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김씨- 비밀의 중세보물 家寶 4점 (창포검, 매죽연,연하침, 벽력금) 역사전통마

묶혀뒀던 글을 소개합니다. 오늘은 아마도 대중적으로 처음 소개하는 어떤 가문의 4 가지 중세보물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 글은 1500년대말에서 1600년대초중반을 살아간 김휴(金烋, 1597~1638년)가 [경와집]에 수록되어 있는데, 국역본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부분인지라, (추정이지만) 아마 처음 소개되는 것이라 사료됩니다.

내용은 제목 그대로, 의성 김씨 가문에 당시까지 즉 1600년대초까지 대대로 내려오던 '가보' 네 점에 관한 것입니다. 글의 제목이 참 흥미롭습니다. '家藏四寶記 ' 즉 가문에서 비밀리에 간직해온 네 가지 보물에 대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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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초 네 개의 가보 (家寶)

순서는 창포검, 매죽연, 연하침, 그리고 벽력금 원문 그대로입니다.

경와집(敬窩集)
敬窩先生文集卷之六 雜著
家藏四寶記
菖蒲劍 창포검

劍傳自始祖。兩邊有刃。中皆有脊。形似菖蒲。故名曰菖蒲劍。此劍之久。幾至六七百年。在吾子孫。則實爲莫大之寶也。祖考雲川府君年十四。背誦論語七卷。無一字錯。高祖靑溪府君大喜曰。此劍我始祖所佩。傳之子孫。以至於吾。吾待其可傳者而傳之。今其贈汝。汝須謹藏。毋敢失墜先業。自是名曰文章劍。

劍傳自始祖 (가문에) 시조로부터 전해오는 검이 있으니
兩邊有刃 양면에 모두 칼날이 있으며
中皆有脊 가운데 등마루가 많이 있으며
形似菖蒲 형상은 창포를 닮았다.
故名曰菖蒲劍 그래서 창포검이라 부른다.

此劍之久 이 검은 오래되었는데
幾至六七百年 육칠백년이나 오래된 것이라 한다.
則實爲莫大之寶也 즉, 막대한 보물이라 할 수 있다.

高祖靑溪府君大喜曰 고조부이신 청계부군이 말씀하시길
此劍我始祖所佩 이 검은 내 시조가 차던 것으로.
傳之子孫 대대자손에게 전해온 것인데
以至於吾 나에게 이르렀다.

吾待其可傳者而傳之。내가 이것을 능히 전해줄 자를 기다려왔는데
今其贈汝。이제 너에게 주려한다.

汝須謹藏 너는 모름지기 삼가고 감추어
毋敢失墜先業 감히 이 검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이 해서 선대의 업적을 실추시키지 말라.
自是名曰文章劍。이(창포)검의 이름을 '문장검'이라 하노라.
===

우선 일전에 조선시대 살수집단인 '검계'에 대해 알아보던 중 (창포검은 검계가 주력무기로 씁니다), 후속글로 이 집안의 첫 보물인 '창포검'에 대해 소개한 바 있습니다 (창포검은 멀리는 고려대까지 갈지도 모르겠습니다 (링크글))

창포검에 대한 소개는 이 글에서 발췌하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창포검이 오래되었는데, 무려 6-700년가까이 될 것이란 것입니다. 좀 더 자세한 묘사가 나오는데 이 검이 바로 자신의 '시조'가 차던 것이라는 설명이 나옵니다. 참고로 김휴는 '의성 김'씨로 시조는 김석(金錫)입니다. 김석은 신라 경순왕(敬順王, 897? ~ 978년)의 다섯째 아들로, 고려(高麗) 태조(太祖, 왕건)의 외손자(外孫)이기도 한 인물이었습니다.

글 중간에 이런 부분이 나오지요.

此劍之久 이 검은 오래 되었는데
幾至六七百年 육칠백년이나 오래된 것이라 한다.
則實爲莫大之寶也 즉, 막대한 보물이라 할 수 있다.

김휴(金烋)이 생몰년대는 1597~1638년, 신라 경순왕(敬順王, 897? ~ 978년)의 아들이 김석이니 어림잡아 920~940년대정도의 인물입니다. 그럼 정확히 600년~700년사이라는 기간이 됩니다. 

따라서 만약 저 기록이 사실이라면 여기 나오는 창포검은 무려 신라말기의 검이 됩니다. '물론' 김휴선생이 (혹은 의성김씨 가문의) 착각으로 오래되긴 했어도 시조 김순시대의 검은 아닐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 해도, 가문에서 4보배로 오랜 기간을 비밀리에 보존한 검이라면 최소 고려시대에서 아무리 못해도 조선초기의 검은 되리라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글에서는 자신의 아들(로 추정되는 후손)에게 이 검을 부탁하고 있지요.

