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총독이 웃으면서 "틀렸다, 이 사람은 코레시안(Coresian)이다."라고 했습니다. 역사

[하멜표류기]를 읽다가 꽤 인상깊었던 장면.

1653년 10월 29일.

오후, 서기와 일등 항해사와 하급선의가 총독에게 불려 갔습니다. 관청에 도착한 우리는 길고 빨간 수염이 난 한 남자를 발견했습니다. 총독이 우리에게 "이 사람이 누군지 알겠는가?" 하고 묻기에 우리는 같은 네덜란드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총독이 웃으면서 "틀렸다, 이 사람은 코레시안(Coresian)이다."라고 했습니다. 

여러가지 말과 몸짓을 서로 주고받은 뒤에, 이제까지 침묵을 지키던 그 사나이가 몹시 서툰 화란어로 우리가 어느나라 사람이며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우리는 암스테르담에서 온 화란인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중략.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데레프 출신의 얀 얀스 벨테프레라고 하는 사람이오. 1627년 오버커크호를 타고 일본에 가던 중 역풍을 만나 코레아 해안에 도착하게 되었소."

놀랍게도 57~58세가 되어 보이는 이 사람은 자신의 모국어를 거의 다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는 처음에 그 사람 말을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었으나, 우리와 한달가량 같이 지내는 동안 그의 네덜란드어가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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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뻔한 시대, 한 줌의 정치: 철학자 이진경의 세상 읽기 (2012년)]에는 우리가 흔히 아는 이탈리아의 근대적'국민'형성 (과 국민국가형성)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지요.

또한 이를 바탕으로 아시아권에서도 19세기가 되어서야 Nationalism이 불었고 국민국가적 정체성이 생겨났다는 이야기가 주류라고 알고 있습니다.

허나, 동아시아에서 Nationality가 아닌 Ethnicity의 의미가 아주 오랜 기간 전통적으로 유럽보다는 정치적으로 더 의미가 있었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 하멜의 17세기 기록은 당시 Nationality도 이미 유럽보다 강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군요. 물론 이 에피소드 하나로 단정지어서도 지을수도 없는 일이지만 하나의 자료로 기억해 둘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매우 흥미로운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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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Scarlett 2017/06/10 12:06 #

    인종도 출신 국가도 다르지만 조선에 귀화해서 조선 관리가 됐으니 '조선인'으로 받아들여줬던 걸까요? 의외인데요.... 아님 제가 저 말 해석을 잘못한걸까요;;
  • 역사관심 2017/06/10 19:38 #

    원문을 읽어야 확실하게 알 듯 합니다만, 반농으로 이야기 한 걸수도 있고... 벨테프레라는 인물의 당시 행적과 신분에 대한 조선측 기록을 더 살펴볼 가치는 있어보입니다.
  • 불타는 아기백곰 2017/06/24 19:04 #

    코레시안이 조선인을 의미하는 거 같은데.... 귀화했고 그게 받아들여졌으니 당연히 그렇게 말하지 않을까요? 그렇디고 박연이 네덜란드인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던 것도 아니고 말조차 거의 까먹은 상태였는데.. 조선에서는 수십년간 관직생활을 한 상태고요.
  • 역사관심 2017/06/27 11:52 #

    음 그렇긴 하지만, 당대 유럽과 비교하면 확실히 동아시아국가들은 내셔널리티라는 개념이 종족과 합해져서 확고한 느낌이랄까요...이런 차이를 19세기말 유럽과 1:1로 대응하는 요즘 일부글들과 대조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에피소드라 생각이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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