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라진 대건축물(15)- 신라왕실의 거대 고상창고, 장창(長倉) (좌, 중, 우창)- 100미터급 창고 한국의 사라진 거대건축

어느덧 한국의 사라진 거대건축 시리즈 100번째 글입니다. 아직 남은 많은 여러 건물터중 고민끝에 색다른 건축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일반적으로 한국사회에 아직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고대거대 건축물이 있습니다. 바로 7세기 고대 신라의 세개의 거대 왕궁창고건물들입니다. 

예전부터 다루고 싶었던 거대건물지로 '장창' (긴 창고라는 의미)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창지(長倉址)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이 터들은 사실 현재 경주 남산산중에 위치하고 있어 제대로 건물지조차 관리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모두 3동의 창고로 좌, 중, 우창으로 불립니다. 또는 동창, 중창, 서창으로도 불립니다.
장창지의 일부 (발굴후 현재는 다시 매몰)
 
현재 '남산신성'이라는 남산의 성안에 위치한 이 창고들의 연혁은 663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모두 등장할 만큼 당대 중요한 건물로 보이는데, 기록상으로는 좌창과 우창만이 나오지만, 발굴결과 중창까지 세 동이 나왔습니다. 삼국사기의 원문은 이렇습니다.

卷第六 新羅本紀 第六  文武王  三年春一月 
三年, 春正月, 作長倉扵南山新城.
남산신성에 장창을 짓다 ( 663년 01월(음) )

그 규모에 대해서는 다음의 기록이 전합니다. 세 건물들중 '우창'에 대한 규모가 나오지요. 이 규모에 대해서는 뒤에서 더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삼국유사 권2 기이2 문호왕 법민조
王初卽位 置南山長倉 長五十步 廣十五步 貯米穀兵器 是爲右倉 感恩寺西北山上 是爲左倉

왕이 처음에 즉위하여 남산에 장창을 설치하였는데 길이가 50보였으며 너비가 15보였다. 미곡과 병기를 저장하였으니 이것이 우창(右倉)이며, 또 천은사(天恩寺) 서북쪽 산 위에도 있으니 이것은 좌창(左倉)이다. 

우선 길이가 50보, 너비가 15보입니다. 1보를 보통 1.3~1.8미터로 보자면, 최소 65미터에서 90미터의 어마어마한 정면길이, 그리고 18~27미터의 남북길이를 가진 건물이 됩니다. 이 기록이 단일 건물을 이야기 하는 것인지 (예를 들어 중창), 혹은 우창에서 중창을 지나 좌창까지의 길이를 이야기하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이 기록은 현재까지 발굴된 좌, 우창 규모와 비교해서, 앞으로 재발굴시 귀한 정보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장창(長倉)은 건립된 지 정확히 103년만에 내란으로 전소됩니다. 다음은 삼국유사 766년의 기록입니다.

삼국유사 기이(紀異第二)
표훈의 염려대로 혜공왕 재위 초반 천재지변과 반란이 자주 일어나다(766년 (음))
혜공왕(惠恭王)
대력(大曆) 초년에 강주(康州) 관서(官署) 대당(大堂)의 동쪽 땅이 점점 가라앉아 못을 이루니 어떤 책에는 대사(大寺) 동쪽의 작은 연못이라 하였다, 세로는 13자이고 가로는 7자였다. 홀연히 잉어 대여섯 마리가 서로 계속하여 점점 커지더니 못도 따라서 커졌다. 2년 정미(767)에 이르러서는 또한 천구성(天狗星)이 동루(東樓)의 남쪽에 떨어졌다. 머리는 항아리 같았고 꼬리는 3자 가량이었으며 색은 뜨겁게 타는 불과 같았는데 천지가 또한 진동하였다. 중략. 

