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상 검은복장(흑의)부대- 黒鎧監, 黑衣長槍末步幢主, 黑衣隊 역사

예전에 삼국시대의 부대깃발 색깔에 대해 알아 본 적이 있는데, 오늘은 '검은 색'으로 무장한 부대를 소개합니다. 가까이는 임진왜란 당시 무공을 떨친 '흑의장군' 정발 (鄭撥, 1553~1592년)이 있습니다만, 부대색깔이 아닌 장수 한명의 복장이므로 제외합니다.
흑의장군 정발

흑개감 (黑鎧監)

우선 가장 많이 연구되고 있는 '흑개감'입니다. 삼국사기 경덕왕(景德王, 재위 742~765년)조를 보면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黑鎧監
흑개감은 경덕왕(景德王)이 위무감(衛武監)으로 고쳤고 후에 예전대로 회복되었다. 대사(大舍)는 1명, 사(史)는 4명이다.

흑개감에 대한 연구는 나름 연구가 진행되었는데,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본래의 명칭이나 개칭된 감무위(監武衛)에서 미루어 볼 때 무(武)적인 성격의 관청으로 보인다. 그 기능에 대해 《전국책(戰國策)》 조책(趙策)에 ‘願令補黑衣之數 以衛王宮’이라 한 것에서 미루어 왕궁의 경위(警衛)를 책임맡은 관사로 보는 견해(三池賢一, 「新羅內廷官制考」上, 《朝鮮學報》 61집, 1971, 37~38쪽), 국왕 호위부대는 시위부가 있기 때문에 이 관청의 기능은 왕궁(王宮) 경위(警衛)가 아니라 병고(兵庫)의 관리로 보는 견해(이인철, 《신라정치제도사연구》, 1993, 65쪽)도 있다. 흑개감의 설치 시기에 대해 금위(禁衛)조직인 시위부(侍衛府)가 설치되고 정비된 것이 진평왕(眞平王)~신문왕(神文王)代에 해당되므로 흑개감의 성립과정도 이것에 대응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三池賢一, 앞의 논문, 1971, 37~38쪽)도 있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515쪽).

대충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무(武)와 관계된 관청이란 것으로 원래 '衛武監' (무를 감독하는 기관)이라는 관청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된 임무는 '왕궁의 경비'를 맡는 중책. 따라서 이들이 관리한 부대는 맹군이자 정예병들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이 기관의 이름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보입니다. 한번 살펴보지요.

黑 검은 흑
鎧 갑옷/무장하다 개
監 관청 감

말 그대로 직역하면 검은 갑옷의 관청 혹은 검은 무장 관청이라는 뜻이지요. 이 것이 어떤 수사일수도 있겠지만, 당시 신라에 검은 갑옷을 입던 부대등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정보가 한 점 있습니다. 역시 [삼국사기]의 기록입니다.

진주와 진흠 등을 죽이다 (662년 08월(음) )
대당(大幢) 총관(摠管)진주(眞珠)와 남천주(南川州)총관 진흠(眞欽)이 거짓으로 병에 걸렸다고 하고는 한가로이 지내면서 나라 일을 돌보지 않았는데, 드디어 그들과 아울러 일족을 죽였다.

이 기록의 첫 단어가 대당(大幢)인데, 이 대당은 신라 6정(停)의 하나로, 진흥왕 5년(544) 경주 부근에 배치된 부대입니다. 그 구성원은 다음과 같습니다: "장군 4명 아래에 대관대감(大官大監) 5명, 대대감(隊大監) 3명, 제감(弟監) 5명, 감사지(監舍知) 1명, 소감(小監)·대척(大尺) 각 21명, 군사당주(軍師幢主)·대장척당주(大匠尺幢主) 1명, 보기당주(步騎幢主) 6명, 흑의장창말보당주(黑衣長槍末步幢主) 30명, 군사감(軍師監) 2명, 대장척감(大匠尺監) 1명, 보기감(步騎監) 6명 등을 두었다."고 전합니다.

