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바둑판은 이렇지 않아! 맥이 끊긴 화려한 조선바둑판 (주로 일본소재) 역사전통마

21세기 현재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많은 문화중 잊고 지내는 부분이 많습니다.

필자의 주관심사인 건축을 포함한 의복, 식문화등의 시대별 모습, 그리고 설화류로 대표되는 소프트웨어까지 많은 부분이 현재도 계속 발굴되고 있는 형국이지요. 몇번 소개한 바와 같이 임진왜란을 중심으로 한 여러 전쟁이 그 이유겠지만, 여타 문화강국이 겪지 않은 전근대와 근대를 잇는 중요한 시기가 36년동안이나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아 많은 전통이 우리 스스로가 주체적으로 중심을 잡고 필터링이나 계승, 발전을 시키지 못한 것이 이유의 매우 큰 파이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수많은 조각중 오늘 소개하는 것은 바둑문화 그중에서도 '바둑판'입니다 (꽤 많은 사진을 공개해서 긴 포스팅이니 양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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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이 끊어진 한국전통 바둑판

한국은 21세기 현재에도 중국과 톱을 다투는 바둑강국이며 한,중,일로 대표되는 세계적 바둑애호국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바둑역사는 어마어마하게 길지요. 얼마전에도 백제산 바둑판인 7세기 목화자단기국을 주제로 한 글을 쓴 바 있습니다.


최소 1400년이상의 역사를 가진 것이 우리의 바둑문화입니다. 예를 들어, 7세기 당대 당나라 역사가였던 이연수 (李延壽)의 저서인 [북사]에 나오는 백제편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오지요.

北史 列傳 
백제 百濟
○ 무기로는 활·화살·칼·창이 있다. 풍속이 말 타고 활쏘기를 숭상하고, 아울러 古書와 史書를 愛讀하여 뛰어난 사람은 제법 문장을 엮을 줄도 알며 官廳 사무에도 능숙하였다. 또 醫藥·蓍龜 및 相術·陰陽五行에 대해서도 알았다. 중략.

鼓角, 箜篌, 箏竿, 箎笛 따위의 악기가 있고, 投壺, 摴蒲, 弄珠, 握槊 등의 여러 가지 오락이 있었는데, 특히 바둑을 좋아한다.

작년에 극찬을 받은 드라마 [미생]에서도 프로바둑을 꿈꾸던 주인공이 나올 정도로 바둑은 화려하게 현재 우리사회의 앞에 나서진 않아도 물밑에서 꾸준히 맥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입니다.

드라마 미생중 (레전드 조훈현기사가 보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바둑문화'라는 것이 제대로 정립되어 있는지 사실 약간 의문스럽습니다. 문화라 함은 소프트웨어적인 '내용'과 하드웨어 즉 '물질적인 형식'이라 구분할 때 바둑의 기보라든가 두는 형식은 소프트웨어, 그리고 바둑을 두는 장소나 바둑판, 바둑돌, 돌집등의 하드웨어라 할 것입니다.

이 중 '바둑판'은 바둑문화의 하드웨어중 핵심이라 할 것입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미생에 나오는 저 바둑판이 아마도 현재 대한민국의 바둑판의 기본적인 모습중 하나라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외에 아마도 바둑애호가를 비롯한 많은 대중들은 저러한 다리를 가진 바둑판 외에 아주 심플한 다리없는 이런 모습의 바둑판 정도를 기본으로 생각할 듯 합니다.

이세돌대 알파고 장면

또한 실제로 바둑을 가장 대중적으로 접할 수 있는 기원에서도 이 두가지 바둑판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런 네 다리 바둑판거나
심플한 형태 두 가지이죠.

그럼 이 두가지 혹은 한 가지는 적어도 조선시대에 쓰던 전통바둑판의 모습을 잇고 있을까요? 적어도 바둑문화가 이렇게 오래되고 발전해온 국가라면 200-300년전 바둑판 모습은 유지하고 있겠지요?

그런데 실상은 조금 (아니 많이) 다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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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바둑판 모습

우선 사료 하나를 보지요. 이긍익(李肯翊, 1736~ 1806년)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연려실기술]은 당시 사료를 바탕으로 최대한 객관성을 가지려 노력한 저서입니다. 여기에 세종대왕의 셋째아들인 안평대군에 대한 다음의 기록이 전합니다.

