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쌈밥기록의 가장 오랜 기록은 14세기일까? (한국의 쌈밥 역사) 음식전통마

최근 TVN의 인기프로인 알쓸신잡에 한국인의 '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죠.

음식박사인 황교익씨가 이렇게 운을 띄우고,
바로 18세기의 이덕무 기록으로 넘어갔습니다.
이덕무(李德懋, 1741~ 1793년)는 18세기 중엽의 인물입니다. 그럼 쌈문화가 조선후기나 되서야 기록을 찾을 수 있느냐. 사실 훨씬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보통 잘 알려진 것은 '고려시대'부터 쌈을 먹었다는 이야기지요. 그런데 언론을 찾아보면 가장 오래된 기록을 14세기중반 원대의 인물인 양윤부 (楊允孚, 1354년 전후출생) 의 기록을 처음으로 들곤 합니다. 

2015년 조선일보 기사

위의 기사는 2015년의 것, 이런 식이지요. 과연 14세기 중반의 저 기록이 처음일까요?

이덕무와 비슷한 연대의 문인 이삼환(1729~1813년)의 저서인 [소미산방장]의 기록을 보면 다음의 구절이 나옵니다.

少眉山房藏
田園雜詠

畦菜
胡瓜生子蒜生孫。蘿葍蔓菁葉幷根。生菜和平包飯冷。文獻通考。高麗人以生菜包飯食之。
露葵甘滑作羹溫。靑舒野韭千條嫰。紅嚲番椒百朶繁。物物登盤香美具。山翁不慣食鷄豚。


生菜和平包飯冷 생나물을 평평하게 펴서 찬밥을 싸먹는다
文獻通考 문헌통고에 따르면 
高麗人以生菜包飯食之 고려인은 생나물로 찬밥을 싸먹는다.

즉, 쌈의 역사가 최소 고려시대까지 올라감을 알 수 있는 기록으로 이 기록은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위의 조선일보 글과 일치하지요. 

그런데, 이 부분은 이삼환이 지은 것이 아니라, 문헌통고(文獻通考)라는 책을 인용했다고 나옵니다. 이 책은 무엇일까요? [문헌통고]는 송말(宋末) 원초(元初)에 살던 마단림(馬端臨, 1254~?년)이라는 사람이 중국 고대(古代)로부터 송나라 (정확히는 남송의 영종(寧宗, 1194~1224년)대) 까지의 제도를 정리하여 348권으로 엮은 것입니다.

내용은 기본적으로 송대의 기록인 [통전]을 따르면서, 현재는 전하지 않는 [송조국사(宋朝國史)]나 [송회요(宋會要)] 등 여러 사료를 널리 참고하여 보충하였기 때문에 통전보다 훨씬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송나라 제도를 연구하는데 아주 중요한 사료입니다.

13세기의 인물인 마단림이 남송의 영종대 (1194~1224년)까지의 기록을 옮겨 정리한 것이므로 최소 이 고려쌈밥의 기록은 12세기~13세기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일부 언론에서 이 기록이 원나라 시인 양윤부(楊允孚)가 14세기 후반에 쓴 [난경잡영(灤京雜詠)]에 나오는 '고려 생채 맛을 다시 말하네(更說高麗生菜美)'의 주석인 '고려 사람들은 생채(生菜)로 밥을 싸 먹는다(高麗人以生菜裹飯食之)'구절이 최초로 설명하는데 이는 틀린 것입니다. 

양윤부는 이 부분을 본문이 아닌 주석으로 (바로 위 조선후기 문헌인 [소미산방장]처럼) 썼습니다. 즉, 이전 문헌인 [문헌통고]를 인용했을 가능성이 크겠지요. 따라서 '고려쌈'에 대한 첫 기록은 최소 한세기전인 13세기 길게는 12세기 (남송 영종대)까지로 봐야 할 것입니다.

이덕무와 비슷한 시대인 18세기 정약용(丁若鏞, 1762~1836년)의 [다산시문집]에도 쌈밥에 대한 기록이 두어번 등장합니다. 개인취향이겠지만 안에 넣는 내용물까지 등장하는 구절은 다음.