이 글은 최소 3가지의 의미있는 정보를 줍니다.
1. 한국도검사에서 창포검의 오랜 역사 (최소 현재 16세기론보다 더 넘어가는)
2. 검계'만' 혹은 도적들이 쓰던 막검이나 전유물이 아닌, 유력가문에서도 대대로 내려오던 보물일 정도의 귀한 검도 있었슴.
3. 조선시대에도 양반가에서 '검'을 가보로 내려오던 가풍이 있었고, 특히 마지막 문장처럼 '문장검'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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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보물은 '벼루'입니다. 이 보물은 놀랍게도 현재도 의성김씨 집안에 보물로 현전하고 있습니다.
梅竹硯 매죽연

硯之四面。刻梅竹極巧。實爲文房奇寶也。乙卯九月。外祖參判府君在柏巖第。烋嘗往侍從容。府君以此硯授之曰。吾愛汝力學爲文。今以此贈之。汝須更加磨礪。以無負今日勸勉之意。靑松君沈公詻。知安東府時。爲造其匣。俾作傳家之寶。

梅竹硯 매화 대나무 벼루 (매죽연)
硯之四面。벼루를 곱게 사면으로 갈았다.
刻梅竹極巧 매화와 대나무를 극히 정교하게 새겼다.

乙卯九月 을묘년 9월에
府君以此硯授之曰 부군(조상)이 이 벼루를 제수하면서 말하길
吾愛汝力學爲文 내 너의 학문과 문장에 힘씀을 사랑하니
今以此贈之 이에 이 (벼루)를 수여하노라.
===

이 보물은 학자집안답게 학문에 힘쓰도록 대대로 내려온 것임을 알 수 있는데, '을묘년 9월'에 이 벼루를 조상에게 받았다고 되어 있지요. 김휴의 생전 을묘년은 딱 한 해, 1615년이므로 이 해 음력 9월의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벼루의 이름은 '매죽연' 즉 '매화'와 '대나무' 벼루라는 뜻입니다. 저 사진은 2009년 의성김씨 청계공파 문중전시회에서 공개된 것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점이 있습니다. 현재 김씨집안에서는 저 사진속의 '일월연'이라는 벼루를 '매죽연'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시다시피 저 사진속의 벼루에는 매화와 대나무가 없습니다 (물론 벼루이름도 다릅니다). 무엇보다 일월연은 명확히 1637년 김휴가 외조부에게 받은 것이라고 설명되고 있습니다. 즉 '병자호란'의 그 병자년입니다. 이것은 '을묘년'이 아니지요. 따라서 필자는 과연 저 일월연이 매죽연인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15~17세기 매화대나무벼루 

위의 사진은 실제 15~17세기 추정 매화 & 대나무를 새긴 벼루입니다. 즉 [경와집]의 기록과 거의 일치하는 동시대의 물건이지요. 아마도 이런 느낌의 보물이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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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세 번째 보물은 '목침'입니다. 놀랍게도 또한 현전하고 있는 보물이기도 합니다 (아래 사진)- 의성김씨 종가에 찬사를 보냅니다. 그런데 이 목침을 얻게 된 경위와 효능(?)이 매우 흥미롭지요.
일단 아래 글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煙霞枕 연하침

丁卯秋。余遊金剛山萬瀑洞。到靑龍潭。見巖石間瀑布衝落處。有大木撑拄。僧輩云。此木在此。不知其幾百年。余令出之。僧輩極力拔出。則乃檀木也。水齧腐敗之餘。只存硬骨。其形奇怪蜿蜒。如靑龍緣木而上。頭足皆具。
可以爲枕几。余令帶僕載去。同遊笑之。余曰。出山之後。歸臥田家閒居中。時或憑此而就睡。則萬二千峯。必當羅列於夢中矣。歸家。略加刃削。遂取李謫仙夢遊天姥吟。惟覺時之枕席。失向來之煙霞之意。名之曰煙霞枕。蓋道夢山之意也。且此木得之於靑龍潭。而形適相似。故又名曰靑龍几。

煙霞枕 연기 노을 베개 (연하침)
丁卯秋 정묘년 가을
余遊金剛山萬瀑洞 금강산 만폭동에서 놀다가
到靑龍潭 청룡담이란 곳에 이르렀다.
금강산 청룡담 1797년

見巖石間瀑布衝落處 암석사이 폭포수가 찌를듯이 떨어지는 곳을 살펴보니
有大木撑拄 큰 나무(대목)이 버티고 서 있었다.
僧輩云 승려들이 오더니
此木在此 이 나무를 살펴보고 
不知其幾百年 아마도 몇백년은 (사람들이) 알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했다.