연려실기술
안평대군(安平大君) 용(瑢)

안평대군 용은, 자는 청지(淸之)이며, 호는 비해당(匪懈堂)이요, 세종의 셋째 아들이다. 계유년에 강화(江華)에 안치되었다가 사사되었다. 시호는 장소공(章昭公)이다.

○ 공이 학문을 좋아하였는데, 시와 문에 더욱 능하였으며, 서법이 기이하고 뛰어나, 천하에 제일이었다. 또 그림을 잘 그리고, 거문고와 비파를 잘 탔다. 성품이 호방하여, 옛것을 좋아하고 좋은 경치를 찾아서 북문 밖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지었고, 또 남호(南湖)에는 담담정(淡淡亭)을 짓고, 만 권의 서적을 쌓아놓고 문사들을 불러모아 〈십이경시(十二景詩)〉를 짓고, 또 〈사십팔영〉을 지었으며, 밤에 등불을 켜 달고 얘기하기도 하고 달빛 아래 배를 띄우기도 하며, 연구(聯句)를 짓기도 하며, 바둑이나 장기를 두기도 하니, 음악 소리가 끊이지 않고, 진탕 마시고 취하여 우스갯 소리를 하며, 한때의 이름 있는 선비와 모두 사귀었는데, 무뢰배와 잡인들도 많이 따랐다.바둑판과 바둑알을 모두 옥으로 만들었으며, 바둑알에 도금(鍍金)도 하였다. 또 사람을 시켜 얇은 비단을 짜게 해서 진서(眞書)ㆍ초서ㆍ행서를 휘갈겨 써서 요구하는 사람이 있으면, 곧장 내주었다. 하는 처사가 모두 이와 같았다. 
-용재총화(慵齋叢話)

그런데 이 기록은 18세기말 이긍익이 쓴 것이 아니라, [용재총화]에서 옮긴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럼 용재총화는 언제 기술된 저서일까요? 이 책은 조선시대 초기의 문인인 성현(成俔,1439~1504년)이 1499∼1504년에 걸쳐 집필한 것입니다. 즉, 안평대군 이용(安平大君 李瑢, 1418~ 1453년)과 같은 당대의 인물이 쓴 기록이지요.

굵은 체를 보시면 알겠지만 안평대군은 바둑과 장기를 좋아했으며 특히 '바둑판과 바둑알을 모두 옥으로 만들고, 바둑알에는 금으로 도금까지 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실제로 '옥바둑판'과 흡사한 고려시대 '청자바둑판'이 최근 발굴되기도 했습니다. 이 바둑판은 글 말미에 다시 소개하지요.
13세기 추정 강진 고려청자바둑판 부분

고려말~ 조선초기에는 귀족층과 상류층에서 이런 화려한 바둑문화가 실재했음을 증명하는 문헌과 유구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니라 조선시대 후기까지도 우리의 바둑판들은 굉장히 공을 들여 화려하게 장식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바둑판들이 대중적으로 혹은 언론을 통해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것은 백제의 바둑판인 [목화자단기국]의 이유와 비슷합니다. 대부분이 국내보다 일본에 많이 가 있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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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소재의 화려한 조선 전통바둑판들

지금까지 확인된 여러 바둑판들중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 전시되고 있는 [용호문 나전기반]부터 보겠습니다. 박물관측에서는 19세기말 작품이라고 명시하고 있지만, 국내전문가들중 일부는 더 오래된 작품이라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이 바둑판은 전통 나전칠기 방식으로 제작되었으며 매우 화려합니다.
조선순장바둑판 용호문나전기반 (龍虎文螺鈿碁盤)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소재)

다음으로는 일본 교토시 기타구에 있는 고려미술관에 있는 흑칠나전장생문기반입니다. 특히 이 나전화문기반에는 사진에서도 명확하게 보이듯 21개의 '화점(花點)'이 찍혀 있어 우리 전통바둑판이 어떤 모양새를 형식을 갖췄는지를 보여주는 한국바둑역사상 매우 소중한 문화재입니다. 기반규격은 정방형인 45cm×45cm에 높이는 30.5cm로, 오늘날의 표준 규격이라고 하는 42cm×45cm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조선 흑칠나전장생문기반 (19세기, 교토 고려박물관 소재)

고려박물관에는 이 외에도 나전화문기반(螺鈿花文碁盤)이라는 작품이 있다고 하는데 사진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나전화문기반은 나전기법을 사용하여 꽃문양을 상감한 조선시대 화문기반으로 이 작품을 앞서 소개한 용호문나전기반 보다 훨씬 이전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는 관점이 있습니다 (일단 사진확보와 함께 충분히 연구가 이루어지면 합니다). 넷상의 정보나 얼마 안되는 언론기사를 보면 위의 흑칠나전장생문기반을 이 나전화문기반이라고 오해해서 소개하는 등 아직 정확한 일본소재 전통바둑판에 대한 체계적 정리도 안되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음은 조선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아주 오래된 바둑판으로 일본 개인소장입니다.
조선초기 추정 바둑판 (일본 개인 소장)

기반다리를 간결하게 처리한 기법은 조선전기 그리고 전체적인 형태는 목화자단기국에 훨씬 가깝다는 느낌을 주는 작품입니다.

