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에도 독상문화였습니다. 그리고 왕족은 무려 다섯 상을... 음식전통마

얼마전에 원래 [한국은 혼밥문화(라기 보단 '독상문화')]라는 글에서 조선시대에는 기득층의 경우 요즘과 달리 '독상문화'를 즐겼다는 이야기를 한 바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혼밥문화와 관련해서 조선시대 (특히 구한말)의 독상문화에 대해서는 가끔 언론기사도 본 일이 있지만, 고려시대에는 어떠했는지에 대한 글은 본 일이 없지요.

그런데 고려(최소 고려후기)시대에도 귀족의 경우 '독상'중심이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기록을 찾아,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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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긍의 1123년 [고려도경]에는 흑칠조에 대한 기록이 전합니다.

선화봉사고려도경 공장(供張)
흑칠조(黑漆俎)
식사용 적대의 제도는 크기가 같으나 단지 붉고 검은 차이가 있을 뿐이다. 도할관(都轄官)과 제할관(提轄官) 및 상절(上節)에게는 관사 안에서는 매일 세 끼씩을 공급하는데, 한 끼는 세 적대씩이고 중절은 두 적대씩이다. 하절은 상을 붙여 놓고 다섯 사람씩 한자리에서 식사를 한다.

黑漆俎
食俎之制。大小一等。特紅黑之異。都轄提轄。及上節。館中。日饋三食。
食以三俎。中節二俎。下節。則以連床。每五人。並一席而食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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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보이는 조(俎)라는 글자는 도마 혹은 적대 (炙臺)라는 뜻으로 작고 평평한 상을 말합니다. 조선시대 적대는 다음과 같죠.
또한 중국사이트에서 '조'를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상들이 보입니다. 기본적으로 1인용 상입니다.


그런데 이 기록의 黑漆俎 (흑칠조)는 즉, 검은 색으로 옻칠은 한 고급상을 말합니다. 시대는 모르겠으나 중국측 흑칠조는 이러합니다.
黑漆俎

그런데 고려도경의 내용을 잘 살펴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있지요. 일단 '식사용 적대'라고 되어 있어 당시 '밥상'과 '일반상'의 용도가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막 섞어서 쓰는 게 아니죠). '食俎' 즉 '식사용 조'입니다. 이 '밥상'의 크기가 검고 붉은 색이 있고 크기는 일정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크기는 포스팅 후반부에 나옵니다). 

그런데 '도할관'과 제할관', '상절'등의 관리들에게 관사에서 매일 세 번 밥상이 나가는데, '한끼는 세 조(俎)'이고 중절 즉 중급관리에게는 '두 조(俎)'가 나갑니다. 즉 직책에 따라 '세 개의 상'이냐 '두 개의 상'이냐가 갈리는데,  한 끼에 세 조라면 한 상이 꽤 작았을 것 같지요. 그런데 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조금만 더 읽어보시면 포스팅 후반부에 나옵니다).

더 흥미로운 부분은 마지막. '하절은 상을 붙여놓고 다섯사람씩 한 자리에서 식사를 한다'.
下節。則以連床。每五人。並一席而食之

즉, 상절이나 중절처럼 '독상'을 여러 개 받아 혼자 먹는 것이 아니라, 이 뜻은 '하절'의 경우 이런 독상(작은 '조'들)을 주욱 붙여놓고 다섯 명씩 함께 식사를 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역으로 말하면 상위계층은 '혼자' 독상을 깔아두고 먹고, 하위관리는 물자를 아끼기 위해 독상을 붙여놓고 한자리에서 나눠 먹는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요즘처럼 '큰 상'이 있어 같은 상에서 먹는 것이 아니라, 작은 독상들을 붙여서 함께 나눠먹는 것이지요).

따라서, 고려시대에도 '독상문화'가 주류였음을 충분히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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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왕실 밥상

위에서 '흑칠조'설명에 '붉고 검은 차이가 있을 뿐이다'라고 했으니 '붉은 색 밥상'도 한번 볼까요.

단칠조(丹漆俎)
단칠조(붉은 칠을 한 적대)는 왕궁(王宮)에서 평일에 사용하는 것이다. 탑 위에 앉아서 기명을 조(적대)에 올려놓고 그 앞에서 먹기 때문에, 음식은 조(적대)의 수효와 다과로 존비가 나누어진다. 정사와 부사가 관사에 들면 매일 세 끼씩을 공급하는데, 한 끼는 다섯 적대씩이고, 그 기명은 다 황금이 칠해져 있다. 적대의 크기는 너비가 3척, 가로는 2척, 높이는 2척 5촌이다.

