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대로만 짓자- 15~17미터에서 현재크기로 축소된 임류각 한국의 사라진 거대건축

공산성은 최근 들어 완벽한 보존상태의 황칠갑옷, 완벽한 상태의 5세기 나무사다리등이 발굴되면서 다시 한번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백제의 대표적 유적지중 하나입니다.

이곳에 볼만한 건축물 한 채가 들어서 있으니 바로 '임류각'이란 건물입니다. 

臨流閣

임류각은 서기 500년인 동성왕 22년에 지은 건물로, 왕과 신하들의 연회 장소였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임류각 유지는 1980년이 되서야 공산성을 정비하던 팀에 의해 발견됩니다. 

터만 있던 곳에 1993년 거의 정방형에 가까운 2층 누각을 지었습니다. 터의 한쪽 변은 약 10여미터. 건물의 단청 문양은 무령왕릉에서 나온 장신구와 현실의 백제벽돌에 있는 무늬를 많이 활용했습니다.

이 건물이 현재의 임류각입니다.
이제 세월이 지나 어느덧 고색이 느껴지려고 하지요. 그런데 이 건물은 근본적인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현대 한국전통건축에서 종종 무심하게 넘어가는 부분, '높이'입니다 (높이에 대한 무관심은 사실 놀라울 정도입니다. 임류각은 물론 바로 얼마전 복원을 마친 숭례문이나 바로 옆에 세워진 날개형의 성벽에 대한 어떤 기사에도 높이에 대한 정보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현재의 임류각 건축에 대한 설명이나 논고를 보아도 역시 어떤 곳에서도 규모에 대한 정보는 찾아 볼 길이 없습니다. 유일하게 알 수 있는 정보는 한쪽 변이 10.4미터인 정방형 건축이라는 것뿐이지요. 즉, 이 사진에서 좌우너비가 10.4미터가 됩니다. 이 정보를 근거로 그대로 한번 세워보지요. 아래의 사진에 나오는 붉은 선이 됩니다.

이 수직선은 건물의 좌우의 기둥뿐 아니라 난간부분까지 포함해서 잰 것을 그대로 세운 것입니다. 얼추 지붕의 꼭대기를 넘게 됩니다. 

이것을 근거로 높이를 추론해보면 용마루부분까지 9.5에서 10미터남짓한 높이로 보이지요. 그럼 이것이 임류각의 원래 규모일까요?

임류각의 원래 높이

보통 우리 건축의 경우 매우 일부의 경우를 (예로 단속사의 기록) 제외하면 정확한 높이를 기록으로 남긴 예가 드뭅니다. 그런데 임류각의 경우 백제건축의 규모를 보여주는 아주 좋은 정보가 남아 있습니다.

바로 [삼국사기] 백제본기 동성왕 22년(A.D.500)의 기록에 임류각의 원래 높이가 명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다음을 볼까요?

대궐 동쪽에 임류각을 세우다 ( 500년 (음) )
二十二年, 春, 起臨流閣於宫東, 髙五丈. 又穿池養竒禽. 諌臣抗䟽, 不報, 恐有復諌者, 閉宫門.

22년 봄, 대궐 동쪽에 임류각(臨流閣)을 세웠는데 높이가 다섯 길이었다. 또한 연못을 파고 기이한 짐승을 길렀다. 간관들이 이에 항의하여 글을 올렸으나 듣지 않고 다시 간하는 자가 있을까 염려하여 대궐 문을 닫아 버렸다.

起臨流閣於宫東, 髙五丈.
임류각을 궁 동쪽에 세우는데, 그 높이가 오장(五丈)이었다.

자, 五丈이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장(척)중 건축이지만 영조척 (세종대 30.2cm)이 자동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삼국시대까지는 고려척이 주로 쓰였습니다. 고려척은 약 1.158척으로 35.15㎝ 정도입니다. 따라서, 고려척을 적용하면 임류각의 높이는 17.57m입니다. 만약 영조척으로 하면 15.1m입니다.

원문을 봐도 명확하게 높이정보가 나오지요.

임류각의 규모에 대한 정보는 안정복(安鼎福, 1712~1791년)에 기술한 [동사강목]에도 등장합니다. 비록 후대의 기록이긴 하지만 간접적으로 임류각에 대한 인식을 볼 수 있습니다.

동사강목 도상
백제 전세도(百濟傳世之圖)

동성(東城)은 나라의 흉년을 당하여 백성이 굶주림은 구하지 않고 임류각(臨流閣)을 지었는데, 장려(壯麗)함이 지극하였다. 제 마음대로 노는 것을 좋아하여 궁문을 닫고 간신(諫臣)을 물리치고는 사냥에 몰두하여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다가 적신(賊臣)에게 시해(弑害)당하였다. 