7세기 백제 목화자단기국

그리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아닌, 일본의 개인소장품으로 거의 알려지지 않은 굉장히 화려한 기반이 있습니다. 다음은 개인이 발견해서 최근 소개한 조선시대 순장바둑판입니다.
조선 순장바둑판 (일본소재, 개인)

언뜻 보기에도 매우 화려한데 아마도 대모(바다거북)등을 표면에 붙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양쪽에서 찍은 모습

클로즈업하면 그 정교함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껏 살펴본 바와 같이 최소 조선중기이후의 전통바둑판들은 일단 몸통이 꽤 굵고, 다리는 짧게 붙어 있거나 (*하지만 몸통에서 그대로 이어지는 다리입니다. 따로 붙이는 형식이 아니지요) 거의 없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몸체부분에 나전등으로 용이나 호랑이등을 화려하게 장식한 작품이 많지요.

이를 보여주는 필자가 찾아낸 해외옥션사이트에 올라온 19세기 조선바둑판도 있어 공개합니다. 다음의 사진들로 아마 국내에서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해외옥션사이트의 19세기 조선바둑판

크기는 42.2cm x 43cm x 22cm h로 나와 있습니다.

거칠긴 하지만 앞서 살펴본 전대의 바둑판들과 흡사

19세기 조선바둑판 (해외옥션)

큐레이터 박성희씨의 말에 따르면 이런 몸통의 속은 비어 있었다고 합니다. 즉, 바둑돌을 둘 때 '청아한 울림'을 즐겼다는 것입니다.

"일반 가정뿐 아니라 기원棋院어디에서나 원목 통판의 형식으로 제작된 일본식 바둑판이 사용되는 지금, 울림을 목적으로 속을 비운 우리의 전통바둑판과 순장바둑은 우리의 안타까운 역사로만 남았다."

이 글에서도 보이듯 현대한국 바둑판들은 일제강점기 이후 '일본식' 형식을 따르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대해선 조금 후에 살펴보기로 하지요. 이런 형식의 바둑판은 고려시대에도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고려시대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연꽃무늬 바둑판 등 희귀 바둑판 10여 점이 공개됐다. 바둑서지학자 안영이(安玲二·70) 씨는 40년간 수집해온 희귀 바둑판 10여 점과 바둑 고서, 바둑 소품 등 100여 점을 월간 바둑 8월호를 통해 공개했다. 안 씨의 소장품에는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연꽃무늬 순장바둑판(16개 돌을 미리 놓고 두는 한국 고유의 바둑·사진)을 비롯해 인도 시킴 지방에서 구한 17줄 바둑판, 반상에 금빛으로 용을 그린 중국 바둑판, 중국 청나라 때 만들어진 탁본용 바둑판 등이 있다. 연꽃무늬 바둑판은 바둑판 한가운데 점(天元) 위에 연꽃을 그려 넣었으며 가로·세로 길이가 48cm, 높이가 23cm다. 
(원문 기사)
2005년 공개된 (추정) 고려시대 바둑판 

조선시대 기반들과 모습이 비슷하지요. 이보다 훨씬 오래전, 즉 백제 목화자단기국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일본 정창원 소장 바둑판도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역시 일맥상통합니다.

정창원에 보관중인 바둑판- 한반도에서 7세기경 전해진 것으로 추정하며 테두리가 없다.

이 외에도 고려시대의 바둑판은 실물유구와 회화등으로 여러 형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래 기위도의 현대 바둑판중 다리가 없는 형태와 닮은 것을 비롯, 앞서 잠깐 보여드린 청자로 만든 바둑판, 다리가 긴 형태의 기반등을 볼 수 있습니다.

