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사 금당내부에 장식하면 좋을 봉정사 古式 용기둥 (雲龍紋) 한국의 사라진 거대건축

황룡사등 한국의 고대건축물을 재건할 때 난점중 하나가 바로 내부장식입니다. 아무리 외형을 잡아두어도 고대-중세의 장식미를 구현하지 못하면 앙꼬없는 찐빵이 되버리겠지요. 오늘은 현재 진행중인 경주고대건축복원사업에서 꼭 살펴보면 좋을 것 같은 古式의 운룡문, 즉 구름을 타는 용무늬 기둥에 대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예산 수덕사, 영주 부석사 혹은 안동 봉정사니 할때 우리가 흔히 접하는 정보는 매우 일천한 편입니다. 즉, 수덕사 대웅전과 봉정사 극락전 및 대웅전, 그리고 부석사 무량수전등 고려중/후기 건축물이 있다는 것, 그리고 조금 더 들어가면 '주심포'양식의 기둥을 맛볼 수 있다는 것 정도입니다.

그에 비해 그 내부장식과 그 가치에 대한 담론은 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관심이 필요합니다. 건축물이 7-800년씩 오래되었다면 외부의 변화와 함께 변형은 있었을지언정, 내부장식 역시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 역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역시 우리건축역사에서 가장 고식(古式)이라 할수 있는 봉정사 대웅전안에는 불단을 중심으로 좌우에 아주 흥미로운 기둥이 두 개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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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대웅전 불단 쌍 雲龍紋 (용기둥)

1989년 조사당시 모습

이제까지 유일하게 만나볼 수 있는 이 기둥에 대한 연구는 무려 반세기전인 1975년 당시 홍익대학원에 석사과정이던 장경호씨가 쓴 [한국목조건축에 나타난 포(包)에 관한 연구 장경호(張慶浩), 1975년]이 현재까지 찾아볼 수 있는 유일한 언급입니다 (이조차 불단을 중심으로 연구한 것이 아닌 지엽적 언급에 그칩니다).

참고로 장경호선생은 80년대말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문화재청 문화재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한 분입니다. 이 분은 80년대 미륵사지 조사단장을 맡기도 한 고건축 전문가시죠. 주로 백제와 통일신라건축에 대한 연구를 하신 분입니다.

이 오래된 연구에 따르면 이 기둥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다음의 부분입니다:
대웅전의 단청은 금단청인데, 색조는 극채색(極彩色)으로 조선초기에 많이 쓰던 단청 색조이다. 외부단청은 많이 퇴락하였으나, 내부단청은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있는데 내부고주에 그려진 운룡문(雲龍紋) 등에서 고형을 잘 간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대웅전외부단청과 달리 내부단청은 1975년 당시 선명하며, 조선초기식임을 알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내부기둥에 그려진 운룡문, 즉 구름용무늬 기둥은 '고형' 즉 옛형식의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봉정사 대웅전이라는 건물자체의 연대를 다시 살펴봐야겠습니다.

원래 이 건물은 확실한 건립연대를 모른채 아마도 고려후기의 것이라는 추론만이 있었습니다. 그러다나 2000년이 되어 해체수리를 하게 되는데 이때 4종의 묵서가 새로 발견됩니다. 여기 아주 흥미로운 기록이 하나 등장하죠.

2000년 발견된 봉정사 대웅전 상량문

조선초기 세종조 17년 (1435년)에 쓴 봉정사 대웅전에서 발견된 이 상량문에 "신라대 창건이후 500여년에 이르러 법당을 중창하였다"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 기록으로 봉정사 대웅전의 창건연대가 1435년에서 약 500년이상 거슬러 올라가므로 800-900년대까지 올라갈 여지가 생겨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상량문에는 2층 누각의 신축, 단청을 그린 시기, 왕에게 하사받은 토지, 사찰규모등이 모두 기록되어 있었는데 무려 500결의 토지와 팔만대장경까지 보유하던 중요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2000년당시 대웅전 지붕의 종도리를 받치고 있는 북서쪽 종보 보아지에서 발견된 상량문에 이 구절이 적혀 있습니다. 쓴 저자는 당시 경상도 관찰출척사.

