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툭툭 차며 (하루키) 독서

시는 자주 읽으시는지? 솔직히 나는 그리 열심히 읽지는 않는다. 
그래도 좋아하는 시집 몇 권은 있어 한가한 때면 책장에서 꺼내 페이지를 훌훌 넘긴다. 유려하거나 서정적인 시보다는 일상적인 산문 혹은 입말로 힘주지 않고 쓴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기야마 쇼헤이의 <가을>이라는 짧은 시가 있다.

새 나막신을 샀다며
친구가 불쑥 찾아왔다.
나는 마침 면도를 다 끝낸 참이었다.
두 사람은 교외로
가을을 툭툭 차며 걸어갔다.

단 다섯 행의 쉬운 시다. 젠체하는 단어 같은 건 전혀 사용하지 않았지만, 읽기만 해도 그때의 정경과 기분이 저절로 눈앞에 떠오른다. 따각따각하는 새 나막신 소리도 들려오는 것 같다. 매력적이면서도 설득력있는 시라고 생각한다. 가을이 오면 어느 순간 이 시가 문득 떠오른다.

이 '기야마 쇼헤이 시전집'이라는 상자에 든 책을 아오야마 거리의 헌책방에서 발견했다. 같은 내용의 책을 문고본으로 갖고 있는 터라, "삼천 엔이라, 어떡할까?" 갈등했지만, 결국 샀다. 시집은 상자에 든 것으로 갖고 있으니 좋더군요. 어쩌다 한 번 읽는 것이지만 인생에서 조금 득을 본 기분이 들더군요.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이건 젊은 사람이 쓴 시군'이라고 느꼈다. 실제로 1933년에 기야마 쇼헤이는 아직 스물아홉이었다. 어째서 그런가 하면, '새 신발을 샀다'며 친구가 불쑥 집에 오는 상황은 그리고 그걸 예사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아직 이십대의 것이니까. 
나도 젊은 때는 그런 친구가 있었다. 지금은 없다. 유감스럽다고 해야 할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야 새 리복을 샀어"하고 약속도 없이 불쑥 찾아오면 곤란할 것 같다. 예정된 스케줄도 있고 사정도 있을 테니.

고등학교 시절, 심야에 책상 앞에 앉아 공부(인지 뭔지)를 할 때, 누가 돌멩이로 창문을 두드려 밖을 내다보면 친구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바닷가에 가서 모닥불 피우지 않을래?"해서, 함께 바닷가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나무를 주워모아 불을 붙이고 별다른 얘기랄 것도 없이 둘이 모래사장에 앉아 몇 시간이고 그 불꽃을 바라보았다. 그 무렵에는 아직 효고 현 아시야 시에도 예쁜 자연 모래사장이 있었다. 모닥불은 몇 시간을 바라봐도 질리지 않았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그렇게까지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은 인생에서 그리 길지 않고, 심심할 때 놀아주는 사람도 점점 줄어든다.

그러나 이 기야마 쇼헤이의 시를 읽으면, 그 시대를 사는 듯한 기분이 들어 뭔지 모르게 좋다. 친한 누군가와 함께 '가을을 툭툭 차면서' 교외를 산책할 수 있다면 참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덧글

  • 전진하는 미중년 2017/10/23 16:32 #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하루키는 소설보다 수필이 더 나은거 같습니다.
  • 역사관심 2017/10/24 03:17 #

    전 둘다 좋아하는데 소설은 특히 '태엽감는 새'까지는 말할 것도 없이 좋아하지만 그 이후의 작품은 들쑥날쑥한 편이라, 말씀처럼 꾸준히 좋은 수필이 더 나은 감도 있습니다 ^^ 후일 소설가 뿐 아니라 수필가로 불릴지도... ㅎㅎ

    아, 아주 오래전 쓴 글입니다.
    http://luckcrow.egloos.com/2068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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