기위도 (14세기 고려)

짧게 소개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다음은 13세기의 청자로 만든 바둑판과 바둑알로 바둑판은 전북 부안 유천리 출토품이고, 바둑알은 모두 강진 사당리 출토품입니다.
13세기 고려 청자바둑판과 청자바둑알

1255년 강진 고려청자바둑판
또한 같은 부안 강진에서는 청자조각에서 다리 달린 고려 바둑판이 발견되었습니다.
부안 강진- 청자조각중 다리달린 고려바둑판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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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현대 한국의 바둑판은 어디서 온 것일까?

이제껏 길게 본 것처럼 우리의 전통 바둑판은 삼국~고려시대의 여러 모습을 거쳐 조선중기이후에는 하나의 고유형식을 갖췄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 모습은 현재 우리가 보는 바둑판과 사뭇 다르지요. 일단 다리가 없는 기본형태는 한, 중, 일 삼국에서 모두 공통적으로 사용한 형태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고려 기위도에 나오는 모습이나 16세기 일본회화 (아래), 그리고 중국회화에 나오는 모습이 비근하지요. 또한 중국은 기본적으로 이 심플한 형태가 지금도 대세입니다.
카노 에토쿠 16세기 일본회화
시대는 모르지만 일본회화에 나오는 다리없는 바둑판

중국회화에 등장하는 바둑판


하지만 서두에 소개한 두가지 현대한국의 바둑판 형태중 '네 다리 달린' 이 모습의 바둑판은 우리의 전통바둑판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이런 형식의 바둑판은 어떤 시대의 회화나 유구로도 발견된 바가 없지요.
현재 우리에게 가장 흔한 고급바둑판 셋트

그렇다면 과연 이 모습은 어디서 온 걸까요? 네, 일부는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아마도 일제강점기의 유산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래는 일본의 여러 회화에 등장하는 일본식 바둑판들입니다. 우선 가장 오래된 회화로 꼽히는 겐지모노가타리화첩에 등장하는 장면부터 보시지요.
겐지모노가타리 화첩중 (?세기)

화면을 보시면 두 여인이 두고 있는 형태가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기반과 비슷한 바둑판으로 보입니다.
역시 같은 주제를 다른 다른 작품입니다. 더 명확히 보이지요.
확대해 보겠습니다.
에도시대의 회화로 가면 숱하게 등장합니다. 거의 형태가 완결되어 지금과 똑같은 것을 알 수 있지요.
장식도 없고 다리의 모습도 완전히 일괄적입니다. 다리가 가운데 움푹 파이고 위아래는 각진 것도 현대의 한일바둑판과 완벽하게 같지요. 다리 역시 조선것처럼 몸통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따로 붙이는 형식이지요. 

이런 일본식 바둑판의 네 다리는 치자나무의 열매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일본어로 치자나무를 '쿠치나시'라고 합니다. 중의적인 뜻으로는 "입이 없다(쿠치나시)"라는 뜻이 됩니다. 이는 바둑의 관전자는 훈수하지 말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즉, 이런 형식의 바둑판은 그 의미도 정형적으로 '일본인들을 위한' 것입니다.
또한 뒷면에 움푹 파인 부분이 있는 것도 같습니다. 이 부분을 일본에서는 혈류 (혹은 향혈)이라고 하는데, 역시 훈수꾼이 있으면 목을 쳐서 이 곳에 피를 담는다는 의미로 쓰였다고 합니다.
조선의 전통바둑판은 이렇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래는 필자가 발견했던 해외옥션의 19세기 조선전통바둑판의 아랫면.
위에 소개한 박성희 큐레이터의 내부구조의 설명에 따르면 조선 전통바둑판은 통판인 일본식과 달리 안이 비어져 있었음도 알 수 있습니다. 장식부터 내부구조까지 뭐하나 비슷한 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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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전통 바둑문화의 자화상은?

바둑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문외한인 일개 개인인 필자가 보아도 현대 한국의 바둑판은 분명 일본의 것으로 보입니다. 많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일부 이런 것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하는 분이 계실 수 있기에 한가지 좋은 예를 들고자 합니다.

