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왕의 장인이 자단(紫檀)으로 얽은 집. 한국의 사라진 건축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그렇지 한국건축사나 전통건축학계에서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 여러 '이형'의 건축물들이 종종 눈에 띕니다. 오늘은 그중 '재료'로 정말 신박한 건축물 하나를 소개하지요.

차천로(車天輅, 1556~ 1615년)의 [오산설림초고]에는 이런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오산설림초고
○ 성종 때 임금의 장인 중에 은대(銀臺)에 적을 가진 자가 있었는데, 자단(紫檀)으로 소헌을 지었다. 임금이 듣고 면대하여 묻기를, “경이 단향을 가지고 집을 지었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 하니, “아닙니다.” 하자, 임금이 곧 시신(侍臣) 및 중인(中人)에게 명하여 가 보도록 하였다. 그들이 아뢰기를, “과연 자단으로 지었사옵니다.” 하니, 임금이 바로 경복궁으로 거처를 옮기고 장인을 치죄하도록 명하였다. 얼마 있다가 환궁하여 이르기를, “내 병이 나았노라.” 하였는데, 이는 당시 대비가 아직 살아계셨으므로, 임금께선 대비가 용서를 청할 것을 피하여 병을 칭탁하고 거처를 옮겼다가 치죄하라고 명하고, 이미 처벌하자 곧 다시 돌아온 것이다, 해설하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임금의 이번 일은 용단은 용단이나, 한 문제(漢文帝)의 소왕(昭王)을 박대한 사실과 어떠한지, 뒷날 반드시 의론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成廟時。外舅有職居銀臺者。以紫檀木搆小軒。上聞之。面問曰。聞爾檀香作室。有諸。對曰未也。上卽命侍臣及中人往觀之。奏曰。果以紫檀爲之。上卽移御景福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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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5세기중반 조선 성종(成宗, 1457~ 1495년)대. 성종의 장인중 은대, 즉 승정원(承政院)에 근무하던 인물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무려 '자단'으로 집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일부번역을 보면 '자단으로 마루를 깔았다'라고 되어 있는데 직역하면 '집을 지었다'가 더 정확합니다 (아마도 번역자가 도저히 상상이 안된 느낌).

以紫檀木搆小軒 자단목으로 소규모 집을 지었다.
聞爾檀香作室 (진짜로) 단향(자단목)으로 집을 지었냐고 묻다.
果以紫檀爲之 단향(자단목)으로 실제로 지었다고 하다.

그럼 자단이 뭐길래 이렇게 고발이 들어가고 왕이 진짜냐고 묻고 하느냐, 이런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자단목으로 만든 고급가구

자단목은 지금도 동남아나 중국의 운남성등 아주 일부에서 자생하는 수종으로 가장 큰 특징은 목재가 자주빛이고 치밀하여 단단한것은 물론 쇠처럼 무겁습니다. 당연히 가공하기가 까다롭지요. 아주 고대부터 붉은빛과 나무결이 아름답고 내구성이 강해서, 예전부터 최고의 가구재로 사용되며 중국내에서도 대단히 고가입니다. 중국에서는 자단목 가구공장은 특유의 조각기술이 노출되길 꺼려 외부인의 출입을 삼가게 할만큼 귀중한 목재라고 합니다. 현재도 중국에서는 붉은 나무(홍묵)이라고 명하고 고가라 보통 일반가정에서는 구경도 힘듭니다 (가짜가 많아 유사품을 착각하는 경우는 있습니다만).

이 자단을 귀하게 여기는 기록은 여럿 있지만 17세기 인평대군 李㴭가 지은 [연도기행]에 당시 명에서도 이 나무를 '보물'로 여기고 있었음이 나옵니다.

연도기행 
일록(日錄) ○ 병신년 순치(順治) 13년 (1656, 효종 7) 9월[23일-29일]
27일(임신)

아침에는 개고, 저녁에는 흐렸다. 머물렀다.
아역들이 일제히 와서 방물을 바치라고 재촉하므로, 역관을 시켜 호부(戶部)에 바치게 했다. 물건을 수납한 곳은 호부의 아문이 아니라, 동화문(東華門) 안 자금성(紫金城) 밖 구왕(九王 청 태조(淸太祖)의 제9자(子) 파포태(巴布泰))의 집이었는데, 그 집이 적몰된 뒤, 정당(正堂)은 승려들이 거처하는 사찰(寺刹)이 되고, 대문은 호부의 별고(別庫)가 되었다. 침향(沉香)과 자단(紫檀)이 뜰에 가득 쌓이고 집안에는 진기(珍奇)한 보물로 충만되어 있다고 한다. 동화문은 금궐(金闕) 외장(外墻)의 동문(東門)이요, 자금(紫禁)은 내성(內城)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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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런 고가의 나무로 무려 '집'을 짓는 일이 어떻게 애초에 가능했을까요? 단서는 이 장인이라는 자가 근무하던 승정원이 왕명(王命)의 출납(出納)을 담당하던, 즉 금품을 수수하고 내주는 일을 하는 곳이라는 점. 즉, 빼돌린 돈으로 지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종이 정말 '자단'으로 집을 지었는지 묻고 그 거짓대답에 단죄를 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중국에는 현재도 아예 [자단박물관]이라는 기관을 만들어서 각종 가구와 이런 모형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자단목으로 만든 각종 건축 모형

이런 나무로 소규모지만 집자체를 건축했다라... 대체 어떤 느낌의 건축물이었을지 궁금해집니다.

