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백한 프로야구 KBO 역사망각- 82년 & 83년 골든글러브와 베스트 10상 스포츠전통마

골든글러브 시상식이 이제 몇 주 안남았습니다.

기자들의 편견이 들어가고,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는 의견에 적극동감하지만 수십년간의 역사가 쌓여왔기에 이제까지의 수상목록은 무게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역사는 해가 거듭될수록 더 가치가 있어지겠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현재 KBO 공식정보와 목록에 큰 망각과 오류가 있습니다. 이는 역사가 더 흘러 망각되기 전에 반드시 수정되어야 할 것 같아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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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골든글러브의 연혁에 대해 한번 살펴볼까요. KBO에서는 정의나 정보를 제공하지 않기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검색하는 위키백과의 정의를 들여다 봅니다.

골든글러브 시상식
한국 야구 위원회에서 주최하고 있으며 한국 프로 야구 창립 기념일을 기념하여 매년 동일하게 12월 11일에 열린다. 한국의 프로 야구 첫 해인 1982년에는 최고 수비수를 뽑는 취지의 시상식인 만큼 투표 없이 수비율로 수상자를 결정하였으나, 이듬해인 1983년부터는 베스트 10의 시상과 통합되면서 수비는 물론 공격 능력과 인지도까지 아울러서 평가하는 상으로 바뀌며 1984년부터는 지명 타자 부문도 신설되었다. 1985년까지는 좌익수, 중견수, 우익수 부문을 분리해 시상했었지만 1986년부터는 외야수 부문으로 통합되어 시상되었다. 시즌에 활동했던 선수들 중 골든글러브 수상 자격이 되는 기록을 보유한 선수들이 먼저 후보자 명단에 오르고, 최종 수상자는 시상식 당일 프로 야구 기자단과 방송 관계자들의 투표로 결정된다.

붉은 색을 주목해보지요. 자, 1982년 프로야구 원년의 경우 현재의 [베스트 종합능력 포지션상]성격이 아닌 수비율만을 따져 골든글러브를 시상했다는 이야기, 야구에 관심있는 분들은 심심찮게 들어본 정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줄에 2년차인 1983년부터는 베스트 10상과 통합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는 것입니다. 이 정보가 무엇이 문제일까요? 한가지는 팩트가 틀렸고, 한가지는 당시 훨씬 (정말 훨씬) 더 중요한 상이었던 이 생소한 이름의 [베스트 10상]의 가치에 대한 현재의 등한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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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골든글러브와 베스트 10 수상자

다음의 링크는 KBO의 역대 골든글러브 수상자목록중 1982년과 1983년의 2년간의 기록을 가져온 것입니다.


보시다시피 명확하게 수상자의 이름들이 나열되어 있지요. 좋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2년간의 골든글러브는 사실 현재의 위상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관심이 없었고 최근의 골글의 위상은 바로 84년부터 사라진 이 [베스트 10상]이었단 사실입니다. 

정말인지는 당시의 언론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은 1982년 10월 15일자, [프로야구 시상식] 정보입니다. 한번 보지요.
자 보시다시피 이게 전부입니다. MVP와 개인상을 나열한 후, 베스트 10에 [박철순, 이만수, 김봉연, 구천서, 이광은, 오대석, 이종도, 장태수, 윤동균, 백인천]이 나열되고, 끝. 골든글러브에 대한 이야기는 일언반구도 없습니다. 당시 베스트 10상위 가치가 현재의 골글의 그것임을 쉽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당시 다른 신문사 뉴스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골글에 대한 정보는 아예 없고 베스트10이 가장 중요한 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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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골든글러브와 베스트 10 수상자

그런데 83년은 더 문제입니다. 그나마 82년의 기록은 1982년 프로야구 위키를 가보면 베스트 10에 대한 기록이라도 짤막하게 기록되어있지만, 1983년 프로야구의 [베스트 10수상자]들은 깡그리 잊혀진 상황입니다. KBO 홈피는 물론, 위키까지도요. 다음의 정보가 마치 진짜인양 돌아다니고 있지요.

프로 야구 첫 해인 1982년에는 최고 수비수를 뽑는 취지의 시상식인 만큼 투표 없이 수비율로 수상자를 결정하였으나, 이듬해인 1983년부터는 베스트 10의 시상과 통합되면서 수비는 물론 공격 능력과 인지도까지 아울러서 평가하는 상으로 바뀌며 1984년부터는 지명 타자 부문도 신설되었다. 

