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기 저택 침루(寢樓)기록 추가발견 한국의 사라진 건축

사실 '침루'라는 형식의 누각이 조선전기까지 존재했다는 것은, 여러 벽체가 있는 고려시대 이후의 누각기록이나, 회화등으로 확실해 보였습니다. 

다만, '침루'라는 이름 즉, '숙박을 하는 루'라는 단어가 나오는 직접적인 기록은 세종대의 궁궐건축외에는 아직까지는 드물게 찾아낸 편입니다. 

1) 예를 들어 고려.조선전기 이층침실, 침루 포스팅에서는 다음의 두 가지 기록을 들수 있습니다.

우선 조선전기 문신인 노수신(盧守愼, 1515∼1590년)의 시문집에 등장하는 16세기중반의 침루기록입니다.
穌齋先生文集卷之四
夢覺泣書十一月 

雙親分席寢樓中。一稚隨身臥檻東。辛酉中冬廿夜夢。記來非吉亦非凶。

또한 '정확히 침루'라는 단어는 아니지만 조선 중기의 문인 차천로(車天輅, 1556~1615년)가 쓴 [오산설림초고]에는 당대 침루기록에 대한 더 명확한 묘사가 나오고 있지요.

見寢室傍有高樓。살펴보니 침실방이 높은 누(루)에 있었다.
高樓連寢室。고루(높은 루)에 침실이 맞닿아 있다.

문헌은 16세기중반이지만 사실 이 기록의 배경은 차천로의 전대인 15세기 후반, 조선전기 성종(成宗, 1457~1495년)대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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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리고 '침루'의 '이층방'으로 생각되는 기록을 살펴본 포스팅이 '누방 (루의 방)'에 관한 다음의 포스팅입니다.


예를 들어 다음의 기록이 대표적입니다.

중종 53권, 20년(1525 을유 / 명 가정(嘉靖) 4년) 3월 14일(계유) 
아우 세영은 먼저 안으로 들어가고 4경 무렵에 이르러 다른 사람들도 각각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탕빙이 신에게 ‘함께 다락방으로 올라가 이야기하자.’고 하며 탕빙이 신에게 ‘전시(殿試) 보이는 날 함께 놀이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上樓房, 作話。같이 다락방 (누방)으로 올라가 이야기하자.

명종 2권, 즉위년(1545 을사 / 명 가정(嘉靖) 24년) 9월 7일(정묘)
臣初入經筵而退, 與王希傑。在政院樓房, 憑修草冊, 相與言曰

신이 처음으로 경연에 들어갔다가 물러나와 왕희걸(王希傑)과 더불어 궁궐정원의 다락방(樓房)에 앉아 초책(草冊) 을 증빙 정리할 때 서로 말하기를...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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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의 기록을 보면 모두 공통점이 있죠.

성종(成宗, 1457~1495년, 재위 1469~1494년)
중종(中宗, 1488~1544년, 재위 1506~1544년)
명종(明宗, 1534~1567년, 재위 1545~1567년)
조선전기 문신 노수신(盧守愼, 1515∼1590년)

즉, 모두 임진왜란 (1592년)이전의 기록들입니다. 정확히 15세기중반에서 16세기후반까지의 기록들이라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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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가장 이른 기록은 성종대. 위에 나오는 '침실방이 높은 루'에 있었다는 그 기록이지요. 그런데, 같은 시기에 이러한 양식의 건축에 대한 또 다른 문헌자료를 발견했습니다. 

다음은 성종실록 중 1482년에 나오는 기록입니다. 글 주제와 관련없기에 글의 전문은 포스팅 말미에 따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1482년 
성종실록 142권, 성종 13년 6월 16일 계축
제안 대군의 아내 박씨가 종과 동침한 일은 무고한 것임을 아뢰다

또 하룻밤에는 무심(無心)이 다락 침실(寢室) 아래에 이르러서 둔가미ㆍ내은금ㆍ금음덕ㆍ금음물 등을 추문(推問)하였는데, 나는 잠이 들어 알지 못했다가 다음날 아침에 무심의 목소리를 듣고 내은금에게 물었더니 (중략).

又一日夜, 無心到樓寢室下, 
推問屯加未.... 我則入睡不知

이 장면은 제안대군 이현(齊安大君 李琄, 1466~1525년)의 아내인 박씨부인이 가종과 사통했다는 것을 추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박씨부인이 추문중 자신의 정당성을 반박하는 논박을 하는 와중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루의 침실의 아래에 무심(종 이름)이 와서..." 

이 문장은 어떻게 해석해도 '누와 침실'을 따로 해석할 수 없는 '누의 침실'이란 뜻입니다. 특히 '그 아래'에 이르러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고, '나(부인)은 잠이 들어 알지 못했다가'라고 되어 있어 이러한 형태의 건축이 있었다는 확실한 기록이 됩니다.

아직 번역되지 않은 조선전기의 문헌들에서 또 다른 추가 사료가 나올 경우, 관련학계에서 제대로 이러한 대중적으로 전혀 알려지고 있지 못한 형태의 현재의 한옥저택과는 다른 개념의 다양한 건축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사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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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위 내용의 전문입니다. 사실 이 기록 역시 놀라운데, 당시 가종들의 행태가 아무리 죗값을 치른다해도 왕족인 제안대군의 아내에 대한 행동이 이 정도라는 것이 정말 놀라울 뿐입니다. 조선전기의 문화사적인 측면에서도 한번 제대로 읽어내야 할 기록인 것 같군요.

