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프로의 로마인은 성찬을 몰랐다 (2013년 기사) 역사뉴스비평

평소 즐겨읽은 파리 13구님의 오늘자 포스팅인 로마에서 고급요리을 즐긴다는 것은? 을 읽다보니 언젠가 소개하려 갈무리 해둔 2013년자 기사가 떠올라서 이 기회에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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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2 연합뉴스
고대 로마인 98%는 성찬 몰랐다

일반 서민 주식은 `동물사료' 조.수수

(서울=연합뉴스) 고대 로마제국의 생활상을 그린 벽화나 기록 등에는 온갖 과일과 채소, 케이크에 포도주를 곁들인 성찬이 단골로 등장하지만 이는 극소수 상류층에 국한됐을 뿐, 대부분의 서민들은 조, 수수 등 거친 음식을 먹고 살았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라이브사이언스 닷컴이 1일 보도했다.

미국 웨스트플로리다대학 과학자들은 고대 로마의 공동묘지에서 발굴한 무명인들의 유골을 분석한 결과 일반 서민들은 부자들이 `새 모이'나 동물 사료 정도로 여겼던 조ㆍ수수를 많이 먹었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인류학적 고고학 저널(Journal of Anthropological Archaeology) 최신호에 발표했다.

이른바 `지중해식 식단'으로 알려진 올리브유와 생선, 견과류 등은 심장병을 예방하는 건강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고대 로마인들의 식생활은 사회 계층과 거주지역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수많은 기록에 따르면 고대 로마의 부유층은 수입 과일과 채소, 각종 해산물과 달팽이 등 호사스러운 음식을 즐겼고 몇 시간 씩 계속된 공식 연회에서는 여러 코스의 음식이 나와 사람들이 비스듬히 누운 자세에서 먹고 마신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빈민들에 관한 기록은 매우 빈약해 지주가 전체 인구의 30%를 차지하는 노예들에게 음식을 얼마나 주는 것이 적당한 지에 관한 지침 정도만 남아 있다.

연구진은 당시 빈민들의 생활상을 알아보기 위해 로마 성곽 바로 바깥쪽의 카사 베르토네 공동묘지와 성곽에서 꽤 먼 카스텔라치오 에우로파르코 공동묘지에서 발굴한 36명의 유골 중 넙다리뼈(대퇴골)를 분석했다. 이들 유골은 로마제국의 전성기였던 1~3세기의 것으로 당시 로마 시와 교외 인구는 합쳐 1백만~200만명 정도였다.

연구진은 뼈 성분 중 음식으로부터 체내에서 합성되는 탄소와 질소 동위원소를 분석해 이들이 어떤 종류의 식물을 섭취했는지 추적했다. 밀이나 보리 같은 C3 식물은 조나 수수 등 섬유질이 많은 C4 식물과는 다른 방식으로 광합성을 하기 때문에 체내에 축적된 탄소 동위원소의 비율을 통해 이들이 어떤 식물을 먹었는지 알 수 있다.

한편 질소 동위원소는 죽은 사람이 생전에 섭취한 단백질의 종류를 말해 준다. 연구진은 그 결과 "사람들의 음식이 거주 지역에 따라 매우 달랐음을 알 수 있었다"면서 내륙 주민들은 해안지대 주민에 비해 생선을 훨씬 적게 먹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먹은 음식은 로마 시내에 살았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차이가 크게 났는데 예를 들어 비교적 상위계층이 묻힌 카사 베르토네의 유골에서는 카스텔라치오 에우로파르코의 유골에서보다 조, 수수의 흔적이 적게 나타났다. 이는 후자가 로마 시내, 또는 근교 지역 주민들보다 가난하게 살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연구진은 역사 기록에는 조나 수수 따위가 동물의 사료나 구황(救荒)식물 정도로 취급됐지만 실제 서민들은 이런 잡곡을 주식으로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분석 대상 유골 가운데서 유독 수수 섭취율이 높았던 한 남자는 추가 분석 결과 이민자였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남자는 로마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돼 죽은 것으로 추정되며 이전에 먹은 고향 음식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거나 로마에 도착한 뒤에도 전에 먹었던 음식을 계속 먹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이들은 "지난 2천년간 로마제국에 관한 연구는 충분히 이루어진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아직 아무도 손대지 않은 수많은 유골들은 우리가 몰랐던 일반 서민들의 생활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youngn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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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로마가 망했다면, 호화스러운 음식문화로 망한 것인지, 아니면 호화스러운 음식등만을 탐닉해가던 고위층과 동물사료로 연명하던 하층의 차이가 커지면서 망한것인지 좀 더 살펴볼 필요도 있겠습니다. 다만, 파리13구님의 루쿨루스의 로마공화정의 기원전 2세기보다는 훨씬 후대인 제국시절 AD 1~3세기의 분석이므로 그러한 차이도 고려해야겠네요. 만약 인골이 3세기라면 둘다 '말기'인점도 공통.



덧글

  • 하늘여우 2016/08/17 10:50 #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로마'의 모습은 상위 0.5%만이 즐겼던 모습이라는 말도 봤네요. 다만 그 상류층이 후대에 전해지는 문화들(시 소설 수기 등등)을 향유하던 계층이라 남은게 그렇게 비춰지는거라고...
  • 포스21 2016/08/17 17:17 #

    요즘 세상의 빈익빈 부익부를 생각하면 아마 그말이 맞을거 같네요
  • 역사관심 2016/08/18 05:51 #

    당시에는 대중문화라는 개념도 없었고, '문화'라는 건 (그러니까 생활사 역시) 상위계급의 전유물로 남겨졌으니... 기록도 그것밖에 없는 탓이겠지요. 조선이고 고려고 다 마찬가지입니다만 (사실, 그 에도시대도 화려한 이면의 하층민들에 대한 연구가 요즘 많더군요).
  • 파리13구 2016/08/17 11:46 #

    감사합니다
  • 역사관심 2016/08/18 05:51 #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주제덕분에 버려둔 글을 포스팅하게 되었네요.
  • 도연초 2016/08/17 17:16 #

    폼페이가 화산폭발 전 인구가 2만이나 되었던 것도 생필품 물가가 다른 지방에 비해 매우 저렴해서였다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물론 이 때가 1세기 중후반이었습니다만;
  • 역사관심 2016/08/18 05:52 #

    그런 이야기가 있었군요. 재미있습니다.^^
  • 초효 2016/08/17 17:31 #

    만찬을 벌이는 귀족 가문도 아침에는 어제 저녁에 먹다 남은걸 쳐묵쳐묵하고, 점심도 빵이나 치즈 정도로 간단히 때우는 정도였다죠.
    부뚜막을 쓰는 것 자체만 돈이 꽤 들어가는 일이었던 걸 생각하면 확실히 그럴 만 하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 역사관심 2016/08/18 05:52 #

    아 그렇군요. 그래도 최소한의 도덕(?-_-)은 있었네요. 다 버리고 새로 해와! 는 아니었으니...
  • 위장효과 2016/08/18 09:39 #

    그런 점에서는 제롬 카르코피노 교수의 유명한 저작도 다시 재판발행되었으면 좋겠습니다만 우리나라에서 일반인들에게 고대 로마사 하면 그저 시오노 나나미 정도이니 참...
    (정작 카르코피노의 책도 원본은 1940년에 나온 책이라서 최신 연구까지는 못 담고 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요. 하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시오노 할망구의 패악질을 해결하는데는 충분...)
  • 역사관심 2016/08/21 01:16 #

    저는 이쪽은 잘 모르는지라, 카르코피노 교수님 책을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시오노씨 책은 워낙 이야기가 많아서 패스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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