7월 3일에 각간 대공이 적도(賊盜)가 되어서 일어나고, 왕도(王都)와 5도 주군(州郡)의 96각간이 서로 싸워 대란이 일어났다.대공각간의 집안이 망하였고 그의 재산과 보물 비단 등은 왕궁으로 옮겼다. 신성(新城)의 장창(長倉)이 불에 타므로 사량(沙梁)·모량(牟梁) 등의 마을 안에 있던 역당들의 재물과 곡식들을 역시 왕궁으로 운반해 들였다. 난리는 석 달 만에 그쳤는데, 상 받은 사람도 자못 많고 목 베어 죽은 사람도 셀 수 없이 많았다. 표훈(表訓)의 말대로 나라가 위태롭다는 것이 이것이었다.

新城長倉火燒, 逆黨之寳穀在沙梁·牟梁等里中者亦輸入王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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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록이 중요한 것은 이 창고가 비단 '곡식'만을 저장하던 것이 아니라, '무기류'와 '재물들'까지 보관했을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貯米穀兵器 미곡과 군기류를 저장하다.
長倉火燒, 逆黨之寳穀 장창이 화재가 나서 역당들의 보배와 곡식을 중략.


99미터의 거대한 창고 長倉

장창지의 정확한 위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유명한 곳으로 보자면 포석정과 가깝고 남산에 있다고 하지만, 월성의 왕궁쪽으로 치우쳐 있지요. 

창고지는 성내의 북편 비교적 평탄지에서 세 개 건물이 발굴되었습니다. 현재 좌(서)창지는 장방형으로 길이 47m, 너비 18m로 남아 있으며 방형초석(長75×廣75×高35㎝) 10여 개가 지면에 노출되어 있고 10여 개는 서북쪽 계곡에 흩어져 있습니다. 초석간 거리는 정면, 측면 모두 2.6∼3.0m입니다. 이 좌창지는 민묘 2기와 토사에 덮혀 구체적 규모의 파악은 어렵지만 정면 16칸 x 측면 5칸의 거대한 규모입니다. 현재 실측 가능한 한 칸의 크기는 2.88m, 2.65m이며 측면은 2.75m입니다.

우(동)창지는 장축이 동-서방향으로 정면 7칸(48m), 측면 5칸(15m)의 장방형 건물로 초석은 비교적 정연히 남아 있습니다. 내진초석의 주칸거리는 2.69m이고, 외진초석 주칸거리는 3.81m인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건물내부의 자연암석에 ㄷ자모양의 홈을 파놓은 부틀자국과 함께 이 건물이 통풍이 잘 되도록 한 중층구조의 고상식 건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서 측 설명). 3개의 창고 중 가장 지형이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고, 정면은 17칸×5칸의 건물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중층식 대규모 창고건물'은 조선초기에도 등장합니다. 바로 1425년 세종대의 기록에 나오는 이 '루고樓庫' (누고)라는 건물입니다. 루고라는 단어는 직역하면 2층창고(다락창고)라는 뜻이 됩니다. 임진왜란직후인 광해군대를 마지막으로 사료에서 그 존재가 사라지는 조선전기대 기록에만 나오는 건축형태로 루고 역시 2층이었음이 다음 기록에 명확하게 나옵니다.

세종 28권, 7년(1425 을사 / 명 홍희(洪熙) 1년) 6월 23일(신유) 
前朝司宰魚物庫在松都, 纔單三間而已, 五百年間經國之費, 未嘗闕乏也。 
今司宰監則樓庫三四, 巍嶪宏壯, 猶未能盡容, 多作假庫。

전조(前朝) 사재(司宰)의 어물고(魚物庫)가 송도에 있었사온대, 겨우 단층 세간뿐이었사오나, 그래도 5백 년 동안 국가에서 소용되는 데 모자란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사재감에는 이층 창고가 서너 채가 있어 높디 높고 크기가 굉장하오나, 그래도 다 들여넣을 수 없어서 가창고(假倉庫)를 많이 짓기까지 하였습니다.

