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말~16세기초 익랑모습을 담은 조선회화 한국의 사라진 건축

아래 보이는 그림은 조선전기의 화가 학포 이상좌(李上佐, 1465년~?)의 '산수도'중 일부입니다.

여기 보면 물에 지은 건축물이 보이는데 요즘 흔히 보이는 전통건축형식이 아닌, 회랑으로 연결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생몰년대 미상이라곤 하지만 이분은 15세기말~16세기초중반에 걸쳐 활약한 분으로 따라서, 이 건축양식 역시 그 당시의 영향을 받은 모습이라 할 것입니다 (중국측 영향이건 조선의 로컬건축의 모습이건).
이상좌 산수도 중 (15세기말~16세기초)

예전에 소개한 글중 이종성 선생의 최근연구에서 정확히 이당시, 즉 15세기말~16세기초의 행랑/익랑기록과 관련된 부분입니다.

"또한 서울에 거주했던 상층 양반 오희문(1539∼1613)은 임진왜란으로 황폐해진 죽전동 친가의 모습을 기록 하면서 주택의 배치를 ‘북·동·서 누칸, 몸채, 부사랑[北 東西樓間身梗付斜廊]’이라고 표현하였다. 표현이 간략 하여 구체적인 공간배치를 도출하기는 어렵지만 낭루가 몸채[身梗]를 둘러싸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조선전기 한성의 상류 건축에서 층루가 보편적인 요소였으며, 특히 익랑이나 행랑 등의 낭무(廊廡)를 중층으로 지은 집이 많았음을 알려준다."

이 건축은 물위에 띄운 것으로 중층은 아니지만, 당시 '익랑'의 모습의 일부를 담아내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한번 주목해 볼만한 것같습니다. 또한 , 아래 확대한 그림을 보면 알겠지만 수상건축의 옆쪽에 '발'로 보이는 것을 일부 친 모습이 이 당시 자주 등장하는 관광용 건축의 '발' 모습과도 겹쳐 보입니다.

흔히 조선회화에 나오는 배경을 의례 중국으로 생각, 건축자체에 대한 관심들은 생각보다 적고 연구도 활발하지 않은데 아래 글에서 보이듯 (그리고 인식론적으로 자연스럽게) 생각보다 당대 자국의 문물을 담아냈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의복이 그러하듯, 건축도 마찬가지).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파볼 부분이 아닐까 생각이 드는군요.


의복쪽에서는 이미 90년대중반부터 불화(탱화)에 담긴 복식연구가 계속 진행중이며 성과가 큽니다. 아래는 [조선시대 감로탱화에 표현된 복식 연구](양경애)라는 1995년 논문중 부분. 의복쪽의 경우 [고려도경]의 묘사까지 회화화, 데이터베이스로 이용가능하게 하는등 성과가 큽니다. 

특이하게 몇몇 교수님이 고려변상도연구를 빼면 건축에선 거의 없죠 (특히 조선초기-중기연구).

이런 부분부분 흥미로운 회화에 등장하는 건축들에 대해서는 갈무리 해둔 것이 많은데 조금씩 소개해 보도록 하지요. 

앞으로 한국건축 역시 삼국시대부터 2천년가량 시기별로 이미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 이런 '부분부분'의 요소들을 구체적으로 이용가능하게 하면 합니다. 아마도 그것이 며칠 전 비판했던 '공간론'에 근거한 현재의 전통건축담론보다 훨씬 효과적이고 구체적인 담론을 만들어가는 작업이 아닐까 싶습니다 (건축뿐 아니라 회화연구자체도 거의 회화의 주제와 관념분석에 치중한 감이 많다는 것이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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