사라진 후에도 잉카 문명의 특성을 느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한국의 정체성 탐구는 한국인에 대한 탐구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음악이 아닌 미술은 어떠한가? 중략. 한국인의 정서나 혼, 독특한 화풍등이 그 후보가 될 것이다. 중략. 그런데 미술에는 회화뿐 아니라 조각이나 서예도 있다. 외연을 확장할 수록 공통 속성은 더욱더 추상적으로 되어간다. 그리고 추상적일수록 내용은 점점 빈곤해지기 마련이다. 미술 분야에서 요행히 공통 속성을 찾았다고 하자. 그럼 음악과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만약 두 분야에서 공통속성을 찾을 수 있다면, 그 공통 속성은 더욱더 추상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더욱이 영화, 건축, 의상, 스포츠 등으로 영역을 확대한다면, 알맹이 있는 충실한 답은 애초에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 공감한다. 이렇게 연역법적인 접근보다는 정체성의 문제는 어느나라, 어느 문명권할것 없이 귀납법이 옳은 추론 방식일 것이다. 즉, 개별자의 특징적인 속성 하나하나가 (서로 같거나 다르거나 상관없다) 모두 총합적으로 그 나라의 특징을 규정하게 된다고 생각하고 연구해나가는 것이 옳바르다. 무언가 보편성을 따지기 시작하면 뜬구름을 잡게 되거나, 혹은 잡았다 하더라도 인류보편적인 특성에 머무르게 되기 쉽상이다" (link)

"한국적인 무엇은 없다고 생각하자. 대신, 가, 나, 다... 만 있는 것이다. 가를 파악하고, 나를 파악하고, 다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실체적으로 구현하라.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한국적인 '무엇'을 찾을 생각을 버리고 충실하게 실체에 접근할 때, (역으로 or 결과적으로) 한국적인 무엇은 찾아질 것이다 (아니, 찾아지지 못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풍부한 한국문화가 탄생할 것이다)."
=====

(어디까지나 필자생각이지만) 생활과 문화라는 관점에서 '어떤 의미'를 찾기는 선후가 바뀌어야 한다. 의미를 찾기 위해 문화를 들여다보지 말고, 문화의 각 개별자를 충실하게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 개별자는 어떤 의미가 있을 수도, 아니면 역사 속에서 혹은 당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설사 의미가 없더라도, 한국문화는 그로 인해 조금이나마 풍부하고 다양해 질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실체들'은 훗날 우리 후손들에게는 (지금 우리에게 없던 의미가) 큰 의미가 될 지도 모른다. 

현재와 같은 한국학 관련 전문가들의 기본적인 담론이 이러한 현상의 주된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치기기 힘들다.

'우리 문화재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after-effect에 가깝다. 그보다 '하나 하나 보이는 만큼 알게 된다' (아니, 필자에겐 그쪽이 선후적으로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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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신병훈련행성알바리움 2016/05/11 04:45 #

    불태워지고 뺴앗긴 유산들과 유물들이 너무나도 많아 이런 문제가 항상 나오는 것이겠죠.

    하다못해 고려사조차 조선의 정당성을 세우느라 없애버리고(들은 바로는) 특히 삼국사는

    삼국사기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시피 하고 특히 백제의 경우엔 제대로 된 걸 찾으려면 역설적으

    로 일본에 가서 찾는게 나을 정도이고 상고사는 정말 존재했는지조차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조차 의심을 품게할만큼 전무했으니까요 극단적인 말이라거나 좀 생뚱맞은 의견이라는 말을

    들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이렇게 집을 짓고 옷을 입고 음식을 먹었으며 이렇게 말했

    었다는 언어적 자료가 조금이라도 더 있었다면 우리역사의 저런 거시적 관점에서 흔들리는게

    아니라 거시에서 미시로 내려와 가지고 있는 자료를 어떻게 잘 살릴것인가 라는 좀 더 발전적

    인 토론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 역사관심 2016/05/12 04:29 #

    자료가 부족한데, 또 다른 주제로 넘어가야 하는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어떤 종류의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있어서 그나마 봐야 할 것도 안보거나 관심이 없는 경우도 허다한 듯 합니다.
  • 2016/05/11 11:3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5/11 23:2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Scarlett 2016/05/11 11:33 #

    읽어봤는데, 저 역시 주영하 교수와 김호 연구원의 의견에 동의하기 힘드네요.....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미시사 (생활사) 연구가 진전이 덜 되 있다는 생각을 늘 했었는데, 학자들의 저런 경향도 한 몫 하는것 같군요.
  • 역사관심 2016/05/12 22:57 #

    역사학자들에게 역사를 보는 의식이라는 점에서 일견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역사학'이 '한국학'그자체라는 기저에 깔린 맥락에서, 자신들만이 이 거대한 분야를 끌고 나가야 하며 나머지 분야는 '역사'를 다루는 인문학이라는 점에서 그 분야의 잣대를 따르라거나 그러한 잣대로 걸러낸 '유의미한' 결과물을 내야만 가치있는 연구라는 맥락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가서는 빈곤한 결과물이 남을 뿐이라 생각됩니다.
  • 초록불 2016/05/11 14:27 #

    역사관심님의 말씀에 대공감합니다.
  • 역사관심 2016/05/11 23:39 #

    감사합니다! 비슷한 주제를 여러 글로 조금씩 다른 면에서 다루고는 있는데, 뭔가 새로운 시각이 조금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하고 있습니다.
  • santalinus 2016/05/13 08:46 #

    동감합니다. 생활사는 이러이러해야 한다 라고 그 주제와 연구방식을 규정해서 제한해 버리면 더 깊게 발전하는 것에 방해가 될 수도 있으니깐요.
  • 역사관심 2016/05/14 04:06 #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생활'사'라는 영역이 만에 하나라도 그 명칭때문에 역사학에서 '우선' 다루고 다른 분야에서는 따라가야한다는 논지라면, 생활'사' 명칭을 더 포괄적으로 개칭 해서라도 연구의 외연을 넓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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