宣德十年乙卯八月初一日書
중국연호인 선덕 10년 (1435년, 조선조 세종 17년)에 쓴 글

新羅代五百之余年至 乙卯年分法堂重倉
신라대 창건 이후 500여년에 이르러 법당을 중창하다
 
이와 함께 대웅전 내 불단 바닥 우측에서 또다른 묵서명이 등장하는데 바로 불단에 관한 것입니다.

辛丑支正二十一年 鳳亭寺 啄子造成 上壇有覺澄 化主戒珠 朴宰巨
지정 21년 (1361년, 공민왕 10년)에 탁자를 제작해 시주하다.시주자 박재거.

즉, 이 기록들에 따르면 이 불단은 최소 1361년에 건립된 것으로 현존하는 한국의 모든 불단중 최고(最古)의 불단임이 확인된 것입니다.
2012년 [안동 봉정사 대웅전 목부재의 연대측정](박원규, 김요정 저)를 보면 이 추론에 대한 탄소연대측정 분석결과가 등장합니다. 결과에 따르면 불단과 기둥에 대한 연대측정은 하지 않았지만 지붕을 받치는 '도리'를 연대측정한 결과 1413~22년으로 추정이 되는데 이 연구의 중요성은 바로 저 기록들의 신빙성을 받쳐준다는 점입니다.

현재까지 연륜연대가 측정된 봉정사 대웅전 부재 23점은 수피를 가지고 있거나 수피 흔적이 남아있는 부재의 마지막 연륜이 1434년으로 측정되어 이들 부재들은 종보 통보아지 상부에 쓰인 `법당중창기’에 기록된 1435년 중창 기록과 일치하였다. 부재 23점에는 보 1점, 도리 6점, 장여 3점 등 가구 부재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연구결과의 결론부분에 등장하는 구절로 즉 '법당중창기'의 1435년과 지붕수리의 흔적목재가 일치하는 결과를 보여준 것입니다. 즉, 이 말은 더 나아가 저 1435년으로부터 500여년전에 건립된 (즉 이 건축의 애초건립시기가 무려 900년대로 올라간다는) 것이라는 상량문의 정보의 진위여부에서 그 Credibility를 한층 올려준 연구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연구의 뒷부분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번에 측정된 연륜연대는 2000년 수리공사중 교체된 부재들을 위주로 실시된 것이며 당시 채취된 부재중 상당수가 아직도 연륜연대 측정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종보 통보아지 묵서에 기록된 중창연대인 1435년 이전인 부재들도 찾아질 가능성은 아직도 충분히 있다. 따라서 중창기록 연도인 1435년보다 이른 시기에 건축된 건물인지 아닌지를 알기 위해서는 보, 창 방, 평방, 소슬합장 등 주요 부재들의 연륜연대에 대한 추가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아직 후속연구는 없는 실정인데, 결과에 따라 90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목재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이 경우 확실히 이 건물은 한국유일의 신라건축양식이 반영된 건축이 될 가능성마져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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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확실한 것은 이 용기둥이 서 있는 불단이 1361년 건립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란 점입니다. 또한 75년의 연구에 따르면 단청 역시 '고형'의 것으로 조선후기양식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 용기둥의 승천하는 운룡문은 현존하는 사찰의 용무늬중 가장 고식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용그림을 처음 봤을때 그 '고대-중세적 느낌'에 작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 포스팅을 통해 이전 연구결과로 인해 더욱 확신을 하게 되는군요.

마지막으로 이 용기둥이 불단에 속한 부속품인지 혹은 고려말인 1361년 더 이전에 만들어진 것인지도 연구가 필요합니다. 어느 경우건, 이 기둥의 무늬나 봉정사 대웅전내의 장식등이 황룡사 재건에 큰 레퍼런스가 되어야 함은 명확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황룡사 역시 예전에도 많이 소개했듯 이미 고려 건축양식을 굉장히 많이 담고 있었을 대사찰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의 포스팅 결론으로 오늘 포스팅을 마무리합니다.

