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말-19세기초 술집입구에 매단 등(燈)의 글자- '매주가賣酒家' (구체적인 조선후기 술집등, 주등의 모습) 역사전통마

과연 조선시대 주막에도 '등'을 걸었을까? 라는 글에서 술집에 다는 등(燈)인 '燈(주등)'을 비롯해 그 전대의 여러 형태의 '등롱', '제등'등에 대해 일괄해서 살핀 바 있습니다.

오늘은 조금 더 구체적인 시대의 구체적인 기록을 소개합니다. 윗 링크포스팅에서 다음의 부분이 직결되는 부분인지라 미리 소개합니다. 시대를 굵은 체로 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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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19세기초 주점에 매단 주등(燈)의 모습

중략.
무명자집의 원문을 보면 더 구체적으로 1792년 당시 주점의 주등모습을 유추할 수 있는데, 
紅燈揭戶是靑帘 즉, '홍등을 높이 건 곳이 즉 술집'이다. 라는 것으로 바닥이 아니라 높이 매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이 높이 매단' 형식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까요? 

거의 같은 시기인 이규경(李圭景, 1788년 ~ 1856년)의 백과사전 [오주연문장전산고]를 보면 그 형태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오주연문장전산고
賣酒者。稱酒保。【伊尹爲酒保】 酒家幟。謂帘。
【韓非子曰。宋人酤酒。懸幟甚高。酒市有旗。始見於此。或謂之帘。
今稱靑帘。後世或揭燈。名曰酒燈。我東酒肆。懸燈揭竿。】

"술을 파는 사람을 일컬어 '주보(酒保)'라 한다" 로 시작하는 이 글은 꽤 의미가 있어 보이는데, 이는 이전에 소개한 '주막의 푸른 깃발'보다 후대, 그러니까 이규경(李圭景, 1788~1856) 의 시대에는 적어도 유행을 타던 '주등'으로 주점/주막의 상징이 바뀌거나 공유되는 것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중략.

그런데 바로 그 다음 구절에 '조선의 당시' 그러니까 18세기말-19세기초의 모습이 나옵니다.

後世或揭燈。名曰酒燈。 후세에는 간혹 그렇지 않고 '등'을 높이 걸기도 한다. 이것의 이름은 '주등(酒燈)'이라 한다.
我東酒肆。懸燈揭竿。우리 동(국, 조선)의 술가게는 낚시대같은 장대에 등을 높이 매달아 건다.

"懸燈" 현등 그러니까 등을 높이 매달고, 懸燈 그러니까 장대(낚시대 혹은 대나무대)에 건다는 뜻입니다. 참고로 현등이라는 말은 행군할 때 높이 등을 걸고 다닐 때도 쓰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18세기말에는 주막등에 기존의 푸른 깃발과 함께, '주등'이라는 등을 긴 장대에 매달았음을 알 수 있지요. 이게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같은 시기에 결정적인 (거의 복원 활용이 가능한) 회화가 한 점 전합니다. 2007년에야 공개된 미국 개인소장, 단원 김홍도의 [공원춘효]입니다.
단원 김홍도 (金弘道, 1745년 ~ 1806년?)의 공원춘효 중 등롱부분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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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등(燈)에는 무슨 글자를 새겨넣었을까?

단원의 그림 [공원춘효]에 나오는 장대에 걸린 등롱의 모습은 그의 생몰년대를 고찰할때 18세기말의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1770~1800년대정도. 그리고 [무명자집]에서는 1792년의 기록으로 '붉은 등을 높이 장대에 매단 곳이 주점'이다라고 했지요. 이를 역시 같은 시대 (저자 이규경- 1788~1856년)의 백과사전인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는 정확히 '낚시대같은 장대에 등을 매단다'라고 되어 있어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낚싯대라는 것은 꽤 길기 때문에 공원춘효에 나오는 묘사와 일치하기도 합니다.

즉, 저런 장대에 붉은 색감의 등이 달렸다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그럼 저 안에는 '주등'이라고 썼을까요? 아니면 '술 주'자?
생몰년대는 미상이나 1828년에 연행을 간 박사호(朴思浩)의 [심전고]에는 이런 귀중한 기록이 전합니다.

