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초 방어시설 목책(木柵)의 규모 (오음회목책, 오농괴목책, 다대동목책) 한국의 사라진 건축

예전에 '목책'(즉 전쟁방어용 시설)에 대한 글을 쓴 바가 있습니다 (1500년전 백제군 목책 드러나다). 그리고, 팬저님의 포스팅에서도 몇차례 소개하신 것으로 기억합니다.
팬저님 포스팅- 가장 오래된 방어시설인 목책 중 몽촌토성의 목책

위 팬저님 포스팅에서 이 목책의 높이에 대한 아쉬움을 표명하신 바가 있는데, 잠깐 발췌하면:

"목책의 경우 현재 몽촌토성에 재현해놓았는데 높이도 낮고 엉성하더군요. 아무래도 어느 담장과 비슷하게 보였는데 김해 봉황대 유적지에는 그래도 방어용 목책의 느낌을 주고 있었습니다. 일단은 아랫부분에 토성과 같이 조금 높게 축성되어져 있는데 이를 토루라 부릅니다. 토루 위에 목책을 올려 놓았는데 높이가 적어도 3미터 이상되어 보이는데 이정도되면 방어용으로 사용하기가 쉬울 것 같아 보이더군요. "

즉, 현재 재현되어 있는 몽촌토성(사진)의 경우 매우 낮고 엉성하지만, 김해 봉황대 유적지는 그래도 3미터급 목책이 지어져 있어 방어용의 느낌을 주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럼 봉황대 목책을 한번 볼까요.
김해 봉황대 목책 (약 3미터)

과연 꽤 방어시설의 역할을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조선초 (1481년 완성, 1530년 증보)의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런 기사가 나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평안도(平安道) 벽동군(碧潼郡)

동쪽은 이산군(理山郡) 경계까지 1백 45리, 북쪽은 이산군 경계까지 91리, 남쪽은 창성부(昌城府) 경계까지 77리, 서쪽은 창성부 경계까지 71리이고, 서울과의 거리는 1천 3백 87리이다.
건치연혁- 본래는 여진족이 살던 임토(林土)와 벽단(碧團)의 땅이다. 고려 공민왕 6년에 이성 만호(泥城萬戶) 김진(金進) 등을 시켜 쳐서 도망가게 하고, 임토를 고쳐 음동(陰潼)으로 하여 벽단에 예속시키고, 남쪽 경계의 민가를 뽑아 그것에 채웠다. 본조 태종 3년에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 세조 때 진(鎭)을 설치했다.

오음회목책(吾音會木柵) 군 동쪽 80리에 있는데 둘레가 6백 26척, 높이가 12척이다. 
오농괴목책(於農怪木柵) 군 동쪽 50리에 있는데 둘레는 6백 12척, 높이는 12척이다. 성안에 샘이 하나 있다. 
다대동목책(多大洞木柵) 군 동쪽 30리에 있는데 둘레는 8백 30척이고 높이는 12척이다. 

이 기록을 보면 15세기경의 북방영토 경계에 있던 목책들의 수준이 보입니다. 목책의 둘레가 보통 600척~800척이라고 하는데, 영조척은 건축과 토목, 조선 및 조차(造車) 등 건축물이나 조영물을 만들 때 사용된 척도이므로 30.8센티 (동시대 경국대전 영조척)를 적용하면 맞겠지요 

이 경우, 둘레길이 185m에서 246m가 넘는 규모의 목책들이 평북에 건설된 것이 됩니다 (만약 목채이 아닌 '거리'로 재는 주척을 (20.6) 적용하더라도 125m~ 165m에 이르는 목책들이 서 있던 겁니다). 그리고 높이는 12척, 즉 3.7미터가 됩니다. 즉, 위의 봉황동 유적 목책보다도 더 큽니다. 즉 봉황동 목책의 하단부에 있는 '토루'까지 포함한 높이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따라서, 조선전기 북방지역의 전투장면에는 이러한 규모의 목책들을 컴퓨터 그래픽으로라도 구현하면 상당한 장면이 연출될 듯 합니다. 

참고로 이 '오음회목책', '오농괴목책', '다대동목책'이 모두 있던 평안북도 벽동군은 지도(네모부분)에서 보시다시피 북방과 경계를 마주하고 있는 곳으로 북방민족들과의 전투는 물론, 한족과도 끊임없는 사건사고가 일어나던 곳입니다.
평안북도 벽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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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팬저 2016/08/24 12:33 #

    목책은 인류의 탄생과 함께 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또 가장 오래 사용하고 있는 방어무기이기도 하고요. 현재 짐승들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한 전기목책도 목책의 일종이라 봐야할 것 같네요. 제가 사는 동네 진주의 청동기박물관에가면 목책이 마을을 삥둘러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높이가 낮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말이죠.

    조선시대의 경우를 보면 목책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곳중 하나가 목장일 것입니다. 목책이 아닌 석성으로 만들어 놓았던 것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지 못한 곳은 목책으로 말이 벗어나지 못하게 해 놓았더군요.

    좋은 발제글 잘 보았습니다.
  • 역사관심 2016/08/25 09:44 #

    목장은 생각도 못해봤는데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곳이네요. 한번 직접 보고 싶습니다.
  • 최강로봇 도라에몽 2016/08/24 14:45 #

    목책이라고 해서 상상력이 미진한지라 그냥 적당한 크기인줄 알았는데 거대하네요... 과연.그렇군요

    잘봤습니다
  • 역사관심 2016/08/25 09:45 #

    이런게 좀 많이 쓰이고 알려지면 좋을 것 같아요. 시각적으로 인식적으로 너무 모르죠...
  • 홍차도둑 2016/08/24 20:09 #

    컴퓨터 그래픽으로의 재현이라...몇년전 kbs를 통해 nhk인가 bbc에서 나온 고대 로마의 해이드리앤스 월 이나 북아프리카의 도시 재현울 봤는데...다른 사람들은 별 감흥이 없었지만 실제 가봤던 저는 오오오오~ 하고 팍!하고 떠오르더군요. 개인적으로 봉황대는 1년에 한번 이상 가는데 초음에 그 목책 보고 오오! 했던 기억이 납니다
  • 역사관심 2016/08/25 09:46 #

    사실 목책의 경우 사진으로 보면 그런가보다 인데, 실제 가보면 뭔가 고대전쟁의 느낌이 물씬나는...^^
  • 解明 2016/08/24 22:12 #

    몽촌토성은 풍납토성보다 성벽이 잘 보존된 만큼 목책도 보기 좋게 설치하면 볼거리가 늘어날 텐데 아쉽습니다.
  • 역사관심 2016/08/25 09:46 #

    그러게나 말입니다. 너무 휑해서... 그 큰 해자도 이게 해잔지 강인지 모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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