이것이 얼마나 잘못된 정보인지 다음을 보시지요. 1983년 10월 18일자 매일경제신문입니다. 즉, 스포츠전문지도 아닌 신문에 크게 실린 기사이니, 당시 이 상들의 위상을 보여줍니다. 

1982년과 똑같습니다. 위키정보와 달리 엄연히 83년에도 [베스트 10상]은 존재했을 뿐 아니라, MVP를 비롯한 개인상에 이어 [베스트 10상]을 포지션별로 선정하는 것을 가장 큰 상으로 보고 있지요. 1983시즌의 수상자는 [장명부, 김무종, 김성한, 김인식, 김용희, 김재박, 김종모, 김일권, 장효조, 김봉연]. 역시 당대의 내노라하는 스타들이며 포지션별 강자들입니다.

다른 신문사를 볼까요? 동아일보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골든글러브에 대한 정보는 아예 전무하지요. 이 당시 [베스트 10상]이 현재의 골글과 거의 똑같은 위치의 중요한 상임은 다음 뉴스에 더 잘 드러납니다. 다음은 동아일보 10월 21자 프로야구 당해 정리 특집기사.


내용은 1983년의 여러 스타들에 대한 소개와 정리, 그리고 수상자들에 대한 소개가 나옵니다. 그런데 사진이 눈에 띕니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장명부 선수와 해태 타이거즈의 김무종선수가 울고 있습니다.

설명을 볼까요? 아래 빨간 부분을 봐 주시길.
83 프로야구 [베스트 10]에 뽑힌 재일동포 해태의 김무종(왼쪽)과 삼미의 장명부가 약속이나 한듯 왼손으로 감격의 오늘쪽 눈물을 닦고 있다.

뿐만이 아닙니다. 아예 이 기사제목이 다음과 같습니다. [베스트 10상]을 수상한 위의 두 선수가 주인공이며, 당시 해태우승의 주역인 에이스 이상윤투수는 [베스트 10도 못되고 개인상도 없어 올해 최고의 애석상 주인공]이란 요지입니다.

이 사진내용과 신문면에서 사진의 크기등은 당시 [베스트 10]이란 상의 위상을 잘 보여줍니다. 즉, 현재의 골글이 바로 1982년과 (위키에선 아예 사라진 걸로 나오는) 1983년의 베스트 10상인 것입니다.

이 눈물어린 감격의 수상기록은 현재 옛날신문외엔 어디에서도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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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 83년의 골든글러브의 위상은?

이런 의문도 제기할 분이 있겠지요. 지금도 그렇듯 MVP시상식과 골글 시상식의 날짜가 달라서 저기 안 실린거 아닐까요? 네, 당시에도 골글시상식은 12월에 열렸습니다. 그러니 공정하게 검색해 보지요.

다음과 같습니다. 다음은 베스트10상과 똑같이 네이버 아카이브에서 검색한 결과입니다.

1982년의 수상자는?
네 아예 기사가 없습니다. 미국 골든글러브 복싱대회라는 2건의 정보밖에 없습니다. 이름이 달랐던 시절도 아니니, 아예 수상자에 대한 관심자체가 없던 것입니다.

그럼 저 위키정보처럼 1983년부터는 (아예 베스트 10상은 사라진 걸로 나올 정도이니) 골글의 위상이 올라갔을까요?

12월 11일에 시상식이 열린다는 단신중의 단신처리로 끝. 
다음날인 12월 12일자에 베스트 10과 달리 단신으로 나옵니다. 오른쪽 구석입니다. 또한 매경등 여러 매체에서 대서특필한 베스트 10과 달리 [동아일보]외엔 찾아볼 수도 없습니다.
짤막한 내용이지만, 역시 1982년처럼 '수비율'로 준 상임이 명백히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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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살펴 보았듯 1982년과 1983년 두 시즌의 가장 중요한 포지션별로 수여한 무게감있는 상은 절대로 골든글러브가 아닌, [베스트 10상]입니다.또한 위키백과 역시 1983년 시즌 또한 베스트 10상이 존재했으며 당 시즌도 수비율로 골글을 주었다는 사실로 수정되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당시 골든 글러브수상자를 무시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현재의 골글의 위상과 가치를 가졌던 이 두 시즌의 "베스트 10상" 기록은 어떤 식으로든 KBO 홈페이지와 각종 시즌정보에 추가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처럼 완전한 망각으로 들어가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이런 식으로 왜곡되기 마련이지요.

최소한 다음 KBO의 역대기록 페이지에 이 두 시즌의 [베스트 10상]에 대한 정보가 올라가야 마땅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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