그런데 이 '대당'의 부대구성원중 주목할 기록이 있습니다.
흑의장창말보당주(黑衣長槍末步幢主) 30명

흑의장창말보당주는 신라의 무관(武官)의 이름으로 6정(六停)과 9서당(九誓幢)에 수십명씩 배속시켰으며, 정원은 모두 264명이었습니다. 관등(官等)은 급찬(級?)으로부터 사지(舍知)에 이릅니다. 이중 '당주幢主'라는 말은 당시 지방의 군권을 가진 사람을 뜻합니다. 그러니 앞의 '흑의장창..'부분은 수식어일 가능성이 높지요.그런데 흑의장창 (黑衣長槍)이라는 말의 뜻은 "검은 옷을 입고 장창(긴 창)을 가진"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 흑의장창당주들은 이런 복장과 무기를 소지했을 가능성도 있겠지요 (사진은 무관).
이 기록은 662년으로 위의 '흑개감'시대인 경덕왕대보다 약 80년 이릅니다. 따라서 당시 흑의나 흑갑옷을 입은 신라의 부대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고, 이러한 자들을 다스린다는 뜻인 '흑개감'(검은갑옷관청)으로 지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검은 복장의 당주그룹 기록은 여러 군데에 나오는데 예를 들어 통일신라시대 중앙 군제(軍制)인 9서당(九誓幢)의 하나인 자금서당 紫衿誓幢에도 소속되어 나오고 있지요.

소속 군관으로는 최고지휘관인 장군 2명을 비롯하여 대관대감(大官大監) 4명, 대대감(隊大監) 5명, 제감(弟監) 4명, 감사지(監舍知) 1명, 소감(少監) 23명, 대척(大尺) 20명, 군사당주(軍師幢主) 1명, 대장척당주(大匠尺幢主) 1명, 보기당주(步騎幢主) 4명, 착금기당주(著衿騎幢主) 18명, 흑의장창말보당주(黑衣長槍末步幢主) 20명, 군사감(軍師監) 2명, 대장대감(大匠大監) 1명, 보기감(步騎監) 4명, 착금감(著衿監) 18명을 두었다. 

그리고, '흑개감'의 경우 중국측 기록에도 흥미로운 연관사실이 있습니다. 처음에 소개한 대로 흑개감의 주된 임무는 '왕궁의 호위'로 보는 설이 있습니다. 그런데 훨씬 이전인 진한시대 (BC 221~ AD 220년)에 중국에도 왕궁호위병부대가 있었으니 이름을 주려(周廬)라고 합니다. 주려는 황궁의 사방 주위를 호위하기 위하여 설치한 군막(軍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대의 별칭을 '흑의랑 (黑衣郞)'이라고 불렀습니다. 즉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라는 뜻으로 당시 왕궁을 지키던 부대가 흑색복장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흑개감과 흑의랑, 시공간은 다르지만 어감과 직책에서 연관성이 드러나지요.
검은 개마무사 기병


흑의대(黑衣隊)

조선시대로 건너갑니다.  17세기 이현일(李玄逸, 1627~ 1704년)이 쓴 [갈암집]에는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갈암집(葛庵集)
통훈대부(通訓大夫) 행 김제 군수(行金堤郡守) 증(贈) 가선대부(嘉善大夫) 병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兵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 정공(鄭公) 행장

