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한국적건축은 공간인가? 한국학의 문제점과 맞닿는 비판론. 역사전통마

올해 나온 논문중 꽤나 인상적인 것으로 [“(한국적) 건축은 공간이다.”는 (건축)역사인가 이론인가 아니면 비평인가?]라는 글이 있다.

일단 조금 시간을 들여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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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출간된 건축 서적이나 최근 유명 건축가들 기고나 인터뷰를 보면, 건축의 본질은 ‘공간’에 있는 것 같다. 건축가 승효상은 이미 1990년대에 『빈자의 미학』 (1996)에서 “빈자의 미학, 여기에선 가짐보다 쓰임이 중요하고, 더함보다 나눔이 중요하며, 채움보다 비움이 중요하다.” 라고 주장했는데, 10년 후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침묵이 없으면 말할 수 없지요. 침묵은 영원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에요. 정말 진정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침묵하는 것입니다. ‘비움’ 또한 진정한 삶을 살기 위해 비우는 것이니 우리는 진정성을 위해서 비우고 침묵하는 겁니다.” 라고 말하며 건축의 본질이 ‘비움’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건축가 김인철이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웅진 씽크빅은... 내, 외부로 개방된 공간과 형태가 나의 건축철학인 ‘없음’을 잘 드러내준다... 다들 건물을 얘기할 때 형태를 먼저 얘기합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건 공간입니다. 형태는 공간의 외피를 두르는 역할에 머물 뿐... 내 건축의 ‘없음’도 이것을 말하는 것이죠. 채우고 드러내고 말을 거는 건축이 아니라 자연 속에 점을 찍거나,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축, 복잡한 도심 풍광마저 단순하게 걸러주는 창 건축말입니다. 공간의 공(空) 역시 ‘빌 공’ 아닙니까.”라고 말한 것과도 의미가 통한다. 

이렇게 꼭 유명 건축가의 말과 글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최근 우리의 건축담론을 보면 “건축은 공간이다!”이라는 믿음이 아주 강하게 깔려있는 것 같다. 그런 와중에 한때 널리 회자되던 “한옥의 처마곡선에 한국적 건축의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는 등의 형태론적인 ‘믿음’은 아예 구시대적인 유물로 취급 받고 있다.

예를 들어 건축계에서는 건물에 갓을 씌웠다며 조롱의 대상이 되는 건축가 김석철의 예술의전당 오페라 하우스(1983~1993), 전통 목구조의 현대적 해석이 오히려 서양 신전의 열주 같다는 비아냥을 듣는 건축가 엄덕문의 세종문화회관(1974~1978), 직설적인 초가지붕 형태와 경회루 열주를 그대로 베껴왔다는 건축가 이희태의 절두산 순교성지(1967)는 이미 지난 유행처럼 언급되며 심지어 건축학도들에게는 피해야하는 사례로 취급받지만, 일반인들에게는 특별한 거부감 없이 괜찮은 건물로 언급되고 있다뿐만 아니라, 수많은 형태적 요소 중에 대표적 인 과거의 유물로 취급받는 청기와 지붕이 버젓이 살아남아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경북도청사로 얼마 전에 안동에 지어졌는가 하면, 형태적인 연상을 제외하면 건축가 문훈의 독특한 작품을 설명하기가 용이하지 않다.
안동 경복도청 신청사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부터 (한국적) 건축의 본질을 공간에서 찾기 시작했을까? 1967년 8월 19일 동아일보에 <부여박물관건축양식(夫餘博物館建築樣式)에 말썽>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이 건축의 실패로 한국의 전통건축 응용담론은 (주변국가와 달리) 형태론이 소멸되고만 감이 강하다

특히 김중업이 이전 기고에서 종합박물관(현 국립민속박물관) 공모전에 관하여 “한국의 몇 개의 아름다운 고전건축물들을 배로 확대하여 콘크리트모작하고 이들을 한데 묶어 종합박물관임네하고 기능이 완전 무시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고전에 대한 최대의 모독을 한 사건”이라며 강하게 비판한 것에 비춰보면, 김중업에게 우리가 추구해야하는 한국적 건축은 전통적인 건축 형태의 직접적인 차용이나 모사가 아니라, ‘시각처리가 일연(一連)적’인 연속적인 공간인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7) 김중업의 글은 부여박물관이 일본식이나 아니냐의 문제를 떠나, 공간론적 건축비평의 효시라고도 할 수 있다.

