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기 최고 바둑판 "목화자단기국" TV 출연에 더해 (백제 바둑 기록) 역사전통마

어제  TV 프로그램인 [천상의 컬렉션]에 저 "목화자단기국"이 소개되었습니다. 우리 공중파 방송에서 이 문화재를 다루기는 다큐멘터리를 제외하면 처음이 아니었을까 싶더군요.

엑스레이로 찍은 목화자단기국- 가운데 기계장치가 있어 양측 서랍이 동시에 열림

이 최고급 바둑판은 백제 말기 의자왕(義慈王, 재위 641~ 660년)이 일본의 황실에 바둑돌 셋트와 함께 선물로 보낸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즉, 무려 7세기의 물건입니다.

목화자단기국은 이렇듯 우리나라에서는 백제것으로, 중국과 일본에서는 당나라 것으로 파악해오다가, 2013년 일본이 바둑판의 재질이 한반도의 육송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최근에는 일본도 반반 혹은 백제쪽으로 기운 느낌입니다 (기사링크). 당시 일본측 발표를 보면 이렇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목화자단기국 본체에, 한국에서 목간이나 공예품에 자주 쓰이는 (조선반도의) 소나무 재료가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사실이라면 이것은 쇼소인의 여러 보물 중 유일한 사례다." 이 사실은 일본 궁내청 쇼소인 사무소가 조사했다. 

교도통신은 "서랍의 내부에 송진과 같은 물질이 스며 나온 점, 안이 텅빈구조인데도 중량이 4Kg으로 무거운 점도 소나무의 특징과 일치한다"고 썼다. 

교도통신은 쇼소인 사무소 니시카와 아키히코 보존과학실장의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쳤다. -“질이 좋은 것은 중국제라고 여기기 쉬우나 외양만에 의존한 제작지역 판단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에 없는 문양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한국 이외의 지역에서 제작된 것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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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말미를 보면 조금 웃기는 (하지만 이해도 얼핏 가는) 부분이 나오는데 '질이 좋은 것은 중국제라고 여기기 쉽다'라는 이야기가 나오지요. 이것이 현재 일본의 한국문화에 대한 전체적 시각일 것입니다 (화려한 시절의 문화재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담백한 미가 주류인 시대의 문화만 접했을테니). 특히 백제에 대해서는 문헌기록에 상응하는 유물들이 없었던지라 90년대까지는 이런 시각이 있었겠지만, 최근 속속 발견되고 있는 여러 발굴결과 (백제대향로, 그리고 몇년전의 그에 버금가는 미륵사석탑의 정교한 극세보물들)를 통해 이 시대 한반도국가의 문화수준은 충분히 저런 바둑판을 생산할 정도였음이 객관적으로 실증되고 있어 앞으로 수정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자단기국이 백제나 신라등 한반도국가들에서 나온 것이라는 학계의 가장 큰 이유는 자단기국에 새겨진 17개의 국내특유의 순장바둑흔적때문입니다 (기사링크 2). 이에 대해서 여러 의견이 있는데 조금 후에 간략하게 살피기로 하지요.  

또 하나는 아까 말씀드린 나무재질, 그리고 고묘 황후가 만든 정창원의 북창(北倉)에 격납된 보물의 명칭과 수량을 기록한 [국가진보장(國家珍寶帳)]에 목화자단기국과 의자왕이 선물로 일본에 보낸 홍아, 감아 등의 바둑돌셋트가 한 세트로 기록되어 있는데, 반대측에서는 목화자단기국이 홍아, 감아와 달리 리스트가 적힌 종이의 뒷쪽에 적혀 있어 함께 보낸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와닿지 않는 주장입니다- 중요한 물품이라 그리 적었을 수도 있고 해석하기 나름같군요. 한 리스트에 적혀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것 같다는).
또 장식에 쓰인 이국적동물인 낙타나 코끼리에 대해서 일본서기에는 ‘(599년) 백제로부터 낙타가 왔다’는 구절이 나왔기 때문에, 당시 백제가 무역을 통해 낙타를 소유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도 가능합니다 (코끼리야 불교국가에서는 흔하게 알고 있던 동물이구요).