余令出之 나는 (이 나무를) 뽑으라고 했다.
僧輩極力拔出 승려무리가 온힘을 써서 (나무를) 뽑았더니
則乃檀木也 곧 박달나무였다.

水齧腐敗之餘 물에 젖어 썩고 부스러진 부분을 남기니
只存硬骨。다만 단단한 뼈대부분만 남았다.
其形奇怪蜿蜒 그 형상이 기괴하고 꿈틀대는 듯
如靑龍緣木而上 푸른 용과 같은 무늬가 나무가장자리에 이어지고 (추정)
頭足皆具。머리에서 다리까지 모두 갖추고 있었다.

可以爲枕几 베개와 안석으로써 쓸 수 있어
余令帶僕載去。내가 종으로 하여감 실어나르게 했다.
同遊笑之 무리와 놀고 웃다가
余曰。出山之後 내가 말하길, 나는 좀 있다 산을 벗어나겠다고 했다.
歸臥田家閒居中 돌아와 농부의 집에서 한가한 중에
時或憑此而就睡 이 (베개-연하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는데
則萬二千峯 즉시 (금강산) 일만이천봉이 나타나는데
必當羅列於夢中矣 반드시 꿈속에 벌려 섰다.

歸家 집으로 돌아와
略加刃削 (연하침을) 날카롭게 칼로 다듬었다.
惟覺時之枕席 침석에 들 시간임을 깨닫고 
失向來之煙霞之意 '연하 (연기 노을)'의 의미를 새겨 (추정)
名之曰煙霞枕 이름을 지으니 곧 '연하침(煙霞枕)'이라고 지었다.

且此木得之於靑龍潭 또한 청룡담(연못이름)에서 이 나무를 얻었으므로
而形適相似。형상이 '청룡'과 닮았다.
故又名曰靑龍几。이러한 이유로 또한 '청룡석'이라고도 부른다.
===

글을 보면 금강산 청룡담이라는 곳에 놀러갔다가 이 목침(나무베개)를 얻게 되는데, "見巖石間瀑布衝落處 암석사이 폭포수가 찌를듯이 떨어지는 곳을 살펴보니有大木撑拄 큰 나무(대목)이 버티고 서 있었다" 라는 이야기 진행입니다. 1797년의 저 그림속과 똑같은 설명이지요.

그런데 나무를 뽑고 보니 박달나무였던 것. 박달나무는 재질이 단단하기로 유명한 놈입니다 (오죽하면 '단단하다'라는 어원이 박달나무에서 나왔다는 설도). 이 원목을 집으로 가져와서 다듬어 이름을 붙이니 '연하침', 즉 연기와 노을이 드는 베개라는 뜻입니다. 위의 사진을 보시면 알겠지만, 이 설명과도 정확히 일치하는 모습이지요.

水齧腐敗之餘 물에 젖어 썩고 부스러진 부분을 남기니
只存硬骨。다만 단단한 뼈대부분만 남았다.

또한 여느 목침과 달리 다리가 달렸으니 다음의 설명과 일치합니다.

其形奇怪蜿蜒 그 형상이 기괴하고 꿈틀대는 듯
如靑龍緣木而上 푸른 용과 같은 무늬가 나무가장자리에 이어지고 (추정)
頭足皆具。머리에서 다리까지 모두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베개는 보통의 물건이 아닙니다. 글중간에 나오듯 이 나무베개를 베고 자면 곧바로 금강산 일만이천봉안에 서있게 되는 매직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야말로 '보물'이라 할만 하죠 (진짜 한번 베고 자보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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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보물은 '거문고'입니다. 벼락치는 소리가 나는..
霹靂琴 벽력금 (벼락천둥 거문고)

蓋以霆震之木爲琴。其聲淸激。柳子厚嘗作霹靂琴贊。極其稱美。蓋亦世間一奇寶也。盧敬庵公性不喜俗樂。
亦不解音律。而雅有高趣。畜琴四張。時或手撫作聲。以寓古意。爲余好之篤也。以其一贈之。聲甚淸壯可聽。所恨者。世無知音也。

蓋以霆震之木爲琴 천둥 우뢰를 나무에 (새겨) 거문고를 만들었다.
其聲淸激 그 소리가 선명하고 격렬했다.
柳子厚嘗作霹靂琴贊 버드나무로 두껍게 만들어 보니 이를 벽력금이라 고했다.