이 누고(樓庫)가 巍 (높고 클 외) 嶪 (높고 험할 업) 宏 (클 굉) 壯 (장대할 장) 즉 높고 높고 굉장히 크다라고 표현하고 있어 그 규모를 엿보게 합니다. 창고이니 당연히 사방이 막힌 건물일 것입니다. 아직 이 건물에 대한 발굴소식은 전무한데 기대하고 있는 건물중 하나입니다. 조선초기의 '루고'와 신라시대의 우창건물의 비교연구도 흥미로울 듯합니다.

다시 신라 장창지로 돌아가, 서창(좌창)과 동창(우창)의 경우 그 규모가 각각 정면 48, 47미터, 그리고 남북 15, 18미터로 굉장히 큽니다.

제목에 부제 100미터급 창고라고 이름을 붙이게 만든, 좌 우창의 가운데 위치한 주인공인 '중창'은 99미터라고 소개되어 있는 정보가 많습니다. 하지만, 연구결과를 보면 서북편 기단 일부가 남북방향으로 14m정도 확인될 뿐, 결실이 심해 정확한 규모를 확인할 수 없는 상태로 방형초석 10여 점만이 제자리를 이탈한 채 노출되어 있습니다. 다만, 중창이 동창과 서창보다 그 규모가 더 컸다는 것은 추정할 수 있으며, 따라서 최소 50미터 이상급이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단은 심석(心石)을 사용하여 견고히 축조했는데, 이 심석이라는 것은 불국사의 기단부에 볼 수 있는 고대기법입니다.  즉, 축대의 중간중간에 삐져나오게 만든 돌로, 축대와 직각으로 심어져 공고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며, 미학적으로도 아름답게 해주는 효과를 발휘합니다. 감은사지 축대, 첨성대, 그리고 월정교에서도 발견되는 기법입니다.
불국사 극락전 축대의 심석들

따라서, 동창과 마찬가지로 '중창' 역시 꽤 높이가 있는 건물로 보입니다. 돌못도 역시 발견되었으며 돌못(석정)간의 간격은 2.2m이며, 지반에서 약 45cm정도 띄어서 설치되어 있고, 못의 중심간 거리는 220cm이고 못 아랫단은 10cm정도 퇴물림되어 있습니다. 일제시대의 조사자료에 의하면, 중창건물의 좌우에 별도의 부속건물이 2동 있었다고 하였으나 현재는 확인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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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타 고대건물지와의 규모비교
장창지 중 한 건물터의 도면

48미터니 99미터니 하지만, 잘 와닿지 않지요. 황룡사터와 비교하는 것이 느낌상 쉽게 와닿을 듯 해서 비교해 보겠습니다. 우선 정리해보자면.

좌창지 (서창지)- 정면 16칸(47m), 측면 5칸(18m)
우창지 (동창지)- 정면 17칸(48m), 측면 5칸(15m)
중창지- 정면 ? (50미터이상), 측면 ?

좌창으로 비교하자면 정면 47미터, 측면 15미터는 거의 황룡사 강당 건물과 비근합니다. 황룡사 강당의 경우 기단부 52.6미터 x 21.1미터로 이보다 좀 작은 규모지요. 

그리고 현존하는 국내 최대의 전통건축인 경복궁 근정전의 경우 정면 5칸 30,7미터에 측면은 21미터입니다. 하지만, 조선초기 경복궁의 경우 외와 비근한 규모의 건축이 있는데,  몇년 전 발굴된 좌우 양측 용성문과 협생문 자리에서 나온 건물터의 경우 정면 50미터 (12칸), 가로 11미터(3칸)의 건물터가 나온바 있어, 이 장창지 동서창과 비근한 규모였습니다.