심전고心田稿 
유관잡록

대개, 중국의 이름 있는 사대부들은 창루(娼樓)나 주사(酒肆 술집)를 꺼려하지 않고 기정(旗亭)의 고사(故事)와 같이 여기므로, 매양 석양이나 명절에는 거마가 구름처럼 모여들어 술 한 잔에 시 한 수를 지으며 서화도 품평(品評)하여 그 시구를 두고 가는데, 술집에서는 그것을 날마다 팔아 그 이익으로 부자가 된 사람이 많다. 이와 같이 하여야만 바야흐로 풍류주흥이 있다고 하겠으니, 우리나라 술집과는 다르다. 

우리나라 술집은 체[篩]와 등을 장대 끝에 달아서 매주가(賣酒家) 세 글자를 써 놓았으며, 그 안으로 들어가면 질그릇 술항아리가 있는데 사기 술잔으로 멍석을 편 화롯가에서 청주와 탁주를 가리지 않고 서서 몇 잔을 마시고는 주머니를 뒤져 돈을 치르고 나가며, 혹은 연거푸 10여 잔을 기울이고는 취하여 욕지거리를 하고 싸움질을 하여 취향(醉鄕)에서 싸움터로 옮겨 들어가기도 하곤 하니, 이것이 무슨 취미냐? 그러므로, 사대부라고 이름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발길을 들여놓지 않는다. 대개 중국 사람의 술을 마시는 법은 아주 작은 술잔으로 조금씩 마신다. 한 번 술잔을 권하는데 손님과 주인이 수없이 절하며, 또 술로 인한 실수도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우리나라 사람이 큰 술잔으로 마구 마시는 것을 보고 모두 깜짝 놀라서, 나는 술을 마시지 못하건만 주량[酒戶]이 적지 않다는 이름을 얻었으니, 도리어 우스운 일이다.

如此。方可有風流酒興。非如我國酒家。篩燈竹竿。書賣酒家三字。入其中。瓦盆,砂鐘,網席,土爐。無論淸濁。立飮數杯。探囊計錢而出。或連傾十餘杯。酗辱鬪敺。移醉鄕。入戰場。此何趣味。故名以士大夫。絶不投跡。蓋中國人飮法。以極少之杯。細細呷下。一獻之禮。賓主百拜。亦無酒失也。見我國人大盃痛飮。皆吐舌。以余不飮。亦得酒戶不少之名。還可笑也。昔楊無咎遊娼館。作折枝梅於短壁。士大夫多往觀之。留連飮酒。娼籍此壯門戶。其後有人竊去。從此車馬頓衰

굵은 체만 보시면 됩니다. 고전번역원의 해석은 '장대'라고 의역했지만 원문을 해석하면 좀 더 자세한 모습이 나옵니다.

非如我國酒家。우리나라 술집(주가)와는 같지 않다.
篩燈竹竿。(우리 술집은) 체와 등(체등)을 대나무로 만든 낚싯대에 달아서 
書賣酒家三字 '매주가'라는 세 글자를 써 넣는다.

낚싯대같은 대나무에 매단다라... 어디서 본 기억이 나지요?

懸燈揭竿 낚싯대같은 장대에 높이 등을 매단다.

바로 위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나오는 기록과 일치합니다. 그러니까 이 당시 술집에 낚싯대같은 긴 장대에 등을 매단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또 하나 의역이 틀린 것으로 보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체와 등을"이라고 번역한 부분입니다. '篩 체'라는 글자는 우리가 쌀겨같은 것을 거를 때 쓰는 '체'를 뜻합니다. 갑자기 그 부엌에서 쓰는 '체와 등'이라니... 어색하죠. 실은 '懸燈'(체등)이라는 종류가 있습니다. 등은 있어도 저 단어는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안쓰지만 중국에서는 아직도 씁니다. 바로 이런 등입니다.
이런 얽기설기 체같은 속이 보이는 형식의 외피를 가진 등은 통틀어서 '체등'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심전고]에 나오는 묘사는 이런 얽기설기한 등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물론 아예 체와 등을 장대에 따로 달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겠습니다.

또한 이 기록에는 무엇보다 주등에 써 넣은 '글자'가 나옵니다.
書賣酒家三字 '매주가'라는 세 글자를 써 넣는다.

매주가는 '술을 파는 가게'라는 뜻입니다. 이는 '주점'이나 '주'가 아닌 '매주가'라는 글자를 써 넣었다는 구체적인 귀한 기록입니다. 이 당시 분명 '등'을 단 술집이 많았음은 또 한가지 발견한 번역되지 않은 동시대 기록으로 살필 수 있습니다. 다음의 기록입니다.