다산시문집
장기 농가(長鬐農歌) 중

萵葉團包麥飯呑 상추잎에 보리밥을 둥글게 (경단처럼) 싸서 삼키고는 
合同椒醬與葱根 고추장에 파뿌리를 곁들여서 먹는다 

마치 요즘 충무김밥처럼 먹는군요.
=====
중국내 한국식당 해바라기의 쌈

마지막으로, 쌈문화를 위키에서 찾아보면 이런 설명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고려시대까지 기원이 올라가며, 의외로 쌈의 첫 시식자는 여성이였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중국에서도 쌈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다만 한국과 중국을 막론하고 이 당시의 쌈은 고급 음식으로 취급받았다. 쌈이 하나의 취식법으로서 정리가 되고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퍼진것은 조선시대."

위키백과의 정보를 다 믿을 수는 없고, 또한 중국측 기록이 정확히 어느 저서인지를 밝히지 않아 모르겠지만, 고려대까지 중국인들이 야채쌈을 먹었다하더라도 확실히 조선중기 이후가 되면 야채 쌈문화는 사라진 것 같습니다. [난중잡록]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난중잡록 3(亂中雜錄三) 
계사년 하 만력 21년, 선조 26년(1593년)
7월 4일 

왜적 수천 명이 악양(岳陽)의 촌락을 분탕질하니 연기와 불길이 하늘에 가득하고 포(砲)소리가 땅을 뒤흔들었다. 뒤의 적이 잇달아 이르러서 산을 수색하여 죽이며 약탈하고 산음(山陰)의 적이 그 수효가 심히 많았는데 함양으로 가서 사근역(沙斤驛) 마을을 분탕질하고 돌아왔다.
○ 명 나라 장수 부총병(副總兵) 선봉(先鋒) 사대수(査大受)가 군사 수천을 거느리고 서울로부터 남원에 이르러서 낙상지 등의 유부(留府) 관가(管家)를 문초하여 진주를 미처 구원하지 못한 죄를 책하였다. 명 나라 군사들은 음식을 먹을 때에 숫가락을 쓰지 않고 젓가락을 쓰며 생채(生菜)를 먹지 않고 닭을 가장 즐겨 먹어 피도 버리지 아니하였다. 중략

명나라 군사들이 생야채를 먹지 않는다는 기록이 1593년 나오고 있지요. 몽골제국시기(원대)에는 천만채라고 해서 고려의 상추가 질이 좋아 들여와 먹었다는 기록으로 보면 확실히 고려대까지는 대륙에서도 일부 쌈을 즐겼던 것 같습니다만, 최근 한국의 쌈문화가 다시 조금씩 알려지고 있는 듯 합니다.


덧글

  • 남중생 2020/02/10 18:28 #

    역사관심 님, 훌륭한 글 잘 읽었습니다.
    한문 해독 관련해서 2가지가 눈에 띄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삼환의 글 제목은, 수미산방장이 아니라 "소"미산방장 같습니다.
    그리고 "문헌통고에 따르면" 다음에 나오는 내용은 고려인이 생채소에 밥을 싸먹었다고는 되어있지만 평평하게 해서 찬밥을 싸먹었다는 말은 그 앞 문장인 듯 합니다.^^

    사소한 부분들이지만, 짚고 넘어갑니다.
  • 역사관심 2020/02/11 05:13 #

    남중생님 잘 지내시죠?
    사소한 부분이 아니라 글의 신뢰성에 관한 부분들인데 짚어주셔서 제가 감사드려야죠. 모두 수정했습니다 ^^

    또 좋은 글에서 뵙겠습니다.
  • 남중생 2020/02/12 01:35 #

    고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역사관심님의 글을 네이버 "역개루" 카페에서 다시 만나게 되어서 반가운 마음에 답글 달아보았습니다.

    앞으로도 이처럼 멋진 글 기대하겠습니다!
  • 역사관심 2020/02/12 03:56 #

    카페측에서 제 글을 알려주시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힘나는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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