원문을 보면 이렇게 표현되고 있지요.
極基壯麗壯麗
지극히 크고 화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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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록대로 표현하지 않는 것일까

그나마 현재의 임류각은 그나마 공산성전체에서 가장 큰 건축입니다. 그리고 앞서 살펴보았듯 높이는 대충 10미터정도가 됩니다. 즉, 저러한 소중한 정보가 있음에도 활용하지를 않은 결과물입니다.
그럼 기록대로 15미터에서 17미터의 규모의 건축라면 임류각은 어느정도의 느낌을 주었을까요? 

다음은 종로에 있는 동주민센터입니다. 이 건물의 높이가 바로 15미터가 됩니다. 아래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지요. 즉, 지붕위의 구조물까지 포함해서 15미터가 됩니다.
즉 원래의 임류각은 최소 높이면에서 이 정도의 느낌을 주는 장대한 건축이었을 것입니다.
종로5, 6가 동주민센터

아래에 보이는 트리의 높이가 꼭대기까지 15미터가 됩니다. 즉, 이정도 높이라면 임류각은 아마도 2층이 아닌 다층건축이 아니었을까 충분히 추론할 수 있지요.

태국시내에 들어선 15미터 트리

위의 비교는 조선초 영조척으로 계산했을때이고, 삼국시대의 고려척으로 계산한 17미터의 경우라면 아래 정도가 됩니다. 아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시에 있는 성 이삭대성당입니다. 앞에 서있는 열주들 (기둥)이 보이시죠. 저 기둥이 정확히 17미터입니다 (돔 본체가 아니라 앞에 서있는 기둥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성 이삭 대성당 정면

아래서 찍은 사진을 한번 볼까요.
성 이삭 대성당의 17미터 규모 기둥들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임류각의 높이는 최대 이정도 느낌의 장대한 건축이었을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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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의 미학을 무시하는 현재 한국미학의 문제점
현재의 임류각 (지붕 용마루까지 합쳐서 높이 약 10미터)

필자는 규모만을 강조하자든가 근거없는 미학을 만들자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허나, 건축이나 문화유산에서 '규모미'는 세계공통의 최고가치에서 빠지지 않는 엄연한 중요한 가치중 하나입니다.

현재 우리 전통건축계나 한국학에서는 주변국들에 비해 특이할 정도로 이 중요한 규모미에 대한 관심자체가 없습니다. 학계에서도 그런 면이 없다고 할 수 없고, 따라서 전문가들의 시각을 대변하게 되는 언론에서도 (당연히) 무관심합니다. 오늘 소개한 이 1993년 복원된 임류각 역시 당시는 물론 현재까지도 그 어떤 언론도 높이를 무시한 이 복원에 대한 의문이나 문제제기를 한 적이 없습니다. 놀라운 것은 '기록에 따르면 15미터'라는 정보를 아무런 감흥없이 언론에서도 그리고 놀랍게도 이 건물 앞의 안내문에도 이렇게 적어두고 있지요.

기실 이런 예는 수없이 많습니다. 당장 바로 저번 주 [차이나는 클라스]에 출연하신 유홍준 선생의 설명에는 (다른 모든 이런 종류의 언론에서 항상 그렇듯) 한양도성의 낮은 높이는 해외의 성들과는 개념이 다른 울타리개념이기에 낮을수 밖에 없다는 논지밖에 없습니다. 다음은 그 부분.
한양도성중 가장 얼굴격인 정면의 대규모 성벽유실에 대해 필자는 작년의 이 글에서 비슷한 맥락을 피력한 바 있습니다.


다음은 본 포스팅중 숭례문 옆의 웅장한 성벽부분을 기록한 조선말 사진입니다. 성벽위에 갓을 쓴 선비가 한 분 보입니다.
일제강점기 사진중 숭례문 근처 한양도성 핵심구역 일부 (유실구간)

이런 사진이 존재함에도 단 한번도 이런 예전의 규모를 다루거나 소개하거나 균형잡힌 시각을 제공하는 경우를 본 경험이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없습니다. 

유홍준 선생의 말씀처럼 분명 Fortress와 City wall은 '개념이 틀립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규모미는 무시할 수 없습니다. '없던 것을' 만들자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 우리에겐 저런 기록들이 명확하게 현전하고 있습니다. 현재 사라진 저런 구간을 복원한다면 한양도성은 지금보다 훨씬 더 장대한 맛도 아기자기한 맛도 갖춘 '한 왕조의 성벽'이라는 느낌을 주는 유산이 될 것입니다. 