다음은 인기 애니메이션인 [소년탐정 김전일]의 한 에피소드입니다. 이 화에서는 고등학교의 바둑부끼리 정기전을 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 와중에 살인사건이 발생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일단 장소가 전통가옥으로 꾸며진 대국무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진행자측이 고등학생들이 사용할 바둑판에 대한 설명을 합니다. 사실 이런 설명은 우리에겐 생소한 장면이지요. 관심자체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니까요.
바둑판은 에도중기에 장인이 만들어진 작품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이 바둑판의 모양이 현대 우리사회에서 기원에서 쓰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일본 회화에 등장하는 그 모습이기에 이들에겐 이게 전통바둑판인 것입니다.
바둑판뿐이 아니라 바둑돌 역시 특산물로 등장합니다.
이렇게 전통이 젊은 세대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듭니다. 교과서에서 화석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의식주뿐 아니라 이런 레져문화역시 생활속에서 이어지는 것입니다.
젊은 세대는 차치하고 프로들의 대국에서도 이런 전통의 구현이 끊긴 것은 생각보다 큰 국가 브랜드나 정체성의 단절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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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언

만약에 발굴하고 이어갈 전통자체가 없거나 구현하기 힘들다면 포기해도 아니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분야에서 우리는 조금만 관심과 투자를 하면 이어갈 수 있는 분야를 무관심으로 놓치고 있습니다. 

우리의 조상들은 백제까지 갈 것도 없이 이렇게 '사진시대'까지도 전통 바둑판을 사용하고 계셨습니다. 사진은 조선시대 국수였던 정운창 선생의 사진입니다.
조선 국수 정운창
전주대박물관 조선시대 일상 바둑판
위기도 (圍棋圖)- 고려대박물관 소장

불과 백년전 우리가 두던 바둑판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드라마 미생중

이제부터라도 조선시대의 전통나전바둑판들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 아니 그 전에 관련자들의 연구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야 조선시대 정운창선생을 이런 바둑판앞에 그리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지요.
동아일보 기사 (2003) 에 소개된 정운창선생 삽화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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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다음 기회에는 조선바둑의 고수들에 대한 이야기도 소개해 보겠습니다.





덧글

  • 2017/05/14 10:16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7/05/14 10:2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Nocchi 2017/05/14 10:39 #

    와 오늘 글은 충격적이네요
    바둑판을 보면 항상 드는 공포심이 저거 던져서 맞으면 진짜 아프겠다 는 생각인데 우리 전통 바둑판은 맞아도 크게 아프지 않겠네요
    소설 동의보감을 보면 바둑판을 던져서 허준이 발에 바둑판 모서리를 찧어 뼈가 보일 정도로 피철철 하는 장면이 있는데요
    일본식 바둑판이면 몰라도 조선 귀족 바둑판이라면 이런건 완벽한 고증실패 라고 하겠습니다
    빨리 일제 잔재 청산했으면 좋겠습니다
  • 역사관심 2017/05/14 10:53 #

    감사합니다. 여러 연구로 전통바둑판에 대한 형식이 정립되어 사용되면 합니다.
  • 홍차도둑 2017/05/14 11:01 #

    소설 동의보감의 그것은 고증실패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이전 기록에서도 바둑판보다 작은 테이블 보드게임의 판을 던져서 머리깨져 죽은 사건들이 몇 있기 때문입니다.

    동의보감 말고 실제로 '완벽한' 고증실패인 것이 잇는데
    KBS에서 한 '전설의 고향'에서 '기생원전' 이라고 하여 '기생원' 즉 생원인데 '기' = 바둑 에 미쳐서 자기 가족들의 목숨을 걸고 염라대왕과 내기바둑을 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드라마가 완벽한 고증실패인게 처음엔 조막돌 같은 걸로 바둑두는데 염라대왕과 바둑 둘 땐 일본식 바둑판이 나오고 순장바둑도 아닌...완벽한 고증오류로 그려낸 것이 있습니다.
  • 레이오트 2017/05/14 11:46 #

    1. (앞으로도 계속 이야기하겠지만) 현재 한국의 전통문화는 일제강점기와 해방정국, 한국 전쟁과 근대화로 왜곡된 조선 후기의 그것이지요.

    2. 사실 한국은 게임 분야에서는 게임을 하는거 빼고는 그야말로 젬병이죠. 논다는 것을 죄악시하는 현재 대한민국을 생각하면 당연하다면 당연한거라고 할 수 있지요.

    3. 솔직히 말해 저 정도로 화려해야 어쌔씬 크리드, 툼 레이더 리부트, 언차티드 시리즈의 메인 아이템으로 나오죠.
  • 역사관심 2017/05/14 10:55 #

    여러 분야에서 통시적인 문화재들을 발굴 (해외포함), 밸런스잡힌 한국미를 발전시키기 시작할 좋은 시점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야 말씀대로 활용할 공간도 많아지겠죠 ^^
  • 홍차도둑 2017/05/14 10:57 #

    부족한 부분이 많아서 첨언해야 할 부분이 좀 있네요.