김중업은 1959년 프랑스에서 귀국한 후 가진 첫 건축전시회를 소개할 때도, “서구적 조형정신을 동양적 조형전통 위에 올바르게 뿌리박음으로써 또 하나의 새로운 건축에의 길을 장만해 보려는 노력에서 빚어진 이정표들”이라고 하며, 자신의 건축이 조형적인 차원에 천착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부여박물관 왜색시비’가 일어난 1967년 즈음부터 ‘공간’이라는 단어가 건축담론에 급격히 많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특히 1966년 11월 창간된 空間지는 처음 몇 회를 ‘Major Space’를 소개하는데 할애하는데, 당시 건축가협회 회장이었던 송민구는 공간지 창간호에 실렸던 이해성의 <공간의 기초적 서설>을 읽고, “이해성 씨의 논문 [공간의 기본적 서설] - 잡지 「空間」 창간호 -을 읽고 막막한 공간론에 대한 탐구의 노력에 대하여 경의를 표하는 동시에 공간에 관한 문제가 이렇게 깊이 다루어진다는 것은 건축에 관한 논단을 위하여 기뻐마지 않는 바이다.”라고 건축학회지에 서평을 올리기도 했다. 
김중업

뿐만 아니라, 주남철의 <이조주택의 창과 문에 나타나는 공간성>이나, 건축가 김태수가 <건축을 보는 기본점 7가지>에서 “첫째, 공간은 무한하고 수평 수직 사방으로 뻗친다는 것이다. 둘째, 이 공간은 건축의 기본적 구조체인 기둥 보층층대로써 규정되고 잴 수가 있다는 것이다. 셋째, 공간은 건축과 사람과의 동적인 관계에서 이루어졌으며 사람이 움직임에 따라 공간이 변하며 더욱 풍부히 나타난다는 것이다.”라고 언급한 것처럼, 이미 1960년대 중반부터 건축을 공간적인 맥락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궁금한 것은 왜 1970년대 전후로 우리 건축에 공간론이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서양 건축에서 공간론이 등장한 배경부터 알아봐야 한다. 19세기 중후반부터 본격적으로 공간론적 담론이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그 중에서도 공간을 건축의 본질로 주장한 것은 독일 미술사가 오거스트 슈마르조(August Schmarsow, 1853~1936)의 <건축적 창조의 본질(The Essence of Architectural Creation, 1893)>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궁극의 공간’이나 ‘제3의 공간’ 등 당시 공간론은 다분히 개념적인 차원에서 머문 것으로, 슈마르조가 주장했던 체화된 주체가 만들어내는 공간과는 차이가 있다. 그런 맥락에서 1974년 3월호부터 1975년 4월호까지 8회에 걸쳐 공간지에 연재된 건축가의 안영배의 『한국건축의 외부공간』은, 우리의 전통 건축을 형상이나 형태가 아닌, 연속적인 외부공간에서의 시각적인 체험으로 기술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글과는 확연히 차별화된다. 

1978년에 하나의 책으로 묶어 나온 <『한국건축의 외부공간』 (보진재, 1978)>의 머리말에서 안영배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저자가 외부공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미국의 건축가 Norman Carver와 Philip Theil 교수의 영향을 받은 바가 크다. (중략) 그 후 구미각국을 여행하고 나서 규모가 작고 초라하다고만 생각했던 한국건축에 대해 재인식을 하게 되고 이에 대해 애착심이 차차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외부공간구성면에서 한국건축이 특이한 점이 많고 대단히 우수하다가는 것을 발견하고 이것을 널리 알리고 현대건축에 활용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안영배가 공간을 현대건축의 필수적인 요소로 파악하고 있고, 우리의 전통 건축의 외부에서 우리만의 공간을 발견하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
(주: 바로 이 부분이 핵심이자 비판할 점이다. 당시까지 남아 있던 작고 소박한 조선후기 건축에 대해 실망하고 있던 안영배선생은 '외부공간구성'이라는 점을 노력하에 찾아내서 이러한 어찌보면 인식적으로 바로 파고들지 못하는 부분을 한국건축의 특징으로 잡아나간 것이다. 심하게 말하면 60년대 당시 아직 충분한 한국 고대-중세건축에 대한 자료와 연구가 부족한 가운데, 당시로썬 할 수 있는 자위적인 이론체계를 만들어간 것으로 (다시 말하지만 심하게 말해서), 이는 일제강점기말 중-일과 차별되는 한국미 담론을 애써 모색한 한국미학의 선구자들과 매우 닮아 있다. 오히려 후기이전의 장식미와 규모미를 갖춘 건축을 되살려서 통시적 한국미의 발란스를 맞추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런지. 