낙하생집
洛下生集冊十九○洛下生藁[下]
 卻是齋集
府衙小酌。夜分乃還。卽事口占。

拄杖臨階始欲愁。回頭新月下西洲。黃花亂拂紗籠燭。白道橫穿皷角樓。魚市門前聞海氣。酒家燈下度邨謳。老蟾歌曲蓮娘酒。屈指星霜又一周。

[낙하생집]은 조선후기 문인 이학규(李學逵, 1770~1835년)의 시문집입니다. 역시 완전히 같은 동시대의 문헌이지요. 중간부분을 보면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酒家燈下度邨謳。술집등 아래 마을노랫가락 울리네.

그러니까, 조선의 18세기말~19세기초의 최소 일부 술집(주점, 주막)의 주등 (술집등)은 체등이나 제등을 대나무등의 장대에 매달아 어떤 등은 붉게 (홍등기록) 채색해서 걸어두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글자는 '매주가'를 써 넣었겠지요.

물론 이 세가지 (홍등, 대나무, 체등)이 모든 술집에 걸려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고, 어떤 곳은 보통의 등을 장대에 매달고, 어떤 곳은 안 매달기도 하고 여러 모습이었겠지요. 하지만, 저 모습을 조합한 모습은 충분히 현재도 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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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가능한 18세기말의 주등 酒燈

아래글에서 소개한 바 있는 '푸른 깃발(혹은 포렴)'형태가 고려시대 이래로 오랜 전통 술집 마크였다면, 이 장대에 매단 제등형태의 주등은 18세기말-19세기초의 새로운 유행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김홍도의 공원춘효에 나오는 등의 모습에 '매주가'라는 글자를 새긴다면 충분히 요즘의 전통주점앞에도 내걸만 하지 않을까요? 거기에 푸른 깃발을 더한다면 어느정도 양식미가 갖춰지리라 생각합니다. 
21세기 한국 전통주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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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Fedaykin 2017/01/11 15:11 #

    그러고보니 저런 등 안에는 보통 양초가 들어가있을지, 기름이 들어가있을지, 기름이면 어떤 기름을 사용했을지 궁금하네요. 이름 자체가 등이니까 기름이었겠지만서도.. 들기름 참기름 이런걸 썼으려나요.
    파란 깃발에 매주가 등이 달린 주점을 보게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최소한 사극에서라도 봤으면 ㅠ
  • 역사관심 2017/01/12 01:18 #

    그런 세부적인 부분도 한번 기회가 되면 들어가보려 합니다. 막줄이 제 블로그의 핵심주제중 하나네요 ^^
  • 신병훈련행성알바리움 2017/01/13 12:15 #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사각좌석에 개인술상이 아니라

    요즘같은 파라솔과 조명이었다는게 충격과 공포네요

    그야말로 컬쳐쇼크.
  • 역사관심 2017/01/13 16:35 #

    아, 오해십니다. 단원의 공원춘효는 술집이 아니라 과거시험장의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다만, 시대적으로 저러한 등의 생김새가 같으리라 추정할 수 있어서 가져왔습니다 ^^
  • 신병훈련행성알바리움 2017/01/14 15:18 #

    그렇군요 그래도 저런개념이 존재했었는지도 몰랐던저로선 새삼 아직 조선애 대하여 색안경을 끼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어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ㅠㅠ
    아직 저의 앎의 길은 한참 멀었네요...
  • 역사관심 2017/01/16 01:44 #

    말씀대로 '회화'가 남겨졌다면 얼마나 우리가 모르는 것들이 많이 알려졌을까 하는 생각이 항상 있습니다. 여백의 미니 산수화니 하지말고, 그저 생활속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들이 주류였다면 하는 아쉬움도 항상 있구요.

    당장 단원의 공원춘효만 해도 2007년이 되서야 미국에서 발견되었으니, 이런 작품이 해외(특히 중국등)에 많을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70412026008

    저 양산형 가리개만 해도 실물유구나 이름조차 정하지 못한 물건이죠. 연구도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복원하면 꽤나 멋진 아이템인데. 저런 형태의 가리개가 최소 18-19세기에 과거장에서 자주 쓰이던 물건이라는 것은 단원의 공원춘효외에도 작자미상의 19세기 '소과응시'라는 그림(평생도 중 일부)에도 등장하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http://bit.ly/2jns6q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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