    1. 현재 한국내에서 일반적으로 보급되고 있는 바둑판은 일본스타일 맞습니다. 이전 조선 국수시대뿐 아니라 저 어렸을 때인 1970-80년대만 해도 탁자식의 바둑판을 몇번 본적이 있어요. 좀 오래되고 그런 것들이었지만 현재는 보급이 꽤 진행되서 바둑판은 일본 스타일은 것들이 많습니다. 작은 것들 중 몇개는 다리 모양이 '치자꽃 모양'이 아닌 그냥 원통이나 다른 의자 다리 같은 스타일인 것들도 몇 있지만요.

    2. 일본쪽에 한국 바둑판이 건너갔다는 공식적이랄까...문서화 되어 있는 사건(?)이 있습니다.
    일본 혼인보가의 기록입니다.
    혼인보 가문의 개조인 혼인보 산사의 기록에 보면 조선에서 온 '이약사'라는 분과 대국을 했는데 이약사가 3점을 접고도 박살났다고 해요. 그때 이약사가 한 말이 '내가 조선에서 최고로 잘 두는 사람인데 이렇게까지 접힘 당하고도 박살나다니 혼인보 산사는 진정 바둑의 명인이다' 라고 하면서 바둑판-바둑알 세트와 함께 '건곤굴'이라는 편액을 선물로 두고 갔다고 합니다.
    혼인보 산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쇼군이 된 뒤에 '혼인보'가 된 사람이고 '혼인보'때의 일화기 때문에 이약사는 초창기의 조선통신사의 사절 중 한사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튼 조선에서 건너간 바둑판-바둑알과 편액 중 바둑판-바둑알은 분실되었고 편액은 남았다고 하는데 그 이후 기록이 없어서 전부 어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김옥균과 연결된 혼인보가의 당주에게 전해온 '부목'바둑판도 한국에서 온거고 이때의 바둑판이라는 '썰'이 있는데 그건 이 바둑판이 아닌 것으로 압니다)

    3. 한국 바둑문화를 정리하는 분은 안영이 사장 말고도 바둑기사 권경언 선생님이 계십니다. 이분이 한때 월간바둑에서 조선때의 바둑 이야기들을 풀어 써 주신적이 있지요.
    아마도 국수 이야기들을 하신다면 그쪽에서 소스를 많이 가져오시게 될 듯 하네요.

    4. 바둑문화쪽에 대해선 뭐...뭐무시기 위키도 X판이고...일화소개도 X판이고...머 이전엔 알파고와의 대국때 프로기사 9단 그것도 해설자들이 '이게 인간으로서 생각 못하네' '두어진적이 없네' 라는 헛소리 하는게 현실입니다.
    '이야기'라는 걸로 정리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하는데 (생긴지 이제야 20년이 된 스타크라프트 같은 경우 해설자들이 '문화'를 만들기 위해 서사자가 되려고 그리도 노력들 했는데 말입니다) 단순 설명밖에 못하는 X판을 만들어 놨어요.
    진짜 박치문 같은 별 요상한 것들이 X판 만들어 놓고 안물러나고 있지요. 박수동 화백님이나 박재삼 시인 등 다른 몇몇 분들이 서사적으로 풀어쓰고 다른 맛으로 만들어 냈던 것과 차이가 큽니다. 일본만 해도 한 타이틀전을 설명하는 설명자가 여럿이라서 각기 다른 맛으로 풀어내고 써내려가면서 만들어 놨는데 그런 부분들이 한국은 참...

    5. 바둑판 제조라던가 일본식 바둑판 밑에 있는 '혈'에 대해선 여러 이야기가 있는데 이 썰 중 하나가 '그렇게 파내서 안의 공간을 억지로 만들어서 '소리를 좋게 한다'는 썰이 있습니다.

    6. 그래서 일본 바둑판의 규격에서 '두께'를 이야기 안하셨는데 소리 좋게 하기 위해선 5치로 마감한다는 원칙 비슷한게 있어요. 좀 있는 규격으로 하면 8치 등으로 해 놓는 '제작상의 규격'이 있습니다.

    7. 일본 바둑판도 보면 근세 즉 15-16세기쯤의 바둑판은 정사각형인데 이후에 보면 서로 마주보는 방향 쪽이 살짝 길어집니다. 이게 사람 눈의 착시현상이나 그런 것을 감안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둑돌도 보면 일본쪽에서 만든 규격은 백돌은 흑돌보다 조금 작아요. 그 이유는 밝은 색으로 된 물체는 실제보다 조금 크게 보이는 눈의 착시효과 때문에 백돌을 조금 작게해서 눈에 보이는 크기를 맞춘 겁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일본의 바둑 도구에서 처음 보이는 현상입니다.