또한 '왜색시비'라든가 '중국건축과의 유사성'같은 이데올로기적 토픽도 이젠 지양해야 할 시점이다. 이미 건축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한중일 건축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한 시기를 최대 12세기경으로 잡고 있어, 그 이전의 건축은 어차피 모두 공통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건강하고 풍요로운 결과물을 모색할 수 있다.)

안영배의 참고문헌에는 요시노부 아시하라의 <『Exterior Design in Architecture』(1970)>도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공통적인 참고문헌들의 특징 중 하나는 외부공간을 다루고 있다는 점과, 공간의 감각적 경험 특히 시각적인 경험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즉 서양의 공간과 구별되는 일본만의 공간적 특성을 주장하는 요시노부 아시하라의 책이나, 한국 전통 건축 속에서 우리만의 공간을 찾는 안영배의 책 모두 그 접근 방식이나 내용에 있어서 당시 서양의 공간론에 상당히 많이 기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에이드리안 포티는 『Words and buildings』에서, 근대건축에서 ‘공간’ 개념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건축이 타 분야의 사회적인 담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으며, 또한 건축 생산의 관점에서 볼 때, 1920년대의 주된 특징중 하나가 건축을 ‘공간 예술’로 정립하려는 다양한 시도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박길룡은 <『현대 건축 평전』(2015)>에서, 1970년대 이전 ‘청부업자의 일’로 비하받기도 했던 당시 한국 건축이 당시의 사회적인식 형편 속에서 ‘예술’로 인정받기 위하여 힘겹게 노력했다고 한다. 19세기 중후반 서양에서 태동한 공간론이나 1970년을 전후로 등장한 우리의 공간론 역시 이렇게 건축만의 독자적인 역사관과 이론적 영역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인 것이다. 

하지만 “한국적인 건축은 공간이다”라는 믿음 역시 “건축의 본질은 공간이다.”라는 서양 근대 건축의 믿음에 기반을 두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우리의 공간론을 서양의 공간론, 심지어 일본의 공간론과의 관계 속에서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있는지는 의문이 든다. 어떻게 보면 건축계의 ‘공간적 헤게모니’에도 불구하고, 형상이나 형태적 모티브가 강한 건물이 지속적으로 지어지는 현상을 감안하면, 서양의 공간론이 우리의 감성과 맞지 않을 여지도 충분히 있다. 

슈마르조가 건축의 역사를 ‘공간의 역사’가 아닌 ‘공간감의 역사’라고 주장했듯이, 우리의 ‘공간감’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그 ‘공간감’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했는지 물어봐야지만 우리의 공간을 논할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감’ 자체에 대한 질문을 통해서만, 우리만의 건축 비평, 이론, 역사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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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식의 '공간'위주의 건축담론이 강한 경향은 필자가 보기에는 한국학전반에 깔려 있는 '형이상학적 담론 강세'와도 맞닿아 있는 지류에 가깝다고 생각하기에 본문에 언급된 유럽의 공간론과는 (이론가들이 알건 모르건) 꽤 그 시원이 다르다는 느낌이다.

결국 이런 담론이 대담하게 말해 '뜬구름잡는' 담론들을 양산해 낸 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건축가가 '한국적'인 색감을 담았다고 이야기하고 형이상학적인 (공간, 정신, 개념, 등) 개념을 (어떤 경우는 조선의 정원의 정신이라든가 무기교라든가 자연감이라든가 하는 식으로까지) 충실히 담았다고 이야기해도, 설명을 듣고나서야, 혹은 설명을 듣고도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뭔지 잘 모르겠는' 건축가 자신만의 '한국적' 건축이 자주 등장하는 것이라 사료된다.

예를 들어 (갑자기 정확한 건축명이 생각나지 않지만) 몇년전 서울의 유명박물관을 짓는데 여러 건축가가 공모전을 했다. 그 때 최종안으로 뽑힌 것이 '전통장터의 공간구성 (띄엄띄엄 떨어진 각각의 건축물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는)'을 모티브로 만든 설계안이었다. 그런데 그 도안을 보고 솔직히 설명을 듣고도 이게 무슨 장터를 연상시킨단 말인가라는 생각만 들었다. 아무런 세세한 형태미없이 공간과 형이상학적 설명만으로 한국적색감은 어불성설이라는 생각만 강화시켜준 좋은 경우였다.

