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의 궁중숭불도와 15세기 이상좌 산수도의 익랑 한국의 사라진 건축

며칠전 15세기 화가 이상좌(李上佐, 1465년~?)의 '산수도'에 나오는 '익랑'부분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소개하지 않은 학계에서 아직도 논쟁중인 비슷한 시기의 그림이 한 점 전합니다. 그림의 이름은 '궁중숭불도'로 16세기 중반의 그림으로 추정하는 설과 요즘 들어서는 이 그림이 '고려대'것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처마 밑의 붉은 격자문(格子文) 장식과 건물의 검은 기둥, 길이가 긴 저고리의 형태 등이 1550년 경에 그려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호조낭관계회도(戶曹郎官契會圖)〉에 나타난 모습과 매우 유사하며, 잎이다 떨어진 앙상한 나뭇가지를 해조묘법(蟹爪描法)으로 표현하는 조선 초기의 전통적인 수지법(樹枝法)을 따르고 있어 16세기 중엽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전기작품으로 알려진 "궁중숭불도"(호암미술관 소장)가 고려시대 작품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고미술연구가 이양재씨(고려전적연구소 대표)는 미술전문지 <한국고미술> 최근호에 기고한 글에서 "이 작품은 지금까지 정설로 알려진 16세기 중엽 조선의 한양 궁중모습이 아니라 14세기말 고려시대 개성의 봉은사와 국자감 전경을 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품이름도 "고려 봉은사 국자감도"라고 해야 맞다"고 이씨는 덧붙였다. "궁중숭불도"는 가로 46.5cm, 세로 91.4cm 크기에 궁궐 혹은 사찰로 추정 되는 대규모 건물이 그려져 있다. 호암미술관이 발행한 도록설명에 따르면 이는 보우스님이 문정왕후와 함께 불교부흥을 도모하던 16세기 중엽의 한양 궁중모습이라는 것. 하지만 이씨에 따르면 이 작품은 14세기말 봉은사와 국자감 전경일 가능성이 높다. 그림속 건축물은 상부가 사찰, 하부가 교육기관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14세 기말 고려 개성의 봉은사와 국자감뿐이라는 것이다. 고려시대 봉은사와 국자감은 위 아래로 인접해 있었다. 1995년 미국에서 들어온 이 작품은 현재 " 몽유도원도와 조선전기 국보전"(2월11일까지 서울 호암갤러리)에 전시 중이다.

궁중숭불도 (호암미술관 소장)

즉, 이 회화는 최소 16세기중반, 멀리는 고려후기인 14세기까지 올라가는 작품으로 추정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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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에 대해서는 계속 관심이 있었지만, 그제 소개한 이상좌의 [산수도] 글이후 오늘 흥미로운 접점을 발견해 나눕니다. 그것은 바로 그림에 나오는 '익랑'부분의 모습입니다.

말씀드렸듯 이상좌의 생몰-활동연대를 생각할 때 '산수도'에 나오는 익랑은 15세기-16세기초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것입니다.
이상좌 [산수도]중 익랑/통랑 부분

다음은 궁중숭불도에 등장하는 익랑부분입니다. 이 그림은 14세기~16세기로 추정, 역시 비근한 시대의 건축물입니다.
[궁중숭불도]중 좌우 익랑/통랑 부분

필자는 이 두 건축의 익랑이 매우 흡사하다고 판단합니다. 특히 지붕의 형식과 부연, 평방, 창방등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매우 닮아 있습니다. 기둥의 형식과 굵기도 비슷해 보입니다.

관련연구자가 분석해보면 좋겠지만, 만약 두 익랑이 공통분모가 많다고 한다면 다시 한번 이상좌 '산수도'의 배경에 조선의 문화적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음도 밝혀질 수 있는지라 의미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언젠가 궁중숭불도에 대해서는 다시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덧글

  • 최강로봇 도라에몽 2017/09/16 09:53 #

    저 간단한.질문이 궁중숭불도라면 말그대로.궁중에서 불교를 숭상한걸 그린거.같은데요 본문에 15세기 조선이라 써져있는데 조선 초기도 아니고 그 유교 성리학.국가인 조선에서 궁궐에다 부처를 모시는게 거진 불가능 아닌가요??

    그건 제쳐두고 글에 써진 여러 논거들이 고려시대라 생각하게 하네요 오늘도 잘봤습니다
  • 역사관심 2017/09/19 13:16 #

    15세기까지도 조선에서는 불교가 아직 성행하던 시기입니다. 민간에서는 물론이고 왕실에서까지 상장례의 영역에서까지 전통적 불교제의가 영향력이 있던 시기니까요. 당시 왕실 제사에서도 고기를 올리지 않는 불교식을 고수해서 이게 관행인지 불교식인지를 놓고 관료들과 마찰이 일어나기까지 하던 시기입니다. 본격적인 퇴보는 역시 16세기말이후로 보고 있지요.

    고려시대는 정말 멀리보면 통일후가 되서야 제대로 연구될 시대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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