    8. 전통적인 한국바둑판의 경우 속에 빈 공간이 있다고 설명해 주셨는데 1970년대에도 그런 바둑판이 몇 있었을 겁니다. 1970년대 말-1980년대 초에 발행된 한국기원의 바둑 초보관련 책에 보면 바둑판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 거기에 보면 속에 '빈 공간을 만든' '그 빈 공간안에 철사 굵은것을 넣어서 소리를 조정한' 이란 대목들이 있고 '그런 바둑판은 좋은 바둑판이 아니다' 라는 설명들이 있습니다. 즉 일제시대 이후에도 남아있는 명맥을 본격적으로 끊어버린 것은 한국기원에서 일본식 바둑을 들여오고 이후 보급하면서 더 본격화 되고 가속화 되었다고 봐야겠지요. 한-일 외교 정상화 이후 관련된 여러가지들이 있긴 한데 이번 주제와 관련이 있을수도 있는데 쓰면 넘 오래 걸려서 패스하겠습니다.

    9. 한일바둑판이 거의 공식화 된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일본쪽 바둑판 스타일이 완전히 정착되었다고 봐야 합니다. 그 이후 조치훈 후원회에서 만든 '월간바둑'이라는 잡지를 보면 일본쪽에서 수입해서 오는 바둑판 회사가 있었고 거기서 선을 입히는 방법인 일본도에 옺을 뭍힌 뒤 칼로 새겨버리는 옺칠방법등을 선전하고 했습니다. 이후부터는 완전히 한국의 바둑판-바둑돌은 일본화가 되었다고 봐야 합니다. 월간 '바둑세계' 창간호던가 1주년호던가? 에서 관련해서 일본 바둑판의 규격.제조방법,바둑판의 명칭들과 유래에 대해서 설명되어 있는 '특집기사'가 나왔던 적이 있습니다. 이게 1986년안가 1987년인가 나왔던 기사입니다.
  • 역사관심 2017/05/14 10:57 #

    바둑에 관한 이 글을 쓰기전부터 홍차도둑님의 조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참고해서 첨언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되세요~
  • 홍차도둑 2017/05/14 10:58 #

    9번은 답글 다시는 중간에 제가 첨언한 것이니 한번 더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

    제 관점에서 볼 땐 일제시대때부터 밀려나기 시작한 뒤 1980년대 초에 조치훈의 활약으로 바둑 붐이 있을 때 한국기원의 여러 홍보에서 '이런 (일본식) 바둑판이 좋다' '이런(한국식) 바둑판은 안좋다' 하면서 완전히 사장된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역사관심 2017/05/14 11:53 #

    감사합니다. 생각보다 훨씬 요즘 바뀐 것이군요. 담론만 제대로 선다면 다시 찾을 가능성도 없다고는 못하겠네요.
  • Fedaykin 2017/05/14 13:53 #

    수수하고 소박한게 조선의 멋이라는 컴플랙스는 바둑판에서도 깨져나가는군요 ㅠ
    좋은글 감사합니다.
  • 레이오트 2017/05/14 14:06 #

    그런 컴플랙스, 그게 빈곤한 현실에 대한 정신승리법이라는 사실을 애써 부정하는 것일수도 있지요.
  • 역사관심 2017/05/16 02:52 #

    조선시대가 무려 500년인데 그런 식의 안이한 관념론으로 그 어마어마한 기간의 문화전반을 묶어버리는 행태는 이제 좀 지양할 때가 된것 같아요 ^^;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전부다인 대한민국의 8배가 넘는(!) 긴 기간... 이걸 소박미니 해학미니로 퉁치는(?)게 얼마나 위험하고 안이한 모습인지.
  • 럭키짱주인공 2017/05/14 14:01 #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역사관심 2017/05/15 03:10 #

    댓글 감사합니다!
  • virustotal 2017/05/14 14:06 #

    가사(법의)글도 잘봤는데 솔직히 알면서 시장성이라... 역사사극도 돈문제로 대충하고
  • 역사관심 2017/05/15 03:10 #

    사실 시장성이란게 이런 걸 제대로 구현하면서 자연스레 사람들의 눈높이가 올라가면서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시작해야 하는데...
  • 전진하는 북극의눈물 2017/05/14 14:28 #

    헉...