고려전성기, 개경의 심볼과 같았던 연복사(보제사)는 개경이라는 접근성의 한계로 아직 제대로 된 발굴조차 한국측에선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오늘 소개한 연복사 5층목탑의 기록은 고려대 같은 5층건물들인 사리각, 만복사 5층전각과 비교연구도 도움이 되지만, 황룡사 복원에도 큰 도움이 될 기록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황룡사 9층목탑이 원래 건설된 시기는 7세기인 645년입니다. 하지만, 고려대인 10세기 (945년) 벼락으로 목탑이 소멸하자 60여년이 지난 1012년 다시 재건을 시작하여 9년만인 1021년에 완성했고, 그 후 1035년과 1095년에 보수공사 3년(1012)에 고려전기 별궁중 하나였던 경주의 조유궁(朝遊宮)을 헐어서 9층탑을 수리하는 등 '고려건축'으로 보아도 될 만큼 중건과 재건을 반복합니다. 

그런데 응현목탑은 1196년의 것이고, 연복사 목탑뿐 아니라 만복사 5층전각은 황룡사 9층목탑이 재건된 시기와 정확히 일치하는 11세기에 완공된 건축물들입니다. 즉, 연복사 5층목탑을 건설하던 당시, 동시에 황룡사 9층목탑이 같이 재건되고 있었던 것이지요. 당연히 고려대의 건축술이 신라의 것과 합쳐졌을 것이고, 당시 최신기술인 연복사 목탑 (이나 만복사 전각)의 내부구조와 비슷하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12세기경 황룡사를 방문 목탑을 오른 고려중기 문인 김극기(생몰년미상)와 12-13세기 고려중기 승려인 혜심(慧諶, 1178~ 1234년)의 다음의 두 시는 11세기 연복사 목탑과 함께 재건립된 황룡사 목탑을 오른 것입니다.

황룡사 목탑을 올라

層梯繞欲飛空
萬水千山一望通
俯視東都何限戶
蜂窠蟻穴轉溟

층계 사다리 빙빙 둘러 허공에 나는 듯
수많은 하천과 산들이 한눈에 보이네.
굽어보니 옛 도읍지의 수많은 집들이
벌집과 개미집 같이 아득하게 보이네.

一層看了一層看
步步登高望漸寬
地面坦然平似削
殘民破戶平堪觀

한 층 다 둘러보고, 또 한 층을 보면서
걸음걸음 올라서 점점 더 멀리 바라보니
지면은 깎은 듯이 평평하게만 보이는데
가난한 백성들의 부서진 집을 차마 볼수 없구나.


봉정사 대웅전 상부 용무늬


덧글

  • Nocchi 2017/11/22 08:32 #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저런 화려한 내부장식이 있다면 밋밋한(?) 요즘 절 조선후기 식 절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겠네요
  • 역사관심 2017/11/22 09:30 #

    더군다나 '황룡'사이니 만큼 용을 부조라든가 저런 회화로 많이 묘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특색있는 사찰로서의 매력도 생기겠지요.
  • 反영웅 2017/11/25 13:10 #

    고대 미시사에 대한 그림, 건축물, 기록의 부족으로 항상 갈증을 느끼는데 관심님 덕분에 답답한 부분이 많이 풀립니다.
    정말 오늘도 많이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역사관심 2017/11/27 07:06 #

    말씀 감사합니다~. 조금씩 성과가 쌓여서 의미있는 문화를 다시 재건해낼 수 있겠지요.
  • Romulus 2017/12/05 15:06 #

    정말로 좋은 글인 것 같습니다.
    근데 황룡사 목탑은 고려시대 때 여러 번 보수되어 고려양식과 신라양식이 혼재되어 있다고 하셨는데 최근의 황룡사 목탑 복원계획이나 복원모형에서는 신라의 양식으로만 짜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과연 학계에서는 지금 쓰신 글처럼 고려 양식을 차용하려는 움직임이 있는가요?
  • 역사관심 2017/12/06 00:52 #

    감사합니다. 아직 구체적 프로젝트의 세부계획까지는 발표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리고 최근 관련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말씀듣고보니 관심을 가지고 한번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관련연구가 나오면 소개해보도록 하지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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