또 한 가지 예로 몇년전 (2009년) 꽤 뉴스를 탔던 파리 제 7대학에 들어선 '한국정원'. 이런 저런 설명이 필요없이 필자의 눈에는 이 공간이 '한국적'이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한국적 정원이라는 생각이 드시는지...

건축물이나 정원을 이루는 개체하나하나의 조형미와 형태에 집중해서 결과를 만들기보다 공간배치와 섬의 위치등으로 한국적인 분위기를 내기란 정말 어려운 것이다.

차라리 북한의 거칠지만 형태에 집중한 한국전통주의건축물들이 더 한국적이라 생각된다.

더 나아가, 과연 이런 시각으로 조선초기 이전의 건축물을 재건할 수 있을까. 원정수 교수의 98년 선구적 논문 [고려시대 고미술품에 표현된 건축요소에 관한 연구]의 결론 부분을 보자.

이처럼 건축의 '공간배치'라든가 정원의 공간감보다 건축물 자체의 장식성, 형태미가 강조되던 시대의 건축물을 재건하는데 이런 식의 담론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아니 오히려 방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60년대 1세대 건축가인 김중업파에서 비롯된 한국건축의 공간담론은 적절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마땅하나, 이로 인한 부작용도 굉장히 많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이 논문은 그간 막연하게 느껴온 이 점을 이론적으로 설명해주고 있어 명쾌했다.

마지막으로 이 건축담론에 대한 비판은 아직 정리가 필요하지만, 예전부터 설명해온 한국학담론의 하나이자 필자가 지적해 온 문제점을 아주 잘보여주는 좋은 예라 생각한다.

예를 들면 이에 대한 구체적인 예시를 몇년 전 영화이야기를 하면서 쓴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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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존다리안 2017/08/26 11:08 #

    우리나라 사람들 사고는 이런 면에서는 양 극단적 면이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오래된 것을 그냥 보존하는 게 전통이다라는 극히 보수적인 시각과 오래된
    것은 촌스럽고 보잘것없다고 여기는 전통부정이 바로 그런 시각들인데
    일본만 해도 에반게리온 가지고 노를 만들고 우리나라에서도 수묵화로 영화
    캐릭터들을 그리는 등의 전통의 현대적 재해석이 이뤄지는 것을 보면 이제
    이런 지나친 양극화는 지양했으면 합니다.
  • 레이오트 2017/08/26 11:37 #

    문화뿐이겠습니까. 애시당초 한국인은 극한의 민족이라 사회 전반에서 이런 미친 짓거리가 일상이지요 ㅠㅅㅠ
  • 역사관심 2017/08/30 01:00 #

    일단 전통이 생활속에 살아숨쉬려면 정확히 어떤 맥락과 구체적인 생김새를 가졌는지 각 항목별로 정리부터 해야합니다. 그냥 오래되면 좋다든가, 우리게 최고라든가하는 구호성 메시지는
    전혀 매력없는 이야기가 되버리기 일쑤입니다. 또한 이런 부족한 구체성에서 비롯된 개념적
    성향이 강한 현재 많은 담론은 이제는 좀 지양하면 좋겠어요.
  • 레이오트 2017/08/26 12:38 #

    무엇이 한국적인지도 모르면서 한국적 한국적 거리는게 가증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 역사관심 2017/08/30 01:02 #

    한국적인 것을 자꾸 뭉뚱그려서 혹은 특정시기에 편중해서 설명하려다보니 매력있는 결과물이 안나오는 듯 합니다. 혹은 '쉽게' 생각하고 여기서도 '빨리' 결과를 보려는 안이한 태도가 있어요. 한국적인 것을 찾는 작업은 장기간 분야별로 굉장한 노력이 필요한 아주 힘든 일이라는
    걸 문화계 각분야가 기본으로 깔고 임해야 한다 생각됩니다.
  • Nocchi 2017/08/26 12:42 #

    부여박물관이랑 북한 전통 건축 비교를 해 보면 철학이나 이론의 존재 보다 기본적으로 건축가의 수준이 낮은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물론 한 쪽은 저예산으로 만드는 일개지방박물관이고 한 쪽은 수도를 대표하는 건물이니 규모나 설계에 들이는 정성이 동일 할 수는 없겠죠 건축미에 실패하면 아오지행 이런 것 도 없고
  • 역사관심 2017/09/21 06:05 #