공의 휘(諱)는 담(湛)이고, 자는 언결(彦潔)이며, 본관은 야성(野城)이다. 대대로 삼한(三韓)의 이름난 성씨였고, 9세조 송(松)이 고려의 시중(侍中)이 되어 그때부터 대대로 현달한 사람이 있었다. 5세조 종사랑(從仕郞) 득화(得和)에 이르러 비로소 강원도 평해군(平海郡)에 살았다. 그분이 휘 자함(自咸)을 낳았는데 성균관 사성을 지냈으니, 바로 공의 고조가 된다. 부위공(副尉公)은 담력과 국량(局量)이 남달랐으나 명운(命運)이 기박(奇薄)하여 때를 만나지 못하고 죽었다. 아들 둘을 낳았는데 공이 막내이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큰누님의 손에서 자랐는데, 걸출하고 남달리 기운이 세서 남에게 글을 배우려 하지 않았다. 항상 말하기를, “대장부는 마땅히 활쏘기와 말타기로 이름을 떨치고 공업(功業)을 이루어야지 어찌 문자에 얽매여 백수(白首)의 노서생(老書生)이 된단 말인가.” 하였다. 나이 18세에 비로소 활쏘기를 배우고 24세에 흑의대(黑衣隊)에 보임되어 탐라를 지켰다.

행장이란 것은 사망한 인물을 기리기 위해 고인의 일생을 적는 글입니다. 보통 유명한 문필가가 적는데, 여기서는 이현일 선생이 일헌(逸軒) 정담(鄭湛,1548~1592년)의 일생을 기리는 것입니다. 

이 중 필자가 찾아낸 부분은 이 부분. 

흑의대(黑衣隊)에 보임되어 탐라를 지켰다.
黑衣隊戍耽羅

즉, 정담이 24세때인 1572년, 흑의대라는 부대에 편성되어 '탐라' 즉 제주도를 지켰다는 것이지요. 이 당시는 임진왜란으로부터 고작 20년 전이므로 만약 임란당시 제주도에 일본군이 침략했다면 이 부대와 맞붙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제주도는 무관심속에 평화롭게 임란 7년을 보냅니다 (링크글). 만약 일본군과 제주도군이 붙었으면 흑의대라는 부대 역시 기록이 많이 전할 텐데, 결국 역사속으로 저 한줄만을 남긴채 없어진 것 같습니다. 지역연구가 따로 진행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필자가 찾은 연구결과는 전무합니다.

'흑의대'는 말 그대로 '검은 옷의 부대', 분명 16세기 제주지역에는 검은 부대가 있었을 것입니다. 한편 흑의대에 발탁되어 탐라를 지키던 정발은 임진왜란 당시에는 다시 본토로 돌아와 웅치전투등에서 큰 격전을 치르고 “차라리 적을 죽이고 죽을지언정 차마 몸을 빼내어 도망하여 적으로 하여금 이 땅에서 오랫동안 말을 몰게 할 수 없다”라고 유언을 남기고 왜군이 쏜 화살에 맞아 최후를 맞이합니다. 이런 분이 보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시 흑의대가 정군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검은 부대'는 색감만으로도 흥미롭습니다. 사극이나 웹툰에서 응용해도 좋을 듯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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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으로 2년전 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검은 색감'의 승려군 (치군이라 불리죠)에 대해 써 본 적이 있습니다. 흥미가 있는 분은 이 글도 함께 읽어보셔도 좋을 듯 하군요.