丹漆俎
丹漆俎。蓋王宮平日所用也。坐於榻上。而以器皿。登俎對食。故飮食。以俎數多寡。分尊卑。使副入館。日饋三食。食以五俎。其器皿。悉皆黃金塗之。凡俎。從廣三尺。橫二尺。高二尺五寸。

위에서 흑칠조(검은 옻칠 밥상)는 고위~하급관리들에게 지급되는 밥상이라고 했지요. 고려 왕궁에선 '붉은 색 옻칠 밥상'을 씁니다. 그런데 흑칠조에 없는 어떤 자세로 먹는지에 대한 귀한 정보가 있습니다.

坐於榻上 탑위에 앉아서 먹는다.

자 '탑'은 예전에 설명드렸습니다. 아래 중국회화에 보이는 저런 '의자'를 '탑'이라고 하죠. 고려도경에는 친절하게 그 모습이 상세하게 나옵니다.

○ 좌탑(坐榻)의 제도는 네 모서리에 장식이 없고, 그 위에 푸른색 단을 두른 큰 자리를 깐다. 그리고 그것을 관사 안의 지나다니는 길 사이에 설치한다. 이는 대개 관속(官屬)과 수종하는 아전이 쉬는 도구이다.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식사를 한 것입니다. 다만 '좀 더 작은 독상'입니다.
왕궁에서는 (당연히) 더 먹습니다.

음식은 조(적대)의 수효와 다과로 존비가 나누어진다. 정사와 부사가 관사에 들면 매일 세 끼씩을 공급하는데, 한 끼는 다섯 적대씩이고, 그 기명은 다 황금이 칠해져 있다. 적대의 크기는 너비가 3척, 가로는 2척, 높이는 2척 5촌이다.

상급관리가 3조였는데, 이번에는 무려(!) 5조입니다. 혼자 자잘한 5개의 상을 받는 것이지요. 정말 고맙게도 서긍은 이 고려밥상의 크기까지 적어두었습니다.

從廣三尺。橫二尺。高二尺五寸

1척이 32.21센티(고려기준)으로 본다면 1조(한상)의 크기가 너비 97센티, 가로 64.4센티 그리고 높이가 2척 5촌, 즉 약 70센티가량 됩니다. 생각보다 크죠. 이런 크기의 상으로 한끼에 무려 5상을 받습니다. 그리고 '기명' 즉 음식그릇들에는 모두 '황금칠'로 장식이 되어 있습니다 (悉皆黃金塗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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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독상문화'도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가 최근에야 조금씩 관심들이 생겨나는 것 같은데, 오늘 살핀 바와 같이 고려시대에도 기득권의 경우 '독상문화'를 더 고급으로 여겼슴을 확연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하급관리나 상을 나누지요).

따라서 '고급한식당'의 경우 이런 식의 마켓팅을 한번 펼쳐보는 것도 꽤 좋은 시도라 생각이 됩니다. 꼭 아래처럼 '상다리 휘는' 것을 고급상으로 칠 필요는 없겠지요. 오히려 음식쓰레기도 아끼고 개개인이 밥상을 받을 수 있어 더 고급스러운 전략이라 사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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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고구려에서도 이런 '조'형태의 독상으로 식사를 했음을 벽화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족 2: 흥미로운 기록이 하나 더 있습니다. 1936년 일제강점기의 동아일보 기록인데, 여기보면 당시까지 남아있던 독상문화를 폐지하고 겸상으로 가자는 구호성 기사가 실려있더군요. 어떤 이는 한국전쟁이후 모자란 식량난으로 겸상이 퍼졌다는 이야기를 하던데, 그 이전에 이미 이런 기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 좀 더 연구가 필요한듯.