    일단 저쪽은 탑다운의 끝을 보여주니 이것저것 실행력이야 높을수 밖에 없겠지요. 일단 한국학의 담론자체가 너무 형이상학적이라는 생각을 떨칠수가 없습니다. 이론이란게 생각보다 아니 어떤 면에선 기본적으로 모든 곳에 영향을 주는 녀석이라 한국미학담론을 만드는 전문가나 연구자들이 좀 더 통시적으로 균형잡힌 연구를 이젠 할 시점이라 생각합니다.
  • 대범한 에스키모 2017/08/26 14:10 #

    공간이라고 보기엔 마당과 중정, 남녀의 공간등이 있긴해도 그게 한국적인 건축이냐.. 라는 것에 대해서는 좀 생각이 드는 글이였네요. 건축학도인데도 ㅁㄴㅇㄹ
  • 역사관심 2017/08/30 01:05 #

    건축학도시군요! 앞으로 많은 연구와 결과물 기대하겠습니다 ^^
  • 채널 2nd™ 2017/08/26 16:19 #

    뭐라도 '훔쳐와서' 우리 것이라고 우겨 보는 각?

    (우리도 뭔가 그럴 듯한 구실을 하나 맹글어 놔야 하는데... 하는데 ... 하는데... 뭐 없나? 두리번, 두리번.)
  • 역사관심 2017/08/30 01:06 #

    확실히 동아시아 문화담론은 너무 타자를 의식하고 자신을 만드는 경향이 강합니다. 20세기 초반의 분위기를 21세기에도 못벗어나고 있는.
  • 쿠사누스 2017/08/26 17:02 #

    제주도 약천사 대웅전이나 최근에 건설된 경북도 신청사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형태화된 현대 한옥 건축에 대한 한국 건축학계의 시선은 늘 냉소적이더군요.
    요즘 유행하는 한국 현대 건축은 거의 다 노출 콘크리트로 도배한 안도 다다오의 아류인 주제에 현대 한옥 건축이 콘크리트라는 소재를 사용했다고 해서 비난을 퍼붓는 것은 정말 내로남불입니다.
    그러면서 모더니즘이나 포스트 모더니즘 건축쪽은 한국의 전통과 철학같은 형이상학적 담론을 운운하면서 자신들이야말로 저 위에서 언급하신 파리 7대학의 한국정원처럼 국적불명의 포스트모던한 키취적인 자신의 건축물에 아우라를 부여하려고 애쓰고 있죠.
    서구와 일본의 모더니즘 건축대가들을 모방하는데 급급한 Epigonen (아류자)들인 처지면서도, 정말로 전통을 계승 부흥시키려고 온갖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악전고투하고 있는 소수의 한국 현대 한옥 건축가들에게 비난과 냉소를 퍼붓고, 정작 포스트모던한 자기 작품(?)에 대해서는 한국 전통 철학이라는 형이상학적 담론으로 미화를 해대는 저들을 보면 정말 피가 거꾸로 솟아오릅니다.

    ex) 근데, 경북도 신청사는 제가 보더라도 정말 비난받을 만 하더군요^^ 특히 신청사 하단 구조는 마치 요즘 유행하고 있는 1층 주차장 필로티 구조의 빌라처럼 너무 저렴하게 보여서 한숨만 나왔습니다. 현대 한옥 건물을 지으려면 제대로 지어서 욕 좀 덜먹었으면 좋겠습니다
  • 역사관심 2017/08/30 01:08 #

    솔직히 웃기는 일이라 생각합니다...또다른 자신만의 현학적 리그 (심하게 말해). 결국 평가는 대중이 하기 마련이고 어떤 것이 더 전통적이냐는 것은 그들이 평가하는 것이지 일부 전문가집단이 하는게 아니라 생각해요. 한국학은 비단 건축뿐 아니라 많은 분야에서 '말'(결국 개념)로 설명하려 하는데, 이런 형태로는 결코 타 문화강국들처럼 '직관적/인식적'인 매력적 결과물 (말이 필요없는)을 내지 못하리라 봅니다.
  • 최강로봇 도라에몽 2017/08/28 23:38 #

    정말 잘봤습니다.. 건축이란건 걸국.보여져야 하고 쓰임받아야 하는데 형이상학적 한국적 공간 혹은.아직 제대로.개념조차 안 잡힌듯한 한국식.건축을.강조할때마다 멍해집니다.... 참...

    좋은논문 잘 읽었습니다
  • 역사관심 2017/08/30 01:08 #

    감사합니다. 저런 소장파 학자들이 요즘 자주 보여 그래도 희망을 조금 걸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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