참고로 599년 스이코천황대의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日本書紀- 推古紀7年(599년) 秋9月癸亥條

百濟貢駱駝一匹・驢一匹・羊二頭・白雉一隻。
백제가 낙타 한 쌍, 당나귀 한 마리, 양 두 마리, 흰꿩 한 마리를 바치다.

명확히 낙타(駱駝) 한쌍이 보입니다. 지금도 저 한자를 쓰죠. 599년이니 의자왕이 보낸 이 바둑판으로부터 약 4~50년전 기록입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아예 의자왕 재위기간중인 657년에도 등장합니다.

日本書紀- 齊明紀3年(657) 是歲條
百濟還、獻駱駝一箇・驢二箇。石見國言、白狐見。

이때는 사이메이천황때로 내용은 백제에 파견된 왜의 사신을 통해 낙타 한 마리가 전해진 기록입니다. 657년이면 의자왕 18년입니다. 확실히 이때 백제에 낙타가 있었음을 추정가능한 대목이지요.
목화자단기국과 홍아, 감아, 상아 바둑돌집 셋트

오늘은 이에 더해 필자가 찾아낸 몇가지 백제인들의 '바둑애호'에 대해 덧붙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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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 의자왕 당대 백제의 바둑애호

우선 국내기록으로는 [삼국사기]에 이런 구절이 등장합니다.

삼국사기
卷第二十五 百濟本紀 第三   
개로왕(蓋鹵王)
二十一年秋九月 한성이 함락되고 개로왕이 살해되다(475년 9월 (음))

당시의 백제 왕 근개루(개로왕)는 장기와 바둑을 좋아하였다. 도림이 대궐 문에 이르러 “제가 어려서부터 바둑을 배워 상당한 묘수의 경지를 알고 있으니, 왕께 들려 드리고자 합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그를 불러들여 대국을 하여 보니 과연 국수였다. 왕은 마침내 그를 상객으로 대우하고 매우 친하게 여겨 서로 늦게 만난 것을 한탄하였다. 

이 기록은 의자왕으로부터 약 170년전 기록인 개로왕대의 기록으로 왕이 바둑를 사랑했다고 되어 있고, '도림'이라는 백제의 바둑고수가 등장하고 있지요. 다음은 중국측 기록입니다. 특히 삼국사기와 달리 백제 당대의 기록인지라 귀중한 기록들입니다. 우선은 [주서]의 정보입니다.

周書 異域列傳 
百濟

○ 그들의 의복이 남자는 대략 高[句]麗와 동일하였다. 朝會나 제사 지낼 때에는 冠의 양쪽 곁에 [새의] 깃을 달았으나, 軍事에는 그렇지 않았다. 절하고 뵙는 예는 두 손을 땅에 짚어 공경을 나타냈다. 부인 의복은 도포 같으면서 소매가 약간 컸다. 시집가지 않은 여자는 編髮로 머리 위에 또아리를 틀고 뒤로 한 가닥을 늘어뜨리는 것으로 꾸밈을 삼았고, 시집간 사람은 이를 두가닥으로 늘어뜨렸다.

병기로는 활, 화살, 칼, 창이 있다. 그들의 습속은 騎射를 숭상하고 아울러 經傳과 史書를 애독하니, 뛰어난 사람은 제법 문장을 엮을 줄도 알았다. 또한 陰陽, 五行도 이해하였다.

宋 元嘉曆을 채용하여 寅月로 歲首를 삼았다. 또 醫藥,卜筮 및 점치고 관상보는 법도 알고 있었다. 投壺와 樗蒲 등의 여러 가지 놀이가 있으나 바둑을 더욱 좋아한다. 중과 비구니, 절, 탑은 매우 많으나, 道士(道家類)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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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은 이렇습니다.