덧글

  • 레이오트 2017/07/29 09:27 #

    현대 한국의 한상문화는 정부가 미디어를 통해 퍼뜨린, 소위 화목한 가정이란 이런거다! 라는 프로파간다를 통해 정착되었다는 주장도 있지요.
  • 역사관심 2017/07/30 03:07 #

    36년의 동아일보 기사가 그런 격인데, 한번 꼼꼼히 살펴볼 가치가 있는 주제같네요.
  • Nocchi 2017/07/29 09:44 #

    혼밥문화의 확산(?)과 함께 전통이 돌아오고 있는 건가요?
    하지만 조상님들은 혼밥은 아니었는데 뭔가 약간 씁쓸합니다
    (...혼밥 잘 못하는 1인)
  • 역사관심 2017/07/30 03:08 #

    사실 꼭 혼밥이라고 하기보다는 '독상'이라고 해야겠죠. 얼마든 '같이' 먹을 수 있는.
  • 無碍子 2017/07/29 10:35 #

    한끼에 밥상 세개가 아니라 한상에 적틀이 세개 올라간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 역사관심 2017/07/30 03:11 #

    그 생각이 요즘시각으로 볼때는 더 이치에 맞기에 그런 가설도 세워봤습니다만, 일단 '조'라는 단어의 개념이나 적대의 모습은 틀이라기보다는 상에 가깝고, 또한 무엇보다 조의 크기규격이 명확히 다리부분 (약 70센티)까지 나와있는 지라 현재시각으로 무조건 바라보기보다는 문헌기록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도 의의가 있다고 사료됩니다.

    두 가지 모두 생각해 볼만하다는 것이 일단 제 사견입니다 (혹은 섞어 썼을 가능성도).
  • 홍차도둑 2017/07/29 11:13 #

    황모씨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 조상들은 사회적 자폐증이 만연된...
  • 역사관심 2017/07/30 03:11 #

    ㅎㅎㅎ 일단 이런저런 형이상학적인 해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지라...
  • 최강로봇 도라에몽 2017/07/29 21:13 #

    전 독상문화와 혼밥은 다르다 봅니다만 여튼 재밌네요
  • 역사관심 2017/07/30 03:13 #

    네, 조상들은 혼밥이라기 보다는 '독상문화'였죠. 다만 '혼자 먹는 일'(혼밥)도 귀족이나 양반계층에선 흔했구요 (항상은 아니지만).
  • Scarlett 2017/07/31 12:12 #

    조선시대가 독상문화였다는걸 알고 난 뒤론 그런 문화가 어째서 혼상으로 바뀌었을가 했는데 여러가지 가설이 있나보군요..ㅎㅎ 다들 말했던 혼상은 한국인의 정이라는 말은 날조 (....)
  • 역사관심 2017/07/31 13:08 #

    그런데 또 그게 이렇게 보면 결과론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저렇게 바뀌고 난후 실제로 식탁에서의 돈독함은 우리나라에서 강해진 감이 확실히 있으니 또 포장된 이야기로만 보기에는 미묘한 구석이 있는 듯 하네요 ^^. 개인적으로는 둘 다 살려봤으면 합니다 (고급/정통 한식에서는 독상, 일반가정에서는 혼상도 쓰고). 이미 혼상이 된지 100여년이면 그것도 새로운 우리 전통으로 봐도 되고 말이죠.
  • 조용한 얼음여왕 2017/08/02 19:06 #

    유튜브에서 이런걸 발견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ydX0_Jw3Rc
    https://www.youtube.com/watch?v=OC0w00zupL4
    https://www.youtube.com/watch?v=Q-DbyK4ZWNQ
    https://www.youtube.com/watch?v=9tRNvypedGs

    북한에서 복원했다는 고려 고구려 건축인데, 건축모양이 조금씩 다른게 특징이네요.
    북한 발로는 발굴자료로 복원했다고 하는데요. 어떻게 보시나요.
    13:28 분에는 발해 궁전이라 이야기 하네요.
  • 역사관심 2017/08/04 01:33 #

    얼음여왕님 오랜만입니다.
    사실 이 고구려건축에 대해서는 제 블로그에서 몇년전 다룬 바가 있습니다.
    http://luckcrow.egloos.com/2469394
    자료부족으로 고증자체에 대해 엄밀하게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만, 이 글을 보시면 그냥 상상만으로 지은 건축들은 아닌 듯 보입니다.
    http://luckcrow.egloos.com/2471887
    이게 해체된다는 소식도 있었는데 현재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http://luckcrow.egloos.com/2586770

    관련글로 이런 것도 있었지요.
    http://luckcrow.egloos.com/2519054

    유튜브에 저런 자세한 프로파간다식 영상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한번 제대로 봐야겠네요.
    정보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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