덧글

  • 존다리안 2017/01/14 16:22 #

    정예 친위부대 쯤 되려나요? 아님 정부 직할 감찰조직 쯤(일을 게을리 한 자를 죽였다니...)
  • 역사관심 2017/01/15 12:38 #

    정예친위군의 느낌이 옵니다.
  • 별일 없는 2017/01/14 19:57 #

    정예군인듯 근데 왜 제주에만.... 양계 2개 도를 포함해야 할듯한데..
  • 역사관심 2017/01/15 12:39 #

    흑의대에 관해서는 개인적으로 좀 더 살펴볼 예정입니다. 아직 시간을 들이지 못해서...
  • 反영웅 2017/01/15 18:40 #

    뱀발이지만, 대당이나 당주들이 나와서 문득 든 생각인데
    제가 요즘 백제, 신라와 달리 관등 외에 자세한 기록이 없는 고구려의 관제나 관직, 군사편제, 군직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 기록들을 보니 한때 고구려의 속국으로 고구려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신라의 관제를 통해 고구려의 관제나 군사편제의 그림자를 엿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고구려에서 최고무관직인 대모달의 이칭이 대당주였다는 점, 고구려 문헌에도 당주가 나온다는 점 등을 고려한다면 신라(속국으로서 직접적인 문화세례)와 백제(같은 부여계 국가들에서 관찰되는 비슷한 지방-중앙편제를 통해 지방과 중앙관부의 이칭동관의 추론)의 관제를 통해 관등과 달리 기록이 남지 않은 고구려 관청들과 군사, 무관직들을 역추론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근데 진짜 왜 백제, 신라의 관부, 관직 기록은 있는데 왜 고구려만 관직, 관부 기록이 없을까요?
  • 역사관심 2017/01/16 01:29 #

    고구려도 관직명이 있습니다.
    http://www.lec.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251
    http://blog.munpia.com/ko170659/23942
    대모달의 이칭이 대당주였다는 건 모르고 있었는데 흥미롭네요. 당주라는 말은 지금도 저 말을 쓰는 일본과는 어떻게 비슷하고 달라졌는지도 궁금한 점입니다.
  • 反영웅 2017/01/15 18:59 #

    답글 감사합니다.

    하지만 제가 이야기 하려고 했던 거는 정확히는 기존에 남은 고구려 관제 기록이 "관등" 밖에 없다는 것이고, 연남생 묘지명 등에 나오는 연개소문 일가가 장악한 "중리부", 그리고 "중리소형", "중리위두대형"처럼 "관부+관등=관직명"이 되던 고구려에서 이 앞에 붙는 구체적인 관부들의 명칭들이 남지 않았다는 걸 말씀드린 겁니다.

    삼국의 최후 승자인 신라는 중앙 관부는 물론 그 장관과 휘하 구성까지 세밀하게 기록이 남아 말할 것도 없고, 고구려보다 먼저 망한 백제도 외관 12부, 내관 10부의 명칭과 성격등이 남아 있는데 고구려는 아예 이 관부의 기록이 없다는 게 굉장히 의아하더라고요.

    무슨 당나라한테 기록 말살형을 당한 것도 아니고 관등, 지방관과 지방행정 기록은 그렇게 자세히 남겼고 무관도 대충 수박 겉핡기 식으로 나마 기록을 남겼으면서 정작 중앙 관직, 관부 명칭이 중리부 외에는 안 보이는 게 이상하더라고요.

    저는 요즘 드는 생각이 이 고구려 특유의 "관부+관등=관직명"이 그 당시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따로 중앙관부 기록을 남길 필요성을 못 느끼게 해서 관등기록만 남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위에 처럼 "관부+관등=관직명"의 특성이 있는 같은 부여계 국가의 특성이 있는 백제의 관직체계와 고구려의 직접적인 영향력을 받은 신라 후기의 관직체계가 고구려 관부와 관직의 역추적을 하는 단서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예를 들어
    신라의 경우 대등휘의=대로회의, 상대등=대대로, 시중=막리지이 아닐까 추측 중이고요,

    백제의 경우 고구려처럼 "관부+관등=관직"같은 구성을 보임으로 내신좌평=중리태대형 같은 식으로 역추적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중=중앙, 신=리=속=내정 이런 식으로 말이지요.
  • 역사관심 2017/01/16 01:33 #

    아, 관부에 대한 말씀이셨군요; 죄송.
    사실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던 주제인데 말씀을 듣고보니 좀 의아하긴 합니다. 또한 역추적발상도 흥미롭네요. ^^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분명 있을 듯 한데,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만약 관련연구가 있으면 댓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 신병훈련행성알바리움 2017/01/15 17:40 #

    비단 삼국시대,고구려에만 흑의부대가 있었던건
    아니네요.
  • 역사관심 2017/01/16 01:33 #

    저 조선시대 흑의대에 관해서는 한번 제대로 찾아봐야겠습니다. 기록이 너무 없는지라, 제주도지역의 문헌을 뒤져야 나올것 같기도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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