然尤尙奕棋 특히 바둑 익히기를 더욱 숭상한다.

이것은 [주서周書]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역사를 이역열전(異域列傳)이라는 편에서 소개하고 있는 기록으로 사실 이 [이역열전]이라는 글 자체가 '이국' (異域列傳 다를 이, 경계 경)의 기록이라는 뜻으로 20세기말의 동북공정이 얼마나 웃긴 일인가를 다시 보여줍니다.

아무튼 이 주서의 백제편을 보면 '백제인들에게는 投壺와 樗蒲(투호와 저포)등의 여러 놀이가 있지만 '바둑'을 더 좋아한다(숭상한다)라고 되어 있어 백제인들이 당시 얼마나 바둑을 좋아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저서는 令狐德棻(583~ 666년)이 당대에 쓴 문헌이라 1차사료에 가깝습니다. 

기록이 한번만 나온다면 모르겠지만, 또 다른 중국사서에도 백제와 바둑에 대한 관계가 나오는데 다음은 역시 7세기 당대 당나라 역사가였던 이연수 (李延壽)의 저서인 [북사]에 나오는 백제편입니다.

北史 列傳 
百濟
○ 무기로는 활·화살·칼·창이 있다. 풍속이 말 타고 활쏘기를 숭상하고, 아울러 古書와 史書를 愛讀하여 뛰어난 사람은 제법 문장을 엮을 줄도 알며 官廳 사무에도 능숙하였다. 또 醫藥·蓍龜 및 相術·陰陽五行에 대해서도 알았다. 중과 비구니가 있고 寺塔은 많아도 道士는 없다.

鼓角, 箜篌, 箏竿, 箎笛 따위의 악기가 있고, 投壺, 摴蒲, 弄珠, 握槊 등의 여러 가지 오락이 있었는데, 특히 바둑을 좋아한다.
송나라 元嘉曆을 사용하여 寅月을 歲首로 삼았다. 稅는 布·絹·絲·麻 및 쌀 등으로 부과하는데, 그 해의 풍흉에 따라 차등을 두어 징수하였다.

그 나라의 형벌은 반역한 자·퇴각한 군사 및 사람을 죽인 자는 목을 베었다. 도둑질한 자는 귀양보내는 동시에 그 臟物의 2배를 징수하였다. 婦人으로서 간통죄를 범하면 남편 집의 계집종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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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아주 비슷한 기록이 나옵니다. '여러 오락들 중 바둑을 가장 좋아한다'라는 것으로 이 기록은 그럼 더 후대의 것이냐 (즉, 후대에 참조했을 가능성), 그것도 아닙니다. 

[주서] (令狐德棻(583~ 666년))와 [북사](이연수가 643년 편찬) 모두 정확히 7세기전반의 기록입니다. 즉 명확히 백제 의자왕(義慈王, 재위 641~ 660년)의 재위기간 초기에 해당하는 당대의 기록들이지요.

따라서, [자단목화기국]을 보낼 당시의 백제는 '어떤 즐김거리보다도 바둑을 즐기던 사회'였다는 기록이 됩니다. 맥락상 들어맞게 되는 것이지요. 
고려회화 기위도중 바둑두는 사람들

백제 뿐 아니라 이웃국이던 신라 역시 [삼국사기]기록을 보면 바둑의 고수가 많던 사회입니다.

삼국사기
卷第九 新羅本紀 第九  
효성왕(孝成王)  二年春二月 당 현종이 양계응을 부사로 삼아 신라에 보내다(738년 2월 (음))

또 신라 사람들은 바둑을 잘 두었으므로 조칙으로 솔부병조참군(率府兵曹參軍) 양계응(楊季膺)을 부사(副使)로 삼았는데, 우리 나라 바둑의 고수는 모두 그 밑에서 나왔다.