황룡사 규모도 

만약 장창지를 다시 만든다면 이런 느낌일 수 있겠지요. 아래 동그라미 부분이 강당지로 이 건물을 고상식으로 만들면 비슷하겠습니다.
이러한 형태로 가장 비근한 현전하는 건물의 예는 바로 일본의 정창원일 것입니다. 우연인지 정창원 역시 3개의 창고로 북, 남, 중창으로 구성되어 있고 고상식 고대창고지요. 이 건물의 추정 창건연대는 729-749년으로 이 당시, 경주 남산에는 세개의 창고가 아직 건재하고 있었습니다. 기억 나시지요, 663년 건립되어 766년 내란으로 화재 전소. 즉 이 정창원 건물은 고대 일본의 왕실보물창고로 경주의 고대신라 왕실창고였던 장창과 동시대의 건축입니다.

일본 정창원 (8세기)

마지막으로 이 장창이 있던 남산신성에서는 창고지 3동외에 총 5동의 건물지가 더 발굴되었습니다. 이 중 지표상에 장대석, 초석, 축대 등이 노출되어 있어 건물지가 확실한 4개소는 모두 창고지 주변에서 확인되었기 때문에 창고를 관리하기 위한 부속 건물로 판단됩니다. 따라서, 이 장창들의 관리에 얼마나 신라왕실이 신경을 썼는지 추정할 수 있습니다.

아래는 일제시대 최초 조사때 찍은 사진들로, [동양문고]라는 일본서적에 수록된 귀한 사진들입니다. 여길 보면 장창지에서 출토된 화려한 기와들을 볼 수 있는데, 그냥 대충 지은 창고건물이 아님을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일제시대 촬영한 장창지
장창지 출토 기와파편들

마무리

이렇게 장대한 규모의 왕실창고였던 장창들은 현재는 그 당시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건물 축대와 주춧돌, 돌못, 돌기둥 등의 자취가 일부 남아 있을 뿐입니다. 중창이 있던 곳에서는 불에 그슬려 까맣게 변한 탄화미가 토사에 씻겨 지금도 출토되고 있습니다. 
장창지에 흩어져 있는 돌못

참고로 필자가 파악한 바로는 이 돌못이 바로 한국사에서 현전하는 돌못중 최초의 것입니다. 663년의 것이고, 다음이 감은사지의 682년 것입니다.

현재 경주에 대한 건축계의 관심이 뜨겁습니다. 하지만, 그 규모와 중요도에 비해 왕실의 거대한 창고였던 경주 장창 세 동은 그 대중적 관심이 너무나 현저히 낮은 편입니다. 규모 하나만으로도 이런 대접을 받을 우리의 유적지는 아니라 사료되며, 앞으로 가장 큰 중창터에 대한 확실한 재발굴과, 발굴지 정비를 통한 관광과 교육효과도 충분히 재고할 만한 귀중한 유적이라 생각합니다.

관련당국의 관심을 촉구하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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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현재 장창지터에 대한 사진은 계림님의 블로그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더 자세한 사진들은 다음의 링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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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의지있는 공룡 2016/07/16 16:56 #

    까마구둥지님에게 보고드릴게 있어요 https://youtu.be/8X7qRBdZx3s 여기 8분54초에 고산식건물이 나오는데 안악3호분에서 못보던 그림이네요. 관심있으실것같아서 제보합니다
  • 역사관심 2016/07/16 23:12 #

    감사드립니다. 주말엔 정신없어 모르겠지만 꼭 보고 참고하겠습니다. 감사해요.
  • 역사관심 2016/07/26 19:53 #

    http://www.youtube.com/watch?v=8X7qRBdZx3s&feature=youtu.be
    잘 봤습니다. 캡쳐해 두었고, 후일 한번 제대로 봐야겠네요.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 밥과술 2016/08/03 17:43 #

    지식과 성의가 들어있는 글이라 후딱 못보고 시간난 김에 들어와 봅니다. 잘 읽고 갑니다~
  • 역사관심 2016/08/03 19:21 #

    이번달에 바빠져서 글을 못 올리고 있네요. 조금 지나면 다시 활발하게 ^^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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