極其稱美 그것을 아름답다 극진하게 칭찬했다.
蓋亦世間一奇寶也 인간세상에 단 하나의 보물이라.
亦不解音律 역시 음율을 해석하지 못할 정도로
而雅有高趣 능히 맑고 높은 풍취가 있다.
畜琴四張 
時或手撫作聲 때마다 손수 어루만져 곡을 지었으니
以寓古意 이로써 옛 기억을 보내다.

聲甚淸壯可聽 소리가 깊고 맑고 장대하니 가히 들을만하다.
所恨者 이를 한탄하는 자
世無知音也。음악을 전혀 모르는 무지한 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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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의 이름은 '벽력금', 말 그대로 벼락이 치고 천둥이 울리는 거문고라는 뜻입니다. 거문고는 현재 보통 오동나무, 밤나무등으로 만드는데 여기는 버드나무로 되어 있어 흥미롭습니다. 이 명기는 그냥 천둥치듯 시끄러운 소리만이 아니라, 극히 깨끗하고 맑은 소리(聲淸激)를 낸 것 같습니다. 이 악기로 연주한 곡을 듣고 그 가치를 모르는 자는 음악을 들을 필요조차 없다고 할 정도로 자부심을 보이고 있지요.

현재까지 남아있었다면 한국의 명악기로 알려졌을텐데, 아쉽습니다.

의성김씨 종택 (고택)- 16세기 건축

마무리 

참고로 이 글을 쓴 김휴선생은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 15세 때 향리의 백일장에서 장원한 일이 있었고, 성격이 대쪽 같아 불의를 보고 참지 못했습니다. 이분은 '해동문헌총록'이라는 대한민국 역사의 서지학의 시초격인 대작을 펴낸바가 있지요.

또한 흥미로운 것은 이분의 안동 의성김씨 종택(安東 義城金氏 宗宅)입니다. 이 곳은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의성 김씨의 종가 가옥으로 현재 1967년 6월 23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450호로 지정된 고택이기도 합니다. 현재 남은 건물은 사랑채, 안채, 행랑채등인데 임진왜란 때 불에 타 버렸던 것을 김성일(1538∼1593년) 선생이 다시 지은 것입니다. 즉, '김휴'선생은 이 고택에서 자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고택이 흥미로운 것은 다른 주택과 달리 안방이 바깥쪽으로 높게 자리를 잡고 있다는 점과 사랑채 출입시, 행랑채의 대문을 거치지 않고 사랑채로 직접 갈 수 있는 별도의 문이 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채와 행랑채를 이어주는 건물이 2층으로 되어 있으며 위층은 서재로, 아래층은 헛간으로 쓰였다는 점입니다. 16세기 즉 조선중기의 고택으로 이전에 몇번 소개한 조선전-중기의 2층구조를 보여주고 있는 또다른 좋은 예가 됩니다.
오늘 소개한 네가지 보물은 비단 의성김씨 종가의 보물일 뿐 아니라, 21세기 현대한국인들에게 여러 상상력을 붇돋워주는 컨텐츠원형으로써도 큰 가치가 있다고 사료됩니다.

이런 실재하는 소재로 여러 매체를 통한 창작물을 만들어도 흥미로울 것 같군요 (창포검이라든가, 베고 자면 뭔가가 꿈에 나타나는 16세기 목침이라든가...)



덧글

  • 레이오트 2017/07/26 11:52 #

    어쌔신 크리드!

    (탈주)
  • 역사관심 2017/07/26 13:17 #

    뭔가 저도 이 생각을 했다는.
  • Scarlett 2017/07/26 12:23 #

    조선시대 양반 가문에서 검을 가보로 물려주던 풍습이 있었다니 의외인데요... 일반적으로는 문을 숭배하고 무를 천시했다는 이미지가 있었던지라..늘 잘 보고 있습니다.
  • 역사관심 2017/07/26 13:18 #

    전반적으로 그랬지만, 또 이런 면도 있어서...
    http://luckcrow.egloos.com/2525291
    항상 댓글 감사합니다~.
  • 2017/07/26 12:59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7/07/26 13:1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7/07/26 13:5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7/07/27 01:5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최강로봇 도라에몽 2017/07/26 20:36 #

    이런걸 보면 굉장히 재밌단 말이죠.... 가보러는 것에.딱 맞는 물건들이니 말이에요
  • 역사관심 2017/07/27 01:52 #

    검, 벼루, 거문고, 목침... 딱 그당시 가문에서 내려올 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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