자단목에 대해 쓰다보니 예전에 다룬 또 다른 고가의 목재, 침향이 생각나는군요 (위의 [연도기행]에도 자단과 쌍으로 등장하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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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2006년에 신안보물선의 최고 보물을 '자단목'이라고 쓴 글도 있습니다. 역사학자나 전문가 글은 아니지만 (링크글).

목포 국립해양유물전시관에서는 신안선(新安船) 발굴 30주년 기념으로 배에 실려 있던 유물들이 현재 전시되고 있다. 신안선은 1323년 여름 중국 경원항(港)에서 도자기를 비롯한 많은 무역품을 싣고 일본으로 가던 도중에 신안군 앞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이 신안선은 13~14세기 무렵의 교역품이 무엇이었나, 구체적 배의 성능과 승선 인원은 어땠는가, 장기간 항해에 따른 식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였는가, 배를 만들 때 어떤 재료를 썼는가, 어떤 형태의 돛을 사용하였는가 등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공부거리였다.

이런 공부거리를 가지고 목포에 가서 신안선 유물을 살펴보던 도중에 필자의 주목을 끄는 물건이 발견되었다. 바로 자단목(紫檀木)이었다. 성인 종아리 두께에다가 평균 길이는 150cm 정도의 자단목이 무려 1017본(本)이나 신안선에 실려 있었던 것이다. 무게로 따지면 8?이다. 도자기보다도 더욱 호기심을 자극하는 물품이 바로 이 자단목이었다.

이 자단목의 용도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태워서 연기를 맡는 분향료(焚香料) 용도이고, 다른 하나는 고급 공예품이나 목가구에 사용된다. 이 자단목의 최종 도착지는 일본 하카다(博多)의 조적암(釣寂菴)과 교토의 동복사(東福寺)였다. 사찰에서 쓰려고 수입했던 것이다. 자단목의 원산지는 스리랑카·인도네시아 같은 동남아시아 지역이다. 1017개의 자단목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각 나무마다에는 대일(大一), 대길(大吉), 천육(天六) 등 여러 가지 문양과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자단목의 소유자나 그 용도를 표시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자단목은 붉은 색이 감돌면서 아주 단단한 나무이다. 톱으로 썰어도 쉽게 썰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자단은 붉은 색을 띠므로 귀신을 쫓는다고 여겨졌고, 단단하므로 가구를 만들면 아주 오래갔다. 그래서 고려나 조선에서도 자단으로 만든 목가구는 왕실이나 상류층이 애호하던 명품가구였다. 소위 ‘화류장(樺榴欌)’이 이것이다. 자단으로 만든 화류장은 부와 권위의 상징이었다. 더군다나 신안선에서 나온 자단은 바다 밑의 뻘 속에 700년 가깝게 묻혀 있었으니 ‘침향(沈香)’으로 볼 수 있다. 침향은 동양 최고의 향이다. 금값과 같다. 신안선 유물의 최고 보물은 700년 된 이 자단목이다.
  


덧글

  • 도연초 2017/03/08 11:16 #

    자단수는 현재 멸종위기식물이라 보호를 받고 있지만 여전히 불법적인 벌목이 성행하는게 현실...
  • 역사관심 2017/03/09 02:41 #

    그렇군요. 여러 곳에서 관리가 부족하니...;
  • 최강로봇 도라에몽 2017/03/09 13:02 #

    와... 진짜 남아있었으면 엄청났겠지만 그건 불가능하니... 여튼 상상도 안되네요.그.귀한.자단으로 집을..
  • 역사관심 2017/03/10 08:12 #

    3D로라도 한번 보고 싶네요. 질감이 어땠을지...
  • M i d s e n 2017/09/11 18:40 #

    자단으로 집을 만들었다니 어땠을까요
    아마 그윽한 향이 올라왔을테고 최고급 목재에 어울리는 고급진 마감을 한 탓에 미끌미끌해서 넘어지기 쉽상이지 않았을지...
  • 역사관심 2017/09/12 13:10 #

    그러게 말입니다. 정말 궁금한데 누가 3D로라도 만들어주시면 ㅎㅎ
  • 더러운 이누이트 2018/10/28 23:35 #

    원나라 수도 황궁에 황제 침전 옆에 자단전이 있었죠. 몽고군이 베트남에서 발견한 자단숲에서 가져온 자단목으로 건설 되었습니다. 황제가 죽자 함께 불살랐다가 다음 황제때 한찰례 재건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북경 묵해공원 가시면 거기에는 자단목은 아니지만 남목으로 지어진 대전이 한채 남아있습니다.
  • 역사관심 2018/11/02 00:09 #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사진이라도 찾아보고 싶은데 검색하기는 힘드네요. 많은 사람이 알지 못하는 정보일텐데 정말 고맙습니다. 추후 찾아내면 글에 첨부해보고 싶은 자료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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