738년 효성왕대의 기록으로 신라인들이 바둑을 잘 두었는데 그래서 당에서 신경써서 양계응이란자가 워낙 당나라의 바둑고수를 보냈는데, 신라의 고수들이 모두 이 사람의 제자출신이었다는 기록입니다. 이 기록은 역시 중국측 기록인 '구당서' (940년)에도 실려 전합니다.

舊唐書 東夷列傳   新羅  
○ 開元 16년(A.D.728; 新羅 聖德王에 使臣을 보내와 方物을 바치고, 또 表文을 올려 [新羅]人에게 중국의 학문과 經敎를 배우게 해 달라고 요청하니, 玄宗은 윤허하였다. 중략.

또 그 나라 사람들 중에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이 많다는 말을 듣고, 바둑에 능한 率府兵曹 楊季鷹을 [邢]璹의 副使로 삼아 보냈다. 璹 등은 그 나라에 이르러 蕃人으로부터 대단한 존경을 받았다. 그 나라의 바둑 수준은 계응(季鷹)보다 낮았다. 그리하여 璹 등에게 金寶 및 藥物 등의 푸짐한 선물을 주어 보냈다.

이 기록들은 모두 7~8세기 당대에 백제와 신라에서 바둑이 아주 융성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기록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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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장바둑에 대한 추가기록

純丈, 順丈, 巡將이라 불리는 순장바둑에 대한 기원설은 사실 정확한 것이 없습니다. 일단 저 목화자단기국이 백제의 문화재임이 명백해지면 삼국시대부터 두었다는 증거가 될 것이나, 현재 문헌상의 기록은 유성룡, 그리고 그보다 앞선 시대인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인 최여신(崔汝愼)의 시에 미리 두는 돌이란 뜻의 배자(排子)가 들어간 “미리 놓은 돌이 푸른지 붉은지 잘못 보고 두었네(排子靑朱錯誤着)”라는 시가 있어 그 전에도 있었을 가능성을 말해준다는 설이 있습니다. 마지막 설은 영조, 정조대에 나왔다는 것으로 이것은 조선말기 김옥균이 이야기했다는 것입니다.

일단 중종(中宗, 1488~ 1544년)대의 기록이 가장 앞서고, 유성룡, 그 다음이 18세기말의 영정조대 설입니다. 하지만, 최소 18세기말 설은 아닐 것이라는 또 다른 문헌정보를 추가해 보고자 합니다. 18세기초 중국기행문인 [연행일기]에 이런 흥미로운 기록이 있습니다.

연행일기
임진년(1712, 숙종 38) 12월[16일-29일]
21일(경오)

유봉산, 신지순, 김덕삼도 역시 따라왔다. 마루 위에 바둑판이 있기에 주인으로 하여금 대국하게 하였더니, 두는 법은 우리나라와 꼭 같은데, 다만 첫머리에 배자(排子)하는 것이 없다. 두 사람의 수가 모두 졸수였으며, 유봉산도 졸수였는데 옆에서 훈수하니, 주인이 잘 둔다고 말하므로 웃음이 나왔다. 

영조의 재위기간은 1724년 10월 16일 ~ 1776년 4월 22일입니다. 그런데 이 연행일기의 기록 연도는 1712년이지요. 여기 나오는 '배자'한다는 것은 바로 순장바둑에서 먼저 돌을 화점에 깔아두고 시작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따라서 당시 중국의 바둑방식과 달리 조선의 순장바둑에 익숙한 우리측 인사들이 이런 기록을 쓴 것이라 보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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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에게만 알려져 온 목화자단기국은 아마도 어제 방송을 통해 국내대중들에게 더 많이 알려졌을 것입니다 (어제 검색어 순위에 올랐더군요). 이런 프로그램이 좀 더 다양한 전통문화쪽으로 (건축포함) 나와주면 좋겠네요.
천상의 컬렉션중 서경석이 소개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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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레이오트 2017/03/28 11:31 #

    저도 그 방송 봤는데 어느 순간 이 물건을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 언차티드 시리즈, 툼 레이더 리부트 시리즈와 연관지으려고 애쓰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
  • 역사관심 2017/03/28 11:33 #

    ㅎㅎㅎㅎㅎ 충분히 가능합니다. 어찌보면 그렇게 해서 픽션이나 게임스토리가 또 하나 나올수도~.
  • 레이오트 2017/03/28 11:50 #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면 특정 기보에 맞춰 바둑돌을 놓으면 에덴의 조각이 숨겨진 장소(나 관련된 단서)가 나오거나 아니면 바둑판 자체가 에덴의 조각일수도 있지요.