    무식이 한이라더니...

    꼬꼬마 어렸을 때 시골집에 보던 이상한 밥상이 바로 바둑판이었네요...

    왜 밥상을 그따위로 만들었느냐며 속으로 구시렁거렸는데...

  • 역사관심 2017/05/15 03:11 #

    아, 북극의 눈물님 댁에서도 이런 조선바둑판이 있었군요. 위의 홍차도둑님말씀의 한 예처럼 들립니다. 만약 보셨던 바둑판이 기억나신다면 조금 더 자세히 알려주시면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
  • 전진하는 북극의눈물 2017/05/15 10:28 #

    기억이 흐릿해서 그런데 생긴 것은 전주대 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바둑판이랑 비슷하게 생긴 것 같습니다.

    꼬꼬마 어렸을 때라 바둑판은 "무조건" 동그란 네 다리가 있던지 아니면 심플하게 생긴 두꺼운 게 바둑판이라고 생각했죠.

    집 안에 바둑을 두는 사람이 없어서 디딤판이나 물건 놓는 탁자 용으로 썼는데 어느 날 안 보이는 것을 보니 아마, 땔감으로 사라진 듯 합니다...;;;

  • 역사관심 2017/05/15 11:15 #

    아 그렇군요. 진짜 아까운 것이 사라졌네요 ^^; 정보 감사합니다.
  • 최강로봇 도라에몽 2017/05/14 14:52 #

    과연........ 그렇군요.... 보드게임에서 게임판이란 엄청 중요한데 조선시대도 상상이상으로 화려했네요

    왜 바둑판만 화려한게 나타나는게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흠... 이걸로 바둑판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바라며조선시대 바둑고수에 대한 이야기도 기대합니다.
  • 역사관심 2017/05/15 03:12 #

    그러게 말입니다. 바둑판이라 하면 바둑문화의 핵심일텐데, 이렇게 무관심한게 의아할 지경입니다.
  • 고기왕 2017/05/14 15:05 #

    이거 굉장히 흥미돋는 이야기네요. 바둑에 대한 관심이 없는 일반인이지만 저것도 일제식이라던가 과거 유산을 유지하지 못한 이야기라던가 참... 좋은 포스팅 감사합니다
  • 역사관심 2017/05/15 03:13 #

    댓글 감사합니다! 참 여러군데 자세히 뜯어볼 구석이 많은데, 사실 한국학이란 학문이 좀더 체계적으로 시스템을 갖추고 미시사측면의 구석구석도 고쳐나가면 좋겠습니다. 한국학에 대한 정부의 투자도 지금보다 훨씬 더 필요하구요 (문화재청도 마찬가지).
  • Scarlett 2017/05/15 12:41 #

    잘 읽었습니다. 다음편 이야기도 기대되네요.^^
  • 역사관심 2017/05/15 13:52 #

    감사합니다. 자료를 더 모아야해서 언제 쓸수 있을지...(먼산).
  • 셰이크 2017/05/15 21:03 #

    바둑판은 못봤지만 저 바둑판과 구조는 똑같은 옛날 장기판을 써 봤는데 소리가 굉장해서 손맛(?)이 절로 납니다. 뭐라고 해야 하나...기타 위에다 얇은 나무판을 조금 띄워 놓고 말을 놓으면 비슷한 소리가 날겁니다.(딱딱 거리는 소리가 아니라 퉁퉁하는 소리) 바둑이야 장기처럼 힘차게 말을 놓지는 못하겠지만 묵직한 요즘 바둑판이랑은 굉장히 다른 느낌이겠죠. 한편으로는 기원같은데서 이런걸 쓴다고 하면 정신이 하나도 없을것같기도 하고(...)
  • 역사관심 2017/05/16 07:04 #

    음 말씀듣고 보니 장기판과 비슷한 소리가 날 수도 있겠습니다. 나름 운치있을 것 같네요.^^ 다만, 말씀대로 기원에서 둘때는 따다다다닥 소리가 날수도;;;
  • Nocchi 2017/05/17 10:03 #

    다시 한 번 정독하고 갑니다
    그리고 위에 김전일 만화 스샷의 김전일 인상을 보니
    역시 모든 사건의 진범은 김전일이고 김전일이 원흉 인 게 맞습니다
  • 역사관심 2017/05/18 05:37 #

    ㅎㅎㅎ 김전일이 가는 곳이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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