성종실록 142권, 성종 13년 6월 16일 계축 (1482년)
제안 대군의 아내 박씨가 종과 동침한 일은 무고한 것임을 아뢰다

내관(內官) 안중경(安仲敬)과 서경생(徐敬生)에게 명하여, 제안 대군(齊安大君)의 아내 박씨(朴氏)에게 가서 묻게 하였더니 박씨가 말하기를,

“어느 날 밤에 내가 잠이 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둔가미(屯加未)가 한 자리에 동침(同寢)하기를 여러 번 청하므로, 내가 대답하기를, ‘내가 비록 귀신과 같고 도깨비와 같다고 하더라도 이미 명색이 주인인데 네가 어찌 동침하자고 하느냐?’고 하니, 둔가미가 물러나서 금음덕(今音德)과 더불어 같이 잤습니다. 또 어느 날 밤에 내은금(內隱今)도 나와 같이 자고자 하므로, 내가 꾸짖어 물리쳤더니 물러나서 평상 밑에 앉았다가 내가 잠들기를 기다려서 가만히 내가 누운 자리로 들어왔는데, 금음물(今音勿)이 녹덕(祿德)을 데리고 등(燈)을 밝히고 들어오므로, 내가 즉시 깨었더니, 금음물이 이르기를, ‘양반(兩班)이 저 모양인가? 더럽다. 더럽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내가 생각하기는 날이 새벽이 되었는데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책망하는 줄로만 알고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또 하루는 금음덕(今音德)이 내 베개에 기대면서 내 입을 맞추려고 하기에, 내가 말하기를, ‘종과 주인 사이에 감히 이와 같이 하느냐?’고 꾸짖어도 오히려 그치지 않고 억지로 맞추었으며, 또 말하기를, ‘부인(夫人)의 젖이 매우 좋습니다.’ 하면서 문지르고 만지기를 청하기에, 내가 손으로 뿌리치고 말았습니다. 또 하룻밤에는 무심(無心)이 다락 침실(寢室) 아래에 이르러서 둔가미ㆍ내은금ㆍ금음덕ㆍ금음물 등을 추문(推問)하였는데, 나는 잠이 들어 알지 못했다가 다음날 아침에 무심의 목소리를 듣고 내은금에게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무심이 우리더러 「부인과 동침했느냐?」고 묻기에, 「부인이 시켜서 동침하였다.」고 대답했습니다.’ 하였습니다. 

무심이 또 나에게 묻기를, ‘전교(傳敎) 안에 「부인이 스스로 한 일은 부인이 손수 써서 아뢰도록 하라.」 하였고, 금음물ㆍ금음덕ㆍ내은금ㆍ둔가미 등이 나에게 말하기를, ‘부인이 스스로 했다는 것으로 대답하면 반드시 무죄(無罪)가 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죄가 우리에게 돌아올 것입니다.’고 하면서 이런 것으로 간곡하게 말하기를, 내가 한 것이라고 써서 아뢴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단오(端午) 때에 내가 백초삼(白綃衫)을 입고자 하였더니, 내은금이 청삼(靑衫)과 녹색 치마를 입도록 권하므로 내가 상중(喪中)이라고 물리쳤는데, 내은금이 또 인생(人生)이 가석(可惜)하다는 것으로 말하기에 그대로 따랐습니다. 또 개질동(介叱同)과 내은덕(內隱德) 등이 그네[鞦韆] 놀이를 하자고 간곡하게 말하기 때문에 잠시 올라서서 둘러보니, 사방이 훤하게 바라보이고 가린 데가 없기에 즉시 도로 내렸습니다.”
하였다.

○命內官安仲敬、徐敬生, 往問齊安大君妻朴氏。 朴氏言: "一日夜, 我欲寢待, 屯加未累請一席同寢, 我答曰: ‘我雖如鬼如魅, 旣名爲主, 則汝何以云同寢哉?’ 屯加未退與今音德同寢。 又一夜, 內隱今亦欲與我同寢, 我叱而却之, 退坐床下, 待我入寢, 潛入臥內, 今音勿率祿德, 明燈入來, 我卽覺, 今音勿云: ‘兩班而如彼, 陋哉陋哉!’ 其時予以爲: ‘日將曉不起爲責, 不答一辭。’ 

又一日, 今音德倚我枕, 欲接我口, 我言: ‘婢主間敢如此哉?’ 叱之猶不已强之, 且言: ‘夫人之乳甚好。’ 請捫摩, 我以手揮置。 又一日夜, 無心到樓寢室下, 推問屯加未、內隱今、今音德、今音勿等, 我則入睡不知, 翌日朝聞無心聲, 問諸內隱今, 答云: ‘無心推問吾等: 「與夫人同寢。?」 答云: 「以夫人之敎同寢。」’ 

無心又問於我曰: ‘傳敎內: 「若夫人所自爲事, 則夫人手書以啓。」’ 今音勿、今音德、內隱今、屯加未等謂我曰: ‘夫人對以所自爲, 則必無罪矣, 不然則罪歸於我。’ 以此懇說, 故以我所爲書啓。 爾實非我所爲也。 又端午時, 我欲着白綃衫, 而內隱今勸着靑衫綠裳, 我以喪却之, 內隱今又語以人生可惜, 故從之。 又介叱同、內隱德等, 懇說鞦韆爲戲, 故暫上回視, 則皆通望無遮, 故卽還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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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네비아찌 2016/06/15 13:55 #

    저게 제안대군이 박씨랑 이혼하고 전처 김씨랑 재혼하기 위해 이혼사유를 만들 목적으로 종들을 사주해 벌인 일이라는게 대체로 정설이라고 알려져 있죠. 제안대군이 워낙 특이한 사람인지라...
  • 역사관심 2016/06/16 12:44 #

    그 양반이 이런 사람이었군요. 모르던 에피소드인데 한번 찾아봐야겠습니다. 소개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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