    언차티드, 툼 레이더 리부트 시리즈라면 백제가 숨겨둔 보물의 위치와 관련된 암호를 푸는 사이퍼 디스크와 같은 장치로 쓰일수도 있지요.

    무엇보다 위 세 시리즈 공통으로 바둑이 중요 요소가 될 것이며 알파고는 사실 바둑을 이용해 만든 암호를 해독하기 위한 시스템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설정이 나온다면, 흥미진진하지 않습니까?
  • 홍차도둑 2017/03/28 11:59 #

    일본의 추리소설중에 "명인 살인사건"이라해서 바둑 명인이 대국 도중에 자신이 살해될 거라는 것을 느끼고 대국 내용에 메시지를 숨깁니다. 그 방식이 아주 재미있었지요.
  • 역사관심 2017/03/28 12:18 #

    레이오트님> 오, 흥미진진합니다. 뭔가 말씀을 바탕으로 소설등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면 본격적으로 흥미로울듯 합니다.

    홍차도둑님> 바둑에 대해 좀 아는 분이면 더 재미있게 읽겠네요. 예전에 김전일 시리즈중 바둑부 학생들이 대항전중 살인에 휘말리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바둑내용과는 그다지 상관없었지만 분위기가 꽤 재미있었습니다. 훈수두는 자를 목을 치는 규율이라든가..일본 바둑판 뒷면 가운데가 그 혈(피)가 모이는 곳이라든가.
  • JOSH 2017/03/28 16:08 #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은 민속놀이...
  • 역사관심 2017/03/29 05:11 #

    ㅎㅎㅎ 하긴 마을간 돌싸움을 해도 전략이...
  • 알렉스 2017/03/29 22:05 #

    표면에 스리랑카산 자단나무가 쓰였다던데 도대체 그건또 어디서 구해온걸까요.... 한반도에 동남아산 문물은 뜨문뜨문 보여도 스리랑카는 생소해서요. 중국을 경유했나?
  • 역사관심 2017/03/29 23:17 #

    자단나무에 대한 기록도 사실 꽤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추후 더 찾아보겠지만, 자단 침향이 당시 귀족들에게 쓰인 기록도 있었던 것 같아요. 말씀해주시니 한번 보강해봐야겠네요.

    일단 올해 제가 쓴 글중에는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물론 15세기것입니다만.
    http://luckcrow.egloos.com/2612300
  • 역사관심 2017/03/29 23:18 #

    일단 삼국사기에는 이런 기록이 벌써 있습니다.
    車騎(거기)
    新羅(신라)

    眞骨(진골) : 진골은
    車材不用紫檀沉香(차재불용자단침향) : 수레 재목으로 자단과 침향을 쓰지 않고
    不得帖玳瑁(부득첩대모) : 대모를 붙이지 못한다.
    중략.
    六頭品女(육두품녀) : 6두품 여인은,
    鞍橋禁紫檀沉香及褁金綴玉(안교금자단침향급척금철옥) :
    안장에 자단과 침향을 사용하는 것과 도금을 하거나 구슬 다는 것을 금한다.

    이게 두품별로 자단장식 금지가 걸려 있지요. 즉, 왕실과 성골은 쓸수 있었다는 기록이 되기도 하며, 거꾸로 당시 자단을 쓰는 귀족이 꽤 있었다는 반증적인 (그렇기에 금지시킨) 기록으로 보이지요. 생각보다 당시 아시아내의 교류가 꽤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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