작년에 쓴 이 글의 결론부분으로 이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우리는 한양을 둘러싼 사대문과 성곽이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상당부분 21세기에도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동시에 '사대문'이라는 느낌을 장안성에 살고 있는 중국시민들보다 훨씬 인식적으로 '덜 받고' 있음도 거의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큰 파이중 하나가 오늘 소개한 "4대문의 상징적인 구간"의 대규모 유실이 아닐까 감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필자가 느끼는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2013년에 서울시주최로 열렸던 '역사도시와 도시성곽' (주관-서울학연구소) 심포지움에서도 느꼈고, 여러 웹정보나 서적들로도 보이는 부분인데, 우리는 문화재를 다루면서 '높이'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빠져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예를 들어, 유실된 '숭례문'의 이야기를 하면서 수많은 매체를 살펴봤지만, 구간의 넖이만을 이야기할 뿐 문의 높이라든가 복원되는 성벽구간의 정확한 높이를 소개한 정보는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이 어떤 철학적 이유에서 비롯된 '경향'인지 혹은 그로 인한 사회적인 '무관심'의 흐름이 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이러한 부분에도 건축가나 건축학자, 그리고 문화재에 관련된 많은 분들이 조금 더 관심을 가지기를, 그리고 대중적으로도 관심들이 늘어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사라진 돈의문을 복원한다거나 숭례문의 현재보다 더 규모있는 구간을 복원할 때, 문화재의 아주 중요한 미학중 하나인 '웅장함' 역시 놓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덧글

  • 최강로봇 도라에몽 2017/11/11 13:44 #

    어느샌가 작은것이.아름답다란 담론으로 고정되버린 한국미.... 너무나도 아쉬운게 사실입니다. 왜 우린 웅장한 문화재 화려한.문화재를 가지면 안될까요 참으로 의문입니다
  • 역사관심 2017/11/14 04:46 #

    한쪽은 알지 못하고 따라서 관심이 없고, 한쪽은 알면서 안하는 관성적 행태라 보는데, 문제는 이 둘이 서로 돌아가며 악순환을 만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 NRPU 2017/11/11 15:34 #

    유리컵 안에 가둬놓은 벼룩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 역사관심 2017/11/13 04:30 #

    적절한 비유입니다. 감사합니다 T.T
  • 아빠늑대 2017/11/12 09:18 #

    건축물의 복원에 있어서 실제와 다른 물건들이 자꾸 나오는 이유중에 하나는 "기술력의 부족" 과 "돈" 문제가 있더군요. 콘크리트를 써서 지을게 아닌 다음에야 목조 건물은 기술자의 능력이 상당히 들어가야 하는데 그만한 대형 건축물을 지을 수 있는 능력자가 별로 없다더군요. 매번 지어보던 것이 개인 한옥같은 조그마한 것들 뿐이니 다 고만고만하게 나온답니다.

    실제로 더 크게 지으려면 목조의 굵기나 길이부터 시작해서 중량 계산까지 새롭게 해야 하는데 그쪽 기술력은 크게 지을만큼 시장이 크지도 않고, 제대로 된 복원연구도 미미하니 적절한 수준에서 타협해버린다는거죠. 거기다 관련 부처의 무지함까지 더해져 이상하게 나온답니다. 최근에는 그나마 대학에서 연구가 좀 되고 있다는데, 아주 크게 복원하려면 초반에는 그 이상의 비용이 투자되어야 하는데 그게 안먹히기도 한답니다.

    결국 돈이 크게 들어가면 그걸 빨아먹고 시장이 크고, 그럼 기술력이 늘고 복원되는데 그런데 들어가는 돈은 낭비라고 보는 인식도 꽤나 크다는거죠.
  • 역사관심 2017/11/13 04:29 #

    그래서 사실 이번 경주쪽 대형복원사업들이 사업적인 면보다도 학구적인 가치가 매우 큰 프로젝트들입니다. 일천한 고대대형건축쪽 연구자료들이 수북히 나와줄 매우 귀한 기회인데... 정말 제대로 해야한다는게 여러측면에서 '정말 중요한' 사업들이지요. 관련부처 입김은 최소화가 관건이고, 결과물이 제대로 나와서 사업적인 면과 학구적인 면이 어느정도 충족된다면 앞으로 희망적이 될것이고... 반대면 저도 제 세대에선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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